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경-장산스님

[스크랩] 현수품(賢首品)

수선님 2018. 7. 1.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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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수품(賢首品) ▣

1. 문수보살이 현수보살에게 수행공덕을 묻다

경문 그 때에 문수사리 보살이 번뇌 없는 청정한 행의 공덕을 설하시고 나서 보리심의 공덕을 나타내 보이시고 게송으로 현수 보살에게 물었다.

내가 이제 이미 모든 보살에게

부처님이 옛적에 닦으신 청정행을 말했으니

어지신 이는 마땅히 이 모임 가운데

수행의 수승한 공덕을 말하소서.

2. 현수보살이 게송으로 답을 하시었다

훌륭하십니다. 현자여, 자세히 들으소서.

저 모든 공덕은 헤아릴 길이 없어

내가 이제 힘을 따라 조금 말하리니

마치 큰 바다의 한 방울 물과 같습니다.

만약 보살이 처음 발심을 하매

맹세코 부처님의 보리를 증득하려 하면

그 공덕은 끝이 없어서

헤아릴 수 없고 비유할 데 없습니다.

늘 모든 중생 이익되고 즐겁게 하고자

국토를 장엄하고 부처님을 공양하며

바른 법 받아 지니고 지혜 닦아서

깨우침 증득한 연고로 발심함입니다.

⊙ 합론

기신론에 이르기를, 삼종발심(三種發心)이 있으니, 첫째는 믿음의 성취를 밝힘이니 일만 겁이 지나도록 선근이 끊이지 않아야 바야흐로 불퇴전에 이름일새 보살이 가르쳐 하여금 발 심케 하며, 혹은 스스로 대자대비가 있으며, 혹은 정법이 멸하고자 함에 정법을 위호(衛護)함으로써 발 심 하는지라.

이와 같이 신심이 성취하면 정정취(正定趣)를 얻어서 필경에 퇴전치 않나니 이름이 여래종중(種中) 바른 인연에 살게 됨을 얻거니와 만약 어떤 중생이 선근이 미소(微少)하여 오랜 옛날로부터 번뇌가 깊고 두터워서 비록 부처님을 만나서 또한 공양함을 얻으나 인천(人天)의 종자와 연각의 종자를 일으키며 설사 대승을 구하는 자라도 근기가 결정치 못하여 혹 퇴굴 한다 하시니 대의와 자기 선근이 미소한 까닭인지라.

3. 믿음은 수승한 힘이니라

경문

믿음은 도의 근본 공덕의 어머니이니라

온갖 모든 선법을 장양하며

모든 의심 끊고 선법의 도량에 들어

위없는 열반을 열어 보이네.

믿음은 마음이 청정함이요

교만함 없는 공경의 근본이라

믿음은 제일가는 재물이요

청정한 손이 되어 온갖 과보를 얻는다.

믿음은 은혜로이 보시하며

믿음은 환희심이라

지혜와 공덕을 증장하고

복전의 자리에 오른다.

믿음은 공덕이 파괴되지 않음이요

깨달음 나무 생장케 하고

믿음은 가장 큰 지혜를 자라게 하고

묘한 보배구슬 소유함이라.

4. 삼보를 공양하는 마음을 밝히다

만약 부처님을 믿고 배우면

곧 능히 계(戒)를 지니는 자라

항상 계를 지켜 닦고 배우면

능히 모든 공덕을 구족히 하리라.

계는 보리의 근본이요

배움은 공덕을 닦음이라

계와 배움을 함께 닦으면

부처님은 아름답다 칭찬하리라.

만약 청정한 스님을 믿어 받들면

신심이 물러가지 않음을 얻으리니

신심이 물러나지 않음을 얻으면

능히 불퇴의 힘을 얻으리라.

☞ 해설

계경에 말씀하시되, "천상에 낳는 사람은 지계 제일이다" 하였습니다. 즉 계를 잘 지키면 공덕이 그만큼 크다는 것입니다. 계에는

첫째, 삼귀의계가 있습니다. 삼귀의계란 하나는 부처님께 귀의하는 계요, 둘은 부처님의 법에 귀의하는 계요, 셋은 스님네께 귀의하는 계입니다.

