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간화선이란 무엇인가
2-1. 간화선이란 무엇인가
간화선(看話禪)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남송대 대혜종고 스님(1089~1163)에 의해 주창된 수행법이다. 간화에서의 간은 참구를 말하고 화는 화두를 말하는 것으로, 곧 화두의 참구를 통해 깨달음을 얻는 방법이다. 여기서 화두라는 것은 조사스님들의 인연설화 가운데서 극칙처(極則處)에 도달한 기연․언구와 부처님의 경전 가운데 인연설화를 공부인이 참구하는 명제(命題)로 삼은 것을 말한다.
이런 참구명제는 어디까지나 공적으로 엄정해야 하며, 추호의 사정(私情)이 개재되어서는 안된다는 의미에서 공안이라고도 불린다. 그리고 공안으로 채택된 조사의 기연․언구는 최후의 극칙처에 도달한 것이라야 한다고 간화선의 종장들은 강조한다. 이런 저런 모든 기연이나 언구들이 모두 다 화두나 공안이 될 수는 없다는 말이다. 반드시 참구자를 구경의 깨달음으로 인도해줄 투철한 명제여야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낙보원안은 “마지막 한 구절이라야 비로소 곧은 관문에 도달하나니, 요긴한 길목을 가로막아서 범․성이 다 통하지 못한다(낙보원안: 834-898의 게송이다)”고 한 것이다. 그래서 이런 극칙처를 쇠망치로도 부술 수 없는 굳건한 조사스님들의 관문(祖師關)이라고 부른다.1)
오직 이 조사공안을 참구하여 그 의단(疑團)이 타파되면 정식(情識)의 알음알이가 말끔히 없어져서 가슴 속에 털끝만한 정습망상(情習妄想)이 남아 있지 않게 되어, 생사윤회의 수레바퀴가 멈추고 대해탈을 이룬다고 한다. 흔히 공안의 수를 1700공안이라고 하는데, 이 숫자는 아마도 전등록에 등재된 인물의 숫자가 1701명인 데서 기인한 듯하나, 실제로 전기를 싣고 있는 조사의 숫자는 964인에 불과하다.2)
간화선은 임제종 양기파에서 파생하고 있는 오조법연(?~1104)-원오극근(1063~1135)-대혜종고(1089~1163)의 계열에서 정착되었다. 특히 오조법연 스님은 ‘무자화(無字話)’의 강조를 통해 공안 참구를 본격화시킨 인물이며, 제자 원오극근 스님은『벽암록』의 저술로 간화 수행의 전거를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계승한 대혜 스님에 이르러 완전한 간화선으로 정착하고 있다.3)
2-2. 간화선의 성립배경
간화선을 바르게 이해하는 데는 간화선의 성립배경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학자들은 간화선의 성립배경을 대체적으로 다음의 셋을 들고 있다.
첫째, 남종선의 돈오가 무사선으로 오해된 폐풍을 들고 있다. 돈오를 주장하는 남종선의 기본입장은 김호귀의 “본래 自性淸淨佛이므로 모든 行住坐臥의 행위는 다 본래부터 깨침의 현현이다.”는 명제로 압축할 수 있다. 이에 대한 견해는 당대선종에서 보편적으로 찾아볼 수 있다. 남종선의 초조인 육조의 가르침으로 신회가 정리한 것으로 판명이 된 육조단경에 이미 보리자성 본자청정 단용차심 직료성불이라고 나타난다. 한편 이런 입장을 臨濟義玄은 『臨濟錄』에서 다음과 같이 극명하게 드러낸다.
“납자들이여, 불법은 애써 用功할 필요가 없다. 다만 평소에 無事하게 屙屎送尿하고 着衣喫飯하며 피곤하면 잠자면 그만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나를 비웃는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안다. 고인이 말했다. ‘밖을 향해 공부하지 말라, 그것은 어리석은 자들의 짓일 뿐이다’라고. 그대들은 이미 隨處作主이고 立處皆眞이다. 그러니 경계를 맞이하여 회피하지 말라.”
이러한 입장은 또한 종밀이 『裴休拾遺問』과 『圓覺經大疏抄』 卷三下에서 洪州宗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는 곳에서도 볼 수가 있다.
