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이 마가다국 판차사라(五葦)라는 마을에 계실 때의 일이다.
어느 날 부처님은 아침 공양을 얻기 위해 탁발을 나갔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그 날은 마침 젊은 남녀가 선물을 교환하는 축제의 날이었다. 모두 축제로 들떠 있던 탓에 아무도 음식을 공양하는 사람이 없었다. 부처님은 ‘깨끗이 씻은 빈 발우’를 들고 그냥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빈손으로 돌아오는 부처님을 본 마라(惡魔)가 속삭였다.
“그대는 전혀 밥을 얻지 못했는가? 어떻게 하루 종일 굶을 수 있는가? 규칙을 어기고 다시 마을로 들어가라. 내가 음식을 얻도록 해주겠다.”
그러나 부처님은 이를 거절했다.
“설령 음식을 얻지 못하였다고 해도 나는 즐겁게 살아간다. 저 광음천(光音天)과 같이 나는 법열의 기쁨을 양식으로 삼아 기쁘게 살아간다.”
잡아함 39권 1095경 《걸식경(乞食經)》
대개의 경우 사람들은 남에게 특별한 피해를 주거나 도덕적으로 나쁜 일이 아니라면 적당히 규칙을 어겨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늘을 속이고 땅을 속인다 하더라도 자기 자신을 속일 수는 없다. 만약 그런 일을 하고도 마음에 께름칙한 구석이 없다면 그는 양심이 마비되어 가는 사람일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생활을 하는 사람은 오히려 작은 잘못을 범하는 일이 없는지를 자주 살펴야 한다. 자칫 이를 방치하면 정신적 정결성이 마모돼 가는 원인이 된다. 부처님은 누구보다도 이 점을 깊이 인식했던 분이다. 이를 짐작케 하는 경전이 바로 이 《걸식경(乞食經)》이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초기불교 시대 출가 수행자들은 탁발을 통해 생계문제를 해결했다. 부처님의 제자를 일컫는 ‘비구(比丘)’라는 말도 밥을 얻어 먹으며 수행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탁발은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수행이다. 걸식을 통해 수행자는 자신을 낮추게 되고, 음식을 공양하는 사람은 보시의 공덕을 짓는다. 이는 세속적 의미의 구걸과는 다르다.
탁발은 엄격한 법식과 금제에 의해 이루어졌다. 예를 들어 차제걸식(次第乞食)은 탁발하는 집을 정해 놓고 하지 말고 차례차례 하라는 규정이다. 이때 부잣집만 들리고 가난한 집을 건너뛰면 안 된다. 또 칠가식(七家食)은 밥을 빌 때는 일곱 집을 넘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한번 갔던 집을 다시 찾아가면 안 된다는 규칙도 있다. 오후불식(午後不食)이라는 규칙도 있다. 이는 하루에 한 번만 식사를 하되 오후가 되면 식사를 하지 말라는 규칙이다.
탁발이 뜻대로 되지 않은 때도 많았던 모양이다. 이 경은 바로 그런 경우 부처님이 어떻게 처신했는지를 주제로 다루고 있다. 경전의 서술에 따르면 부처님은 탁발에서 밥을 얻지 못하자 다시 마을로 들어가 탁발을 할까 하고 심리적 갈등을 했던 것 같다. 이 경에 등장하는 악마는 ‘식욕의 유혹’을 의미한다. 이때 부처님은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 하더라도 규칙으로 정해진 것이라면 남이 보지 않는다고 어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유혹을 뿌리쳤다. 왜냐하면 그것은 타율적 규제의 문제가 아니라 양심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 속담에 ‘사흘을 굶으면 남의 집 담장을 뛰어넘지 않을 사람이 없다’는 말이 있다. 이 세상의 고통 중에 뭐니 해도 배고픈 고통처럼 비참하고 서러운 것은 없다. 그러나 아무리 배가 고프더라도 부정한 방법으로 끼니를 해결하려 한다면 그것은 이미 인간의 길을 포기한 것이다. 뇌물을 받거나 남의 돈을 떼먹는 일이 수없이 벌어지는 세상에서 규칙 때문에 다시 밥 얻으러 나가기를 포기하는 부처님은 어쩌면 바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그 ‘바보’를 성인으로 받들고 있다.
홍사성/불교방송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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