둘째, 오계가 있습니다. 오계란 하나는 불살생계(不殺生戒)이니 산 목숨을 죽이지 말라는 것이며, 둘은 불투도계(不偸盜戒)이니 도둑질하지 말라는 것이며, 셋은 불음행계(不淫行戒)이니 음행을 하지 말라는 것이며, 넷은 불망어계(不忘語戒)이니 거짓말, 이간 꾸미는 말, 두 가지 말을 하지 말라는 것이며, 다섯은 불음주계(不飮酒戒)이니 술을 마시지 말라는 것입니다.

모든 계 근본은 바로 이 오계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 십계가 있습니다 십계란 오계에 다시 오계를 더한 것입니다.

어느날 눈병에 걸린 사람이 병원을 찾아갔습니다. 의사는 "당신은 눈에 연꽃의 향기를 맡게 하면 저절로 나을 것이요"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연못으로 가서 연꽃을 눈에 대고 있습니다. 그런데 코가 연꽃 향기를 맡으니 너무 좋아서 연꽃을 눈에 대야 하는데 그만 자꾸 코에 대고 향기를 맡았습니다.

이 때 한 노인이 연못에서 나와서 "이 고얀놈, 어디 도둑질을 하다니"하며 노인은 노려보면서 가라고 떼미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놀라서, "아니 노인께서 나보고 도둑이라니 말도 안 됩니다. 나는 연꽃의 향기를 맡았을 뿐입니다." 노인이 말하기를, "너는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향기를 취하였고 이제 탐심까지 일으켰으니 네가 향기를 도둑질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랴"고 반문하였습니다.

그런데 조금 있다가 아주 험상궂은 사람이 오더니 그냥 연못에 들어가서 연꽃이며 연잎 등을 한아름 꺾어서 안고 가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 그 눈병을 얻은 사람이 화가 나서 노인에게 따졌습니다. "왜 저 사람은 연꽃을 통째로 꺾어가는데 아무 말 하지 않고, 나는 그저 향기만 맡았는데 나보고는 도둑이라 하십니까?" 하니, 노인이 말하기를 "세간의 악한 사람이 똥물에 들어간들 무슨 냄새가 대수겠느냐. 그러나 수행하는 사람은 마치 하얀 백지와 같아서 조금만 더러운 물이 튀어도 큰 허물이 되느니라."하였다고 합니다.

5. 십주위(十住位)를 밝히다

경문

만약 보리심을 일으키면

능히 부처님의 공덕을 얻으리니

여래가 계시는 집에 태어나

즐거움과 청정함을 얻으리라.

6. 십행위(十行位)를 밝히다

만약 항상 바라밀을 닦아 익히면

곧 능히 대승을 얻으리니

만약 대승을 구족히 한다면

능히 여법히 부처님께 공양하리라.

7. 십회향위(十廻向位)를 밝히다

만약 한량없는 부처님을 보게 되면

여래의 몸 항상 머무름을 보리니

만약 여래의 몸 항상 머무름을 보게 되면

곧 능히 법이 없어지지 아니함을 보게 되리라.

⊙ 합론.소 객진(客塵)은 능히 마음을 탁하게 하며 비지(悲智)가 능히 그 생각의 어지러움을 막나니 청정행이 대공덕이라. 마음이 가득한 보리심이 수승한 공덕이요, 널리 모든 오위인행(五位因行)을 갖춰서 현시한 연고라, 생사에 서원코 보리를 증득함이니 만덕이 의지하는 바일새 고로 이제 나타내어 보임이라.

