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경-장산스님

[스크랩] 십인품(十忍品)

수선님 2018. 7. 29.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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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인품(十忍品) ▣

⊙ 합론

이 품에서는 간략히 삼문(三門)을 나누리니 일(一)은 품의 명목(名目)을 해석함이요, 이(二)는 품의 뜻을 해석함이요, 삼(三)은 글을 따라 해석함입니다.

통불과후(通佛果後)에 중생을 이롭게 해서 행(行)을 성취하는 방편일새 수행(隨行)의 인(忍)으로써 행을 의지해 이름을 세워 밝힘이니 만을 권교(權敎) 보살로서 할진대는 십지 전엔 복인(伏忍)이 되고 지상(地上)에서 도(道)를 보아서 순무생인(順無生忍)에 들어가서 십주초심(十住初心)을 통하여 모든 부처님의 지혜광명의 문을 얻을새 이른바 부처님의 불지혜광명의 집에 남이요, 총히 일법(一法) 수행을 지을새 이름이 장양(長養)하여 습관을 이루게 하니 초지(初地)는 지전(地前)에 십주, 십행, 십회향의 대원원만발심(大願圓滿發心)을 의지하여 늘 생사에 처해 중생을 수호하는 뜻을 일으킴일새 이런 까닭으로 순인(順忍)이라 하고 팔지(八地)에 이르러서 비로소 무생인(無生忍)이라 이름하느니라.

*신화엄경 합론. 권 제72, 통권 14, 102, 103p

1. 수승함을 찬탄하고 이름을 열거하다.

경문 그 때 보현 보살이 여러 보살에게 말하였다.

"불자여, 보살 마하살에게 열 가지의 인(忍)이 있으니 만일 이 인을 얻으면 곧 일체 보살이 걸림없는 인에 이르러 온갖 불법에 장애가 없고 다함이 없느니라."

2. 무생법인(無生法忍:맑고 깨끗한 지혜의 바다)

"불자여, 어떤 것을 보살 마하살의 생사 없는 지혜의 인(忍)이라 하는가.

불자여, 이 보살 마하살이 조그만 법이 나는 것도 보지 않고 조그만 법이 사라지는 것도 보지 않음이라. 무슨 까닭인가. 나지 않으면 사라지지 않고, 사라짐이 없으면 다함이 없고, 다함이 없으면 때를 여의고, 때를 여의면 차별이 없고, 차별이 없으면 처소가 없고, 처소가 없으면 고요하고 지을 것이 없으며, 소원이 없으면 머물 것이 없고, 머물 것이 없으면 가고 옴이 없음이니 이것을 보살의 생사 없는 지혜의 인(忍)이라 하느니라."

3. 여몽인(如夢忍:세상은 마치 꿈과 같다)

"불자여, 어떤 것을 보살 마하살의 꿈과 같은 인(忍)이라 하는가. 불자여, 보살 마하살이 일체 세간의 여윔도 아니며, 욕심세계도 아니며, 형상세계도 아니고 무형세계도 아니며, 나는 것도 아니며 없어지는 것도 아니며, 물든 것도 아니며 깨끄ㅅ한 것도 아니지만 나타내 보임이 있느니라. 꿈이 생각으로 분별하게 함과 같으며 꿈을 깨었을 때와 같은 까닭이니 이것이 보살 마하살의 꿈 같은 인(忍)이니라."

4. 여화인(如化忍: 일체가 허깨비와 같다)

"불자여, 어떤 것을 보살 마하살의 허깨비와 같은 인(忍)이라 하는가. 불자여, 이 보살 마하살은 온갖 세간의 모두가 허깨비 같음을 아나니 이른바 일체 중생의 뜻으로 짓는 업이 허깨비며, 감각하는 생각으로 생긴 것이며, 세간의 행이 허깨비니 분별로 생긴 것이며, 모든 괴로움과 즐거움이 뒤바뀐 것이니 허망한 고집으로 생긴 것이며, 일체 세간의 진실치 아니한 법이니 말로 나타난 것이며, 일체 번뇌가 허깨비니 생각으로 나타난 것이니라."

☞ 해설

무엇을 꿈과 같은 인(忍)이라 하고 무엇을 허깨비 같은 인(忍)이라 하는가. '인'이라 하는 것은 법인(法忍)이니 진리의 인증(忍證)이라 무엇을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마치 온 세상은 일체가 있는 것 같지만 실은 허망한 존재라는 것, 이 세계가 욕심의 세계도 꿈과 같은 세계도 아니라는 것. 그러므로 보살이라면 조금이라도 깨달음이 있는 자라면 이 세계가 꿈의 세계요. 허깨비와 같은 줄을 알라, 그리하면 잘 살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5. 인(忍)을 성취하면 공덕이 된다.

