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佛種性
紹隆佛種不斷絶하고 摧滅魔宮無有餘로다
已住如來平等性하야 善修微妙方便道하며
於佛境界起信心하야 得佛灌頂心無着이로다
兩足尊所念報恩하야 心如金剛不可沮하며
於佛所行能照了하야 自然修習菩提行이로다
부처님의 종성 끊어지지 않고
마군 궁전 부수어 남음이 없게 하네
평등한 여래 성품 이미 머물고
미묘한 방편도를 잘 닦아서
부처님의 경계에 신심을 내며
부처님 관정 얻고 집착이 없네
양족존의 은혜를 갚으려는 마음
금강 같아 저해할 수가 없으며
부처님의 행할 일 비치어 알고
자연히 보리행을 닦아 익히네
*
불종성(佛種性): 부처님의 종성(種性)은 끊어지지 않는다
*
소융불종부단절(紹隆佛種不斷絶)하고: 부처님의 종자를 이어받는다. 발원문에도 소융삼보(紹隆三寶)라는 말이 나오는데 여기는 소융불종이라고 나와있다. 부처님의 종자를 이어서 단절하지 않고
최멸마궁무유여(摧滅魔宮無有餘)로다: 마군의 궁전을 꺾어 소멸해서 남음이 없게 하는 도다
이주여래평등성(已住如來平等性)하야: 여래의 평등한 성품에 이미 머물러서
선수미묘방편도(善修微妙方便道)하며: 미묘한 방편도를 잘 닦으며. 우리 모두가 여래와 둘이 아니므로 이미 여래 평등성에 머물고 있다.
화엄경을 푸는 좋은 열쇠로 ‘심불급중생시삼무차별(心佛及衆生是三無差別) 마음과 부처와 중생, 이 셋이 차별이 없다’고 하는 구절이 있다.
앞서 법혜불 이야기가 나왔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모든 것들, 모든 사람의 몸속에 있는 세포의 숫자를 다 헤아려도 그 많은 숫자의 법혜불을 채울 수가 없었다.
그것이 바로 사람사람이 그대로 부처라는 말이다. 심불급중생시삼무차별이다.
화엄경이 어려운 것 같아도 심불급중생시삼무차별이라고 하는 열쇠로 풀면 다 풀린다.
어불경계기신심(於佛境界起信心)하야: 부처님의 경계에서 신심을 일으켜서, 불법을 통해서 일어나는 새로운 마음이다.
득불관정심무착(得佛灌頂心無着)이로다: 부처님의 관정을 얻고 마음에 집착하는 바가 없다. 관정은 사해(四海)의 물을 떠서 세자의 대관식에서 머리에 부어주는 것을 말한다. 앞으로 사해를 잘 다스리라는 뜻이다. 여기 관정이라는 말을 쓴 것은 곧 부처님의 대를 잇는다는 말이다.
부처님으로부터 관정을 얻는다. ‘나의 다음 부처로서 네가 이 세상에 행세를 하라’고 부처의 바통을 이어받는 것이다. 그래도 심무착이다. 마음에 집착하는 바가 없다.
그런 수준에 있는 사람이 마음에 집착하는 바가 있어서는 안된다.
*
양족존소념보은(兩足尊所念報恩)하야: 부처님 계신 곳에서 은혜 갚을 것을 생각해서
심여금강불가저(心如金剛不可沮)하며: 마음은 금강과 같아서 가히 무너뜨릴 수 없다.
부처님 경계에서 신심을 냈는데 그 신심이 부처님의 대를 이어서 다음 부처가 된다 하더라도 마음에 집착하는 바가 없다. 그리고 모든 부처님 처소에서 부처님 은혜 갚을 생각만 하는 그 마음이 다이아몬드와 같이 견고해서 무너뜨릴 수가 없다.
어불소행능조료(於佛所行能照了)하야 : 모든 부처님이 행하신 그 일에 능히 환하게 다 비춰 알아서
자연수습보리행(自然修習菩提行)이로다: 자연히 보리행을 수습하는 도다.
그렇게 해서 불종성을 이어간다. 우리도 그렇게만 살면 우리의 삶이 그대로 부처님의 종자를 계속 이어가는 것이 된다.
부처님의 종자를 꺼뜨리지 않고 계속 이어간다고 하는 것이 정말 중요한 일이다.
세상에서 제일 큰 욕은 ‘저 무후(無後)할 놈’이라고 하는 욕이다. 뒤가 없다는 것은 손을 못 잇고 대를 못 잇는다는 말이다. 그것이 세상에서 제일 큰 욕이고 부모에게 짐을 지우는 일이다.
