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경-장산스님

[스크랩] 초발심공덕품(初發心功德品)

수선님 2018. 7. 8.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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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발심공덕품(初發心功德品) ▣

1. 제석천왕이 법혜보살에게 여쭈었다

경문 "불자여, 보살이 처음으로 보리심을 내면 그 공덕이 얼마나 되나이까?"

2. 이치가 깊어서 알기 어려움을 말하다

"불자여, 이치는 깊고 깊어서 말하기 어렵고 알기 어렵고 분별하기 어렵고 증득하기 어렵고 행하기 어렵고 생각하기 어렵고 헤아리기 어렵고 들어가기 어려우니라. 그러나 내가 마땅히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자와 그대에게 말하리라."

3. 이승법(二乘法)으로 가르치는 비유

"불자여, 모든 부처님께서 처음 발심하실 때에 다만 온갖 즐길 것으로써 시방의 십 이승지 세계에 있는 중생들에게 공양하기를 백 겁 동안이나 나유타 겁 동안에 지나는 동안 보리심을 낸 것이 아니며, 다만 그렇게 많은 중생들을 제도하며 오계와 십선도를 닦게 하거나 사선정, 사무량심, 사무색정에 머물게 하거나 수다함과. 사다함과. 아나함과. 아라한과. 벽지불도를 얻게 하기 위하여 보리심을 낸 것이 아니고 여래의 종성이 끊이지 않게 하기 위한 연고이며, 일체 세계에 두루 가득하게 하기 위한 연고이며, 일체 중생을 제도하여 해탈하게 하기 위한 연고이며, 일체 세계 이루고 무너짐을 알게 하기 위한 연고이며, 일체 세계에 있는 중생이 때묻고 깨끗함을 알기 위한 연고이며, 일체 중생의 번뇌와 습기를 알기 위한 연고이며, 일체 중생이 여기서 죽고 저기서 남을 알기 위한 연고이며, 일체 중생의 마음과 행을 알기 위한 연고이며, 일체 중생의 삼세의 지혜를 알기 위한 연고이며, 일체 부처님의 평등함을 알기 위한 연고로 위없는 보리심을 내었느니라."

4. 세계가 이뤄지고 무너지다

"불자여, 가령 어떤 사람이 한생각 동안에 동방에 있는 아승지 세계가 이루어지고 무너지는 겁의 수효를 능히 알며, 생각마다 이와 같이 하여 아승지 겁이 다하도록 한다면, 이 모든 겁의 수효를 끝 간 데 까지 능히 알 수가 없으리라."

"불자여, 이와 같이 시방의 아승지 세계가 이루어지고 무너지는 겁의 수효는 그 끝간 데는 알 수 잇다 하더라도 보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처음 낸 공덕과 선근은 끝을 알 수가 없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보살이 다만 이러한 세계가 무너지고 이뤄지는 것을 알아서 남음이 없게 하기위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낸 것이니라."

"이른바 짧은 겁이 긴 겁과 평등하고, 긴 겁이 짧은 겁과 평등하며, 말할 수 없는 겁이 찰나와 평등하며, 일체 겁이 겁 아닌 데 들어가며, 겁 아닌 것이 일체 겁에 들어가는 것을 알기 위함이며, 찰나 간에 앞세상, 뒷세상, 지금 세상이 이루어지고 무너지는 겁을 모두 알고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내는 것이니 이것이 이름하여 서원으로 장엄하며 일체 겁을 분명히 아는 신통한 지혜라 하느니라."

⊙ 합론

초발심에 삼종발심이 있으니 기신론(起信論)에 이르되 삼발심(三發心)이라 하였으니 1은 신성취발심(信成就發心)이요, 2는 해행발심(解行發心), 3은 증발심(證發心)이다. 발심은 십주가 그 초(初)요. 십행을 좇아서 회향심(廻向心)을 발하는 것이다. 우파니사타분이란 근소(僅少)니 작고 작은 것을 말함이라. 혹은 사람의 터럭 가운데 백분지 일을 말하기도 한다.

사무량심이라 한 것은 유위(有爲) 가운데 자비희사(慈悲喜捨)니 교주사무색정(敎住四無色定)이라 함은 무색계의 정(定)이니 삼계 가운데 선업이라 십사번뇌(十使煩惱)가 있으니 십사번뇌라 함은 1은 신견(身見)이요, 2는 변견(邊見)이요, 3은 견취(見取)요, 4는 계취(戒取)요, 5는 사견(邪見)이요, 6은 탐(貪)이요, 7은 진(瞋)이요, 8은 치(癡)요, 9는 만(慢)이요, 10은 의(疑)니라. 이것은 모두 수행을 하는데 미혹케 함이라.

