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혜거스님 유식30송 > 제 2 강
제 1 송
由假說我法 有種種相轉
彼依識所變 此能變唯三
제 2 송
謂異熟思量 及了別境識
初阿賴耶識 異熟一切種
제 3 송
유식(唯識)이란 마음이다. 마음을 유식이라 한 것은 마음은 마음을 통칭한 것이고 유식은 갖가지 마음의 작용을 말한 것이다. 따라서 삼계는 오직 마음의 작용에 의해 존재한다 한 것이다. 유식은 이러한 마음의 작용을 설명한 사상으로서 마음을 겸손하게 하고 마음을 분발하게 하는 요문이라 하겠다.
제 3 송 - Ⅰ
不可知執受 處了常與觸
作意受想思 相應唯捨受
제8 아뢰야식은 그 작용을 알 수 없고 집수(執受)와 처(處)와 요(了)의 작용도 알 수 없다. 항상 촉(觸)과 작의(作意)와 수(受)와 상(想)과 사(思)로 더불어 상응하되 오직 사수(捨受)로만 한다.
이 송(頌)은 마음의 주체가 되는 제8 아뢰야식의 작용을 설명한 송(頌)이다.
제8 아뢰야식은 작용이 미세하고 광대하여 범부의 식견으로는 알 수 없기 때문에 가히 알 수 없다는 뜻으로 불가지(不可知)라 하였으며, 가히 알 수 없는 것은 집지(執持)하고 수용(受容)하는 자리와 그 종자인 집수(執受)의 공능(功能)이 불가지이며, 지니고 있는 마음자리와 수용할 수 있는 마음자리 처(處)도 또한 무한해서 불가지이며, 분별하고 요지(了知)하는 요(了)도 또한 불가지함을 말한 것이다. 8식은 심소(心所: 마음자리)가 다섯인데 이를 5변행심소(五行心所)라 한다. 5변행심소는 촉(觸)·작의(作意)·수(受)·상(想)·사(思)이며 이는 5수(五受: 苦·樂·憂·喜·捨) 중에서 오직 불고불락(不苦不樂)하는 사수(捨受)와 상응할 뿐이다.
8식을 장식(藏識) 또는 함장식(含藏識)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능장(能藏), 소장(所藏), 아수집장(我受執藏)의 3장(三藏)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능장(能藏)이란 8식 자신이 지니고 있는 신비가 무한함을 의미하고, 7식(七識)이 선악의 업인을 지은 것을 8식이 훈습하여 깊이 저장했다가 반드시 보응을 받기 때문에 이를 훈습종자라고도 한다. 훈습종자는 안에서 인(因)으로 있다가 바깥 연(緣)을 기다려 과(果)를 받는다. 이러한 인의 싹이 아직 과보를 받지 않은 것들이 무량무수로 존재하며 모두가 8식에 보장(保藏)되어 있다가 결코 하나도 누락됨이 없이 과보를 받는다. 이렇듯 종자를 보존하는 힘을 능장이라 한다.
소장(所藏)이란 7식이 선악인과를 지은 것이 8식에 잠장(潛藏)될 뿐 8식이 직접 업을 짓지 않기 때문에 소장이라 한다.
아수집장(我受執藏)은 집장(執藏)이라고도 하는 바 7식에 의해 훈습된 것을 8식이 지니고 있는 장식(藏識) 곧 지식·관념 등을 상주불변하는 나의 것으로 집착하여 아집(我執)·아견(我見)·아만(我慢) 등의 탐애(貪愛)를 일으킴을 말한 것으로 7식의 입장에서 집장 또는 아수집장이라 한다.
7식이 선악의 업인을 지어서 8식이 훈습하여 저장했다가 반드시 보응을 받게 하는 선악보응(善惡報應)의 인(因)에 대하여 성유식론(成唯識論)에서는 6가지 의미로 설명하고 있다.
① 찰나멸의(刹那滅義) : 멸이란 멸생(滅生)을 의미한다. 핵(核)이 멸하여 나무가 되듯이 전자(前者)가 멸하여 후자(後者)가 생한다. 따라서 사람이 전자의 인이 씨가 되어 태어나면서 씨인 전자의 8식은 멸하는 것이다.
