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듯, 중생의 근기에 따라서 저 언덕으로 도달하는 방법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깨달음에 이르는 수행의 방법상에도 갖가지 차이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대승의 수행, 소승의 수행 하며 그런 분별이 있다
하더라도, 사실 모든 수행은 똑같은 ‘하나’입니다.
내 공부가 되지 않고서는 남과 함께 갈 수 없으니 소승이 될 때는
철저한 소승이 되어야 하고, 당장에 나보다 더 어렵고 힘겨운 상대가
있을 때라면 조금 더뎌 가더라도 함께 나란히 걸어 볼 수 있는
대승의 보살심을 가져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 두 가지가 이렇듯 달라 보이지만 전체를 위한 이타의 마음이 바로
내 수행의 시작이며, 내 수행이 곧 전체의 수행이 되어 법계를 밝혀
준다는 의미에서 대승이 곧 소승이며 소승이 곧 대승인 법이겠지요.
대승 소승 막론하고 바라밀다 하기 위한 구체적인 수행방법은
참으로 많기도 합니다. 예컨대, 그 수행의 방법에는
참선(參禪) [간화선, 묵조선 등],
염불(念佛)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등],
간경(看經) [금강경, 반야심경, 법화경, 화엄경, 아함경 등],
주력(呪力) [관세음보살본심미묘진언, 수능엄신주, 신묘장구대다라니 등],
불사(佛事) [경전불사, 은전불사, 비전불사 등],
절[108배, 삼천 배 등],
기도 [관음기도, 지장기도, 미타기도, 산신기도, 용왕기도 등],
지관(止觀)법 [사마타, 위빠사나 등],
방하착 등 숫자로 헤아리기도 힘들만큼의 많은 수행법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인의 근기에 맞는 수행을 선택하여 꾸준히 정진하면
되는 것입니다. 주위에서 염불이 좋다고 하면 염불하다가,
참선이 좋다고 하면 참선하다가, 이런 식으로 갈팡질팡 하면 이것도
저것도 모두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산을 오르는데 이 길로 가다가 중간쯤 가서 힘들다고 다시 내려와
다른 길을 택한다면 너무도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은 당연합니다.
한가지 길을 택했으면 힘들어도 쉼 없이 꾸준히 정진해야 할 것입니다.
그 중 어느 것도 능히 우리를 저 언덕, 부처님의 세계로 인도해
줄 것임은 자명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바라밀다의 수행이기 때문입니다.
공부하는 생활 수행자 우리 모두의 공부 목적은 ‘바라밀다’가
되어야 겠습니다. 바라밀다를 향한 보리심의 횟불을 밝혀들고
우리 모두 함께 할 수 있는 바라밀다 공부를 시작합시다.
그 공부가 바로 반야심경의 공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