부모로부터 내가 이 몸을 받았으니 다음 세대를 이어줘야 되는데 그것을 못하는 것이니 자기 임무를 저버리는 것이 된다. 그래서 제일 큰 욕이 ‘무후할 놈’이라는 욕이다. 불교도 마찬가지다. 부처님도 부처님 법이 세상에 계속 전해지기를 바란다. 우리는 열심히 정진해서 계속 부처님의 뒤를 이어주어야 된다. 그것이 불자로서 우리들의 가장 큰 임무다.
8, 衆生의 樂欲
諸趣差別想無量과 業果及心亦非一과
乃至根性種種殊를 一發大心悉明見이로다
其心廣大等法界하며 無依無變如虛空하니
趣向佛智無所取요 諦了實際離分別이로다
知衆生心無生想하며 了達諸法無法想하야
雖普分別無分別하고 億那由刹皆往詣로다
無量諸佛妙法藏에 隨順觀察悉能入하야
衆生根行靡不知하니 到如是處如世尊이로다
淸淨大願恒相應하야 樂供如來不退轉하니
人天見者無厭足이라 常爲諸佛所護念이로다
모든 갈래 차별과 수없는 망상
업과 마음과 과보(果報)도 하나 아니며
근기와 성품들도 제각기 달라
큰마음 한 번 내면 밝게 본다네
그 마음 크고 넓어 법계와 같고
의지 없고 변함없기 허공 같으며
부처 지혜 향해도 취함이 없어
실상을 잘 알아서 분별 떠났네
중생 마음 알아도 중생 없으며
모든 법 알지마는 법이란 생각 없고
분별을 하면서도 분별없으매
억 나유타 세계에 모두 나아가
한량없는 부처님 묘한 법장(法藏)에
따라서 관찰하며 다 들어가고
중생의 행과 근성 모두 아나니
이런 곳에 이르러 세존 같으네
청정한 큰 서원과 서로 응하여
여래께 공양하기 퇴전치 않고
천상 인간 보는 이 싫은 줄 몰라
부처님의 호념을 항상 받느니라
*
중생(衆生)의 낙욕(樂欲): 중생들이 즐겨하는 것을 안다
*
제취차별상무량(諸趣差別想無量)과 : 모든 갈래인 지옥, 아귀, 축생, 인도, 천도, 아수라가 각각 차별해서 생각이 한량이 없음과
업과급심역비일(業果及心亦非一)과: 그들의 업과, 업의 과보와, 그들의 마음이 또한 하나가 아닌 것과
내지근성종종수(乃至根性種種殊)를: 내지 근기와 성품이 가지가지로 다른 것을
일발대심실명견(一發大心悉明見)이로다: 한번 큰 마음을 발하면 다 환하게 알 수가 있다.
불심이나 보리심을 한 번 발하면 다 환하게 다 알 수가 있다. 일발대심하면 실명견이다.
*
기심광대등법계(其心廣大等法界)하며: 그 마음이 광대해서 얼마나 큰가하면 법계와 똑같다. 허공보다 더 큰 것이 법계다.
무의무변여허공(無依無變如虛空)하니 : 의지함도 없고 변함도 없이 허공과 같으니
취향불지무소취(趣向佛智無所取)요 : 불지에 취향해도 취하는 바가 없고
제요실제이분별(諦了實際離分別)이로다:실제를 깨달아 알아도 분별을 떠났더라. 실제는 진리다. 진리를 환히 깨달아 아는 것을 제요(諦了)라고 한다.
*
지중생심무생상(知衆生心無生想)하며 : 중생의 마음을 알되 마음에 중생이라고 하는 생각이 없다.
요달제법무법상(了達諸法無法想)하야 :제법을 환히 꿰뚫어 알아도 제법에 대한 생각이 남아있지 않아서
수보분별무분별(雖普分別無分別)하고 : 비록 널리 분별하나 분별이 없다. 알 때는 다 알지만 그것을 드러내놓고 이러고 저러고 안하는 것이다.
중생을 왜 모르겠는가, 다 알지만 중생이라는 생각을 안하는 것이다. 그대로 부처님이라고 받드는 것이다. 그런 깊이 있는 마음, 속 깊은 인품을 볼 수가 있다.
억나유찰개왕예(億那由刹皆往詣)로다 : 억이나 되는 나유 세계에 다 가서 나아가도다.
