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경전은 매우 조직적이어서 산문으로 나오다가 내용을 압축하여 시로 표현합니다. 이것을 게송이라 하는데 특히 네 구절로 된 게송을 사구게라고 합니다. 대개 그 경전의 핵심이 되는 생각을 담고 있기 때문에 사구게의 뜻을 잘 이해하면 그 경전의 전체 뜻을 거의 다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금강경은 매우 짧은 경전이지만 사구게가 4개 있습니다.
금강경(金剛經)은 무척 난해(難解)하고 이해(理解)하기도 또한 어렵다.옛날 무착보살(無着菩薩 佛滅後 900年頃)이 금강경(金剛經)을 해석(解釋)하려 하였으나 너무 어려운 부분이 많으므로 일광정(日光定=삼매(三昧)의 일종)에 들어 도솔천(兜率天)에 올라 미륵보살(彌勒菩薩)에게 물음에 미륵(彌勒)은 팔십수(八十首)의 게송(偈頌)을 지어 금강경(金剛經)의 대의(大意)를 일러 주었다고 한다. (지관(智冠)스님) 이같이 금강경은 난해(難解) 하다.
1. 一切相은 虛妄하다
"수보리야 삼십이상(三十二相)인 화신(化身)으로 법신여래(法身如來)라 할 수 있겠는가?" 수보리(須菩提)가 "삼십이상(三十二相)으로 법신(法身)이라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부처님의 말씀하신 신상(身相)이란 이는 화신(化身)이지 법신(法身)이 아닙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리하여 부처님께서 불신(佛身)은 무상(無相)한 것이라고 다음의 송(頌)을 읊었다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무릇 형상이 있는 것은 모두가 허망하다
만약 모든 형상을 형상이 아닌 것으로 보면 곧 여래(진리)를 보리라
“다못 사람의 색상(色相)만 헛되고 망령(妄靈)된 것이 아니라 온 세상에 있는 모든 색(色)과 상(相)이 다 이 헛되어 실다운 것이 아니요 망령되어 참다운 것이 아니니 만약 모든 상이 모두 다 참답고 실다운 상(相) 아님을 깨달으면 곧 참답고 실다운 법신(法身) 여래(如來)를 보리라” 한 것이다
일체중생의 성품 가운데 본래의 부처님 지혜(智慧) 모두 다 갖춰 족하건마는 삼독(三毒)【탐(貪)내는 것 성(嗔)내는 것 어리석은(痴)것】에 덮여 가리운바가 되어 삼계(三界)【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를 벗어나(超出) 해탈(解脫)하지 못함이라 이 경을 보고 "일체색상(一切色相)이 다 헛되고 망령된 것(虛妄) 임을 알아 모든 고집을 버리고 모든 상이 없어져 다하면 신령스러운 지혜(靈慧)가 홀로 드러나(獨露) 두루 비치어 둥굴게 밝으리니(邊照圓明) 곧 스스로 성품(性品)을 보아 깨달음(成佛)이 되느니라" 하였다.
【육조혜능대사는 “여래께서 법신(法身)을 나타내고저 하신 고로 일체 모든 상(諸相)이 다 이 허망한 것(皆是虛妄)이라 말씀하심이니 만약 일체 모든 상이 허망(虛妄)하여 실답지 않음을 깨달으면 곧 여래(如來)의 상없는 이치(如來無相之理)를 보리라” 하였다】
2. 執着하지 말라
不應住色生心 不應住聲香味觸法生心 應無所住 以生其心
마땅히 색(물질)에 머물러서 마음을 내지 말 것이며
마땅히 성향미촉법에 머물러서 마음을 내지 말 것이니
마땅히 머문 바가 없이 그 마음을 낼지니라
본래부터 항상 맑은 그 마음은 신령스럽고 비여 허공(虛空) 같으되 뭇 기틀(群機)에 느껴 응함이 밝은 거울 같아서 물건이 오면 곧 비치고 물건이 가면 곧 비어 깨끗하여 털끝만한 티끌도 머물음이 없는 것이라 무슨 내고(生) 거둘 것(收)이 있으리오. 이에 그 마음을 낸다함은 항상 맑고 고요히 비치어(寂照) 움직이지 아니하나 뭇 기틀에 느껴 응하는 그 마음의 깨달아 빛인(覺照) 체(體)와 용(用)을 일음이니 이 마음의 본래 성품인 밝은 덕(明德)의 체(體)와 용(用)을 말하는 것이다.
