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경-장산스님

[스크랩] 아승지품(阿僧紙品)

수선님 2018. 7. 29.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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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승지품(阿僧紙品) ▣

⊙ 합론

이 품을 간략히 네 가지 문을 세우려 하니 일(一)은 품의 뜻을 해석함이요. 이(二)는 능히 질문한 주체를 해석함이요, 삼(三)은 설법의 주(主)를 해석함이요, 사(四)는 문(文)을 따라 그 뜻을 해석함이라. 일체 제불의 베푼 바 인과교행방편(因果敎行方便)으로 과(果)와 행(行)이 서로 자양(慈養)하여 시종(始終)이 끊어짐이 아니니라.

저 인왕경(仁王經)에 일념(一念) 가운데 90찰나가 있거늘 일찰나(一刹那) 가운데 900생멸을 갖고 있다 하였다. 삼세 부처님의 불과(佛果)와 보현 보살의 방편의 행이 총히 때가 옮기지 않는 고로 다만 찰나로 안립(安立)할새 다시 장단(長短)이 없은지라.

이로부터 여래불현품까지 불과 가운데 삼업이 광대자재한 행문(行門)을 밝힘이니 또 이와 같은 아승지 일품(一品)은 여래의 심업(心業)이 광대하고 자재함을 밝힘이요. 이(二)는 여래수량품의 여래의 명(命)이 광대자재함을 밝힘이요, 삼(三)은 보살주처품(菩薩住處品)은 여래의 행이 중생을 섭(攝)함이 광대하여 상주(常住) 자재(自在)함을 밝힘이요, 사(四)는 불부사의법품(佛不思義法品)은 부처님의 삼업신덕(三業身德)이 광대자재함을 탄(歎)함을 밝힘이요, 오(五)는 여래십신상해품(如來十身相海品)은 부처님의 신업(身業)의 장엄이 광대 무변함을 밝힘이라. 육(六)은 여래수호광명공덕품(如來隨好光明功德品)은 부처님의 삼업이 따르는 바 법신이 감응(感應)한 바 공덕이 광대 자재함을 밝힘이니, 영락경(瓔絡經)에 의하건대 저 삼선천에 부처님의 삼매를 설함이 백만억 송이 있으나 곧 이는 이 보현행품이 그 대략(大略)이다. 제 칠회(七會)에 해당하나니 합당히 불화삼매(佛華三昧)라. 칠(七)은 보현행품은 부처님의 삼업의 과행(果行)이 편주(遍周)하여 광대자재함을 밝힘이라.

여래출현품은 부처님의 깨달은 행이 두루하지 못한 곳이 없어서 일체 세간에 때를 맞춰서 나투지 못함이 없느니라. 고로 광대자재함을 밝힘이라. 부처님의 덕과 행의 삼업공용이 장엄하며 광대자재함을 찬탄함을 쓴 연고로 이 품이 옴이라.

1. 심왕 보살이 부처님께 아승지를 여쭈다.

경문 "세존이시여, 여러 부처님께서 아승지이고, 한량이 없고, 그지없고, 같을 이 없고, 일컬을 수 없고, 생각할 수 없고, 헤아릴 수 없고,

말할 수 없고,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음을 연설하시나이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이 아승지라 하오며, 내지 말할 수 없다 하시나이까."

2. 부처님께서 찬탄하고 말씀하시다.

부처님께서 심왕 보살에게 말씀하시었다.

"선남자여, 착하도다. 그대가 지금 여러 세간 사람들로 하여금 내가 아는 수량의 뜻을 알게 하기 위하여 여래, 응공, 정등각에게 묻는구나. 선남자여,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여라."

3. 능히 헤아릴 수 있는 숫자의 넓고 많음을 밝히리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선남자여, 일백 락차가 한 구지요, 구지 곱 구지가 한 아유타요, 아유타곱 아유타가 한 나유타요, 나유타 곱 나유타가 한 빈바라요, 빈바라 곱 빈바라가 한 긍갈라요, 긍갈라 곱 긍갈라가 한 아가라요, 아가라 곱 아가라가 한 최승(最勝)이요, 최승 곱 최승이 한 마바라요, 마바라 곱 마바라가 한 아바라요, 아바라 곱 아바라가 한 다바라요, 다바라 곱 다바라가 한 계분(界分)이요, 계분 곱 계분이 한 보마요, 보마곱 보마가 한 네마요, 네마곱 네마가 한 아바검이요, 아바검 곱 아바검이 한 미가바요, 미가바 곱 미가바가 한 비라가요, 비라가 곱 비라가가 한 비가바요, 비가바 곱 비가바가 한 승갈라마요, 승갈라마 곱 승갈라마가 한 비살라요, 비살라곱 비살라가 한 비섬바요, 비섬바 곱 비섬바가 한 비성가요, 비성가 곱 비성가가 한 비소타요, 비소타 곱 비소타가 한 비바하니라. 또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것이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제곱이니라."

