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경-장산스님

[스크랩] 보살주처품(菩薩住處品)

수선님 2018. 8. 5.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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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살주처품(菩薩住處品) ▣

⊙ 합론

대집경(大集經) 가운데 부처님이 장차 열반에 드실새 모든 보살을 위촉하여 대천(大千)을 분위(分衛)할새 이 땅은 독룡이 많아서 해가 되고 사람이 많이 대승을 사랑하는 까닭으로 묘길상 보살로 여기에 처해서 화현하여 그 보살행을 하게 하였다. 화현한 보살은 이르지 못하는 곳이 없으며, 항상 중생을 위하여 변재로 설법하나니 그는 부처님의 가피라. 고로 보살이 주할 처소라 하였다. 문수반니원경(文殊般泥洹經)에 "만일 다만 이 이름을 듣는 자는 12억겁 생사의 죄를 제하고 만일 예배하는 자는 늘 불가에 나고, 만일 이름을 1일이나 7일 동안을 부르면 문수가 반드시 강림하거니와 만일 숙세의 업장이 있으면 꿈 가운데에는 반드시 볼 것이니, 형상을 볼 것 같으면 이 사람은 위(位)가 성과(聖果)에 들어서 응화함이 넓어서 그 이름이 모든 곳에 이른다" 하였다.

소(疎) 육(六)은 금강산(金剛山)이니 이르되 동해(東海) 근동(近東)에 산이 있으니 이름이 금강이 되는 연고로 비록 전체가 금은 아니나 상하 사주(四周)와 내지 산간유수(山間流水)의 모래 가운데 금이 있을새 멀리 보면 이것은 산이 전체가 금이 있음일새라. 또 해동인(海東人)이 자고로 서로 전하기를 금강의 북산에 성인이 자주 출현함이라. 진본(晉本)엔 이곳은 제 9에 해당하니 제 염장엄굴로 더불어 바다 가운데에 있는 금강이요, 하나의 이름은 담무갈(曇無竭)이라. 일만이천 보살이 있다고 하였다.

경문 저 때에 심왕 보살 마하살이 모인 가운데 모든 보살에게 말씀하시되, "불자야, 동방에 처소가 있으니 이름이 선인산(仙人山)이라. 이로부터 모든 보살 대중이 그 가운데 주(住)하거니와 현재에 보살이 있으니 이름이 금강승(金剛勝)이라. 그 권속인 제보살 300인으로 더불어 함께하여 그 가운데서 법을 연설하니라."

1. 그 때 심왕 보살 마하살이 대중 가운데 여러 보살에게 말을 하였다

" 불자여, 동방에 선인산(仙人山)이 있으니 옛적부터 보살들이 거기 있었으며 지금은 금강승 보살이 그의 권속 삼백 보살과 함께 그 가운데에 있으면서 법을 설하느니라.

남방에는 승봉산(勝峰山)이 있으니 옛적부터 보살들이 그의 권속 오백 보살과 함께 그 가운데에 있으면서 법을 연설하였느니라. 사방엔 금강염산이 있으니 옛적부터 여러 보살들이 거기에 있었으며, 지금은 정진무애행(精進無碍行) 보살이 그의 권속 삼백 보살과 함께 그 가운데에 함께 있으면서 법을 연설하느니라. 북방에는 향적산이 있으니 옛적부터 보살들이 그의 권속 삼천 보살과 함께 그 가운데에 있으면서 법을 연설하였느니라. 동북방에 청량산이 있으니 옛적부터 보살들이 거기에 있으며 지금은 문수사리 보살이 그의 권속 일만 보살과 함께 그 가운데 있으면서 법을 연설하느니라. 바다 가운데에 금강산이 있으니 옛적부터 보살들이 거기 있으며 지금은 법기(法起)보살이 그의 권속 일천이백과 함께 있는 가운데 법을 연설하느니라."

2. 성과 읍의 열두 곳을 밝히다

"비사리 남쪽에 한 처소가 있으니 이름이 선주근본(善住根本)인데 옛적부터 보살들이 거기 있었느니라.