“홍주의 주장은 心을 統御하여 사념을 작용시키고, 손가락을 튀기고 눈을 꿈벅꿈벅하며, 所作하고 所意하는 것이 모두 모두 불성 그대로의 작용이지 다른 작용이 아니라고 말한다. 貪․瞋․癡가 그대로, 선을 짓고 악을 짓는 것도, 고라고 느끼고 락이라고 느끼는 것도 모두 불성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종밀이 홍주종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에서 하택종의 종지와 비교하려는 입장에서 서술한 것이지만 홍주종의 입장을 적확하게 표현하고 있다.4)
두번째로는 이른바 ‘불립문자(不立文字)’가 ‘불이문자(不離文字)’로 되어버린 ‘문자선(文字禪)의 폐풍을 들 수 있다. 중국 학계에서는 兩宋 선종의 주된 흐름으로 이른바 ‘不立文字’에서 ‘不離文字’로 표현되는 ‘文字禪’을 그 특징으로 말하고, 그로부터 나타나는 폐해를 극복하고자 묵조선과 간화선이 나타났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다시 말하여 晩唐․五代, 北宋에 걸쳐서 語錄이 대량으로 출현하고, 또한 이른바 ‘公案’에 대하여 拈古․頌古․評唱․代別 등의 註釋이 대거 나타나게 됨으로써 점차 선의 수행은 일종의 주석학으로 빠져들게 된다. 특히 臨濟계통의 汾陽善昭(947~1024)의 『頌古百則』,『公案代別百則』,『詰問百則』등의 저작에서 ‘公案’해석에 대한 통일된 형식과 답안을 제시함으로서 이른바 ‘繞路說禪’의 방법이 유행하게 되었고, 그를 이어 수많은 선사들이 모두 頌古를 짓고 있으며, 최종적으로 大慧선사의 스승인 圓悟克勤 스님의 『碧岩錄』에 이르러 文字禪은 극성에 이르게 된다. 이에 따라 선의 수행은 모두 문자를 통한 文字禪의 방향으로 흐르게 되고, 점차 사대부 문인들의 언어적 유희로 전락하게 되어 그러한 폐해를 고치고자 묵조선과 간화선이 등장하였다는 것이다. 대혜선사가 바로 스승인 원오극근 선사의 『碧岩錄』을 모두 불살라 유포를 금지시킨 것은 바로 이런 문자선의 폐해를 없애기 위한 극단적인 방법이었다.5)
이런 무사선과 문자선의 폐풍을 고치고자 등장한 것이 묵조선이다. 김호귀는 묵조선의 입장을 “본래 自性淸淨佛이었기 때문에 진정으로 그에 걸맞는 좌선을 필요로 한다. 그리하여 좌선할 때는 반드시 깨침이 현현한다.”라는 명제로 설명한다. 간화선과 함께 비슷한 시기에 정립되고 있는 묵조선은 조동종 계열인 宏智正覺(1087~1157)에 의해 주창된 수행법이다. 정각이『묵조명(黙照銘)』에서 ‘묵묵히 일체의 언어를 끊고 좌선하면 불성의 영묘한 작용이 분명한 깨달음의 세계로 그대로 드러난다. 비출 때는 확연하여 텅 비어 있지만 그 불성의 본체는 영묘하게 작용하고 있다 … 깨달음의 세계는 묵묵히 좌선하는 그 곳에 있으며, 또한 방편인 좌선은 깨달음의 세계에 자취를 남기지 않는다’고 설하고 있듯이 본래 깨달음의 상태에 있고, 그것을 좌선이라는 방법을 통해 드러낸다는 내용이다. 곧 깨달음이란 새로운 것이 아니라 본래 깨달아 있는 것으로 묵묵히 좌선하게 되면 그대로 깨달음의 세계가 현현된다는 것이다.6) 이처럼 무사선의 폐해를 자성청정불을 확인하는 좌선이라는 實修를 통해서 극복하고자 등장한 것이 묵조선인 것이다.