② 과구유의(果俱有義) : 과구유(果俱有)는 전8식(前八識)의 핵이 이미 멸하고 새로 태어난 생명체에는 전8식의 원인이 하나도 소멸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어서 과구유라 한 것이다.
이와 같이 8식이 함장(含藏)하고 있는 업인이라 하더라도 모두 소멸하여 후세로 연결되지 않는 식이 있고, 하나도 소멸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는 식이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이 곧 악의 업인은 소멸하고 선의 업인은 남길 수 있는 길이며 이 길을 닦는 것을 수행이라 한다.
③ 항수전의(恒隨轉義) : 항수전(恒隨轉)은 전8식의 인이 현행(現行)의 과보를 다하면 다음의 다른 인을 세운다는 뜻이다.
④ 성결정의(性決定義) : 성결정(性決定)은 선인선과(善因善果)·악인악과(惡因惡果)가 결정적으로 변할 수 없음을 뜻한다.
⑤ 대중연의(待衆緣義) : 대중연(待衆緣)은 제8식의 종자가 인으로 있다 해도 이에 상응하는 연이 없으면 생할 수 없고 언제까지라도 연이 있을 때까지 기다린다는 것이다.
⑥ 인자과의(引自果義) : 인자과(引自果)는 8식 중 낱낱의 종자는 자신의 과보만을 인도(引導)하여 생하기 때문에 보시의 인은 부귀의 과를 받고 불살생의 인은 장수의 과를 받는다는 뜻이다.
이상의 8식의 작용은 다양함이 무궁하고 정밀함이 미묘해서 문물(文物)을 창조하고 세상을 주도하게 된다. 이렇듯 미세하고 광대한 8식 곧 마음자리를 맑고 깨끗하게 하기 위하여 유식을 설명하여 수행의 정문을 삼게 한 것이다.
8식의 무한한 작용은 7식에 의해 훈습되어 존재한다. 훈습에는 능훈(能熏)과 소훈(所熏)으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능훈(能熏)에 네 가지의 성질이 있으니 다음과 같다.
① 생멸성(生滅性) : 찰나 생멸하는 본체가 상주하여 영원하지 않으므로 전변(轉變)하는 작용에 의해서 선도 되고 악으로도 될 수 있기 때문에 지금의 심성(心性)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시킬 수 있다.
② 승용성(勝用性) : 승용성(勝用性)은 능훈(能熏)의 작용이니 7식의 작용을 인식하여 분별하고 연려(緣慮)함을 말한다.
③ 증감성(增感性) : 증감성(增感性)은 증진(增進)하고 감쇄(減殺)함을 말한 것으로 선이 증진되면 악이 감쇄되고 악이 증진되면 선이 감쇄됨을 말한다.
④ 화소훈성(和所熏性) : 화소훈(和所熏)은 능훈(能熏)의 7식과 소훈(所熏)의 8식이 화합하여 훈습되기 때문에 일컬어진 말이다.
7식을 능훈(能熏)이라 하고 8식을 소훈(所熏)이라 하는 것은 7식이 업인을 직접 만들기 때문이며 8식은 7식이 만든 업인을 소장하기 때문이다. 직접 업인을 짓는 7식의 능훈과 7식이 지은 업인을 소장하는 8식의 소훈이 각각 네 가지의 성질을 갖추고 있으니 다음과 같다.
① 견주성(堅住性) : 8식은 7식이 지은 업인을 소훈하되 처음부터 불변하고 부동하여 영구히 견주(堅住)하므로 7식의 훈습을 받아들일 수 있으므로 견주성이라 한다.
② 무기성(無記性) : 8식은 그 성질이 비선비악(非善非惡)이어서 7식의 각종 훈습을 받아들이므로 무기라 한다.
③ 가훈성(可熏性) ; 8식은 그 성품이 유연하여 견고하지 않기 때문에 7식이 지은 모든 훈습을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에 가훈성이라 한다.
④ 화능훈성(和能熏性) : 7식의 능훈성(能熏性)과 화합하여 7식이 지은 선악시비 등의 모든 업인을 훈습하여 지니므로 화능훈이라 한다.
