<벽암록(碧巖錄)> 제4칙에서는 덕산선감(德山宣鑑)선사가 당대의 명승 위산영우(山靈祐)화상을 참문하여 불법의 지혜작용(禪機)으로 도전한 내용을 다음과 같이 싣고 있다.
덕산스님이 위산영우화상을 참문하여, 걸망을 짊어진 채로 법당에서 동쪽에서 서쪽으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왔다 갔다 하더니, 뒤돌아보면서 “無(없다). 無(없어)!” 라고 말하고는 곧바로 (법당을) 나가 버렸다. 설두스님이 착어(코멘트)로 말했다. “완전히 파악해 버렸네.”
덕산스님은 대문 앞에 이르러 말했다. “경솔해서는 안되지.”다시 몸가짐을 가다듬고 다시 법당에 들어가 위산화상을 친견하였다. 위산화상이 앉아 있는데, 덕산스님은 (절을 하려고) 방석을 들면서 “화상!” 하고 불렀다. 위산화상이 불자(拂子)를 잡으려 하자, 덕산스님이 갑자기 소리(喝)를 지르고, 소맷자락을 떨치며 밖으로 나가 버렸다. 설두스님이 착어했다. “완전히 파악해 버렸네.”
덕산스님은 법당을 뒤로하고 짚신을 신고 곧바로 떠나가 버렸다. 위산화상이 저녁때에 수좌에게 물었다. “아까 낮에 찾아온 그 스님은 어디 있는가?” 수좌는 말했다. “그 당시 법당을 뒤로하고 짚신을 신고 떠나가 버렸습니다.” 위산화상이 말했다. “이 사람은 훗날 높은 산봉우리(高峰頂上)에 암자를 짓고, 부처를 꾸짖고, 조사를 욕할 것이다.” 설두스님이 착어 했다. “눈 위에 또 서리를 첨가(雪上加霜) 하는군.”
擧. 德山到潙山, 挾複子, 於法堂上, 從東過西, 從西過東, 顧視云, 無無便出. (雪竇, 著語云, 勘破了也.)
德山, 至門首, 却云, 也不得草草, 便具威儀, 再入相見. 潙山坐次. 德山, 提起坐具云, 和尙. 潙山擬取拂子, 德山, 便喝拂袖而出. (雪竇, 着語云, 勘破了也.)
德山, 背却法堂, 著草鞋便行. 潙山至晩, 問首座, 適來新到在什處. 首座云, 當時背却法堂, 著草鞋出去也. 潙山云, 此子已後 向孤峯頂上, 盤結草庵, 呵佛罵祖去在. (雪竇, 著語云, 雪上加霜.)
제4칙 덕산의 젊은 혈기와 용기 있는 수행자의 면모를 잘 전하고 있다. 덕산이 걸망을 맨 채로 위산영우화상의 법당에서 동서로 왔다갔다하며 뒤돌아보고 “무(無)”라고 말한 뒤 법당 밖으로 나갔다고 한다.
선어록은 단순한 선문답이라는 대화만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선승들의 대화와 행동, 표정까지 기록하고 있다. 법당은 깨달음의 세계이며 불법을 설하는 청정한 법계이다. 따라서 법당은 선지식(법신불)의 설법으로 깨달음의 경지를 상징하고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덕산이 이러한 법당에서 ‘무무(無無)’라고 한 것은 자신이 불법을 깨달은 법신불의 경지에서 일체의 만법을 초월한 공(空)의 경지에 있다는 사실을 위산화상에게 말과 행동으로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법당을 나갔다고 하는 것은 깨달음의 세계까지도 초월한 자신의 경지를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덕산의 지혜작용(禪機)을 ‘방행(放行)’이라고 한다. 즉 자신이 체득한 불법의 경지를 위산화상에게 자유롭게 전부 다 제시해 보여주면서 불법의 지혜로서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덕산의 경지를 위산화상은 완전히 파악하였다고 설두는 코멘트를 붙이고 있다.
위산은 법당에서 조금도 동요됨이 없이 위엄 있고 냉정한 눈으로 덕산의 경지를 하나도 빠짐없이 지켜보며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덕산은 사찰의 입구인 일주문까지 나가서,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보고 ‘경솔해서는 안된다’라고 자각하고, 또다시 몸가짐을 가다듬고 다시 위산화상을 친견하고 있다. 덕산은 법당의 조실자리에 앉아 있는 위산화상에게 예배를 올리기 위해 방석을 잡고서 “화상”이라고 불렀다. 위산화상은 수행자를 맞이하기 위해 불자를 잡으려고 하는 그 순간 덕산은 갑자기 고함을 지르고 소맷자락을 떨치고 법당 밖으로 나가 버렸다.