셋째, 묵조선의 폐해를 들 수 있다. 본자청정을 좌선으로 확인하려는 묵조선의 입장을 대혜는 ‘묵조사선’이니 ‘아무 말 없이 흑산 아래 귀신굴에서 눈을 감고 앉아 있는 것’이니 하면서 신랄하게 공격하고 있다. 이것은 정작 투철한 깨달음에 이르지 못했는데도 식정의 분별로 본자청정이라 여기고 그 경지를 좌선으로 확인하려는 발상자체가 미혹에서 나온 분별망상일 뿐이라는 반성에서 나온 것이다.
대혜의 묵조선에 대한 공격은 묵묵히 좌선하는 坐의 형태 그 자체에 대한 비판이라기보다는 잘못 망상에 빠져 그것을 깨달음의 현성이라 간주하는 것에 대한 것이다. 이와 같은 결과를 초래한 것은 곧 話頭없이 바로 그 당체를 威音那畔의 일과 空劫已前의 마음자리로 대신하여 無事寂靜한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것 때문이다. 항상 어디서나 一行三昧와 一相三昧로 일관해야 할 치열한 구도심을 접어둔 채 현실을 무시한 안이한 모습의 부정이라 할 수 있다.
대혜 스님은 묵조사선의 병통을 치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공안을 참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 공안 참구의 중요성은 대혜가 일생을 두고 강조한 것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특히 조주의 무자화두에 있어서 더욱 그렇다. 대혜의 무자화두에 대한 주안점은 어디까지나 動靜一如한 입장에 근거한 것이었다. 이러한 입장은 곧 看話的인 성격에 대한 이전부터의 관점을 계승이라 할 수 있다. 대혜에게 있어서 간화적인 것이라는 것은 일상생활 속의 언제 어디서나 무자화두에 대한 일념의 지속을 의미하고 있다. 그런데 바로 이 점이 대혜가 무자화두를 통하여 제시하는 간화선의 정신이기도 하다. 이처럼 대혜 스님은 바로 일상의 행위가 반야의 실천이 되는 화두공부를 주창하고 있다.7)
이처럼 간화선은 본래성불, 본자청정, 즉심시불 등의 명제에 함몰하여 번뇌의 때가 새까맣게 끼어있으면서도 깨달은 양 착각하여 날뛰는 악성적인 무사선과 미혹인지 깨달음인지 분간도 못하고 미혹한 상태에서 묵묵히 근본을 반조한다면서 앉아있는 묵조선과 불입문자를 표방하면서도 온갖 훈고학적 문자놀음을 일삼은 문자선을 극복하고 실참실구를 통해서 본자청정을 구현하려는 체계이다.
2-3. 어떻게 화두를 참구하는가
대혜스님의 가르침을 위시한 여러 선장들의 어록과 학자들의 견해를 종합해보면 화두 참구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화두에는 어떤 분별도 들어설 여지가 없어야한다. 그러므로 ‘잡을 수 있는 수단이 전혀 없다(沒巴鼻)’거나 ‘아무 맛도 없다(無滋味)’8)거나 ‘손잡이가 없는 쇠망치(無孔鐵鎚)’9)같다거나 하는 등의 비유는 이렇게 어떤 길로도 통하지 않는 화두의 본질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래서 화두를 공부하는 사람이 그 본질을 실현하게 되면 ‘마음으로 모색할 길이 끊어졌다(心路絶)’10)고 표현 하는 것이다.