☞ 해설

여기에 재미있는 수식이 계속하여 나옵니다. 무슨 무슨 '곱' 뭐뭐 하여서 이렇게 나오는데 재미있는 말씀입니다. 말하자면 부처님 당시에 이미 곱셈이 나왔다는 뜻입니다. 곱셈도 무지무지한 곱셈인 셈입니다. 아마도 지금의 인공위성을 띄우는 컴퓨터라도 이 수를 세라면 다운될 것입니다.

여기에서 '아승지품'이니 아승지라는 말은 어디쯤 나타날까요. 아승지라는 말은 80번째에 나옵니다. 살펴보면, 청련화 청련화(靑蓮華 靑蓮華) 위일발두마(爲 一鉢頭摩)요, 발두마 발두마(鉢頭摩 鉢頭摩) 위 일승지(爲 一僧祗)요. 승지 승지(僧祗 僧祗) 위일취(爲一趣), 취취 위 일지 (趣, 趣 爲一至)요, 지 지(至, 至) 위 아승지(爲 阿僧祗 80번째임)요, 아승지 아승지 위 아승지전(爲 阿僧祗轉)이요, 아승지전 아승지전 위일무량(爲一無量)이요 이렇게 나옵니다. 백 번째는 일불가설불가설전(一不可說不可說轉)입니다. 경전에 자주 등장하는 불가설 불가설(不可說 不可說)은 아흔일곱번째 있으며, 한 번 불가설(一不可說)은 아흔 여섯 번째입니다. 고로 불 난사의(佛 難思議)라 합니다.

아승지라는 수로 봐서 아승지는 언어로는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수의 세계이며 그런 까닭으로 아승지라는 세월은 정말로 지구가 한 백 조쯤 생겨났다가 없어지는 그런 시간대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의 곱에 곱이 될 지도 모릅니다.

락차(洛叉)는 범어로 Laksa로 1락차는 100분지 1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1락차는 십만이라 하고 또는 1억이라고도 합니다. 여기에서 1락차는 십만이라 하고 또는 1억이라고도 합니다. 여기에서 1락차를 1이라고 하여도 80번째의 수가 됩니다. 그것도 모두 곱을 한 곱수이니 그 수는 말 그대로 불가설입니다. - 가설(假設) : 100락차는 1구지 / 1락차는 100,000이므로 100,000 곱 100은 10,000,000 그러므로 1구지는 천만/ 구지 곱 구지는 10,000,000 곱 10,000,000입니다.

5. 보현의 공덕 이루 헤아릴 수 없네

이 때 부처님께서 심왕 보살에게 게송으로 말씀하시다

경문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것이

말 못할 온갖 곳에 가득 찼으니

말할 수 없는 온갖 겁 가운데서

말할 수 없이 말 다할 수 없음이로다.

말로 다할 수 없는 모든 부처님 세계

다 부수어 티끌 만들어도

한 티끌 가운데 세계 말할 수 없으니

하나처럼 다 그러하니라.

이 말할 수 없는 모든 세계를

찰나간에 부수어도 말할 수 없거든

찰나 찰라간에 부수고 부수어도 또 그러해

다 말 못하니 겁은 그러하니라.

이러한 티끌로써 겁을 세는데

한 티끌에 십만의 불가설이어든

그렇게 많은 겁 동안 칭찬을 해도

보현의 공덕 이루 말 못하네.

의보(依報) 가운데 정보(正報)가 설법함을 나타내다

광명 속에 있는 부처 말할 수 없고

부처님 설한 법문 말할 수 없고

법문 속에 묘한 법문 말할 수 없고

게송 듣고 생긴 지혜 말할 수 없네.

말할 수 없이 지혜로운 생각 가운데

분명한 참된 이치 말할 수 없고

오는 세상 나타나실 여러 부처님

법문 연설 끝없음을 말할 수 없네.

모든 부처님 법문 말할 수 없고

가지가지 청정함도 말할 수 없고

미묘한 음성으로 설법함 말할 수 없고

미묘한 불법 전함도 말할 수 없네.

여러 국토 다니심을 말할 수 없고

중생을 보살핌도 말할 수 없고

중생을 청정게 함도 말할 수 없고

중생을 조복함도 말할 수 없네.

부처님 갖고 있는 신통을 말할 수 없고

갖고 있는 경계도 말할 수 없고

갖고 있는 힘도 말할 수 없고

세간에 머무심도 말할 수 없네.

몸의 업 청정함도 말할 수 없고

말하는 업 청정함도 말할 수 없고

마음의 업 청정함도 말할 수 없고

믿는 지혜 청정함도 말할 수 없네.

