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천궁 게찬품(夜摩天宮 偈讚品)▣
1. 대중들이 모이다
경문 그 때에 시방에 각각 큰 보살들이 있었는데, 낱낱 보살이 제각기 부처님 세계의 티끌 수효처럼 많은 보살들과 함께 십만세계의 티끌수 국토 밖에 있는 세계로부터 와서 모였느니라. 보살들의 이름은 공덕림(功德林)보살과, 혜림(慧林)보살과, 무외림(無畏林)보살과, 참괴림(懺愧林)보살과, 정진림(精進林)보살과, 역림(力林)보살과, 행림(行林)보살과, 각림(覺林)보살과, 지림(智林)보살들이었다. 이러한 보살들이 온 세계는 친혜(親慧)세계, 당혜(幢慧)세계, 보혜(寶慧)세계, 승혜(勝慧)세계, 등혜(燈慧)세계, 금강혜(金剛慧)세계, 안락혜(安樂慧)세계, 일혜(日慧)세계, 정혜(淨慧)세계, 범혜(梵慧)세계 등이었다.
2. 공덕림 보살의 찬탄
부처님께서 큰 광명을 놓아
시방에 두루 비추시니
천상인간의 높은 스승 뵈옵기
길이 열리어 걸림이 없네
부처님이 야마천궁에 앉으사
시방세계 가득하시니
이런 일은 매우 드물어
온 세상에서 희유한 일이라.
⊙ 합론
(1) 공덕림 보살은 저 십주위 가운데 처음 불지혜가(佛智慧家)에 난 고로 보살 이름이 법혜와 지혜 등이어니와 이 위는 혜(慧)로 좇아서 행(行)을 좇아 행을 닦음은 복지(福智) 이보(二報)가 넓고 많은 까닭으로 이름이 임(林)으로써 이름을 밝힘이라.
임(林)이란 광대의 뜻이 있으며 장엄의 뜻이며 몸의 가지와 꽃과 잎과 과실이 서로서로 키워준다는 뜻이니 행위 보살이 무성지혜(無性智慧)로써 만행지조(萬行枝條)를 장엄함이요, 대비로 잎을 삼아서 일체 중생을 섭화(攝化)하여 자타의 보리의 꽃과 과실로 하여금 다 개발케 함을 밝힌 연고이니 내와 못이 있으매 모든 새들이 찾아옴과 같음이라. 그런 까닭으로 십행공덕림 보살을 지목해서 수풀이라 하였다.
(2) 혜림(慧林) 보살이라 한 것은 지혜가 수풀 같다는 듯이다. 이 것은 요익 중생이니, 요익 중생이란 중생을 위하여 이익케 함이라. 십주위 가운데 법신으로써 계체(戒體)를 삼음이라. 십행 가운데에는 지혜로써 계체(戒體)를 삼음이라. 혜림 보살은 수행인이라. 생사(生死) 가운데 경동(輕動)치 않은 연고라 하였다.
(3) 승림(勝林) 보살이란 어김(違)이 없는 역행이라. 인욕바라밀을 주인으로 삼는다. 제행 가운데 인행이 가장 수위라. 인(忍)이 없으면 행(行)을 이루지 못함이라(장경 가운데에는 인욕이 제일도라 하였다. 유학에서는 인(人)이 아니면 인(忍)을 이루지 못하고 인(忍)치 아니하면 인(人)이 아니다.). 고로 이름이 승림이라. 자비희사가 총섭함이라.
(4) 무외림(無畏林) 보살이란 정진을 행하여 생사에 하늘과 사람을 이롭게 해서 굽힘이 없는 요행(無屈撓行)을 주함이라.
(5) 참괴림(慙愧林) 보살은 무치난행(無痴難行)이라. 치(痴)는 앎이 병이 된다는 글자이다. 참괴림 보살은 항상 어리석음이 없는 마음으로 난행을 행한다는 뜻이다. 초발심자견문에도 "어려운 일을 능히 실천하면 존중하기를 성인과 같이 함이라" 하였다.
(6) 정진림 보살은 선현행(善現行)이라. 반야바라밀을 주인으로 함이니 반야로써 모든 행을 나타냄이라. 중생을 이익케 함으로 이름이 정진림이라. 선재 동자가 이 위(位)에 가서 보아 장자를 만남은 처음에 신명을 구한 것이다.
(7) 역림(力林) 보살이란 무착행(無着行)이라. 방편바라밀을 주인으로 삼음이니, 방편으로 세속에 처하되 중생을 이익케 함을 행과 같이 하되 대비행을 이룸이 역림 보살이다.
(8) 행림(行林) 보살은 난득행(難得行)이라. 원력바라밀을 주인으로 삼음이니 난득을 능히 얻어서 이름이 행리이라. 제 팔지위가 지(智)가 대원을 따라서 대원력으로 중생의 뜻을 만족케 함이라.
