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신 우 자띨라 사야도는 현재 미얀마에서 훌륭한 큰 스님으로 추앙받는 스님 중의 한 분이십니다.
인오선원이 옮겨오면서 이제 수행 중심의 도량으로 거듭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화요 교리강좌 시간에도 짧지만 수행 프로그램을 추가하였습니다.
그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좋은 번역자님을 통해 이미 번역되어 유통되고 있는
아신 우 자띨라 사야도의 훌륭한 가르침을 27회에 걸쳐 연재하오니 수행에 많은 도움이 되시기를 발원합니다.
< 참고 : 표기된 빨리어 중에서 일부 단어는 로마자 국제공용 빨리어가 아니고 인터넷에서 사용되는 빨리어입니다. 빨리어 표기가 복잡하여 인터넷에서 수용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용하고 있는 것을 참작하여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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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신 우 자띨라 사야도(Ashin U Jatila Sayadaw)의 가르침
2.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
오늘 법문은 수행자가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즉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에 대해서입니다. 위빠싸나 수행의 목적은 닙바나<*1>를 성취하는 것입니다. 이 위빠싸나 지혜[洞察智]로 수다원과(須陀洹果)에 도달하기 위해 도(道, magga)에 들어 흐름에 든 자(預流者, sotaapanna)<*2> 라고 불리기 위해서는 수행자가 다음 세 가지 족쇄들을 극복하기 위하여 분발해야 합니다.
(1) 유신견(有身見) <*3>
(2) 회의적 의심(懷疑的 疑心) <*4>
(3) 계율과 의례에 대한 집착[戒禁取見] <*5>
수다원과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다음 네 가지 요구사항들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첫째, 경험 많고 유능한 스승을 만나야 합니다. 위빠싸나 수행의 목적은 한 두 생에서 행복할 뿐만 아니라, 윤회로 인해 태어나는 모든 생에서 고통으로부터 해방되자는 것입니다. 나아가서는 윤회 그 자체에서 벗어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다원과를 얻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훌륭한 스승을 만나는 것입니다. 경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실제 수행 경험이 있는 명상 스승을 만나는 것입니다.
둘째, 수행자는 집중해서 열심히 수행을 하여 위빠싸나 수행의 진전에 큰 도움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스승의 지시사항과 법문에 아주 정성을 들여 주의 깊게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수행자가 스승의 지시와 법문에 신중하게 주의를 기울인다면 수행에 대한 믿음이 생깁니다. 믿음을 빨리어로 삿다(saddha)<*6>라고 하는데 믿음으로 인해 잘못된 길로 접어들어 방황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모든 경건한 가르침에는 이론과 수행이 있습니다. 수행의 측면에서 수행자는 걷거나 앉을 때, 모든 물질적 정신적 현상<*7>을 주목하여 알아차림을 합니다. 수행자는 이론에 대해서도 정통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하면 정신과 물질만이 존재하며, 원인과 결과만 있다고 합니다. 책을 읽는 것만으로는 이를 분명하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론과 수행을 병행했을 때만이 이론과 더불어 수행까지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심오한 불교철학과 심오한 수행의 철학적 관점을 이해하기 위해서, 수행자는 법문을 주의 깊게 들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수행을 통한 불교철학을 터득하게 되어 위빠싸나 지혜[洞察智]가 빠른 속도로 계발됩니다.
셋째, 스승에게 정직하고 사실대로 보고하는 것입니다. 수행을 하다 보면 어떤 때는 잘 알아차려지기도 하지만 때로는 잘 알아차리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경험한 것을 보고할 때는 스승에게 올바르게 보고해야 합니다. 수행자가 좋은 경험일 때는 보고하지만, 나쁜 것은 분명하고 솔직하게 보고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수행자가 좌선을 잘못했다고 생각하지만, 스승이 보기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통찰지를 얻고자 할 때 언제나 수행이 잘 되기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수행 초기에는 수행을 처음 경험하는 것이므로 대부분의 수행자들은 약간의 어려움을 경험하게 마련입니다. 어느 정도 수행한 다음에나 조금씩 집중이 되므로 이때 좋은 현상들이 조금씩 나타납니다. 그런 뒤에도 또 좋지 않은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수행자는 이것을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비관적으로 생각하지만, 사실상 이것은 수행의 종착지로 가는데 있어서 좋은 현상에 속하는 것입니다.