둘째, 화두는 그자체가 예를 들면 ‘無’는 있느냐 없느냐 하는 등 논란거리가 아니라 이를 놓고 벌어지는 모든 분별과 논란을 잠재우기 위한 수단으로서 주요한 뜻을 가진다.(무자십절목 참조) 이처럼 조주의 화두를 참구한다고 하는 것은 화두 그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양귀비가 시녀 소옥이에게 시킬 일이 있어서 소옥아! 소옥아! 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 아닌 것과 같다. ‘無!’라거나 ‘어째서 무라했는고!’라고 화두를 드는 것은 의단이라는 지혜가 독로하게 하기 위한 방편이며 의단이 독로할 때 모든 사량분별이 끊어져 본래심에 계합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원오극근 스님은 ‘공안(화두)은 남의 집 대문을 두드리는 기왓조각(敲門瓦子)’이라고 하신 것이다. 本來心의 자기 집 대문에 화두라는 기왓조각으로 두드리고 깨달음으로 들어가 안은하게 앉아 安心立命의 삶을 가꾸는 것이 간화선 수행에서 공안을 참구하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셋째, 그러므로 언어에 의존하는 어떤 구절이나 그 한계를 넘어서 표현하는 방과 할까지 모두 사구이다. 그러므로 화두는 어떤 전제든 다 부정하는 ‘무전제의 수행’이라고 발제자는 표현하고 있다. ‘무전제’라는 말은 부처님께서 고구정녕히 설하신 ‘무아’와 같은 말이요 용수 스님의 공(空)을 뜻한다. 아울러 이것은 『금강경』과 최초기 부처님 말씀으로 세계의 모든 학자들이 동의하는『숫따니빠따』4장에서 말하는 일체 산냐(개념, 관념, 경계, 인식, 명칭)를 척파하라는 가르침과 일맥상통한다. 그래서 『금강경』은 선종의 소의경전으로 자리잡았고 한국불교의 대명사요 선종을 표방하는 조계종의 소의경전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정교한 이론을 들이대고 아무리 대신심을 가지고 대분지를 촉발해도 의정을 일으키지 못하면 그것은 간화가 아니다. 그래서 화두를 향해서 끊임없고 쉼없이 의정을 촉발할 것을 종장들은 고구정녕히 설하고 있다. 한 생각이 두 생각이 되기 전에 화두를 제기하여 의정을 일으키는 것이 간화선의 출발이다. 화두를 지속적으로 챙길때 때 의단이 독로한다. 이런 의정을 돈발하게 하는 것 이외에 간화선에 다른 방편은 없다. 화두는 개념적 사고나 특정한 인식 범주를 수단으로 하여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화두에는 어떤 분별도 들어설 여지가 없다.
은산철벽 앞에 선 것과 같이 어떻게 해 볼 수단도 전혀 없는 경계까지 가야 비로소 禪語로서의 화두가 그 효용을 발휘한다. 그래서 고봉스님은 “바로 이러할 때는 은산과 철벽을 마주한 것과 같아서 앞으로 나아가자니 문이 없고 물러서면 길을 잃어버리게 된다.(『禪要』)”고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진퇴가 모두 막힌 상황에서 궁구하도록 하는 것이 배촉관이다. 대혜가 “무소뿔로 만든 미끌미끌한 쥐틀에 들어가 거꾸로 뒤집혀서 나아가지도 돌아서지도 못하는 지경에 이른 쥐”(『書狀』「答張舍人狀」)라 한 비유도 마음이 더 이상 어떤 수단과 기량도 부릴 수 없는 은산철벽의 경지를 이른다. 이렇게 되어야 참으로 바른 의심 덩어리(의단)를 이룬 것이라고 한다. 이런 경지에 이르러 기연을 만나서 견성을 하게 되는 것이다.11)
2-4. 결론
간화선은 정통 남종선이 본자청정이므로 아무런 공용을 드릴 필요가 없다는 무사선과, 불립문자가 불리문자로 되어버린 문자선과, 깨닫지도 못했으면서 그것을 깨달음의 현성이라 간주하여 앉아서 묵묵히 좌선하는 묵조선의 폐풍을 극복하고자 대혜 스님이 주창한 수행법이다. 대혜 스님은 이렇게 무사선과 문자선과 묵조선의 폐풍을 화두나 공안이나 조사관 등으로 불리는 극칙처라는 관문을 세워 이를 통과하는 것으로써 극복한 것이다.
한편 화두는 화두 그 자체보다는 모든 분별과 논란을 잠재우기 위한 수단으로서 주요한 뜻을 가진다. 그러기 위해서는 의정을 일으켜야하며 이 의정이 타성일편이 되어 의단이 독로할 때 화두는 활구가 되는 것이다. 이런 화두 참구는 무전제의 수행이며 이것은 불교의 핵심인 무아와 합치하며 산냐의 척파를 가르치는 선종의 소의경전인『금강경』의 사상과도 일치한다.