(9) 각림(覺林) 보살은 이 선법행(善法行)이라. 이 보살은 역바라밀을 주인으로 삼음이니 선재의 위가 선지식이니 제 구(九)는 법사위라. 법사위는 정결하고 자비하고 유연함을 밝힘일새, 우바이이니 여성임을 밝힌 것이라. 여성의 발심은 이미 염부제 미진겁을 지났으되 발심으로부터 옴을 마음에 일념도 오욕의 생각이 없으므로 정결자비유연(貞潔慈悲柔軟)이라.
(10) 지림(智林) 보살이란 진실, 지혜 행인 고로 지혜바라밀을 주인으로 삼음이라. 지혜를 얻어서 자재하매 사견을 섭(攝)함이라.
수위 보살인 공덕림 보살과 십 보살들은 스스로 행함과 부처님의 신력으로 내집하여 진술함을 밝힘이라. 마땅히 십종 인과가 있으니 십주위 중엔 처음 불지혜가(佛智慧家)에 난 고로 보살 이름이 법혜, 지혜 등이라.
이 문(文)에서는 일체 중생을 섭화(攝化)하는 까닭으로 자타의 보리과(普提果)로 하여금 개발(開發)케 함을 밝힌 연고이니 무리새들이 회귀함과 같이 사람이 행이 있으매 많은 살마들이 귀의하는 것이니라. 고로 십행 보살들을 지목해 임(林)이라 한 것은 이는 환희행에 단바라밀문(檀波羅蜜門)을 목적으로 함에 해당한다. 선재가 십행의 처음 선지식 이름이 선견이 되거든 임중(林中)에 있어 경행함이 또한 이와 같은지라.
3. 혜림 보살의 찬탄
경문
여래께서 세상에 나심은
세상을 어두운 곳에서 구출하시니
이러한 세상의 등불은
희유하여 보기 어렵도다.
4. 승림 보살의 찬탄
세간과 국토의 성품은
관찰하면 자비실상이라
만일 이것을 알면
일체 세간은 사랑을 말하리라.
5. 비유와 법을 말하다
마음은 화가와 같아서
모든 세간을 그려낸다.
오온이 마음따라 생기나니
모든 곳을 이루지 못함이 없네.
♧ 오직 진리를 위하여 생명을 바친다
어떤 사람이 옷을 한벌 샀습니다. 새옷이 좋아서 즐겨 입었습니다. 너무 좋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는 매일같이 그 옷만 입었습니다. 그렇게 자주 입으니 얼마 안 가서 옷이 떨어졌습니다. 그래도 그는 그 옷이 좋아서 그냥 입기로 하였습니다. 깁고 또 깁고, 이제는 누더기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그는 그 옷만을 입기로 하였습니다. 이제는 옷이 너무 낡아서 더 이상 못 입게 되었습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그 옷을 버리기로 하였습니다. 그렇게 애지중지하는 옷을 막상 버리려니 아까운 마음이 들기도 하련만, 그는 옷에 대하여 하나도 아깝거나 서운한 마음이 없었습니다. 이제는 백화점에서 사온 옷이 버린 옷에 비하여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너무 좋습니다. 가볍고 따뜻합니다.
누가 헌 옷을 버리면서 아깝다고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까? 아무도 헌 옷을 아깝다고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입고 있는 이 육신의 옷도 낡으면 헌 옷을 버리듯이 다 버리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부처님처럼 사신 분도 없지만 불교만큼 위대한 진리를 가르친 종교도 없습니다. 나는 불교를 위하여 스님이 된 것이 아닙니다. 불교는 내가 없을 때에도 하나 어려움이 없었고, 내가 불교에 귀의하였다고 해서 불교가 월등히 좋아졌다거나 나빠지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불교는 내가 없어도 어려울 것이 없습니다.
음거부하무언도심장(陰居復何無言道深長), 그런데 저는 사실 음거(陰居)하지 못하고 도심(都心)에 살며, 무언(無言)하지 못하고, 말을 해야 하니 도가 깊지 못하여 멀리 달아났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보현행원은 곧 불보살님의 가피를 모든 사람에게 가르쳐 주는 진리입니다. 우리들의 몸은 진리를 담는 그릇입니다. 밥을 담는 그릇이 아닙니다. 꿀을 담아 놓아야 할 그릇에 오줌과 똥만 잔뜩 담아 가지고 있다고 하여 봅시다. 어떻게 되겠습니까?
참선을 하지 않아도 선(禪)은 그대로 있고 가만히 앉아 있지 않아도 도가 절로 요연(了然)합니다. '깨침'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입니다. 화두를 들지 않아도 천진불(天眞佛)의 그대로 이며 법신의 자리에 있으니 그대로 구원겁 전에 깨쳐 있습니다.
