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무진장품(十無盡藏品)
경문 그때 공덕림 보살이 다시 여러 보살들에게 말하였다.
"불자들이여, 보살 마하살에게 열 가지 장(藏)이 있으니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모든 부처님이 이미 말씀하시었고 장차 말씀하실 것이며 지금 또 말씀하시느니라."
1. 공덕림 보살이 믿음의 장(藏)을 설하다
"불자들이여, 무엇이 보살 마하살의 신장(信藏)인가. 이 모든 보살은 법이 공함을 믿으며, 모든 법이 무상함을 믿으며, 모든 원이 상이 없음을 믿으며, 모든 법이 지음 없음을 믿으며, 모든 법이 분별 없음을 믿으며 모든법이 의지함 없음을 믿으며, 모든 법이 헤아릴 수 없음을 믿으며, 모든 법이 위 없음을 믿으며, 모든 법이 초월하기 어려움을 믿으며, 모든 법이 남(生)이 없음을 믿느니라."
2. 믿음의 힘을 밝히다
"보살은 이와 같이 순수하여 깨끗한 믿음을 내고는 온갖 부처님의 법이 불가사의함을 듣고도 마음이 약하지 아니하며 모든 부처님이 불가사의하다는 것을 듣고 겁약한 마음을 일으키지 아니한다. 무슨 까닭인가. 보살은 모든 부처님의 처소에서 한결같이 굳은 신심을 내어 부처님의 지혜가 그디없고 다함이 없음을 아느니라."
3. 계율의 장(藏)을 열다
"불자여, 무엇이 보살마하살이 계율의 장을 여는 것인가. 이 보살이 널리 이익하게 하는 계와 받아들이지 않는 계와 머물지 않는 계와 후회함이 없는 계와 어기고 다툼이 없는 계와 번거롭게 하지 않는 게와 더러움이 없게 하는 계와 탐심이 없는 계와 헐고 범함이 없는 계를 성취하느니라."
4. 부끄러워하는 마음의 참장(慙藏)을 설하다
"저 보살이 마음에 스스로 생각하되, '내가 끝없는 옛적부터 모든 중생으로 더불어 다생으로 부모도 되고 형제 자매와 남녀가 되어서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음과 교만함과 아첨과 온갖 번뇌를 갖춘 연고로 서로 번거롭고 서로서로 업신여기고, 빼앗아서 간음하고, 살생하여 온갖 악을 다 짓고, 중생들은 이와 같이 온갖 번뇌로 여러 가지 악을지어서 각각 서로서로 공경하지 않으며, 존중하지도 아니하며, 순종하지도 아니하며, 겸손하지도 아니하며, 서로서로 아끼지도 아니하며, 서로 죽이고 죽어 원수가 된다' 하느니라."
⊙ 합론, 경해, 소
장(藏)은 출생과 온적(蘊積)의 뜻이니 이르되 장내(藏內)가 그 근본 몸이 법계에 가득함이요, 고로 섭덕(攝德)과 출용(出用)이 낱낱 무진이다. 십무진장 후에 십회향이 있을 것이다.
☞ 해설
보살은 회향에 있어서 십종 무진장을 얻는다고 하였습니다. 이른바 부처님을 보는 것이니 일모공(一毛孔) 가운데 아승지 제불이 출현함을 보리라 하였고, 신(信)은 능히 불신탁(不信濁 : 믿지 아니해서 생기는 오류)을 제어함으로써 업이 되고, 참(慙)은 무참(無慙)을 대치(大治)하여 악행(惡行)을 그치게 함으로써 업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참회로 장엄을 하면 계행(戒行)이 빛나게 되나니 허물을 여읜다 하였고, 허물을 여의니 또 여기에 공덕림 보살이 나옵니다. 공덕이 왜 공덕인가 하면 십신(十信)을 얻고 십주(十住)를 얻고 이제 십무진장(十無盡藏)을 얻어서 무한공덕의 문에 들어감을 표함이라 합니다.