2-1. 간화선이란 무엇인가
간화선(看話禪)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남송대 대혜종고 스님(1089~1163)에 의해 주창된 수행법이다. 간화에서의 간은 참구를 말하고 화는 화두를 말하는 것으로, 곧 화두의 참구를 통해 깨달음을 얻는 방법이다. 여기서 화두라는 것은 조사스님들의 인연설화 가운데서 극칙처(極則處)에 도달한 기연․언구와 부처님의 경전 가운데 인연설화를 공부인이 참구하는 명제(命題)로 삼은 것을 말한다.
이런 참구명제는 어디까지나 공적으로 엄정해야 하며, 추호의 사정(私情)이 개재되어서는 안된다는 의미에서 공안이라고도 불린다. 그리고 공안으로 채택된 조사의 기연․언구는 최후의 극칙처에 도달한 것이라야 한다고 간화선의 종장들은 강조한다. 이런 저런 모든 기연이나 언구들이 모두 다 화두나 공안이 될 수는 없다는 말이다. 반드시 참구자를 구경의 깨달음으로 인도해줄 투철한 명제여야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낙보원안은 “마지막 한 구절이라야 비로소 곧은 관문에 도달하나니, 요긴한 길목을 가로막아서 범․성이 다 통하지 못한다(낙보원안: 834-898의 게송이다)”고 한 것이다. 그래서 이런 극칙처를 쇠망치로도 부술 수 없는 굳건한 조사스님들의 관문(祖師關)이라고 부른다.1)
오직 이 조사공안을 참구하여 그 의단(疑團)이 타파되면 정식(情識)의 알음알이가 말끔히 없어져서 가슴 속에 털끝만한 정습망상(情習妄想)이 남아 있지 않게 되어, 생사윤회의 수레바퀴가 멈추고 대해탈을 이룬다고 한다. 흔히 공안의 수를 1700공안이라고 하는데, 이 숫자는 아마도 전등록에 등재된 인물의 숫자가 1701명인 데서 기인한 듯하나, 실제로 전기를 싣고 있는 조사의 숫자는 964인에 불과하다.2)
간화선은 임제종 양기파에서 파생하고 있는 오조법연(?~1104)-원오극근(1063~1135)-대혜종고(1089~1163)의 계열에서 정착되었다. 특히 오조법연 스님은 ‘무자화(無字話)’의 강조를 통해 공안 참구를 본격화시킨 인물이며, 제자 원오극근 스님은『벽암록』의 저술로 간화 수행의 전거를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계승한 대혜 스님에 이르러 완전한 간화선으로 정착하고 있다.3)
2-2. 간화선의 성립배경
간화선을 바르게 이해하는 데는 간화선의 성립배경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학자들은 간화선의 성립배경을 대체적으로 다음의 셋을 들고 있다.
첫째, 남종선의 돈오가 무사선으로 오해된 폐풍을 들고 있다. 돈오를 주장하는 남종선의 기본입장은 김호귀의 “본래 自性淸淨佛이므로 모든 行住坐臥의 행위는 다 본래부터 깨침의 현현이다.”는 명제로 압축할 수 있다. 이에 대한 견해는 당대선종에서 보편적으로 찾아볼 수 있다. 남종선의 초조인 육조의 가르침으로 신회가 정리한 것으로 판명이 된 육조단경에 이미 보리자성 본자청정 단용차심 직료성불이라고 나타난다. 한편 이런 입장을 臨濟義玄은 『臨濟錄』에서 다음과 같이 극명하게 드러낸다.
“납자들이여, 불법은 애써 用功할 필요가 없다. 다만 평소에 無事하게 屙屎送尿하고 着衣喫飯하며 피곤하면 잠자면 그만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나를 비웃는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안다. 고인이 말했다. ‘밖을 향해 공부하지 말라, 그것은 어리석은 자들의 짓일 뿐이다’라고. 그대들은 이미 隨處作主이고 立處皆眞이다. 그러니 경계를 맞이하여 회피하지 말라.”
이러한 입장은 또한 종밀이 『裴休拾遺問』과 『圓覺經大疏抄』 卷三下에서 洪州宗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는 곳에서도 볼 수가 있다.