제8 아뢰야식은 마음의 주체이며 능연(能緣)이며 경계를 요별(了別)할 수 있는 식(識)의 주처(住處)이다. 사람마다 식이 달라서 이해하는 것이 다르고 생각하는 것이 다르면서 추위와 더위 등을 같이 느끼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천지가 한 세계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천지로 더불어 공유하면서도 또한 개체가 분명하기 때문에 만물과 함께 공유공락(共有共樂)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각기의 세계를 이루는 불가사의한 묘력(妙力)을 지니는 것이다. 이렇게 미묘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아뢰야식은 소연(所緣)에 의해서만이 능연심(能緣心)을 낼 수 있어서 경계가 없다면 마음의 작용은 일어날 수가 없다. 아뢰야가 경계를 받아들여 집수(執受)하는 데는 두 가지 종류가 있으니,
① 모든 중생의 신체는 아뢰야가 투입(投入)되어야 생(生)이라 하며, 이를 생명의 시작이라 하고, 아뢰야가 떠날 때를 사(死)라 하며, 이것이 생명의 끝이다. 오로지 생명의 주체는 아뢰야 뿐이다.
② 아뢰야는 생명이 씨(種子)로서 본래부터 존재하는 종자와 새롭게 훈습해서 생기는 종자가 있고 그 종성(種性)의 변화 또한 무량해서 수를 헤아릴 수가 없다. 이와 같이 무량한 종자가 모두 아뢰야에 의해 훈습되고 아뢰야에 의해 보존되다가 때를 기다려 연(緣)이 구족되면 보응을 받게 된다.
모든 중생의 어리석음과 지혜, 선과 악의 종자가 아뢰야에 의해 구별 지어 지므로 아뢰야의 실성을 깨닫는 것이 인간의 최우선의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제 3 송 - Ⅱ
不可知執受 處了常與觸
作意受想思 相應唯捨受
전편에서 제8식의 정상(情狀)을 요약해서 설명했기 때문에 여기서는 송문(頌文)의 뜻을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불가지(不可知)라고 한 3자(三字)는 가히 알 수 없다는 뜻으로 8식이 지니고 있는 집수(執受)와 8식의 자리[處]와 요별[了]을 가히 알 수 없음을 의미한다.
집수(執受)라는 말은 지니고 수용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지니고 수용하는 것을 알 수 없다 한 것은 8식이 지니고 있는 무한한 능력과 8식이 받아들일 수 있는 그 한계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처(處)는 소처(所處)로서 마음자리를 말한다. 이 자리는 오묘하고 불가사의해서 그 실처를 범인은 알 수 없음을 뜻한다. 요(了)는 요별(了別)이니 곧 분별해서 아는 힘이다. 이 또한 극미하고 미세하며 광대하고 무변하여 일체만물의 장단호오(長短好惡)를 가려내는 능력으로서 역시 범인의 소견으로는 알 수가 없다. 따라서 불가지집수(不可知執受) 불가지처(不可知處) 불가지요(不可知了)의 뜻을 요약해서 불가지집수처요(不可知執受處了)라 한 것이다.
이를 다시 세분해서 한 단씩 설명하면 다음과 같이 이해할 수 있다.
불가지(不可知) : 가히 알 수 없다고 한 이 말은 집수(執受)와 처(處)와 요(了)를 알 수가 없다는 것이고 집수(執受)와 처(處)와 요(了)는 모두 8식의 경계[所緣境]와 움직임[行相]으로서 상응하여 인식하는 작용이다. 이러한 작용을 요달해서 알 수가 없기 때문에 불가지(不可知)라 말한 것이다.
집수(執受) : 지니(執)고 수용(受)한다는 뜻이다. 집수(執受)의 한계가 무한해서 이를 알 수 없는 8식은 마음의 주체이며 스스로 경계를 요별할 수 있는 능연(能緣)이라 한다. 8식의 능연인 집수(執受)가 있으므로 소연(所緣)의 경계를 인해서 마음이 생길 수가 있는 것이다. 이렇듯 불가사의해서 가히 알 수 없는 8식의 집수(執受) 능력은 8식이 스스로 지니고 있는 마음과 밖에서 반연해 오는 경계가 일치해서 마음의 작용이 일어나기 때문에 이를 집수(執受)라 한다.