5. 부끄러워〔愧藏〕하니 수행이 이루어진다
경문 "불자여, 무엇이 보살 마하살의 괴장인가. 어머니 뱃속에 들어가서 태어나며, 청정하지 못한 무상한 몸을 받아 필경에는 머리는 희고 얼굴이 쭈그러지게 되나니 지혜 있는 이가 이것을 보고는 다만 이것은 업으로 생기는 몸인 줄을 삼세의 부처님은 다 아시나니, 보살은 스스로 부끄러워하여 옛적부터 오욕락 가운데 갖가지로 탐하여 만족 할 줄 모르며 그로 인해서 탐하고 성내고 어리석은 온갖 번뇌를 증장하였으니 내가 이제 다시는 행하지 아니하리라."
6. 법문을 듣고 간직(聞藏)하여 업을 끊다
"불자여, 어떤 것이 보살 마하살의 문장(聞藏)인가. 세간법과 출세간법과 유위법과 무위법을 다 아느니라."
(1) "어떤 것이 세간법인가. 이른바, 색. 수. 상. 행. 식(色. 受. 想. 行. 識)이니라."
(2) "어떤 것이 출세간법인가. 이른바 계. 정. 혜(戒. 定. 慧)와 해탈(解脫)과 해탈지견(解脫知見)이니라."
(3) "어떤 것이 유위법인가. 이른바 욕계(欲界)와 색계(色界)와 무색계(無色界)와 중생계(衆生界)니라."
7. 베푸는 장〔施藏〕이니 아끼지 말고 베풀어야 한다
"불자여, 무엇을 보살의 최후 보시라 하는가. 불자들이여, 모든 보살은 귀가 없거나 코가 없거나 혀가 없거나 손이 없고 발이 없는 중생들이 찾아와서 '불자여, 저는 박복하여 불구자가 되었으니 바라옵건대 인자하신 이여, 좋은 방편으로 갖고 있는 것을 우리에게 보시하소서.' 하거든 보살은 듣고는 곧 보시하여 주며, '몸은 원래 연약하고 무상한 것이어늘 무엇이라고 내가 연연하랴' 하고는 몸과 마음에 애착을 갖지 않고 보시하여 청정한 지혜의 몸을 얻게 하리라. 이것이 최후의 보시라 하느니라."
☞ 해설
소위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이라 오온(五蘊 : 다섯 가지 쌓임으로 이 몸을 이루고 있는 것을 말함이다.)으로 이루어져 있는 몸은 바로 세간(世間)으로, 이 세간의 일체의 것을 말함이니 우리 인간의 몸은 생·노·병·사 하는 물질로서 유한의 세간에서 살 수밖에 없는 것을 말합니다.
색(色)이란 바로 물질을 말합니다. 물질은 생겨난 고로 반드시 언젠가는 없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즉 유한의 물질입니다. 그러한 유한의 물질이 무엇인가를 받아서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설명을 더하면 수(受)와 상(想)과 행(行)은 식(識)이라는 마음의 작용을 말하는 것이요, 색(色)은 이와 같은 마음 작용으로 생겨난 몸입니다. 그러므로 이 몸은 다시 식이라는 마음 작용에 의하여 수·상·행이라는 활동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8. 지혜(慧藏)를 일으키니 지혜가 그 안에 있고
경문 "불자들이여, 어떤 것을 보살 마하살의 지혜로운 장이라 하는가. 보살은 사실대로 알고, 보살은 이 몸의 허망함을 알며, 이 몸이 쌓임을 알며, 이 몸이 멸(滅)함을 아는 연고이니라."
9. 염장(念藏)을 설하다
미진수와 같은 일을 다 기억하다
"불자들이여, 어떤 것을 보살 마하살의 기억하는 장(念藏)이라 하는가. 이 보살은 어리석음을 여의고 구족하게 기억하나니 지난 세상의 일생은 한량없고, 끝없고, 같을 이 없고, 헤일 수 없고, 말할 수 없으며,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겁 동안 모든 것을 다 기억하느니라."