5. 덕의 원만함을 나타내다

경문

지혜의 밝은 광명 햇빛과 같고

모든 행 갖추기 보름달 같고

모든 공덕 바다 같이 가득해

때없고 걸림없어 허공과 같네.

옛날에 무량공덕 갖추어

모든 중생들에게 즐거움 주려고

오는 세상 끝나도록 원을 행하여

부지런히 닦아 익혀 중생을 구제하네.

한량없는 큰 원력 부사의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청정케 하고

무상(無相)과 원력으로

서원력의 힘으로 밝게 비추네.

6. 공덕 끝없음을 나타내다

시방의 여러 세계 모든 부처님

초발심 다같이 찬탄하시네

이 마음 한량없이 장엄을 하여

저 언덕 이르러 부처님 이루리.

중생의 수효 같은 그러한 겁에

그 공덕 말하여도 다할 수 없고

여래의 크고 넓은 집에 머물며

삼계의 법으로도 비유 못하리.

7. 시방 부처님이 증명하시다

이 때에 사방으로 각각 열 부처님 세계의 티끌 수 세계 밖에 일만 부처님 세계의 부처님이 계시니 명호가 같아서 모두 부처님이라. 각각 법혜 보살 앞에 나투어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잘하도다. 법혜여, 그대가 이 법을 능히 말하나니 시방에 각각 이런 부처님 세계의 티끌 수 같은 우리 부처들도 이 법을 말하며 일체 부처님도 모두 이와 같이 말하느니라."

8. 설법이 다함 없음을 말하였다

"이 사바세계의 사천하의 수미산 꼭대기에서 이런 법을 말하여 여러 중생들로 하여금 듣고 교화를 받게 하는 것같이 시방의 백천억 나유타 수없고 항량없고 끝없고 같을 이 없고 셀 수 없고 일컬을 수 없고 생각할 수 없고 요량할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온 법계 허공계의 모든 세계 가운데서도 이 법을 말하여 지금 설하느니라."

9. 법을 말하는 이는 모두 법혜 보살임을 밝히다

" 또한 이 법을 말하는 이는 모두 법혜 보살이라 말하나니, 다 부처님의 신통한 도력인 연고이며, 세존의 본래 서원인 연고이며, 부처님 법을 드러내 보이기 위한 연고이며, 지혜의 빛으로 두루 비추려는 연고이며, 실상의 이치를 천명하려는 연고이며, 모든 대중을 다 환하게 하려는 연고이며, 불법의 인연을 열어 보이려는 연고이며, 법계가 둘이 아님을 알게 하려는 연고로 이 법을 설하느니라."

⊙ 합론

법을 말하는 이는 모두 법혜보살이라 말함은 법장사(法藏師)가 말씀을 하시길, 뜻이 셋이 있으니, 하나는 발심을 한 연고로 법을 봄이 맑음이요, 둘은 묘과(妙果)를 알아서 소유(所由)를 징석(徵釋)함이라(징석이라 함은 일체의 징후와 미미한 것까지도 다 해석한다는 뜻이 숨어 있다는 것), 셋은 설법지혜(說法智慧)니 결정코 의심이 없음일새 비로소 법 설함을 성취함이라 한 연고이다. 세존의 본래 서원인 연고로 법을 설함은 석가모니불의 도화(度化)를 보이심이라. 징석소유중(徵釋所由中)에는 부처님의 성력(聖力)을 열어 보임이라 하였다.

10. 비유로써 헤아리다

경문

시방의 모든 국토 중생들에게

수없는 겁 동안 보시하여 편안케 하고

오계십선(五戒十善)을 권하여 가지게 하고

사무량심과 선정을 얻게 하느니라.

억만중생 교화하여 연각을 이루며

번뇌 없는 묘한 도를 얻게 하여도

그 공덕 보리심에 비교하면

산수나 그 어떤 것으로도 미칠 수 없으리.

♧ 맑게 빛나는 마음

며칠 전에 한 친구가 공원에서 체조를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멀리서도 나는 금방 그가 누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얼굴도 알아보지 못하고, 말소리도 듣지 못했는데, 오직 그의 몸 동작만을 보고, 그가 내 친구라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어떤 것이 그를 알게 하는 요인이 되었을까요? 평소에 알고 있던 그에 대한 나의 지식 때문입니다. 그가 행동을 할 때에 팔은 어떻게 움직이고, 목은 어떻게 움직인다는 것을 컴퓨터가 모든 데이터를 입력하고 출력하듯이, 모든 동작을 자연스럽게 머리 속에 갖고 다녔던 것입니다.