♧ 삼생(三生)의 원수가 있으니
삼생의 원수는 누구인가? 삼생의 원수는 바로 자신 속에 있는 물욕입니다. 이 물욕이 자신을 이렇게 구렁텅이로 몰아 넣은 것입니다. 평생을 잘못 산 것은 모두가 이 물욕이 앞장서서 나를 형편없이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삼도의 고해를 헤매이게 만든 것도 사실 알고 보면 이 물욕이며, 사생 가운데 떨어져서 승침(昇沈)을 거듭한 것도 알고 보면 이 물욕입니다. 그러니 이 물욕만 없애버린다면 그야말로 천상천하에 제일 가는 장부가 됩니다. 진심(瞋心)이나 치심(痴心)도 마찬가지입니다. 욕심이 나를 망쳐 놓은 장본인인 것입니다. 허공계가 다하고 중생업이 다할 때까지 무한한 시간 가운데에 있으면서 업을 짓도록 만든 놈이 바로 이놈들, 바로 '탐·진·치' 삼독이란 말입니다.
내가 잘 알고 있는 어느 노보살님이 계십니다. 이 보살님은 참으로 신심이 남달랐습니다. 조석으로 예불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경전을 늘 머리맡에 두고 잠을 자곤 하십니다. 그런데 이 보살님은 사실 글을 읽을 줄 모릅니다. 어려서 한글 공부할 기회를 다 잃었기 때문입니다.
이 보살님은 6·25전쟁 때 남하하여 부산에서 사는데 그 땐 무엇하나 먹을 것이 없어서 그야말로 난망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때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죽으려고 마음을 먹고 태종대 자살바위 위에 올라서서 대해를 바라보니, 자신의 처지가 너무 처량하더랍니다. 하기야 나만 전쟁을 치른 것도 아니요, 나만 남하하여 사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드니, 어찌하더라도 다시 한번 용기를 내어 살아보기로 하였습니다. 사실 그 낭떠러지가 그렇게 높고, 떨어지면 정말 죽을 것 같고, 아플 것 같아서 죽지 못했답니다.
보살님은 맥없이 다시 시내로 돌아와 시장에서 생선 장사를 해볼까 생각하여 보았지만, 돈 한푼 없으니 아무 생각이 나질 않았습니다. 그런데 마침 생각난 곳이 절이었습니다. 그 당시 동래 범어사는 부산에서 가장 유명한 유원지로 놀러 가는 곳쯤으로 생각할 때입니다. 절에 가서 불공하고 가르침을 배운다고 생각도 못할 때입니다. 그녀는 무작정 범어사로 올라갔습니다. 절에 가니 노스님이 대웅전 앞에 서 계시는데, 어찌나 거룩하시고 부처님 같던지 당장 노스님에게로 쫓아가서, 넙죽 절을 하고 나서, "스님, 제가 죽으려고 해 봤는데, 죽지는 못하고 도저히 살 방도가 없어서 이곳까지 왔습니다. 스님은 부디 저를 어여삐 여기시고 어디인가에 팔아 주십시오. 도저히 못살겠습니다."
그 때 스님은 가만히 보기만 하고 아무 말도 없었습니다.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려서 그 자리에 있을 수가 없어서 그냥 내려오려고 하는데, 스님이 불러서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보살이 정말 잘 살고 싶은가?" "예." "그러면 기도를 하게, 만약, 내가 시키는 대로 기도를 하면 꼭 소원을 이룰 것이네." 하였답니다. 그 때 스님이 자비한 음성으로 말씀하시기를, "관세음보살은 당신의 이름을 불르면 좋아하시거든. 그러니까 항상, 관세음보살이라고 불러주기만 하면 무엇이든 잘 될 수 있도록 해주시네. 보살을 부자로 만들어 주실 것이야."
그 때부터 보살님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관세음보살만 불렀습니다. 노스님 말씀을 듣고 산을 내려가 관세음보살을 부르며 자갈치 시장에서 어슬렁거리는데 노점상을 하는 웬 아줌마가 같이 장사를 하자고 하더랍니다. 해서 가진 돈이 한푼도 없다고 하자, 괜찮다고 하면서 그 아줌마가 자기 옆 자리에 자리를 마련해 주어 갈치 두어 마리를 놓고 장사를 시작하였답니다. 그렇게 그 때부터 돈이 벌리기 시작하더니 너무 재미가 나서 시집도 갈 줄 모르고 돈 버는 데에만 정신을 쏟았답니다.
보살님은 글을 못 배워서 글씨를 모릅니다. 말 그대로 낫 놓고 기역자도 모릅니다. 그래서 보살님은 언제나 '나는 무식하지만 반드시 부처님께 봉사를 하기 위하여 학교를 지어야 하겠다' 고 소원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보살님은 소원대로 학교를 지었습니다. 부산 해운대 재송동에 전문대학을 세운 것입니다. 부처님께 기도를 드린 공덕, 즉 관세음보살만 부르면서 일생을 사신 덕분에 재물도 많이 모으고 학교도 지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삼생의 원수인 어리석다는 것은 글을 모르는 것이 어리석음이 아니라 글을 잘 알아도 지혜로운 일을 못하는 것을 두고 어리석다고 합니다. 그러나 글을 모른다고 하여도 지혜로운 일을 보살님처럼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화엄경백일법문(華嚴經百日法門) -장산 저- 불광출판부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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