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칙
달마대사에게 양무제(梁武帝)가 묻되 “어떤 것이 거룩한 진리의 제1의(義)입니까?”하니 달마대사가 대답하되 “확연히 거룩한 진리는 없습니다”하였다.
무제가 다시 묻되 “짐을 대하고 있는 자는 누구시오?”하니 조사가 대답하되 “모르겠소”하였다. 이 말씀을 무제가 알아 듣지 못하니 조사께서 강을 건너 위(魏)나라로 가셨다.
염·송·어
설두헌이 송했다.
“거룩한 진리의 확연한 길을
어떻게 분명히 할꼬.
상대하여 묻는 이가 그대는 누구인가 하니
도리어 모른다 하네.
이로 인해 가만히 강을 건너가니
그 어찌 가시밭길을 면할 수 있었으랴.
온 나라 사람 뒤쫓아도 돌아오지 않나니
천고만고에 공연히 생각만 나네.
생각하지 말라.
맑은 바람이 대지에 스침이 더 할 수 있으랴?”
보령용(保寧勇)이 송했다.
“시뻘겋게 달구어 한 망치 두드리니
둘레에는 무수한 불똥이 튕기었네.
완벽하고 탐탁한 금강 송곳을
문밖에 걸어 두고 살 사람을 기다리네.”
승천회(承天懷)가 송했다.
“남국의 큰 스님은 두 눈이 푸르렀고
양나라 어진 임금 한쪽 눈만 밝았네.
‘모르겠다’, ‘쓸모없다’는 쓸모가 없었는가.
외로운 발길 돌려 서천(西天)으로 돌아갔네.”
혼성자(混成子)가 송했다.
“확연히 거룩한 진리가 없다는 말 믿는 이 드무니
중대한 교훈 몰라 큰 기회를 놓쳤네.
벽을 향해 구(九)년 앉기 원수같은 고통이었는데
또 어찌 신발짝 들고 서천으로 갔을까.”
감상
양무제는 달마의 반어법을 알아듣지 못했다. 오히려 무제는 달마가 자신의 권위를 무시하는 것 같아 화를 내고 너라는 놈은 도대체 누구냐고 물었을 것이다.
달마는 9년의 면벽 끝에 만난 무제에게 너무나 큰 가르침을 준 것이다. 거룩한 진리는 언어 밖에 있는 것이며, 형상 이전의 실체로서 체득되는 것이다.
거룩한 진리란 중생의 근본 마음이며 성인들의 실제(實際)이다. 그것은 형상이나 말로서 구해지는 것이 아닌 까닭에 달마는 무제의 질문에 답변하여 말하되 모른다고 한 것이다.
모른다고 하고, 없다고 한 것은 그 말을 통해 거룩한 진리의 참 뜻을 전한 것이다. 참 뜻을 전하지 못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온 나라사람이 붙잡아도 떠나갈 뿐이다. 설두는 위의 송을 마치고 좌우에게 물었다. “여기에 조사가 있는가?”하고 잠시 둘러보고 스스로 대답해 “있다면 이리 와서 내 발을 씻어다오”하였다. 설두의 발을 씻을 수 있는 자가 달마의 깨달음을 얻었다 할 수 있지 않을까.
최동호/고려대 국문과 교수
출처 : 淨土를 그리며...
글쓴이 : 느린 걸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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