*
무량제불묘법장(無量諸佛妙法藏)에 : 한량없는 부처님의 미묘한 법장에
수순관찰실능입(隨順觀察悉能入)하야 : 수순해서 관찰하야 다 능히 들어가서
중생근행미부지(衆生根行靡不知)하니 : 중생의 근기에 대한 행을 다 알지 아니함이 없으니 환하게 중생들의 근기 따라서 어떻게 사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수행을 하는지 다 알아서
도여시처여세존(到如是處如世尊)이로다 :이와 같은 곳에 이르러서 세존과 같이 하는도다.
*
청정대원항상응(淸淨大願恒相應)하야 : 아주 훌륭한 큰 원이 항상 중생에게 잘 맞아서
낙공여래불퇴전(樂供如來不退轉)하니 : 즐겁게 여래에게 공양해서 퇴전하지 아니하니
인천견자무염족(人天見者無厭足)이라: 인간이나 천신이나 보는 사람이 싫어함이 없더라. 염족이 없다는 것은 싫어함이 없다는 뜻이다. 아무리 봐도 부처님이 보고 싶고, 아무리 봐도 싫증이 안나야 되는 것이다.
상위제불소호념(常爲諸佛所護念)이로다 : 항상 모든 부처님이 호념하는 바가 됐다.
9, 衆生의 智慧
其心淸淨無所依하야 雖觀深法而不取라
如是思惟無量劫하야 於三世中無所着이로다
其心堅固難制沮라 趣佛菩提無障碍하며
志求妙道除蒙惑이라 周行法界不告勞로다
知語言法皆寂滅하야 但入眞如絶異解하며
諸佛境界悉順觀하야 達於三世心無碍로다
그 마음 청정하여 의지한 데 없고
깊은 법 보더라도 취하지 않으며
이렇게 오랜 세월 생각하여도
세 세상 가운데서 집착이 없네
그 마음 견고하여 제어 못하고
보리에 나아가기 장애 없으며
묘한 도리 구하여 의혹 없으매
법계에 두루 다녀도 피로하지 않네
말로 하는 법이란 모두 고요해
진여에 들어가서 딴 생각 없고
부처님의 경계를 따라 살피니
삼세를 아는 마음 걸림이 없다
*
중생(衆生)의 지혜(智慧): 일체중생의 삼세(三世)의 지혜를 안다
*
기심청정무소의(其心淸淨無所依)하야: 그 마음이 청정해서 의지하는 바가 없다. 여기 청정이란 ‘텅 비다’ 라는 뜻이다. 그 마음이 텅비어서 의지하는 바가 없어서
수관심법이불취(雖觀深法而不取)라: 비록 깊은 법을 다 보고 알지만 취하지를 않는다.
여시사유무량겁(如是思惟無量劫)하야 : 이와 같이 한량없는 겁을 사유하고 사유해서
어삼세중무소착(於三世中無所着)이로다: 과거 현재 미래에 집착하는 바가 없더라.
*
기심견고난제저(其心堅固難制沮)라 :그 마음이 견고해서 참으로 제어하고 무너뜨리기 어려움이라.
취불보리무장애(趣佛菩提無障碍)하며: 부처님의 깨달음에 나아가되 장애가 없어서
지구묘도제몽혹(志求妙道除蒙惑)이라: 마음에, 뜻에, 묘도는 불도다. 묘도를 구하야 미몽과 미혹을 다 제거하고
주행법계불고로(周行法界不告勞)로다: 법계에 두루두루 행하야 고로가 없더라. 여기 고자를 괴로울 고(苦)자로 써야 된다. 우정 여기 나온대로 새긴다면 괴로움을 말하지 않는다 라고 새겨도 되지만, 괴로울 고(苦)자 수고로울 노(勞)자를 써서 괴로워하지 않고 수고로워하지 않는다라고 하면 된다. 불법을 널리 전하기 위해서 법계에 돌아다니고 어디를 돌아다니고 아무리 힘들게 하여도 힘들어 하지 않는다.
*
지어언법개적멸(知語言法皆寂滅)하야: 언어의 법이 다 적멸함을 알아서. 음성교체(音聲敎体)라고 해서 이 사바세계는 음성으로써 교화의 본체를 삼지만 언어의 법이라는 것은 다 적멸하다.
적멸하거나 공한 것을 이해시킬 때는 소리로써 비유를 하면 제일 쉽다고 하였다. 지금 눈앞에 책이 있는데 이 책이 공하다. 어째서 공하냐? 이 책이 처음에는 나무였는데 그 나무가 이러저러한 공정을 거쳐서 종이가 됐고 종이에 인쇄를 하여 여러장 묶어서 책이 되고 등등 이렇게 복잡하게 설명해서 책이 공하다라는 것을 설명하면 얼른 납득이 잘 안된다.