부처님이 어느 때 사위국기수급고독원에 계실 때 해공(解空) 제일(第一)인 수보리(須菩提)로부터 주(住머믈고), 수(修수해하고), 항복(降伏조복받는것)에 대한 물음을 받고 만일 수행인(修行人)이 아상(我相 자아라는 나의 본체가 있고 나의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인상(人相 자아가 인간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 중생상(衆生相 자아는 5온에 의해 생긴다고 생각하는 것) 수자상(壽者相 자아는 어느 시기 동안 수명을 갖고 머문다고 생각하는 것)에 주(住)하여 보시(布施), 지계(持戒)등의 육바라밀(六波羅密 보살이 열반에 이르기까지 수행해야 할 여섯 가지 조목. 보시(布施), 지계(持戒), 인욕(忍辱), 정진(精進), 선정(禪定), 지혜(智慧) 등. 육도(六度))을 행(行)한다면 참다운 보살이 아니요 무소입(無所入), 무소주(無所住), 무소득(無所得)으로서 청정심(淸淨心)을 발하면 불토(佛土)도 또한 따라서 청정(淸淨)해질 뿐 아니라 일체(一切)의 상을 여의고 법신여래(法身如來)를 볼 수 있다 말하고 삼십이상(三十二相)인 화신(化身)으로서 법신(法身)인양 오인(誤認)하지 말라 하시면서 다음과 같은 송(頌)을 읊었다.
3. 眞我를 찾아라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만약 형상으로 참다운 나를 보려 하거나 음성으로써 나를 구하려 하면
이 사람은 삿된 도를 행함이니 능히 참나인 여래(진실)을 보지 못하리로다
여기서 나(我)는 범어(atman)이니 번역하면 주재(主宰)인 자기라는 뜻이다. 즉 자기의 몸 또는 자기의 주견(主見)을 중심(中心)으로 하는 나를 일음이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이것을 세 가지로 대별하여서 실된 나(實我), 거짓 나(仮我), 참다운 나(眞我)로 나눠서 뜻을 정(定)하여 있다.
(1) 실아(實我)는 인도(印度) 재래(在來) 외도(外道)의 사상(思想)인 “범부의 망령(妄靈)된 뜻에 스스로 존재한 나” 즉 나 이외에 다른 상대(相對)없는 이기주의적(利己主義的)이며, 절대적(絶對的)이며, 독재적(獨裁的)인 나(我)를 말함이다.
(2) 가아(仮我)는 실아(實我)의 존재를 부정(否定)하는 거짓 나(仮我) 즉 오온(五蘊)으로 거짓 화합(和合)되어 인과(因果)가 서로 계속는 몸을 다른(他) 것들과 구별(區別)하기 위하여 거짓 나(仮我)라는 이름을 부치어 놓은 나를 말함이다.
(3) 진아(眞我)는 오직 대승적(大乘的)인 참다운 나 즉 “색(色)과 상(相)을 깨끗이 여이여 자재청정(自在淸淨)한 열반묘덕(涅槃妙德)의 참다운 진여성(眞如性)인 나”를 말함이니 즉 열반(涅槃)의 사덕(四德)인 상(常), 락(樂), 아(我), 정(淨)의 하나이다.
금강경 오가(五家)중에 함허득통은 “색으로 보고 소리로 구함이 이 삿된 도를 행함일진댄 무엇을 하는 중생이 삿된 도를 행하지 아니함인가? 다만 소리와 색이 본래 참다움이 아님을 알진댄 자연이 소리와 색에 미혹되지 아니할 지라! 보는 것이 다하면 스스로 저 현묘(玄妙)한 뜻을 깨닫고 정(情)에 잊으리니(忘) 능히 도로 더불어 친함이니라” 했다.
어떤 사람이 무량아승지세계(無量阿僧祗世界)에 채운 칠보(七寶)로써 보시(布施)하더라도 보살심(菩薩心)을 발(發)한 사람이 이 경(經)의 사구게(四句偈)만 수지(受持)독송(讀誦)하며, 따라서 사람을 위하여 연설(演說)한다면 후복(後福)이 전복(前福)보다 수승하나니 어떻게 위인(爲人)연설(演說)하는가? 상(相)을 취하지 아니하고 여여(如如)히 움직이지 아니 할지니라 하고 다음의 송(頌)을 읊었다.