스승이 수행자를 지원하고 격려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수행자가 이런 어려운 지경에 빠져 있을 때 좋지 않은 경험도 보고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럴 경우에만 명상 수행의 계발과 발전에 필요한 올바른 충고를 받을 기회가 생깁니다. 그러므로 수행자가 경험의 좋은 측면만이 아니라 나쁜 측면까지 스승에게 분명하고 솔직하고 정확하게 보고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넷째, 수행자가 수행하는데 있어서 근면하고 부지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수행자는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부터 항상 기민해야 하며 지속적인 노력으로 주목을 해서 알아차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수행자는, 앉거나 걷거나 모든 물질적 정신적 행동에 있어서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들을 알아차리는 것이 그가 해야할 첫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의무입니다. 아무리 작은 움직임, 예를 들어 손을 움직인다든지 옷을 갈아입는다든지 하는 등등 무엇이든지 놓치지 말고 알아차려야 합니다.
수행자는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하려고 할 때 서둘게 되므로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럴 경우에 행동들이나 움직임들을 자세히 알아차리지 못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식사할 때에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방심하고 먹어서는 안 됩니다. 염처경에 제시한 대로 무엇이든지 잊어버리지 말고 자각하면서 주의 깊게 모든 행동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마하시 큰스님에 의하면 대소변을 볼 때도 알아차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알아차려서 안 될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물질적 정신적 현상들을 주의 깊게 알아차려야 합니다.
만약 이들 네 가지 요소들이 수행자에 의해 빈틈없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수다원과를 성취하는 것은 아주 쉬울 것입니다. 수행자가 이런 목적을 달성하는 것을 돕기 위하여, 마하시 큰스님께서는 수행자가 지켜야 할 것만이 아니라, 하지 말아야 할 것도 정해 놓으셨습니다.
첫째, 수행자는 말하고 먹고 자는 것을 억제해야 합니다. 말하는 것은 명상 수행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방해 요소입니다. 집중수행을 할 동안에는 어떤 경우에도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만약 꼭 필요한 경우에는 자기자신에게 경고하고 최소한으로 말을 줄여서 말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끝없이 말할 수도 있습니다. 수행자는 말할 때에도 말하려는 의도와 이야기의 주제를 알아차려야 합니다.