이러한 덕산의 지혜작용(禪機)을 ‘파정(把定)’이라고 한다. 파정은 예절과 법규를 준수하는 여법한 경지에서 불법의 지혜작용을 펼치는 것을 말한다. 위대한 선승은 자유롭고 걸림 없는 선기(禪機)를 펼칠 수 있는 방행과 여법한 경지를 모두 적절하게 잘 활용할 수 있는 방편을 갖추어야 한다. 덕산은 위산화상의 처소에서 방행과 파정의 두 가지 선기를 모두 용기 있게 펼치고 떠나갔다.
설두는 두 번째 착어로 “완전히 파악해 버렸다”라고만 한다. 여기서는 덕산이 위산화상의 경지를 파악한 것을 말한다. 즉 덕산이 “화상” 이라고 인사 올리려고 하는 순간 위산화상이 덕산의 예배에 대하여 인사를 하기 위해 불자를 잡으려고 하는 마음을 파악하고 고함을 친 것이다. 조실이 불자를 드는 것은 수행자를 맞이하는 인사이다.
덕산은 위산화상의 몸과 행동을 친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위산의 법신인 본래면목을 친견하기 위한 것이다. 불자를 잡으려고 하는 위산의 본래면목을 친견했기 때문에 덕산도 자신의 본래 면목을 불성의 지혜작용인 고함으로 보답하고 곧바로 법당을 나가 버린 것이다. 선지식을 참문하여 친견한다는 것은 육체적인 모습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일체의 차별심, 분별심이 없는 근원적인 본래심(불성)과 본래심과의 만남이며, 법신불의 지혜작용을 선문답이라는 언어나 구체적인 행동으로 표현하고 나누는 것이다.
그리고 저녁때 위산화상이 선원의 지도자인 수좌에게 덕산의 소식을 묻자, 덕산은 걸망을 메고 법당을 등지고 짚신을 신고 떠나갔다고 한다. 이 일단은 위산화상이 ‘그대는 덕산의 경지를 어떻게 보았는가’라고 수좌의 안목을 점검하는 말이다. 그러나 수좌는 위산의 말뜻을 파악하지 못하고 덕산의 행동을 그대로 전한다.
덕산이 법당을 등지고 짚신을 신고 떠나갔다고 하는 것은 덕산은 자신이 체득한 깨달음의 경지(법당)에 안주하지 않고, 그 절대적인 불심의 세계까지 초월하여 중생이 살고 있는 저자거리(사바세계)로 나아가 중생구제의 보살도를 실현하는 행동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위산이 수좌에게 “이 사람(덕산)은 훗날 독자적인 깨달음의 경지(高峰頂上)를 이루고, 법당을 열어 부처나 조사의 경지까지 초월하여 불법을 펼칠 인물”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선어록에서 말하는 ‘높은 봉우리의 최정상(高峰頂上)’은 ‘백척이나 되는 긴 장대 끝(百尺竿頭)’과 같이 독자적인 깨달음의 경지를 이루는 말이다.
설두는 세 번째 착어로는 “설상가상(雪上加霜)”이라고 하였다.
위산화상이 덕산의 장래에 대하여 예언한 말은 사실 덕산의 스승인 용담숭신(龍潭崇信)선사가 덕산이 깨달음을 체득했을 때 말한 예언과 똑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눈과 서리는 흰색이라는 동일성이 있지만 분명히 다른 물질인 것처럼, 덕산에 대한 평가는 용담과 위산이라는 당대의 위대한 선지식이 똑같은 평가를 내리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설두는 코멘트 하고 있는 것이다.
설두는 덕산이 위산에게 방행과 파정의 선기(禪機)로서 불법을 도전하는 덕산을 한(漢)나라의 장수 이광(李廣:飛騎將軍)에 비교하고 있다. “이광이 오랑캐의 조정에서 죽다가 살아난 것처럼, 위산의 법당에서 살아나올 수 있는 인물이 몇이나 될까. 덕산과 같은 위인이 아니면 살아나오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덕산을 높게 평가한다. 그러나 덕산이 비록 위산의 법당에서 도망쳤지만 위산은 그를 놓아 주지 않고 냉철하게 지켜보고 있다고 하면서 덕산이 위산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한 경지를 읊고 있다. 덕산이 펼친 방행과 파정의 두 가지 선기는 모두 칼날이 상하고 말았다고 원오극근 선사도 코멘트 하고 있다.
성본스님/동국대 불교문화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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