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인심 견성성불’이라는 말이 선종의 기본 입장이다.
이는 세상과 인간의 온갖 문제에 대해서 그 궁극적인 원인과 해결책을 개인의 마음가짐에서 찾는 것이고, 이것은 동·서양 고전종교와 고전사상에 공통된 특징 가운데 하나라는 이야기를 했다.
고전종교가 등장하기 이전에는, 온갖 세상사에 어떤 초자연적인 힘이 작용한다고만 믿었다. 예를 들어 똑같이 농사를 지었는데 어느 해에는 농사가 잘 되고 어느 해에는 흉년이 드는데, 잘 되면 신령님 덕분이고 못되면 신령님이 뭔가 노해서 그러리라고 여긴다. 또 하나 예를 들자면, 누구는 크게 애쓰지 않아도 하는 일마다 잘 되고 편안하게 사는데 누구는 아등바등 처절하게 발버둥을 치며 고생을 해도 되는 일이 없는 것을 두고는 흔히들 팔자소관이라고 한다. ‘팔자’라는 힘이 인간사를 관장한다는 관념이다.
고전종교 이전의 현저한 종교적인 신행으로서 이른바 주술(呪術)이라는 것이 있다. 영어로 매직(magic)인데, 요즈음에는 마술(魔術)이라고 해서 눈속임 기술로써 보는 이들을 즐겁게 하는 오락을 뜻하지만 원래 학술용어로서는 그런 뜻이 아니다. 세상의 일들이 돌아가는 데에는 어떤 법칙이 있다는 전제 아래, 그 법칙을 이용하여 자기가 원하는 일이 일어나도록 술수를 부리는 것이 주술이다. 장희빈이 중전에게 위해를 가하기 위해서 방술을 썼다가 나중에 들켜서 쫓겨났다는데, 그 방술이라는 것이 전형적인 주술이다.
예를 들자면 어떤 사람을 상징하는 인형을 만들어 그것을 바늘로 찌르면 그 사람이 아프다거나 하는 나쁜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가뭄에 비를 오게 하기 위해서 콩으로 키질을 하여 빗소리를 내는 것도 주술의 전형적인 한 예이고, 암컷을 여럿 거느리는 물개 수컷의 생식기를 먹으면 성적 기능이 좋아진다는 믿음은 지금도 성행하고 있다. 그러니까 어떤 인과율적인 자연법칙이 있다고 믿으면서, 그것에 의지하고 그것을 이용하려는 것이다. 다만, 그 주술적인 인과율은 과학에서 밝혀내는 인과율적 자연법칙과는 상관이 없는 별개의 것이다.
그러나 고전종교에서는 모든 세상사가 결국에는 나 자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다는 관점을 강조한다. 고전종교에서 우주의 궁극적인 원리 내지 실재로 말하는 정법(正法)이라든가 도(道), 조물주 등은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요 어떻게 해볼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다분히 초월적이고 초자연적인 것이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고전종교에서는 그러한 초월적, 초자연적인 궁극의 원리를 나 자신이 깨닫고 체현(體現)하는 것을 중시한다. 또는 조물주에 대해서 피조물로서 올바른 태도를 취하고 올바른 관계를 유지할 것을 강조한다.
고전종교가 등장했다고 해서, 갑자기 모든 사람들이 그런 것을 더 이상 믿지 않고 모든 세상사가 결국에는 나 자신에게 달렸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아닐 터이다. 지금도 원시종교적인 신행과 주술적인 사고방식은 여전히 횡행하고 있다. 더욱이, 근대 이후에는 개개인의 각성보다는 사회의 틀이라든가 제도를 어떻게 고치느냐 하는 것이 세상의 모습뿐 아니라 개인의 문제 해결에도 가장 중요한 관건이라고 여기는 사고방식이 매우 강하게 대두하였다. 그런 사상이 현대문명을 주조하는 한 축이 되면서 고전종교의 이상은 많이 위축되었으나, 한편으로 내가 나 자신을 아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그 고전적인 이상의 중요한 가치는 퇴색하지 않고 있다.
윤원철/서울대학교 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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