처(處) : 불가지처(不可知處)인 처(處)는 아뢰야식이 작용하는 처소(處所)로서 안으로는 그 공능을 알 수가 없고, 밖으로는 산하대지(山河大地) 우주만유(宇宙萬有)가 8식의 소연처(所緣處)가 아님이 없다. 8식이 바깥 대상을 반연함에 각각 업에 따라 감수(感受)하는 것이 동이(同異)함이 있으니 이를 공업(共業)과 별업(別業)이라 한다.
요(了) : 불가지요(不可知了)인 요(了)는 요별(了別), 변별(辨別), 분별(分別) 등의 뜻으로 객관적인 정황을 분별하는 견분(見分)의 인식작용을 의미한다. 낱낱의 식(識)에는 보는 것[見分]과 보이는 것[相分]이 있어서 아뢰야도 역시 식(識)이므로 견분(見分)이 있고 요별(了別)이 작용이 있다. 아뢰야식은 잠재의식 또는 무의식에 속하기 때문에 움직임(行相)이 미세하여 이를 감지하지 못하는 범부는 선·악을 일으키는 육식(六識)으로 작용을 하므로 생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윤회를 반복하게 된다. 6식과 7식의 작용이 쉬어서 생사가 끊어진 자리가 아뢰야이므로 6식과 7식으로 마음을 쓰는 중생은 8식의 실처(實處)와 분별의 한계를 알 수 없기 때문에 불가지처요(不可知處了)라 한 것이다.
8식은 선·악에 물들지 않으므로 무부무기(無覆無記)라 하고 무부무기이기 때문에 업혹을 일으키지 않고 오직 5변행심소(五遍行心所)만이 상응한다. 무소불능(無所不能)의 변행(遍行)에는 네 가지가 있으니 이를 4일체(四一切)라고 한다.
① 변일체성(遍一切性) : 선(善)·악(惡)·무기(無記) 삼성에 두루함을 말한다. 8식은 선·악에 물들지 않으므로 무부무기라 하고 다시 여기에서 선·악·무기에 두루한다 함은 8식이 모든 심소의 모체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8식은 선·악의 씨를 지니지 않으므로 선·악과 더불어 상응하지는 않는다.
② 변일체지(遍一切地) : 모든 경계에 두루한다는 뜻으로 변삼계구지(遍三界九地) 또는 변삼지(遍三地)라고도 한다. 이는 8식이 삼계에 두루 응생(應生)할 수 있다는 뜻이다.
③ 변일체시(遍一切時) : 마음 곧 아뢰야식이 존재할 때 모든 곳 모든 때에 두루함을 말한다.
④ 변일체구(遍一切俱) : 8식은 육도(六途)에 능입(能入)하므로 범부업을 지으면 범부가 되고 보살업을 지으면 보살도를 이루기 때문에 일체구(一切俱)라 한다.
위에서는 8식의 공능(功能)인 집수(執受), 처(處), 요(了)를 요약했고, 다음엔 8식의 심소(心所)인 촉(觸), 작의(作意), 수(受), 상(想), 사(思)의 5변행심소(五遍行心所)를 정리해 보고자 한다.
촉(觸) : 촉은 6근(六根), 6식(六識), 6경(六境), 3법(三法)이 화합하여 감각을 일으킴을 말한다. 『성유식론(成唯識論)』에서는 촉(觸)은 삼화(三和), 분별(分別), 변역(變易)이라 설명하고 있다. 삼화(三和)는 육근, 육경, 육식이 화합하여 의식의 감각이 일어남을 뜻하고, 분별(分別)은 감각이 일어난 후에 분별이 일어남을 뜻하고, 변역(變易)은 분별의 상황에 따라 변역이 있게 됨을 말한 것으로 이는 촉(觸)이 심소의 첫째가 되어 모든 심소의 의지처가 됨을 뜻한다.
