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심결

[스크랩] 수심결(修心訣) (6) 깨달음에 의지해 닦고 점점 익혀서

수선님 2018. 7. 1. 12:15

 


 

수심결(修心訣)(6)

 

-깨달음에 의지해 닦고 점점 익혀서-

-성인의 자질을 길러가는 것이 점수-

 

물었다.

“스님께서는 돈오와 점수의 문이

모든 성인이 밟아온 길이라 하였습니다.

 

깨달았다면 이미 돈오한 것인데

어째서 점점 닦아야 하며,

닦음이 만약 점점 닦아야 것이라면

어째서 돈오라고 말할 있습니까.

 

돈오와 점수의 가지 뜻을

다시 설명하여

남은 의심을 끊게 해주십시오.

 

답하다.

“돈오라는 것은

범부가 미혹했을 ,

사대(四大) 몸으로 삼고

망상을 마음이라 하여

자기의 성품이 법신(法身)임을 알지 못하고,

자기의 신령한 지혜가

부처인줄을 알지 못해서

마음 밖에서 부처를 찾아

물결치듯이 흘러다니다가

갑자기 선지식의 가르침으로

바른 길로 들어가

생각에 심광(心光) 돌이켜서

자기의 본성을 보면,

성품에는 본래 번뇌가 없고,

번뇌가 없는 지혜의 성품이

본래 스스로 갖추어져 있어서

모든 부처님과 더불어

털끝만큼도 다르지 않기 때문에

돈오라 하는 것이다.

 

점수라는 것은

비록 본래의 성품이

부처와 다르지 않음을 깨달았으나

오랜 세월의 습기(習氣)

갑자기 제거하기 어려우므로

깨달음에 의지해 닦고

점점 익혀서 공을 이루고,

오랜동안 성인의 자질을 길러나가야

성인이 되는 것이므로

점수라 하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어린아이가 처음 태어났을

모든 기관이 갖추어져 어른과 다르지 않지만

힘은 충실하지 못하므로

어느 정도 세월이 지나야

비로소 성인(成人) 되는 것과 같다.

 

물었다.

“어떤 방편을 써야

생각의 기틀을 돌려

자성(自性) 깨달을 있겟습니까.

 

답했다.

“오직 그대 자신의 마음인데,

다시 무슨 방편을 쓴다는 말인가.

만약 방편을 써서 다시 알려고 한다면

그것은 마치 어떤 사람이

자신의 눈을 보지 못하고

눈이 없다고 하면서

다시 보려고 하는 것과 같다.


이미 자신의 눈인데

어째서 다시 보려고 하는가.

만약 잃지 않았음을 알면

그것이 눈을 보는 것이다.


다시 보려는 마음이 없다면

어찌 보지 못한다는 마음이 있겠는가.

자신의 신령스런 앎도 역시 그와 같아

이미 자신의 마음인데 어째서 알려고 하는가.

 

 

수심결(修心訣)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 1158~1210)의 저서

출처: Buddhapia, 김원각<시인·역경위원>


출처 : - 행자실 -
글쓴이 : 성불하십시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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