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보리행론 해설

[스크랩] 입보리행론 해설 15. 마음의 변화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

수선님 2018. 6. 24. 11:56

 

어제 설명한 “경에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요약하여 말하겠습니다.”의 다음 게송을 보겠습니다.


2    이전에 없었던 것을 여기에서 새롭게 말하는 것은 없으며

      나에게 뛰어난 문장력이 있어서도 아니며

      다른 사람을 위한다는 생각 또한 없으며

      (오직) 나의 마음에 올바른 습성을 길들이기 위해

      이 논서를 짓네.


이 논을 지으신 목적에 대해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이전에 없었던 내용을 새롭게 말한 것이 없음은 물론이거니와 훌륭하고 아름다운 문장력이 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한다는 생각 또한 없다.”고 하신 것은 만약 듣는 사람이 수행에는 관심이 없고 새로운 이야기 꺼리를 찾는다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혹은 ‘듣기 좋은 아름다운 글귀는 없나?’하는 생각으로 본다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게송은 [집량론] 예경문에 있는 제자의 맹서에서, 법을 듣는 사람들 가운데 근기가 낮아 법을 받아들일 수 없는 허물에 대해 말씀하신 부분과 같은 의미입니다.

    

한편, 샨티데바께서는 본인 스스로가 선한 마음의 습성을 길들이기 위해 이 논서를 지으셨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까닭은 자신을 낮추고 덕을 높이는 한편 간접적으로는 법을 듣는 사람이 스스로를 살펴보게 하고

 

또 참됨으로 돌아가게 하여, 그들에게 이익이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전에 없었던 이야깃거리는 없을까?’하는 것이 동기가 아니라 ‘이전부터 들어왔던 것이지만 반복해 들음으로써 깨달음을 얻으려고 하는 사람’이라면 이 논서는 반드시 도움이 될 것입니다.

 

문장력이나 글귀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 뜻의 깊이와 내용에 더 의존한다면, 다시 말해 뛰어나고 훌륭한 문장력과 글귀보다는 그 뜻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라면 이 논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입보리행론]을 들을 때 ‘이전에 듣지 못했던 새로운 이야깃거리가 없을까?’하는 사람이 있다면 평소 알고 있는 것을 또 다시 말하는 것이므로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뛰어난 문장력이나 아름다운 글귀에 관심이 많은 사람에게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입보리행론]을 짓고 듣는 목적은 세세생생 이 보살의 길을 가겠으며 이러한 방법으로 수행을 하겠다는 마음을 내는 것입니다. 수행의 의미에 대해서는 이전부터 들어왔든 그렇지 않든 간에 항상 반복해서 익혀야 합니다. 익히고 습성을 들일 때 마음이 변합니다. 마음에 습성을 들이지 않고는 결코 변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말하는 것은 듣고 이해하는 정도에 그칠 뿐 그 이상이 아니라면, 이런 방법으로는 아무런 힘도 발휘할 수 없습니다. 듣는 것을 반복함으로써 생각을 하고, 이해를 할 때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확신을 갖는다는 것은 습성을 들여서 마음에 변화가 오도록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이 논에서 설하신 가르침과 그 뜻을 반복하여 익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에 와 닿습니다.

    

그 예로 ‘보리심’이라는 것을 처음 들을 때 ‘아! 이것이 참 좋은 것이구나.!’하는 생각은 들지만 마음에 별 느낌은 없습니다. 그러나 반복해서 생각하면 ‘아! 나에게도 이 마음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 생깁니다.

이렇게 ‘생겼으면..’ 하는 마음을 반복하다 보면 익숙해집니다. 그렇게 하다보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조금 밖에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몇 년 후에 보면 예전과는 달리 마음에 많은 변화가 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습관을 들여서 생긴 것이지 기도를 해서 이루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입보리행론]을 듣고, 생각하고, 수행하여 마음에 변화가 오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출처 : 출리심 보리심 공
글쓴이 : - 해탈 -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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