“홍주의 주장은 心을 統御하여 사념을 작용시키고, 손가락을 튀기고 눈을 꿈벅꿈벅하며, 所作하고 所意하는 것이 모두 모두 불성 그대로의 작용이지 다른 작용이 아니라고 말한다. 貪․瞋․癡가 그대로, 선을 짓고 악을 짓는 것도, 고라고 느끼고 락이라고 느끼는 것도 모두 불성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종밀이 홍주종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에서 하택종의 종지와 비교하려는 입장에서 서술한 것이지만 홍주종의 입장을 적확하게 표현하고 있다.4)
두번째로는 이른바 ‘불립문자(不立文字)’가 ‘불이문자(不離文字)’로 되어버린 ‘문자선(文字禪)의 폐풍을 들 수 있다. 중국 학계에서는 兩宋 선종의 주된 흐름으로 이른바 ‘不立文字’에서 ‘不離文字’로 표현되는 ‘文字禪’을 그 특징으로 말하고, 그로부터 나타나는 폐해를 극복하고자 묵조선과 간화선이 나타났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다시 말하여 晩唐․五代, 北宋에 걸쳐서 語錄이 대량으로 출현하고, 또한 이른바 ‘公案’에 대하여 拈古․頌古․評唱․代別 등의 註釋이 대거 나타나게 됨으로써 점차 선의 수행은 일종의 주석학으로 빠져들게 된다. 특히 臨濟계통의 汾陽善昭(947~1024)의 『頌古百則』,『公案代別百則』,『詰問百則』등의 저작에서 ‘公案’해석에 대한 통일된 형식과 답안을 제시함으로서 이른바 ‘繞路說禪’의 방법이 유행하게 되었고, 그를 이어 수많은 선사들이 모두 頌古를 짓고 있으며, 최종적으로 大慧선사의 스승인 圓悟克勤 스님의 『碧岩錄』에 이르러 文字禪은 극성에 이르게 된다. 이에 따라 선의 수행은 모두 문자를 통한 文字禪의 방향으로 흐르게 되고, 점차 사대부 문인들의 언어적 유희로 전락하게 되어 그러한 폐해를 고치고자 묵조선과 간화선이 등장하였다는 것이다. 대혜선사가 바로 스승인 원오극근 선사의 『碧岩錄』을 모두 불살라 유포를 금지시킨 것은 바로 이런 문자선의 폐해를 없애기 위한 극단적인 방법이었다.5)
이런 무사선과 문자선의 폐풍을 고치고자 등장한 것이 묵조선이다. 김호귀는 묵조선의 입장을 “본래 自性淸淨佛이었기 때문에 진정으로 그에 걸맞는 좌선을 필요로 한다. 그리하여 좌선할 때는 반드시 깨침이 현현한다.”라는 명제로 설명한다. 간화선과 함께 비슷한 시기에 정립되고 있는 묵조선은 조동종 계열인 宏智正覺(1087~1157)에 의해 주창된 수행법이다. 정각이『묵조명(黙照銘)』에서 ‘묵묵히 일체의 언어를 끊고 좌선하면 불성의 영묘한 작용이 분명한 깨달음의 세계로 그대로 드러난다. 비출 때는 확연하여 텅 비어 있지만 그 불성의 본체는 영묘하게 작용하고 있다 … 깨달음의 세계는 묵묵히 좌선하는 그 곳에 있으며, 또한 방편인 좌선은 깨달음의 세계에 자취를 남기지 않는다’고 설하고 있듯이 본래 깨달음의 상태에 있고, 그것을 좌선이라는 방법을 통해 드러낸다는 내용이다. 곧 깨달음이란 새로운 것이 아니라 본래 깨달아 있는 것으로 묵묵히 좌선하게 되면 그대로 깨달음의 세계가 현현된다는 것이다.6) 이처럼 무사선의 폐해를 자성청정불을 확인하는 좌선이라는 實修를 통해서 극복하고자 등장한 것이 묵조선인 것이다.