어제는 우연히 길을 걷다가 멀리서 오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그 움직임이 눈에 익었습니다. 그는 내 친구였습니다. 그러나 그도 먼발치에서 나를 알아보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도 내가 길을 걸어갈 때의 습관이나 움직임을 머리 속에 저장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흔드는 팔의 각도는 어떻고, 걸음걸이는 어떻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습관이 있는지, 손에 항상 무엇을 들고 다니는 지를 알고 있던 것입니다. 어찌 보면 이런 모든 일이 아무런 의식 없이 지나치는 것 같지만 그러한 모든 일련의 행동은 자동적으로 머리 속에 저장되어 필요할 때에 정확한 수치로 우리 앞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어느 날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 조금도 어색하지 않은 행동으로 그를 알아보는 것, 그의 눈은 다른 사람보다 조금 작게 생겼다거나 크게 생겼다거나, 입은 어떻게 생기고, 코는 어떻게 생기고, 입술은 어떻게 생겼는지를 자신도 모르게 다 기억을 해두었던 덕분에 그를 알아보고, 그를 반기는 것입니다.

사람은 동작과 그의 생김새 등으로 알아봅니다. 어떤 사람은 목소리만 듣고도 알고, 어떤 사람은 그의 체취만 맡아도 압니다. 사람은 그만의 독특한 향기를 갖고 있고 그런 음성이나 향기 또는 그 무엇을 탐지해낼 수 있는 기록을 저장하여 놓습니다. 그러기에 실수 없이 그 사람의 목소리만 듣고 알아보고, 발자국 소리로 알아 듣고, 체위로 알아 보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가 뛰어난 기억 장치들 덕분입니다.

누가 나입니까. 몸을 흔드는 그가 나입니까. 아니면 목소리가 나입니까. 아니면 얼굴이 나입니까. 과연 누가 나이며 누가 그일까요. 손 흔드는 것이 그라면 그의 몸과 목소리가 기타의 모든 것들은 누구입니까. 그 모두가 그입니까. 아니면 그의 한 가지의 모습이 그입니까. 목소리를 내는 그와 몸짓을 하는 그는 과연 동일할까요? 아니면 다를까요?

그는 지금 육신을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한 당신일까요? 육신은 아무리 손을 흔들고 싶어도 마음이 지시를 하지 아니하면, 움직이지 않습니다. 만약 모든 육신이 움직인다면 죽은 시체도 손을 흔들어야 될 것입니다. 그는 지금 마음에게 명령을 내려 '손을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하면 손은 명령을 받아 손을 움직일 것입니다. 예컨대 아기들에게 "아가, 네 왼손을 움직여라." 하지만 아기는 어떤 것이 왼손인지 오른손인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아기는 망설일 것이 틀림없습니다. 손이 스스로 움직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움직이는 그대일까요. 그대는 분명히 밝아 있으나 밝아 있는 자를 보지 못하는 것뿐입니다. 그것이 미혹이라는 것입니다.

♧ 달은 어떻게 생겼길래

어떤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눈이 멀어 소경이 되었습니다. 그는 어느 날 친구와 산보를 하게 되었습니다. 시원한 가을바람이 살랑이고 청천 하늘에는 달이 떴습니다.

"아! 달도 밝다."

친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친구인 소경이 말했습니다.

"달이 어떻게 생겼는데?"

"아! 달은 말이지, 달은 그게 마치 쟁반과 같이 생겼어."

소경은 쟁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달을 이해하는 데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쟁반은 또 뭐야? 그게 어떻게 생겼는데?"

"쟁반은 마치 세숫대야 같아. 세숫대야."

그러나 그는 세숫대야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달이 세숫대야 같다고 하였는데 달이 왜 밝은 지는 의문이 풀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달이 쟁반과 같고, 세숫대야 같으며, 밝다고 하지. 밝은 것이 뭐야?"

소경이 연속적으로 질문을 해댔습니다. 친구는 속이 탔습니다.

"아이고 속 터져, 해와 같은 것인데 해보다는 덜 밝은 것이야. 그리고 달은 방에만 나와."

친구가 아무리 설명을 해도 소경은 이해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말을 아무리 잘 해도 소경에게 달을 설명하기란 어려운 것입니다. 눈을 딱 뜨지 않고는 달의 진면목을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화엄경을 공부하는 것은 달을 보기 위함입니다. 눈을 뜨면 온 천지가 아름다운 세계로 장엄되어 있고, 눈을 뜨지 못하면 암흑 속을 걸어가는 사람과 같습니다.

화엄경백일법문(華嚴經百日法門) -장산 저- 불광출판부 1999

출처 : 대불법회
글쓴이 : 장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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