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 세계

[스크랩] 22. 견성성불(見性成佛) 9

수선님 2018. 7. 22.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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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는 바깥의 어떤 대상에 대하여 그 자체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고 이에 집착하면서 스스로 그 앞에 머리를 조아리는 것은 원시종교적이고 주술적인 물신숭배(物神崇拜)라고 하였다.
 
또한 바로 그것이 선(禪)에서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고 하는 망념(妄念) 망상(妄想)의, 나아가 불교의 기초교리에서 말하는 무명(無明)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 가운데 하나라고 지적했다.

 

그런 행태를 문제로 삼은 것은 불교만이 아니다. 고전종교와 고전사상에서는 일반적으로 인간의 그런 행태를 매우 심각하게 여긴다. 심지어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로 여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고전종교와 고전사상에서는 자기 자신의 정체를 제대로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여긴다.

 

그러므로 외부 세계와 사물에 마음대로, 또는 관습적으로 온갖 의미를 부여하고는 그것을 철썩 같이 만고의 움직이지 않는 진리라고 집착하면서 자신의 정체 또한 외부 세계에 의하여 결정되도록 내맡기는 인간의 일반적인 행태가 온갖 문제의 근원이라고 진단한다.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의 정체를 깨닫는 것이 세상 온갖 문제의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처방한다. 물론 각 종교와 사상에서 제시하는 ‘자신의 정체’와 그것을 깨닫는 방법은 각자 다르지만….

 

예를 들어 기독교에서는 깨달아야 할 자신의 정체란 바로 피조물로서의 정체라고 한다. 인간은 조물주에 의하여 만들어진 존재이지 저 홀로 잘나서 이 세상에 태어나 자신과 세상의 주인으로서 사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이 조물주에 의하여 마련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이 그 점을 망각하고 조물주를 배제한 채 자기가 자신과 세상의 주인 노릇을 하려고 하는 데 있다. 그러므로 겸손한 피조물로서 조물주의 주권을 인정하고 절대적인 신앙을 바치며 자신과 세상의 모든 것을 그에게 맡기는 삶을 살라고 처방한다. 달리 말하자면 하나의 개체로서.

 

한편 선(禪)에서는, 지금까지 누차 언급했지만 그 ‘자신의 정체’란 바로 부처라고 선언한다. 선의 표현으로는 진여자성(眞如自性)이라 한다. 그리고 중생이 누구나 각자 갖추고 있는 본래 진여인 자신의 그 정체를 깨닫는 것을 일컬어 견성이라고 했다. 중생의 근본적인 문제는 자신을 부처, 즉 보편자가 아닌 일개 중생, 즉 개별자일 뿐이라고 여기는 데 있다. 달리 말하자면 세상 전체를 제 몸으로 삼는 연기적(緣起的) 존재로서가 아니라, 한 개체로서 자기 살림살이만 붙들고 씨름하는 데에서 온갖 문제가 다 발생한다.

 

그러니까 자기 자신이 부처임을 깨닫지 못하고 자신과 부처 사이에 거리를 두는 태도가 보이면 선사들은 가차없이 질책을 가한다. 그것이 이를테면 최후의 망상이라고 여긴다. 물론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는 훨씬 더 거친 망념 망상이 난무한다. 제 한 몸을 개체로서만 여기고 일으키는 온갖 이기적인 탐욕이 우리의 삶을 이끌어간다.

 

그런 삶을 과감하게 떨치고 불도(佛道), 즉 부처의 길만을 걷겠다고 나서는 것이 출가(出家)이다. 그 출가 수행자들조차 끝까지 놓기 힘든 것이 ‘나는 부처가 아니고 중생’이라는 망상이다. 그리고 부처를 밖에서 찾는다. 자신의 정체를 바로 보면 부처가 ‘된다’는 정도가 아니라 견성하면 바로 그대로 부처라고 하는 더 강한 표현(견성즉불·見性卽佛)도 있는데, 여기에도 그런 최후의 망상을 부수어주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 있다.

 

윤원철/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출처 : 淨土를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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