4. 人生은 幻夢이라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일체 현상계의 모든 생멸법은
꿈과 같고 환상과 같고 물거품과 같고 그림자와 같으며
이슬과 같고 또한 번개와도 같은 것일지니
마땅히 이와 같이 꿰뚫어야 할지니라
모든 함이 있는 법이 꿈(夢) 가운데 보는 것 같아서 깨고(覺) 보면 헛것이요 환상(幻)과 같아서 실다운 것이 아니며 물거품(水泡)과 같아서 꺼져 흩어(消散)지면 없고 그림자(影子)와 같아서 업장(業障)이 가림이라 참다운 것이 아니며 풀끝(草末)에 아침이슬(朝露)같아서 잠깐 사라져 없으며 번개(電)불과 같이 잠깐 일러났다가 잠깐 없어지는 것이니 응당 이와 같이 비추어 보아라.
이로서 금강경에서 말함은 모든 상(相)에 집착하지 말며 또한 모든 법에도 집착하지 말라는 데 있다. 상에 취하지도 집착하지도 말라는 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① 유상(有相)이니 이것은 진여(眞如)의 스스로 성품(性品)이 유상(有相)이 아니어서
②무상(無相)이 상이 없는 것도 아니어서
③비유상비무상(非有相非無相)도 아니니 이것은 상견(常見)을 없애기 위하여 일체 빈 것(一切空)을 설하시고 단견(斷見)을 파하기 위하여 일체 있는 것(一切有)을 설하시고 빈 것과 있는 것의 두변(兩邊)에 떨어질까 두려워하여 비지도 않고 있지도 않는 것(非空非有)을 설하시니 이는 다 인연에 대하여 선설(宣說)하심이요 구경(究竟)은 아니니라.
이 세상은 복잡하고 미묘하다
있다하면 상견(常見)에 빠짐이요 없다하면 단견(斷見)에 빠짐이라
이 모든 것은 인연(因緣)이란 업력(業力)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라 본다.
그래서 금강경에서는 사상(四相)을 파(破)하고 삼관(三觀=空觀, 仮觀, 中觀)이 한마음이요 한마음이 삼관(三觀)인 뜻을 밝킬진대 안으로는 육근(六根)즉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이며 밖으로는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이고 세계(世界)를 바른데 의지(依正)하여 더러운 것을 깨긋하게(淨化) 하는 것과 위로는 부처님(諸佛)에 이르고 아래로는 벌레에 이르기까지 범부(凡夫)와 성인(聖)에 인과법(因果法)이 다 인연(因緣)을 쫒아 있음이라 이 모두다 유위(有爲)에 속하고 마음으로 인(因)하여 나타남 것이라 다 자체(自體)가 없음이라.
『꿈(夢)이 생각(想)을 因하여 있는 것과 같음이라』
『환상(幻想)이 물건(物)을 인(因)하여 있는 것과 같음이라』
그러므로 이 모든 법이 공(空)하지 않는 것이 없다 비록 자체(自體)는 없으나 그러나 바른데(正)를 의지(依)하여 더러운(汚)것을 깨끗(淨)하게 하는 상(相)과 상(相)이 완연(宛然)하고 범부와 부처에 인(因)과 과(果)를 가히 없다고 말하지 못함이『저 풀 끝에 이슬이 비록 항상 있는 것이 아니다 잠깐 머물러 있음과 같다』 이럼으로써 모든 법이 거짓(仮)아님이 없고 이미 꿈(夢)과 같을진대 공(空)한 것이니 없는 가운데 있으며 있는 가운데 없는 것이니 찰나(刹那)에 곧 생(生)하고 찰나에 곧멸(卽滅)함과 같은 것이라 있는 것이 곧 있는 것이 아니며 없는 것이 곧 없는 것이 아니니 이미 있고 없는 것이 없음 일새 이로서 모든 법이 중도(中道) 아님이 없는지라 이러함으로 이르시기를 “인연(因緣)으로 인하여 나은바 법(所生法)을 내가 곧 이 공한 것(卽是空)이라 말함이며 이 이름을 거짓이라 말함이며 또한 중도(中道)라 이름하신 뜻이라” 하시지 아니 하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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