셋째, 묵조선의 폐해를 들 수 있다. 본자청정을 좌선으로 확인하려는 묵조선의 입장을 대혜는 ‘묵조사선’이니 ‘아무 말 없이 흑산 아래 귀신굴에서 눈을 감고 앉아 있는 것’이니 하면서 신랄하게 공격하고 있다. 이것은 정작 투철한 깨달음에 이르지 못했는데도 식정의 분별로 본자청정이라 여기고 그 경지를 좌선으로 확인하려는 발상자체가 미혹에서 나온 분별망상일 뿐이라는 반성에서 나온 것이다.
대혜의 묵조선에 대한 공격은 묵묵히 좌선하는 坐의 형태 그 자체에 대한 비판이라기보다는 잘못 망상에 빠져 그것을 깨달음의 현성이라 간주하는 것에 대한 것이다. 이와 같은 결과를 초래한 것은 곧 話頭없이 바로 그 당체를 威音那畔의 일과 空劫已前의 마음자리로 대신하여 無事寂靜한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것 때문이다. 항상 어디서나 一行三昧와 一相三昧로 일관해야 할 치열한 구도심을 접어둔 채 현실을 무시한 안이한 모습의 부정이라 할 수 있다.
대혜 스님은 묵조사선의 병통을 치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공안을 참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 공안 참구의 중요성은 대혜가 일생을 두고 강조한 것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특히 조주의 무자화두에 있어서 더욱 그렇다. 대혜의 무자화두에 대한 주안점은 어디까지나 動靜一如한 입장에 근거한 것이었다. 이러한 입장은 곧 看話的인 성격에 대한 이전부터의 관점을 계승이라 할 수 있다. 대혜에게 있어서 간화적인 것이라는 것은 일상생활 속의 언제 어디서나 무자화두에 대한 일념의 지속을 의미하고 있다. 그런데 바로 이 점이 대혜가 무자화두를 통하여 제시하는 간화선의 정신이기도 하다. 이처럼 대혜 스님은 바로 일상의 행위가 반야의 실천이 되는 화두공부를 주창하고 있다.7)
이처럼 간화선은 본래성불, 본자청정, 즉심시불 등의 명제에 함몰하여 번뇌의 때가 새까맣게 끼어있으면서도 깨달은 양 착각하여 날뛰는 악성적인 무사선과 미혹인지 깨달음인지 분간도 못하고 미혹한 상태에서 묵묵히 근본을 반조한다면서 앉아있는 묵조선과 불입문자를 표방하면서도 온갖 훈고학적 문자놀음을 일삼은 문자선을 극복하고 실참실구를 통해서 본자청정을 구현하려는 체계이다.
2-3. 어떻게 화두를 참구하는가
대혜스님의 가르침을 위시한 여러 선장들의 어록과 학자들의 견해를 종합해보면 화두 참구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화두에는 어떤 분별도 들어설 여지가 없어야한다. 그러므로 ‘잡을 수 있는 수단이 전혀 없다(沒巴鼻)’거나 ‘아무 맛도 없다(無滋味)’8)거나 ‘손잡이가 없는 쇠망치(無孔鐵鎚)’9)같다거나 하는 등의 비유는 이렇게 어떤 길로도 통하지 않는 화두의 본질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래서 화두를 공부하는 사람이 그 본질을 실현하게 되면 ‘마음으로 모색할 길이 끊어졌다(心路絶)’10)고 표현 하는 것이다.