작의(作意) : 작의는 반응을 뜻한다. 근(根), 경(境), 연(緣)이 삼화를 이루어 분별하고 변역하는 반응을 일으키고 경각심을 내어 주의하고 삼가는 등 경계에 대해서 한번 재고(再考)하는 심소이다.
수(受) : 수는 수용의 뜻이다. 순경(順境)과 역경(逆境) 비순비역(非順非逆)의 경계를 수용한다는 말이다.
상(想) : 상은 앞의 경계를 헤아려서 각종 이름[名言]을 붙여 개념을 존재하게 하는 심소이다.
사(思) : 사는 마음으로 하여금 움직이고 작위하게 하는 심소로서 행동 이전의 사상이며 사고력이며 선·악을 일으켜 모든 업을 짓게 하는 심소이다.
이상의 촉(觸), 작의(作意), 수(受), 상(想), 사(思)는 일체에 두루하지 않음이 없기 때문에 변행심소(遍行心所)라 하고 변행심소이기 때문에 제8식(第八識)과 7식(七識), 6식(六識) 등 모든 식(識)과 더불어 상응하여 마음을 일으킨다. 그 중에서도 제6식과 상응할 때 가장 적극적으로 작용하므로 스스로 생각하고 분별하며, 살피고 판단하며, 수용하고 배척하며, 동작을 일으키고 정지하며, 차고 더움을 분별하며, 견고하고 부드러운 것을 가려내는 작용을 약간의 오차 없이 충실하게 해낸다.
그러나 7식과 전5식(前五識)으로 더불어 상응할 때에는 상응만 하고 작용은 거의 미세하다. 가령 말하자면 눈으로 볼 때에는 눈이 볼 뿐이고, 귀로 들을 때에는 귀가 들을 뿐이고, 코로 냄새 맡을 때와 입으로 먹을 때, 몸으로 촉감을 느낄 때도 역시 상응해서 알 뿐 별도의 작용을 하지 않는다. 그것은 5변행심소(五遍行心所)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현상계에서 가장 강하게 작용하는 자리가 6식이기 때문이다.
특히 제8식(第八識)과 상응할 때에는 상응만 할 뿐 작용은 거의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8식은 종자를 보장(保藏)하고 있을 뿐 능변(能變)하지 않기 때문이다.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아뢰야식은 생명의 근원이며 종자의 창고로서 불생불멸(不生不滅)하고 부증불감(不增不減)하여 5변행심소(五遍行心所)와 더불어 상응하되 작용하지 않고, 윤회해서 변역하되 부동하는 자리이다.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에 물들지 않기 때문에 종자가 되고 선(善)·악(惡)의 구별이 없으므로 탐진치(貪瞋痴)가 없다. 이는 아뢰야식이 5수 가운데 오직 사수(捨受)와만 상응하기 때문이다.
5수(五受)란 고·락·우·희·사(苦樂憂喜捨)를 말한다. 이는 모두 경계를 받아들이는 감각이다. 고·락(苦樂)은 신체적인 면에서 받아들이는 감각으로 신체적인 고통은 고(苦), 신체적인 즐거움은 락(樂)이라 하고, 우·희(憂喜)는 정신적인 면에서 받아들이는 감각으로서 정신적인 괴로움은 우(憂), 정신적인 기쁨은 희(喜)라 한다.
사(捨)는 순하지도 않고 거슬리지도 않는다는 뜻이다. 신체적으로는 고통(苦)과 즐거움(樂)을 여의고 정신적으로는 근심(憂)과 기쁨(喜)을 여의었으므로 버릴 사(捨)를 써서 사수(捨受)라 한다. 제8 아뢰야식은 경계를 인식하여 선·악을 구별하지 않으며, 고통과 즐거움, 근심과 기쁨을 느끼지 않는다. 따라서 만법의 근원이면서도 만법을 간섭하지 않고 생멸의 윤회를 거듭하면서도 불종자(佛種子)가 멸하지 않는다. 이러한 제8식의 심소는 언제라도 시절인연이 도래하여 부처님법을 만나면 성불을 이루게 된다.
-이글은 월간 '불광'지에 연재 된 혜거스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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