마도라 성에 한 처소가 있으니 이름이 만족굴인데 옛적부터 보살들이 거기 있었느니라.

구나진 성에 한 처소가 있으니 이름이 법 자리(法座)인데 옛적부터 보살들이 거기에 있었느니라.

깨끗한 성에 한 처소가 있으니 이름이 목진린다 굴인데 옛적부터 보살들이 거기 있었느니라.

마란다 국에 한 처소가 있으니 이름이 무애인데 용왕이 세운 것으로 옛적부터 보살들이 거기 있었느니라.

소륵국에 한 처소가 있으니 이름이 우두산인데 옛적부터 보살들이 거기에 있었느니라.

감보자국에 한 처소가 있으니 이름이 인자함을 냄인데 옛적부터 보살들이 거기 있었느니라.

진단국에 한 처소가 있으니 이름이 나라연 굴인데 옛적부터 보살들이 거기에 있었느니라.

가섭미라 국에 한 처소가 있었으니 이름이 차제(次第)인데 옛적부터 보살들이 거기에 있었느니라.

증장환희(增長歡喜)성에 한 처소가 있으니 이름이 존자굴인데 보살들이 거기에 있었느니라.

암부리마 국에 한 처소가 있으니 이름이 억장광명인데 옛적부터 보살들이 거기 있었느니라.

건달라 국에 한 처소가 있으니 이름이 점파라 굴인데 옛적부터 보살들이 거기 있었느니라."

♧ 죄란 무엇인가.

불교에서는 죄를 어떻게 바라볼까요. 죄는 무명(無明)으로 인하여 미혹(迷惑)하여진 마음이 미혹(迷惑)을 따라 짓는 것이 죄라 하였습니다.

죄라는 글자는 그물(網, 罔 同) 밑에 아닐 비(非)한 글자입니다. 죄자(罪字)의 위의 넉사 (四)는 그물 망자(字)입니다. 그러므로 옛날에는 그물이라고 쓰기도 하고, 이 죄자도 썼던 것 같습니다. 죄수를 포망(抱網)한다고도 합니다. 죄망(罪網)은 곧 그물을 나타낸 것으로서 어부들이 고기를 잡아서 싸가지고 오는 모양에서 생각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죄인을 포망하듯이'라는 말에서도 나타납니다.

이러한 죄를 보는 눈이 사람에 따라선 각기 다르겠지만, 하여튼 죄란 무엇을 싼 그물 같은 것이라는 말입니다. 죄는 그러니까 나를 싸고 있는 허물입니다. 허물은 겉표면을 말함이니 그 허물을 벗고 나면 죄는 없어지는 것입니다. 원래 청정한 자성은 병들지 않습니다 . 사실 업이란 것도 알고 보면 다 이 보자기처럼 생긴 허물(그물)이 나를 감싸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일을 주가 할까요? 그것은 자신 이외에는 아무도 할 사람이 없습니다.

어떤 종교에서는 자신들의 신이 이 세상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도 만들고, 식물도 만들고, 무엇이든지 다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의문점이 있습니다. 왜 좀 더 잘 만들지 못하고 이렇게 불완전한 상태로 만들었느냐는 것이지요. 자신을 닮게 만들려면 그 심성까지도 그렇게 만들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혹시 만든이가 그 정도의 기술밖에 없는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보기도 하지만 실로는 창조주가 만든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세상은 인연의 소산'이라고 했습니다. 업의 소산으로 만들어지지 아니하면 안 되는 그런 세상이란 말입니다. 예컨대 자동차를 만들 수 있는 기술자에게 비행기를 만들라고 하면 그가 과연 만들 수 있을까요. 아무리 잘 만든다 해도 그는 자동차밖에는 못 만듭니다. 부처님은 이 세상이 돌아가는 일체의 운행의 이치를 아시고, 그것을 우리들에게 가르칩니다. 신이 있어서 사람을 만들기까지 한다면 이왕이면 모든 것을 다 해줄 것이지 왜 만들기만 했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주 오랜 옛날 그러니까 수백 만 년 전 인간은 참으로 볼품이 없었습니다. 다른 동물과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 그런 상태였을 텐데도 신이 그 정도밖에 못 만든다면 그 신은 차라리 없어지는 것이 낫습니다.