다음으로 수행자는 조금만 먹어야 합니다. 결코 과식해서는 안 됩니다. 부처님께서, 수행자가 결코 배불리 먹어서는 안 되고 4-5 수저는 남겨야 하며, 배를 물, 수프, 음료 등의 액체로 채우기를 권장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면 수행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식사를 하는 방법에 대해서 상당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다음으로 명상 수행을 잘 하려면 가능한 한 적게 자야 합니다. 고대의 성스러운 구도자들은 밤의 열두 시간 중에서 네 시간만 자고 나머지 시간은 진지하게 수행하는데 사용했습니다. 물론 그렇게 하면 수행자들의 건강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수행자들이 좌선하고 있을 때, 어떤 의미에서는 다소간 편안하고 안락하며 규칙적으로 호흡하고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기 때문에, 이때가 다소간 자는 것처럼 쉬는 셈이며 에너지를 보충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수행자들은 한 번 좌선을 잘 하고 나면 마치 잠을 잘 자고 일어난 것처럼 몸과 마음이 상쾌함을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네 시간만 자면서 집중수행을 해도 수행자들의 건강에 해롭거나 치명적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수행자들은 하루의 스케줄이 네 시간밖에 못 자게 되어 있어도 아무런 불안감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처음으로 집중수행을 하던 시절의 이야기를 해 드리겠습니다. 나는 15일간을 잠자지 않고 계속해서 수행했습니다. 그런 경험을 한 후에, 잠자지 않고 10일간 계속 집중수행해도 건강에 해롭지 않다는 걸 확신합니다. 여기 마하시 선원에서도 집중수행기간 동안 잠자지 않는 수행자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둘째는 노력입니다. 수행자는 굳은 결심, "나는 내 몸의 살과 피가 다 말라버리고 피부, 뼈와 힘줄만 남아 있더라도 이번 명상을 불굴의 의지로 계속하겠다. 나는 멈추지 않고 수행하겠다."는 흔들림 없는 굳센 의지를 가지고 집중수행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결심을 확고하게 해야 합니다. 수행자가 통찰 명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면 자신의 몸에 대한 집착이 무시될 것입니다. 만약 수행자가 자기 몸에 대해서 지나치게 애정을 가지고 집착이 많을 때, 통찰지(洞察智)의 성장은 아주 느리고, 높은 단계의 지혜를 얻기가 몹시 어려울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깨닫기 전 날 저녁에 네란자라 강 둑 위의 보리수 아래에서 수행하셨습니다. 수자타가 드린 유미죽을 드신 다음 보살(Bodhisatta)<*8>은, '내 살과 피가 다 말라버리고 피부, 뼈와 힘줄만 남더라도 붓다가 될 때까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겠다.'라고 굳은 결심을 하셨습니다. 그가 이러한 확고부동한 결심으로 수행한 결과, 초경에는 전생을 볼 수 있는 숙명통을 얻었습니다. 제2경에는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천안통을 얻었습니다. 제삼경에는 모든 번뇌들이 소멸된 누진통을 얻고, 깨달음을 얻어 모든 것을 다 아시는 붓다가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열정적으로 실천하고자 하는 우리 마하시 선원의 모든 수행자들은, 네 가지 요구사항들을 모두 준수하면서 부처님께서 가신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셋째, 수행자들은 어느 정도 정화된 사람들이기 때문에, 항상 알아차림의 확립을 실천해야 합니다. 어떤 종류의 번뇌가 조금이라도 몸과 마음을 공격하여 스며들지 않도록, 수행자들은 하루 종일 전력을 다해서 알아차림 하는 수행에 몰두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소리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듣는다면, 그 소리가 즐거운 것일 경우에 집착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스승에게 배운 대로 항상 알아차려서, 소리는 단지 소리일 뿐 집착을 하지 않고, 분노를 일으키지 않으며, 단지 소리로써 지나가게 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감각기관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의 느낌을 알아차릴 때 수행자는 집착하지 않고, 마음과 몸에 침투하는 번뇌를 일으키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라한 혹은 붓다의 길을 가는 수행자들은 숭고한 정신과 순수한 마음을 가진 성스러운 분이라고 간주됩니다. 그들은 모든 공양, 가사와 필수품들을 받을 자격이 있으며 받아 마땅합니다. 이런 상태를 유지하기 위하여, 모든 수행자들은 항상 지속적으로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물질적, 정신적인 현상을 알아차리려고 진지하게 노력해야 합니다. 만약 수행자가 알아차리다가 쉬다가 하면, 때로는 집중이 되지만 쉴 때에는 집중이 잘 안 될 것입니다.