기억의 장에 머무는 이익을 밝히다
"불자들이여, 이 기억에 머문 때는 일체 세간이 요란하지 못하고, 온갖 외도의 의논이 변동하지 못하고, 지난 세상의 선근이 다 청정하여지고, 여러 세상법에 물들지 않고, 마군과 외도가 파괴하지 못하고, 부처님의 대중이 모인 가운데 들어가서 장애가 없고 모두 친근하니 제8기억하는 장이라 하느니라."
10. 지장(持藏)을 설하다
"불자들이여, 어떤 것을 보살 마하살의 지니는 장이라 하는가. 불자들이여, 이 지니는 장은 그지없고 가득히 차기 어렵고, 밑까지 이르기 어렵고, 친근하기 어렵고, 다함이 없고, 큰 위력을 갖추고, 부처님의 경계이며, 부처님만이 능히 아시나니. 이것을 보살 마하살이 지니는 장(持藏)이라 하느니라."
11. 변장(辯藏)을 설하다
부처님 경전과 똑같이 법을 말하다
"불자들이여, 어떤 것이 보살 마하살의 말하는 장이라 하는가. 보살은 깊은 지혜가 있어서 실상을 분명히 알고, 중생에게 법을 말함에 모든 부처님의 경전과 어기지 않나니, 한 품의 법을 말하고 말할 수 없는 품의 법을 말하며, 겁의 수효 다할 수 있더라도 다할 수 없는 겁 동안 설법하나니 한 글자 한 구절의 이치는 다할 수 없는 것이니라."
무진장을 성취하였으므로 이 장을 성취하다
"무슨 까닭인가. 불자들이여, 무진장을 성취하였으므로 이 장을 성취하였으며, 법을 말할 적에 미묘한 음성을 내어 시방의 일체 세계에 충만하며, 그들의 성품을 따라 기쁘게 하며, 모든 번뇌의 얽매임을 멸하고, 일체의 음성과 말과 문자와 변재에 들어가서 중생들로 하여금 부처님의 종성이 끊어지지 않게 하기 위함이며, 깨끗한 마음을 계속 얻게 하며, 또한 법의 광명으로 법을 연설하여 다함이 없으면서도 고달픈 생각을 내지 아니하나니 이 보살은 법계에 가득한 그지없는 몸을 성취한 까닭이니라."
♧ 바다에 떨어진 달
어느 날 한 어린 아들이 아버지에게 여쭈었습니다.
아들: 아버지 달은 왜 서쪽으로 떨어지나요?
아버지: 그 쪽에 바다가 있기 때문이란다.
아들: 왜 바다에 떨어져야 하나요?
아버지: 바다는 크기 때문이란다.
아들: 그러면 바다에 떨어져 죽으면 내일 뜨는 달은 오늘 달이 아닌가요?
아버지: 그렇단다, 오늘 달이 아니란다.
아들은 어느날 홀연히 서쪽으로 향했습니다. 그는 여러 날을 걸어서 서쪽 바다에 다다랐습니다. 그런데 호수보다 열 배는 크다던 바다가 너무 커서 그는 벌렸던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아니 바다가 저렇게 큰가. 호수보다 열 배는 크다고 하였는데, 백 배는 크잖아, 아니, 백 배가 뭐야, 천 배는 크겠다.'
아들은 달을 지켜보기로 하였습니다. 달이 동으로부터 솟아 올라 중천에 떠있습니다. 달빛과 바다의 어우러진 모습이 한 폭의 그림과도 같았습니다. '아! 바다가 저렇게 크다니 참으로 아름답구나!'