경문 "보살 마하살이 이 인을 성취하면 옴이 없는 몸을 얻나니 가는 일이 없는 까닭이며, 남이 없는 몸을 얻나니 사라짐이 없는 까닭이며, 동하지 않는 몸을 얻나니 깨뜨릴 수 없는 까닭이며, 실제 아닌 몸을 얻나니 허망을 여읜 까닭이며, 한 모양의 몸을 얻나니 모양이 없는 까닭이며, 차별없는 몸을 얻나니 이 세상을 평등하게 보는 까닭이며, 허공처럼 끝이 없는 몸을 얻나니 복덕과 광명이 그지 없는 까닭이며, 끊임없고 다함없는 법의 성품이 평등한 변재의 몸을 얻나니 모든 법의 모양이 오직 한 모양이어서, 성품이 없으므로 성품을 삼아 허공과 같음을 아는 까닭이며, 모든 세계에 한량 없는 부처님 세계를 나타내는 몸을 얻나니 허공처럼 그지 없는 까닭이며, 일체 세간의 세계에서 유지하는 힘의 몸을 얻나니 지혜의 힘이 허공과 같은 까닭이라 불자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인(忍)이라 하느니라."

6. 게송을 그 뜻을 거듭 펴다

이 때에 보현 보살 마하살이 그 뜻을 다시 펴려고 게송으로 말하였다.

세간의 어떤 사람은

부처님 보배광명을 알고

찾을 수 있다고 하여

즐거운 마음을 내네.

큰 복을 받는 사람은

황금 항아리를 얻는 것처럼

을 꾸미는 데 필요한

장엄을 하듯이

보살도 그러하여

깊은 법에 들어가

생각하고 지혜를 늘려서

수순하는 법을 닦나니

제각기 다른 여러 가지 밥이

시방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그들의 닦은 업으로

저절로 그릇에 담기나니

보살들도 그와 같아서

온갖 법을 살피건대

인연으로 생기는 것이니

나지 않으매 사라지지 않으리.

♧ 탐미주의와 심미주의

인간은 오관으로 느끼는 아름다움에 항상 매료되곤 합니다. 오관으로 가장 민감할 때가 바로 젊은 시절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색채의 현란함, 율동의 현란함, 선율의 현란함, 감촉의 현란함에 들떠서 그것을 탐하게 됩니다. 19세기 영국의 탐미주의 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그야말로 탐미의 제일가는 작가로 칩니다. 그의 작품은 대단히 선정적이고 탐미적이며, 현란하기까지 합니다. 한때는 그의 소설이 제일가는 탐미소설이라고 누구라도 찬양을 하였습니다. 현란함과 탐정소설 같은 흥미와 미를 바라보는 것이 기괴, 요염, 선정, 아름다움, 빼어남 이런 것들입니다.

예전에 일본 작가가 쓴 금각사(金閣寺)라는 소설을 읽은 적이 있는데 이 소설은 조금 다릅니다. 이 소설은 탐미가 아니라 심미주의 작품입니다. 앞의 작가가 쓴 글이 탐미라면 뒤의 작가는 심미입니다. 나는 요즘 나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현란함에는 흥미가 없습니다. 현란함에 금세 싫증이 나게 되거든요. 그림이든 글씨든 수석이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들에서 오는 현란한 색채라든지, 음률의 세계에 빠진다든지 하는 것에는 감탄하지 않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즐기는 노래나 팝송 등은 전혀 무엇이 무엇인지를 모릅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것이 제일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노랫말도 무슨 말인지 나는 통역을 해줘도 모를 소리를 합니다. 다분히 감각적이고, 투쟁적이며, 흥미적이고, 오락적입니다. 그러면서도 파괴적인 언어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아이들은 그것이 좋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도 금방 싫증을 느낄 것입니다. 너무 현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즘 노래는 오래 못 가는 것입니다.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체가 아름다운 것은 현란하지 않고, 고결하며, 너무 빼어나지 않으면서도 품격을 갖춘 것이어서 언제 읽어도 좋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괴하며 현란한, 오관을 자극하는 그런 것은 생명이 없습니다. 겉의 모양입니다. 속이 비어 있습니다. 겉이 현란한 공작은 속의 살이 검으며 소리 또한 볼품이 없습니다. 꾀꼬리는 겉은 수더분한 모양을 하고 있지만 그 소리는 천하에 으뜸가는 아름다움을 갖고 있습니다. 소위 자연미라 하는 것은 자연의 색깔로 치장한 그윽한 맛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사랑을 받습니다.

사람에게서도 그러한 것을 느낍니다. 요즘 유행처럼 번지는 많은 댄스가수 들에게 아름다움이란 찾을 길이 없습니다. 그것이 나만의 생각인지는 모르나, 미국의 유명한 가수인 마이클 잭슨도 마찬가지입니다. 현란한 무대와 조명. 여자 옷인지 남자 옷인지를 분간할 수가 없고, 기괴한 말과 행동은 호기심을 유발하는 것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내용이 없는 것 같습니다. '내용이 없다'라는 것은 '생명력이 없다'라는 것입니다.