스승이 수행자를 평가할 때 수행자가 열심히 하는지 안 하는지를 잘 압니다. 예를 들어, 오랜 병고에 시달리면서도 약을 규칙적으로 먹지 않는 환자가 있을 때, 의사는 그런 환자 돌보기를 꺼릴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명상 스승들은 지시대로 규칙적으로 수행하지 않고 했다가 말았다가 하는 수행자들 때문에 우려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나는 모든 수행자들이 아주 진정으로 알아차리기를 촉구합니다. 수행자들은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밤에 잘 때까지, 모든 정신적 물질적 현상을 알아차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넷째, 수행자들은 환자처럼 행동해야 합니다. 왜냐 하면 환자는 무엇을 하든 빨리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수행자는 천천히 걷고, 아주 천천히 먹고, 심지어는 말도 천천히 합니다. 수행자가 그처럼 무엇을 하든지 아주 천천히 하면,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모든 정신적 물질적 현상을 알아차리고 또 알아차릴 수 있을 겁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행동이 빠르기 때문에 천천히 알아차릴 수 없습니다.'라고 주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처음 단계에서 어느 정도 그 말이 맞습니다. 그러나 며칠 간 수행하여 알아차려서 주시하는 습관이 몸에 붙은 다음에는, 스스로 어려움 없이 항상 알아차릴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을 알고서 아주 기뻐할 것입니다.
상황에 따라서 어떤 때는 아주 빨리 행동을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교통이 복잡한 길을 건널 때는 빨리 걷지 않으면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마하시 선원에서 수행하고 있을 때에는 무엇보다도 알아차리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모든 행동을 빨리 한다면 모든 정신적 물질적 현상을 자세히 알아차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점진적으로 그리고 결과적으로 나타나는 통찰지가 빨리 향상되기를 바란다면, 수행자는 환자처럼 행동해야 하며 모든 행동을 알아차리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다섯째는, 대상을 지체 없이 지속적으로 알아차리려는 노력을 끈덕지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는 순간부터 밤에 잠들 때까지, 좌선과 행선을 할 때만이 아니라 모든 일상생활에 대해서도 알아차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한 순간에서 다음 순간으로 집중이 이어질 때, 수행자는 적절한 때가 되면 점차적인 통찰지를 성공적으로 계발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 법문을 마치면서, 모든 수행자들이 마하시 큰스님의 지시를 따를 것과 수다원과를 성취하기 위해 네 가지 조건을 지키기 바랍니다. 이 지시사항을 따름으로써 수행자 여러분들 모두가 가능한 가장 짧은 시간 내에, 가장 쉬운 방법으로 모든 고통이 소멸하는 닙바나를 성취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사두! 사두! 사두!
옮긴이 주해(註解)
<*1> 닙바나 : 빨리어로 닙바나(nibbana)는 열반(涅槃), (불이) 꺼짐, 해방, 적멸(寂滅), 적정(寂靜), 지복(至福) 등을 말한다. 불이 꺼짐은 탐진치(貪瞋痴)의 세 가지 번뇌가 꺼진 상태를 말한다.
위빠싸나 지혜가 성숙되면 마지막에 닙바나에 이르는데 최초의 닙바나를 경험함으로써 수다원도과를 성취한다. 이렇게 닙바나에 든 수행자를 성자(聖者, ariya)라고 한다.
닙바나라고 하는 열반에는 무여의(無餘依) 열반과 유여의(有餘依) 열반이 있다. 무여의 열반은 열반에 들면서 죽는 상태이고, 유여의 열반은 열반에 들지만 살아서 구도를 한다. 부처나 아라한처럼 윤회가 끊어지는 열반을 빠리닙바나라고 하며 반열반(般涅槃)이라고 한다.
빨리어 닙바나를 산스크리트어(梵語, sanskrit)로는 니르바나(nirvaa.na)라고 한다.
<*2> 흐름에 든 자(預流者, 須陀洹, sotaapanna) : 닙바나에 이르면 수다원과를 성취하는데 이를 예류자 또는 수다원, 소따빠나라고 한다. 예류자는 흐름에 든 자를 말하는데 수다원도과를 성취하면 최대한 일곱 생 이내에 아라한이 된다. 그래서 흐름에 든 자라고 불린다.