♧ 투도계의 범계(소가 된 이정린)

왜정 때 일입니다. 이정린 이라는 사람은 친구의 재산을 관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친구의 돈과 논과 밭을 죄다 팔아먹었습니다. 친구는 나라를 구하기 위하여 만주에서 구국운동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정린은 그 친구의 모든 것을 빼앗아 버린 것입니다. 그의 친구가 와서 이정린을 보고 이렇게 말하였다고 합니다. "내가 너의 죽음을 꼭 보리라. 내가 너를 반드시 지켜 보리라." 하고는 그의 친구는 노모를 모시고 청송 시골로 돌아가서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는 암소를 한 마리 사서 기르는데 소가 새끼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새끼 송아지는 숫송아지 였는데 그 송아지의 배에 이정린이라고 쓰여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본 그 사람은 다시 분노가 치밀었습니다. "옳지, 네놈이 이렇게 나에게로 오다니 언제 죽어서 이제 사 나에게 왔느냐." 하고 그는 복수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매일 저녁 외양간의 송아지가 보는 앞에서 식칼을 숫돌에 쓱쓱 갈면서, "내가 너를 이 칼로 잡아서 팔 것이다." 하면서 눈을 흘기고 말을 하였는데 그럴 때마다 송아지는 소리를 지르면서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 그 사람은 이 소를 청송 시장 어구에 장날이면 소를 매어 두고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이 소의 내력을 말하였습니다.

"그 웬수의 죄 값을 치르기 위하여 내 집에 태어난 것이다. 내가 너처럼 환장한 놈은 처음 본다. 이제 뻔뻔스럽게 내 집에 오다니 네 이놈 잘 왔다. 내가 반드시 그 원수를 갚아 주리라." 하는 것이었습니다 분명 인과는 있습니다. 그 인과가 여실히 분명하게 당장에 나타나는 일도 종종 있습니다.

♧ 신품(神品, 다함 없는 참사람 : 無位眞人)

조문도석사가야(朝聞道夕死可也)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침에 도를 듣고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말입니다. 석도화론(石濤畵論)을 쓴 석도화상은 도의 경지를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무위진인(無位眞人)이야말로 참도인이다. 그림을 그리되 무엇인가를 그리려고 하지 말아라. 너의 붓이 가는 대로 그려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이 뜻을 잘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는 작위(作爲)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그런 그림을 그려야 일품이 나온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신품은 마음으로도 그릴 수 없다고 한 것입니다. 신품은 바로 무심의 경계에 가서야 비로소 그림을 얻는다 하였습니다. 즉 무위진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도는 왜 아침에 듣고 저녁에 죽는다 해도 괜찮은 것일까. 도 라고 하는 것은 공부인의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무심의 경계에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나 도를 닦는 사람은 모두가 다 무심 속에 생명을 키우고 있습니다. 일하는 사람이 그 일에 빠져서 하는 사람은 그것을 좋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의무로 하는 사람은 참다운 물건을 만들지 못합니다.

이것은 작위(作爲)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무작위(無作爲)의 작위(作爲)야 말로 생명(生命)을 얻습니다. 내가 하는 일에 생명(生命)이 없으면 그 일은 죽은 일과도 같습니다. 생명을 불어 넣어야 합니다. 생명이 필요합니다. 공부하고 일을 하는 데도 생명은 필요합니다. 모든 일에 다 생명이 필요한 것입니다. 문명을 일으킨 모든 사건은 다 생명을 갖고 있습니다.

일에 대하여 사랑을 가져본 적이 있습니까? 어떤 사람이 만약 일에 대하여 사명감과 사랑을 갖고 임했다면 그 사람은 무슨 일을 하든 상관없이 다 성공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일에 대하여 그다지 흥미를 갖지 못하고 '그저 월급을 받으니 일하겠다.' 또는 '일한 만큼의 월급을 받고 월급 받는 만큼의 일을 하겠다'고 하는 사람은 일에 생명이 없는 관계로 그 사람은 어디를 가나 환영을 받지 못합니다. 모든 사람이 생명을 좋아함이요, 죽은 생명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옛날 일본에서는 축성사(築城師)가 있었는데 그들은 축성을 하고는 조용히 죽었다고 합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성을 쌓는 일을 싫어하지 않습니다. 그 성을 쌓는 것을 오히려 자랑으로 여겼다니 놀라운 것입니다. 왜 성을 쌓고 죽어야 하는가 하면 성의 비밀을 지키기 위하여 그리 했다고 합니다. 일본뿐만 아니라 서양이나 인도 같은 곳에서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성은 견고함 뿐만 아니라 어떻게 성 안에 들어가야 하는 지 성을 쌓은 사람이 아니고는 아무도 몰랐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생명입니다. 혼신의 정성을 다 기울이는 것, 그것이 생명입니다.