둘째, 화두는 그자체가 예를 들면 ‘無’는 있느냐 없느냐 하는 등 논란거리가 아니라 이를 놓고 벌어지는 모든 분별과 논란을 잠재우기 위한 수단으로서 주요한 뜻을 가진다.(무자십절목 참조) 이처럼 조주의 화두를 참구한다고 하는 것은 화두 그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양귀비가 시녀 소옥이에게 시킬 일이 있어서 소옥아! 소옥아! 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 아닌 것과 같다. ‘無!’라거나 ‘어째서 무라했는고!’라고 화두를 드는 것은 의단이라는 지혜가 독로하게 하기 위한 방편이며 의단이 독로할 때 모든 사량분별이 끊어져 본래심에 계합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원오극근 스님은 ‘공안(화두)은 남의 집 대문을 두드리는 기왓조각(敲門瓦子)’이라고 하신 것이다. 本來心의 자기 집 대문에 화두라는 기왓조각으로 두드리고 깨달음으로 들어가 안은하게 앉아 安心立命의 삶을 가꾸는 것이 간화선 수행에서 공안을 참구하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셋째, 그러므로 언어에 의존하는 어떤 구절이나 그 한계를 넘어서 표현하는 방과 할까지 모두 사구이다. 그러므로 화두는 어떤 전제든 다 부정하는 ‘무전제의 수행’이라고 발제자는 표현하고 있다. ‘무전제’라는 말은 부처님께서 고구정녕히 설하신 ‘무아’와 같은 말이요 용수 스님의 공(空)을 뜻한다. 아울러 이것은 『금강경』과 최초기 부처님 말씀으로 세계의 모든 학자들이 동의하는『숫따니빠따』4장에서 말하는 일체 산냐(개념, 관념, 경계, 인식, 명칭)를 척파하라는 가르침과 일맥상통한다. 그래서 『금강경』은 선종의 소의경전으로 자리잡았고 한국불교의 대명사요 선종을 표방하는 조계종의 소의경전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정교한 이론을 들이대고 아무리 대신심을 가지고 대분지를 촉발해도 의정을 일으키지 못하면 그것은 간화가 아니다. 그래서 화두를 향해서 끊임없고 쉼없이 의정을 촉발할 것을 종장들은 고구정녕히 설하고 있다. 한 생각이 두 생각이 되기 전에 화두를 제기하여 의정을 일으키는 것이 간화선의 출발이다. 화두를 지속적으로 챙길때 때 의단이 독로한다. 이런 의정을 돈발하게 하는 것 이외에 간화선에 다른 방편은 없다. 화두는 개념적 사고나 특정한 인식 범주를 수단으로 하여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화두에는 어떤 분별도 들어설 여지가 없다.
은산철벽 앞에 선 것과 같이 어떻게 해 볼 수단도 전혀 없는 경계까지 가야 비로소 禪語로서의 화두가 그 효용을 발휘한다. 그래서 고봉스님은 “바로 이러할 때는 은산과 철벽을 마주한 것과 같아서 앞으로 나아가자니 문이 없고 물러서면 길을 잃어버리게 된다.(『禪要』)”고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진퇴가 모두 막힌 상황에서 궁구하도록 하는 것이 배촉관이다. 대혜가 “무소뿔로 만든 미끌미끌한 쥐틀에 들어가 거꾸로 뒤집혀서 나아가지도 돌아서지도 못하는 지경에 이른 쥐”(『書狀』「答張舍人狀」)라 한 비유도 마음이 더 이상 어떤 수단과 기량도 부릴 수 없는 은산철벽의 경지를 이른다. 이렇게 되어야 참으로 바른 의심 덩어리(의단)를 이룬 것이라고 한다. 이런 경지에 이르러 기연을 만나서 견성을 하게 되는 것이다.11)
2-4. 결론
간화선은 정통 남종선이 본자청정이므로 아무런 공용을 드릴 필요가 없다는 무사선과, 불립문자가 불리문자로 되어버린 문자선과, 깨닫지도 못했으면서 그것을 깨달음의 현성이라 간주하여 앉아서 묵묵히 좌선하는 묵조선의 폐풍을 극복하고자 대혜 스님이 주창한 수행법이다. 대혜 스님은 이렇게 무사선과 문자선과 묵조선의 폐풍을 화두나 공안이나 조사관 등으로 불리는 극칙처라는 관문을 세워 이를 통과하는 것으로써 극복한 것이다.
한편 화두는 화두 그 자체보다는 모든 분별과 논란을 잠재우기 위한 수단으로서 주요한 뜻을 가진다. 그러기 위해서는 의정을 일으켜야하며 이 의정이 타성일편이 되어 의단이 독로할 때 화두는 활구가 되는 것이다. 이런 화두 참구는 무전제의 수행이며 이것은 불교의 핵심인 무아와 합치하며 산냐의 척파를 가르치는 선종의 소의경전인『금강경』의 사상과도 일치한다.
출처 : 대한불교조계종 지장기도도량 오봉산 영선사
글쓴이 : 월공스님(천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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