<*3> 유신견(有身見) : 개체가 영원히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극단적인 견해이다. 오온을 영원하다거나 자아와 관련이 있다고 보는 견해이다.
유신견은 욕망의 세계[欲界]에 존재를 붙들어 매는 번뇌인데, 이것을 족쇄 또는 속박이라고 하며 오하분결(五下分結)이라고도 한다.
욕계의 다섯 가지 번뇌는 다음과 같다.
① 유신견
② 회의적 의심
③ 계율이나 금지조항에 대한 집착
④ 감각적 욕망
⑤ 악의
수다원이 되면 유신견, 회의적 의심과 계율이나 금지조항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4> 회의적 의심(懷疑的 疑心) : 불법승 삼보와 수행방법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의심을 하는 것. 이런 의심은 주저하는 마음이 되어 수행을 하지 못하게 한다. 의심은 수행을 할 때 나타나는 다섯 가지 장애 중의 하나이다.
<*5> 계율과 의례에 대한 집착[戒禁取見] : 지나치게 계율을 집착하거나 의례나 금지조항에 대해서 집착하는 것을 말한다. 부처님 당시의 자이나교처럼 지나친 계율과 잘못된 의례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벗어남을 말한다.
<*6> 삿다(信, saddha) : 믿음, 신뢰를 말한다.
수행에서 기본적으로 필요한 다섯 가지 마음의 기능을 오근(五根)이라고 한다.
① 믿음 ② 노력 ③ 알아차림 ④ 집중 ⑤ 지혜
오근에서 믿음은 노력과 알아차림과 집중을 이끌어 주어 지혜를 나게 한다. 오근의 믿음이란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신뢰이며 이로 인해 불법승 삼보에 대한 믿음이 생겨 바르게 수행을 하게 한다. 불교의 믿음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자신의 몸과 마음을 대상으로 알아차린 결과에 대한 경험으로 일어난 것이다. 그래서 확신에 찬 믿음을 갖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맹목적 믿음이 아니다.
<*7> 물질적 정신적 현상 : 수행 중에 알아차려야 할 대상은 자신의 몸과 마음이다. 이것을 오온이라고 하는데 물질은 색이라는 몸을 말한다. 정신은 수, 상, 행, 식의 네 가지 마음을 말한다. 이 중에 식은 마음이고 수, 상, 행은 마음의 작용이다. 물질적 정신적 현상은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알아차릴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이것이 마음의 대상인데 이것은 실재하는 것이므로 고유한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래서 법이라고 한다. 또한 물질적 정신적 현상은 원인과 결과가 있어 유위법에 속한다. 또 다른 법으로 닙바나를 들 수 있는데 이것은 원인과 결과가 없으며 무위법이라고 한다.
<*8> 보살(菩薩, Bodhisatta) : 빨리어 보디사따를 보살이라고 한다. 보디(bodhi)는 깨달음을 의미하고, 사따(satta)는 구하는, 매달리는, 헌신하는, 열중하는 등의 뜻이 있다. 그래서 보디사따는 깨달음을 구하는 자라는 말로 구도자를 의미한다.
여기서 깨달음이란 최고의 깨달음을 뜻하며 그렇기 때문에 부처가 되기 위해 헌신하는 사람을 보살이라고 한다. 부처는 무수한 세월 동안 보살로서 바라밀 공덕을 쌓은 결과로 부처가 된다.
보살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다.
① 지성적인 보살
② 헌신적인 보살
③ 활동적인 보살
지성적인 보살은 외적 대상에 대해서 숭배하지 않고 지혜를 계발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서 명상을 선호한다. 헌신적 보살은 믿음과 신앙심이 깊은 보살이다. 이때 지나친 믿음이 맹신으로 빠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활동적 보살은 언제나 남을 위해 활동적으로 봉사를 한다. 명예나 평판을 얻기 위해서 일하지 않고 봉사의 정신으로 열심히 남을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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