자신의 인생도 그와 같이 사는 것은 생명입니다. 부처님을 섬기는 일은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다른 이의 생명을 얻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의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여기에 바로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나의 발걸음 움직임 하나하나 모두가 생명이 있습니다.

모두가 다 나의 생명을 삼아서 사는 것은 참 생명을 얻는 길이기도 합니다. 생명이 있는 일은 피곤하지 않습니다. 마치 젊은 남녀가 사랑을 할 때 그들이 피곤하다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왜냐하면 그 속에는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늘상 즐겁기만 합니다. 무엇이 실상생명(實相生命)이냐 하면 바로 '다함 없는 참사람(無位眞人)'입니다.

경문

만약 능히 견고한 대비심이 있으면 곧 능히 깊고 깊은 법을 좋아하고 즐겨 하리라.

만약 능히 깊고 깊은 법을 좋아하고 즐기면 곧 능히 허물을 버려 여의리라.

만약 허물을 버리고 교만함과 방일을 버릴지니, 교만함과 방일을 여의면 곧 능히 모든 중생을 이롭게 하리라.

만약 능히 용맹하고 건강하여 이길 이가 없으면 능히 대신통을 얻으니 능히 대신통을 얻으면 온갖 중생의 행을 알리라.

만약 중생을 잘 거두어 주는 지혜를 얻으면 능히 사섭법(四攝法)을 성취하리니 중생들에게 무한한 이익을 주리라.

만약 모든 부처님의 수기를 받으면 곧 부처님이 네 앞에 나타나리라.

만약 모든 부처님이 기억하고 생각하는 바가 되면 곧 부처님의 공덕으로 스스로 장엄하는 바가 되리라.

9. 십지(十地)를 말하다(신업의 수승한 덕)

만약 부처님의 공덕으로 스스로 장엄하면 묘한 복으로 단정히 장엄한 몸을 얻으리라.

묘한 복덕으로 단정히 장엄한 몸을 얻으면 몸이 금산화같이 찬란하리니 곧 삼십이상으로 장엄하리라. 만약 몸의 광명이 한량없으면 곧 부사의한 광명으로 장엄하리니 만약 부사의한 몸으로 장엄을 하면 그 빛이 곧 모든 연꽃을 내리라. 만약 모든 연꽃을 내면 곧 한량없는 부처님이 몸이 연꽃 위에 앉으시어 시방에 두루 나타내시고 능히 일체 중생을 조복(調伏)하시리라.

☞ 해설

위의 1지(一地)에서 10지(十地)까지 보살이 닦아야 할 것 등과 닦아 쌓아서 얻은 공덕을 말함과, 부처님의 능행(能行)을 말함입니다.

초지인 일지(一地)는 증득한 바 진여의 수승함을 알고 기뻐함을 말씀하셨고, 제 2는 이구지(離垢地)를 밝혔으니 허물을 벗어나 청정도량에 이름을 말씀하였고, 제 3의 삼지(三地)와 사지(四地)는 법을 구함에 게으르지 않아서 이만(離慢)이라 하였으니 만(慢)이라는 것은 아는 것 없이 거만하다는 것이고, 이만은 거만함을 여읜다는 뜻이요, 게으르지 아니함을 말합니다.

제 5지는 출세(出世)를 얻음이나 아직 생사에 얽혀 있어도 자재하니, 이름을 난승(難勝)이라 한 것입니다. 제 6은 지혜가 수승함을 말함이니 중생을 대비심으로 섭수하니 지혜행입니다. 제 7은 칠지(七地)를 밝힘이니 수승행(殊勝行)이며, 방편지(方便地)를 밝혔습니다. 제 8은 부동(不動)인 고로 물러서지 않고 미혹하지 아니하므로, 깨달아 십력(十力)이 있어서 천마(天魔)도 어찌하다 못한다 하였습니다.