부처님은 "네가 바로 마치 백만장자와 같다. 네게 이미 다 갖추어져 있다."고 하시었습니다. 네가 스스로 밥을 떠먹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밥까지 먹여 준다면 그것은 병든 환자와 같습니다. 지금의 사람은 병든 환자입니다. 죄라는 그물에 씌여 앞을 보지 못하는 병든 환자입니다. 나에게서 만약 스스로 그 그물을 벗어던질 수 있다면 그는 포망에서 벗어나 병을 치유합니다. 죄라는 것은 마치 저 표피와 같아서 벗어 던질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지 볼 수가 있습니다. 죄라는 포위망을 뚫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에게서 병은 사라집니다.

종교는 절이나 교회에 가서 기도를 하는 것이 종교가 아닙니다. 종교는 내가 몰랐던 사실을 깨닫고 지금까지 생활했던 것을 새롭게 바꾸자는 의지가 숨어 있는 것이 종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절에 왔다가 돌아가서는 완전히 다른 생활을 하고 삽니다. 내가 바로 실상생명을 안고 사는 존재라는 것을 잊어 버리고 살고 있으니, 나를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밝은 얼굴을 잃지 않고 살면 이웃까지 좋아합니다.

♧ 보살은 누구인가?

(1) 나는 광명신이요, 나는 생명신이다. 고로 생명이 아닌 그 어떤 것도 나는 물리친다. 그리고 나는 광명신인 고로 어둠이라는 자체가 없음을 안다. 그러므로 광명이 아닌 그 어떤 것도 다 물리친다.

(2) 나는 관세음이요, 보현의 마음이다. 그러므로 나는 언제나 관세음 보살처럼 자비스럽고, 보현 보살처럼 실천하는 실천자이다.

(3)나는 부처님의 자손이요, 나는 광음천에서 왔다.

이상과 같이 나를 새롭게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를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원래 광음천에서 자재한 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자신을 모르고 살았기 때문에 오늘날 이곳 지구의 한 귀퉁이로 떨어져서 살게 된 것입니다.

나를 알면 모든 것이 즐거울 수가 있습니다. 나를 모르고 산다면 그것은 마치 암흑과도 같은 것입니다. 유쾌하게 살 수 있는 길이 있는데도 잘못 살고 있는 것입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웃음을 보냅시다. 웃음은 미래의 나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슬픔은 마치 전염병과 같아서 남에게 전염되며, 나의 악심도 마치 전염병과 같아서 남에게 전염됩니다. 남에게 전염될뿐만 아니라 그 병균은 나의 가정을 파괴하기도 합니다. 그러한 위력이 있는 것처럼 나의 웃음은 나의 가정을 행복하게 만듭니다.

나에게 행복을 몰고 오는 공덕녀(功德女)가 있는 것처럼 나에게 불행을 안겨주는 흑암녀(黑暗女)도 있습니다. 그러나 공덕녀가 동색이라는 흑암녀를 떼어놓고 다닐 수 없듯이 공덕과 흑암은 항상 내 곁에 있습니다. 성심(誠心)은 공덕녀이고, 악심(惡心)은 흑암녀입니다. 악심을 버리면 공덕이 남게 되고, 성심을 버리면 흑암이 남습니다. 내일은 어두운 것이 아니라 밝은 태양이 떠오르는 아침입니다. 오늘이 만약 어려웠던 하루라면, 내일은 쉬운 하루도 될 수가 있습니다. 그것이 이 세상의 조화입니다.

화엄경백일법문(華嚴經百日法門) -장산 저- 불광출판부 1999

출처 : 대불법회
글쓴이 : 장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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