그는 이윽고 달이 새벽녘에 서쪽으로 향하더니 바다 저 너머로 빠져들 듯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가 생각한 대로 말을 합니다. 그 이상이 될 수도 없고, 그 이하가 될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말을 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의 넓이와 크기를 알아볼 수가 있습니다. 큰 그릇이 되는가 못 되는가 하는 것은 오직 자신의 생각의 크기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불교는 모든 사람에게 새로운 사유의 바다로 안내합니다. 한량없고, 말할 수 없고, 생각할 수 없고, 분별할 수 없는, 그런 세계를 부처님은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그런 세계가 어디에 있는가? 그런 세계는 바로 천상의 세계요, 부처님의 세계입니다. 이런 세계를 터득하는 것은 정안(正眼)이어야 합니다. 즉 바른 눈이 아니면 얻지 못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무한 능력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 무한 능력이라는 것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안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내 스스로가 확신하는 믿음이 없이는 그러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글을 모르는 사람은 무엇이든지 아주 잘 외웁니다. 그리하지 않고는 남 앞에 나서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눈으로 보고 아는 것을 기억으로 대치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글을 못 읽을 것 같으면 아무 것도 못할 것 같지만 글을 몰라도 말을 다 하는 것과 같습니다. 글을 모르는 사람도 어떠한 말도 아무 불편 없이 사는 것과 같습니다. 고차원적인 학문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문답
"호리유차하면 천지현격이니라." 하고 선사가 납자에게 일렀습니다.
납자: 되풀이하여 호리유차하면 천지현격합니다.
선사: 만약 후추를 통째로 그냥 삼키면 어찌 되는가?
납자: 만약 선사라면 어떻게 답을 하시겠습니까?
선사: 호리유차하면 천지현격이니라.
선사가 말했습니다.
이 때에 납자는 홀연히 깨닫고, 선사에게 예배하고 나갔습니다.
어느 날 선사와 납자가 다시 만났습니다.
선사가 문안을 여쭙는 납자에게 말했습니다.
"병자동자래구화(丙子童子來求火)니라."
납자는 앞이 깜깜하여 물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여기에서 현칙이 대오하였느니라."
납자: 하늘도 덮지 못하고 땅도 덮지 못한다고 하였는데 선사님의 견해는 어떻습니까?
선사: 그것은 그렇다.
납자는 모르는 소리라서 다시 설명을 하여 줄 것을 요청하였다.
선사: 도라고 하는 것은 금후 네 자신이 스스로 터득해야 할 문제이니라
그 후 어느 날 다시 납자가 선사를 찾았습니다.
납자: 선사에게 묻기를, 선사님! 시간, 공간을 초월해 가는 것은 무엇입니까?
선사: 불설(不說)
납자는 알아듣지를 못하고 왜 설해 주지 않느냐고 다그쳐 물었지만 선사는 조용히 타이르기를, "존재와 비존재는 여기에서 적용이 안 된다."라고 답하였습니다. 만약 나에게 그것을 묻는다면 똑같이 '불설' 할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이 세상의 말씀 중에서 가장 뛰어난 답이라, 그보다 더 자상하게 진리를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에게 아무리 제가 부처님의 존재를 말하고 또 말한다고 하여도 그것은 마치 밥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밥은 먹어야 배가 부르지 보기만 하면 배는 더 고파지는 것과 같습니다.
어느 날 또 납자는 선사를 찾아갔습니다. 이번에는 단단히 벼르고 갔습니다. 좀 혼내 주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납자: 선사님, 선사님은 죽으면 어디로 가십니까?
선사: 내가 갈 곳으로 가니라
납자도 이제 뒤로 물러서지 않기로 단단히 마음 먹은 터라 즉시 다시 물었습니다.
납자: 그곳이 어딥니까?
선사: 제불이 다 아시느니라.
납자: 저에게 자세히 말씀을 해주시지요,
선사: 감았던 눈을 뜨면 다 보이느니라.
선사는 말을 마치고 선방으로 가셨습니다.
화엄경백일법문(華嚴經百日法門) -장산 저- 불광출판부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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