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칙
계빈국왕이 사자존자에게 와서 칼을 빼들고 묻되 “스님은 오온이 공한 경지를 증득하셨습니까?”하니 존자가 대답한다. “증득하였습니다.”
왕이 다시 묻되 ‘오온이 공함을 깨달았으면 생사를 여의였습니까?’하니 ‘여의였습니다.’하였다.
왕이 다시 말하되 ‘스님의 머리를 베고자 하는데 주시겠습니까?’하니 존자가 대답하되 ‘몸도 내 것이 아니거늘 머리를 아끼겠습니까?’하였다. 이 왕이 존자의 머리를 치니 흰 젖이 한 길을 뿜어 올랐고 왕의 팔이 저절로 떨어졌다.
염·송·어
불안원(佛眼遠)이 송하였다.
“양자강 언덕 위에 버들 푸른 봄빛인데
버들꽃은 강 건너는 이의 근심을 없애누나.
외마디 호적 소리에 정자의 이별이 저무니
그대는 소상(蕭湘)으로 나는 진(秦)으로 간다.”
육왕심(六王諶)이 송하였다.
“오온이 모두 공하고
한 칼이 날카롭다
망설이거나 주저하면
얼음 녹듯 기와 풀리듯 하리라.
백 천가지 삼매가 원융하여 걸림이 없고
만 가지 신통이 자재하다.
사빈존자께서는 까닭없는 것을 찾고
계빈국왕은 참을성이 없구나.”
취암지(翠岩芝)가 염했다.
“그 당시, 조사는 목을 내밀고 왕이 칼을 들어 치려고 할 때 누군가가 멈추시라고 간했더라면 오늘까지 아무도 그 공안(公案)을 풀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의 납승들은 어떻게 판단하는가.”
파초(芭蕉)가 말했다.
“보물을 팔려는데 눈 먼 페르시아사람을 만났구나.”
냥야(瑯揶)가 염했다.
“계빈왕의 한 자루 좋은 칼을 가졌으나 칼끝에 눈이 없었으니 무엇에 쓰랴. 존자의 좋은 사자 기질 도로 던질 줄 몰랐으니 딱하구나.”
감상
계빈왕의 위협에 굴하지 않는 것은 좋으나 그렇다고 목을 날리게 할 것까지는 없지 않는가. 이차돈의 죽음에 의해 신라의 불교가 흥성해졌고, 사자존자의 죽음으로 불교가 왕권의 위엄을 넘어섰다고 하는 점도 있으리라.
앙코르와트의 위대한 업적도 왕의 권위에 굴하지 않는 한 고승을 처단하면서 무너졌다는 것은 먼 옛날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상을 정복한 밀림의 왕이 오직 한 사람의 고승의 목을 베고 문둥병환자가 되어, 위대한 제국마저 정글에 버려지게 되었다는 사례는 왕의 권위는 진정한 권위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준다.
그것이 인류의 역사다. 계빈국왕이여 존자의 목을 칠 것이 아니라 그대의 목을 쳤다면 그대는 영원히 살았을 것이다.
최동호/고려대 국문과 교수
출처 : 淨土를 그리며...
글쓴이 : 느린 걸음 원글보기
메모 :
'선문염송'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禪門拈頌 14. 달마의 법을 얻다(法印) (0) | 2018.07.15 |
---|---|
[스크랩] 禪門拈頌 13. 거룩한 진리(聖諦) (0) | 2018.07.08 |
[스크랩] 禪門拈頌 11. 눈썹 쓰다듬기(撥開) (0) | 2018.07.08 |
[스크랩] 禪門拈頌 10. 월상녀(月上女) (0) | 2018.07.01 |
[스크랩] 禪門拈頌 9. 약초캐기(採藥) (0) | 2018.07.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