♧ 광명무한

광명이라 하여 지금 말씀 드리는 것은 눈으로 보이는 그런 빛을 말함이 아닙니다. 물질적 광선은 무한하지 않습니다. 만약 저 활활 타는 해도 어느날 그 불기운이 떨어지면 단박에 꺼져 이 세계는 암흑의 세계가 됩니다. 광명이라는 것은 지혜의 광명을 말합니다. 지혜는 번뇌라고 하는 어둠을 깨뜨리는 광명입니다.

나는 지금까지 한도 없이 광명을 말하였습니다. 모든 번뇌를 지워 버리는 무한한 빛은 무량광명이라고 합니다. 이 무량한 광명이 어디에서 올까요? 그것은 바로 지혜에서 옵니다. 부처님의 빛을 단순히 에텔파동빛이나 아니면 전자파와 같은 빛으로 보는 차원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아미타 부처님을 무량광여래(無量光如來)라 하는데에서 알 수가 있습니다. 즉 '내가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바로 미망이라고 하는 번뇌 때문입니다.

♧ 생명무한

불교에서 아미타 여래불을 무량수불이라고 부릅니다. 무량수불은 모든 부처님의 존재를 부르는 말이기도 합니다. 무량수불이란 그 생명이 무한이라는 것입니다. 생명무한, 생명은 무한한 것입니다. 설사 내가 생멸을 하는 육신을 갖고 있다손 치더라도 그것은 육신뿐입니다. 육신을 떠나 있을 생명. 진정한 의미의 생명은 육신이 아니라 곧 무한생명입니다. 여기에서 저는 '마음'이라는 말을 굳이 피하려고 합니다. 하도 많이 마음이라는 말을 썼기 때문에 그 마음도 이제는 하나의 움직이지 않는 명사로 굳어졌습니다. 마음도 아닌 '생명'이 내 안에 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알고 있으나 홀로 빛날 뿐 말하지 않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이르시기를, "나는 본래 구원 겁 전에 이미 홀로 깨달아 밝아 있었느니라." 여기에서 '깨달았다'는 말의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본래 밝아 있었는데 또 다시 '깨달았다' 한다면 그것은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가 있습니다. 중생들이 모르니 그와 같은 표현을 빌린 것에 불과합니다.

본래 깨달아 있는 '생명' 그는 분명 홀로 빛나는 별과 같은 존재입니다. 그는 절대 마음이 아닙니다. 중생에 있어서 마음은 항상 변덕스럽고, 욕심쟁이며, 어둡고, 미혹하고, 사랑분별 함이 부족하고, 지혜를 갖추지 못한 것이 마음입니다. 그러나 마음은 나의 안에 존재하는 '생명' 그는 마치 햇빛처럼 스스로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일러 '생명무한' 또는 '무한광명'이라 하는 것입니다.

♧ 자애무한(慈愛無限)

열반경에는 법애(法愛)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대비바사론(大毘婆沙論)』에 이르기를 사랑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첫째는 때가 묻은 사랑으로 사랑을 더럽히는 것으로 탐애가 있습니다. 탐애는 탐욕이라고 하였습니다. 물질만 구하는 것이 탐욕이 아니라 사랑을 구하는 것도 탐욕이라고 하였습니다. 또 하나는 때가 묻지 않은 사랑으로 자비(慈悲)라는 말을 씁니다. 또 일러 말하길 '믿음'이라 하였습니다. 즉 사랑으로써 탐내지 않는 것을 '믿음'이라고 본 것입니다.

'법애'는 곧 부처님을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부처님 같은 사랑을 말합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한다면 그것은 '대자대비'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자비는 무한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랑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를 생각한다면 그것은 타인과 자신과의 '일체'를 의미합니다. 둘이 아니라 하나가 된다는 것입니다. 타인과 자신이 둘인 듯 보이지만 실은 하나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그 사랑이라는 체(體)가 원래 하나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비는 사랑이요, 사랑은 자비이다. 자비는 부처님이시니 부처님은 생명이다" 이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생명은 사랑이라는 체(體)에 존재하므로 실상신(實相身)인 나는 생명으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사랑[慈悲]은 생명이라는 다른 말로도 표현할 수 있습니다.'라는 것입니다.

'생명의 집. 무엇이 생명의 집인가?' 이 몸이 바로 생명의 집입니다. 사랑의 집이며 생명의 집이고 대자대비의 집입니다. 그러므로 그 자체가 지혜를 머금은 '광명신(光明身)'입니다. '생명실상(生命實相)'이라는 말씀은 '광명실상'이라는 말하고도 같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몸을 '광명신'이라 하고 '실상신'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실로 욕심을 떠난 사랑은 바로 생명을 얻는 대자비로 화현합니다. 관세음 보살은 욕심을 떠난 보살이므로 대자대비를 성취한 분입니다. 만약 누구라도 욕심을 떠난 보살이 있다면, 그분은 바로 관세음보살과 같은 자비를 얻은 것입니다.

화엄경백일법문(華嚴經百日法門) -장산 저- 불광출판부 1999

출처 : 대불법회
글쓴이 : 장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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