제 9는 대법사(大法師) 지음을 밝힘이요, 제불가지(諸佛加持)니 부처님이 현전(現前)함이라 하였습니다. 제 10은 십지위니 삼업이 수승함 이라 하였고, 신업(身業)의 대용(大用)이라 하였습니다.

10. 삼업(三業)의 큰 공덕

경문

만약 지혜로써 인도함을 삼아서

신, 어, 의업에 잃음이 없으면

곧 원력의 자재함을 얻어서

널리 모든 갈래로 따라서 몸을 나투리라.

만약 중생을 위해 설법을 할 때에

음성을 따라 사의하기 한량없어

곧 온갖 중생의 마음을 알아

한 생각에 다 알아 남음이 없으리라.

11. 원만하고 밝은 해임삼매(海印三昧)를 밝히다

혹 어떤 중생의 땅에 부처님이 안 계시거든

거기에 화현으로 나타내 보이시며

혹 어떤 곳에 법을 알지 못하거든

거기에 화현하여 묘법을 설하신다.

저 시방세계 가운데

생각마다 불국토를 이루어 두루하되

달빛 두루함과 같이

화현하여 한량없는 법을 설하신다.

저 시방세계 가운데

생각마다 불국토를 이루어 나타내 보이시며

바른 법을 굴리어 적멸에 들어

사리까지 널리 분포하시네.

12. 화엄삼매에 드시다

불가사의한 세계를 장엄하고

모든 여래를 공양하며

끝없는 광명을 놓아서

중생을 제도함이 또한 한이 없도다.

13. 인다(타)라망(因陀羅網) 삼매에 드시다

저 티끌 수 같이 많은 세계 속에서

부처님이 상주하시어

혹은 잡되고 혹은 물들고 혹은 청정하고

혹은 넓고 크고 좁은 세계에 머무신다.

14. 법문을 밝게 나타내는 삼매에 들다

보현 보살이 삼매 가운데에 머물러 있어

갖가지로 섭(攝)하여 구제할새

행하는 바 법의 공덕인 고로

한량없는 방편으로 중생을 이끄신다.

15. 동사(同事)를 말하다

중생의 고통과 즐거움과 이익과 손해와

일체 세간에 짓는 법을

능히 일에 나아가 함께하여

이것으로 모든 중생을 널리 제도하니라.

♧ 새끼줄과 뱀

어떤 나그네가 길을 가다가 그만 뱀을 밟고 말았습니다. 그는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잘못하면 넘어질 뻔하였습니다. 그는 놀라서 가슴이 두근두근하였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걸었는지 모릅니다. 날이 어두워졌습니다. 마을에 이제 다다릅니다. 그는 길을 걷다가 소스라칠 뻔했습니다. 또 뱀을 밟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낮에 길을 걷다가 밟은 뱀과 방금 밟은 뱀이 조금 달라보였습니다. 사실은 낮에는 진짜 뱀을 밟았고 방금 밟은 뱀은 뱀이 아니라 새끼줄이었습니다. 뱀인 줄 잘못 알았으나 그 사람이 느낀 것은 완전한 뱀이었습니다. 이것은 가짜로 인하여 참인 줄 잘못 알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일상생활에서 많은 것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진(眞)이 아니라 가(假)로 인하여 진실이 무엇인지 잘못 알고 산다는 것을 비유한 예화입니다.

연기를 보고 불이 난 줄 알았다

아궁이에 불을 때면 굴뚝에서 연기가 납니다. 그래서 사람은 불을 때면 연기가 나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느날 일을 하다 보니 산너머에서 연기가 나는 것입니다. 그는 깜짝 놀랐습니다. "산너머에 불이 났다. 어서 가서 불을 끄자"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부랴부랴 산너머에 가보니 과연 산불이 나 있었고 그들은 힘을 합쳐 불을 껐습니다. 먼저 인지하고 나중에 증험으로 안다 하였습니다. 이것은 인명론(因明論)에 나오는 얘기 가운데 한 토막입니다.

화엄경백일법문(華嚴經百日法門) -장산 저- 불광출판부 1999

출처 : 대불법회
글쓴이 : 장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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