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칙
아육왕(阿育王)이 빈두루존자(賓頭盧尊子)에게 “듣건대 존자께서 부처님이 오시는 것을 친히 보셨다 하는데 그 말이 옳습니까?” 하고 물었다.
이에 존자가 손으로 눈썹을 쓰다듬고 한참 있다가 말하되, “알겠는가?” 하였다. 왕이 “알지 못하겠습니다” 하니, 존자가 말하되, “부처님이 오시는 것을 친히 보셨습니다” 하였다.
염·송·어
법진일(法眞一)이 송했다.
“아육왕이 존자에게 부처를 보았나! 하니
존자는 손을 들어 눈썹을 쓰다듬네
무엇하러 영산까지 가서 찾으랴!
마주쳐 만난 것이 누구인줄 아는가!”
취암진(翠岩眞)이 염했다.
“더 말해 보라. 어디서 보겠는가! 설사 눈 내리는 하늘이 까마득하고 호수의 빛이 호탕할지라도 꿈속이라고는 말하지 말라.”
승천기(承天琦)가 상당하여 이 이야기를 듣고 말했다.
“대중이여! 말해 보라. 존자는 어디서 부처님을 뵈었던고? 눈썹비비는 곳에서 본 것이 아닐까? 큰 방앞에서 본 것이 아닐까? 불당 안에서 보지 않았을까? 삼문(三門) 안에서 보지 않았을까? 만일 이 소식을 봤다면 존자께서 부처님 오시는 것을 보았다는 말을 그대들도 하도록 허락하거니와, 만일 보지 못했다면 부처님 오시는 것을 친히 보았다고 말하지 말라.”
열재(悅齋居士)가 송했다.
“아뇩달지의 용이
부처님께 공양하기를 청했으나
참된 법으로 부처님께 공양함을 알지 못했네.
은근한 뜻 오로지 눈썹 위에 있으니
큰 보시의 법문이 활짝 열려있네.”
감상
아육왕은 불교를 전파하는데 온갖 힘을 기울인 왕이고, 빈두루존자는 흰눈썹과 수염이 유난히 길었던 고승이다. 부처님을 기리는 마음이 끝이 없는 아육왕이 빈두루존자에게 과연 부처님을 친견했을 때 느낌이 어떤 것인가를 알고 싶어했기에 질문 아닌 질문을 던졌을 것이다. 부처는 앞에 놓고 부처를 친히 보았느냐고 물었다면 그것은 잘못된 질문일 것이다. 내가 부처라고 빈두루존자는 말하지 않았다. 오직 눈썹을 다듬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보고 무엇을 보지 못했다는 것일까? 빈두루존자는 부처님을 마음 속에서 보았고, 아육왕은 눈썹을 쓰다듬는 빈두루존자만 보았으니, 부처님을 보지 못했다고 말한 것이다. 내가 보았다면 아육왕 당신도 보았다고 말한 것이 빈두루존자의 마지막 말이다. 부처님은 마음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 속에 있다는 빈두루존자의 가르침이 바로 그것이다.
최동호/고려대 국문과 교수
출처 : 淨土를 그리며...
글쓴이 : 느린 걸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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