훌륭하고 묘한 행을 말할 수 없고

한량없는 큰 서원을 말할 수 없고

청정한 큰 서원을 말할 수 없고

보리의 성취함도 말할 수 없네.

한량없는 몸과 국토가 행을 일으키는 곳

한 터럭 끝에 작고 큰 세계

물들고 깨끗하고 크고 작은 세계

말할 수 없는 세계 여러 세계

낱낱 분명히 분별하리라.

한 세계 부수어 만든 티끌들

그 티끌 항량없고 말할 수 없어

이러한 티끌 수 끝없는 세계

모두 한 티끌 끝에 모이었도다.

들어갈 때 겁의 수효 말할 수 없고

받을 때 겁의 수효 말할 수 없어

여기서 줄을 지어 머물 적에

일체 모든 겁들이 말할 수 없네.

♧ 부처님도 공양을 나누시었다.

어느 날 부처님이 길을 걸으셨습니다. 이 때 길을 걷던 한 행렬이 있었는데, 그들 중에 부처님을 알아본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들 중 한 사람이 부처님 앞에 나와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부처님이시여, 대단히 죄송합니다. 저는 요즘 장사가 잘 안 되어 부처님께 올릴 공양이 없습니다. 부디 용서하십시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괜찮소, 선비야말로 마음씨가 고우니, 나는 이미 공양을 받은 것과 같습니다. 조금도 염려하지 마십시오."

마침 부처님은 탁발을 하고 돌아오시던 길이었습니다.

"내가 그대에게 공양을 나누어 드리리다. 보아하니 그대는 지금 배가 많이 고픈 것 같습니다."

부처님은 그 사람에게 공양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함게 길을 걷던 부처님 제자들도 그들 일행에게 공양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 톨스토이의 미안함

어느 날 대철학자 톨스토이가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하면서 길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앞에 거지가 나타났습니다.

"선생님! 저에게 적선을 하십시오."

톨스토이는 호주머니를 뒤졌습니다. 그런데 새옷을 갈아 입고 오느라고 미처 주머니에 돈을 넣어둔 것이 없었습니다. 톨스토이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형제여, 내가 지금 주머니에 가진 것이 한푼도 없군요. 다음에 주겠소."

그 때 이 거지는 환하게 웃는 얼굴로,

"선생님 괜찮습니다. 저는 오늘 크나 큰 것을 얻었습니다."

그때 톨스토이는 생각했습니다. '나는 준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거지가 다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오늘 행복하게도 '형제'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선생님한테서 형제라는 말을 들으니 오늘은 아침을 먹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그러면서 그 거지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신은 아마도 저 훌륭한 톨스토이 같군요!"

이 때 톨스토이가 물었습니다. "톨스토이가 그렇게도 훌륭합니까?"

거지는 톨스토이의 물음에

"저는 한 번도 만나 본적은 없지만 그분은 아주 훌륭한 분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라고 말하였답니다. 훌륭한 사람이라는 것은 저 하층인들에게서 들어야 합니다. 지배계층은 항상 사람 위에 군림하려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항상 사람들을 깔보려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을 깔보는 습관은 곧 자신을 망치고 또는 사회를 병들게 하는 요인이 됩니다. 이 거지는 형제라는 말을 톨스토이한테 듣고 그렇게 기뻐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들도 지위가 높은 사람들에게서 칭찬을 들으면 좋아합니다. 말 한마디가 이처럼 굶주린 배를 잊을 정도로 기분 좋게 만드는 것입니다.

♧ 꿈이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어느날 보니 어떤 집에 불이 났습니다. 집과 가재 도구는 모두 불에 날려 갔습니다. 잿더미 위에 앉은 것입니다. 이웃 사람들이 찾아와서 그들을 위로하였습니다.

"참으로 안 되었습니다. 이렇게 불이 나다니 모든 것을 잃었군요."

그러자 집주인은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괜찮습니다. 모든 것이 다 타버렸어도 그래도 우리 가족과 행복은 남아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항상 돈 때문에 걱정이 많지만 그들은 미래를 그리는 꿈이 있습니다. 행복은 미래를 그리는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우리 가게에 얼마나 많은 손님이 왔었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집에 찾아온 손님을 얼마만큼 단골로 만들었는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단골은 그냥 단골이 되는 것이 아니라 친절을 베풀어야 단골이 됩니다. 개인적으로 작은 가게에서부터 큰 회사에 이르도록 모두가 이와 같이 친절을 베풀어야 합니다. 인간이 사는 사회는 인간이 좌우합니다. 나의 꿈을 이웃에게 전해줄 수 있는 사람은 정말로 행복을 아는 사람입니다.

화엄경백일법문(華嚴經百日法門) -장산 저- 불광출판부 1999

출처 : 대불법회
글쓴이 : 장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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