그런데 소리는 지금 내가 한 시간 이상 떠들었지만 눈앞에 뭐가 있는가? 없다. 그래서 언어의 법이 다 적멸한 줄 안다.
옛날에 부처님 설법을 다섯 시기로 나누어서 오시교(五時敎)를 설명할 때도 누가 주장자를 “땅- ” 쳐놓고 “이 소리가 있지 않느냐?”하고 물으면 방금 들었으니 그 소리는 있다. 그리고 나서 조금 시간이 지난 뒤에 “지금도 소리가 있나?” 하고 물으면 시간이 좀 지났으니 그 소리는 “없다.” 고 한다. 처음에 있다고 했을 때는 유교(有敎)다.
통도사 대웅전 주련에는 ‘초설유공인진집(初設有空人盡執) 처음에 유와 공을 설하니 사람들이 모두 집착한다’라는 글이 있다.
부처님도 처음엔 있다고 하였다. 괴로움이 있고 괴로움의 원인도 있고 또 괴로움이 다 소멸한 열반도 있고 그 열반을 증득하는 방법도 있다. 8정도도 있다. 고집멸도가 전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다가 수준이 조금 높아지니 무고집멸도라고 했다. 무안이비설신의, 없다고 했다.
고집멸도가 있다고 할 때는 사람들이 생각해 보니까 있다. 그래서 있는 것에 집착한다. 수행이 조금 높아져서 부처님이 없다고 하니까 ‘아 알고 보니 없구나’해서 또 없는 것에 집착을 한다. 그래서 ‘초설유공인진집(初設有空人盡執)’ 사람들이 유라고 해도 집착하고 공이라 해도 집착을 한다고 하였다.
주장자를 꽝 쳐놓고 ‘있다’고 하면 금방 들었으니까 ‘있다’고 하고, 조금 있다가 또다시 물으면서 ‘없다’고 하면 또 ‘없다’고 한다. 그러면 뭔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이렇게 설명하는 데서 벌써 3교가 나왔다. 세 가지 교가 나온 것이다.
유(有), 무(無), 비유비무(非有非無)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고, 다음에 돌이켜 보면 역유역무(亦有亦無)다. 다시 돌이켜보니까 있기도 하고 또한 없기도 하다.
이것을 소리 하나로써 다 설명한다.
이 소리가, 언어의 법이 다 적멸함을 알아서
단입진여절이해(但入眞如絶異解)하며: 다만 진여에 들어가서 다른 이해, 다른 해석을 다 끊어버리며
제불경계실순관(諸佛境界悉順觀)하야 : 모든 부처님의 경계를 다 따라 관찰한다. 중생의 수준 에 따라서 이렇게도 말하고 저렇게도 말하는 모든 그런 것들을 다 낱낱이 관찰해서
달어삼세심무애(達於三世心無碍)로다: 삼세를 통달해서 마음에 장애가 없더라.
10, 說法敎化
菩薩始發廣大心에 卽能遍往十方刹하야
法門無量不可說을 智光普照皆明了로다
大悲廣度最無比하며 慈心普徧等虛空호대
而於衆生不分別하야 如是淸淨遊於世로다
보살이 광대한 맘 처음 내고는
시방의 모든 세계 두루 나아가
한량없는 저 법문 말은 못하나
지혜로 비추어서 밝게 다 아네
자비로 건져주심 비길 데 없고
인자한 마음 허공처럼 두루 했지만
중생에게 조금도 분별이 없어
청정하게 온 세계 다니시도다
*
설법교화(說法敎化): 설법(說法)과 교화(敎化)
*
보살시발광대심(菩薩始發廣大心)에 : 보살이 처음 방대한 마음을 발하매, 지금 초발심공덕품에서 발심, 보리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으므로 이 광대한 마음은 발심, 보리심, 불심이다. 그 마음을 냄에
즉능변왕시방찰(卽能遍往十方刹)하야 : 곧 능히 시방찰에 두루두루 가서
법문무량불가설(法門無量不可說)을 : 가히 설명할 수가 없는 한량없는 법문을
지광보조능명료(智光普照皆明了)로다 : 지혜의 광명으로 널리 비춰서 다 밝게 요달한다.
화엄경에 지광, 보조라는 말이 오늘 두 번 나왔다. 지광도 보조도 참 좋은 표현이어서 사람들이 잘 쓴다. 아예 지광보조라고 해서 호와 불명으로 같이 써버리면 더 딱 떨어진다.
*
대비광도최무비(大悲廣度最無比)하며: 큰 자비로 널리 제도함이 가장 수승하야 비교할 바 없으며
자심보변등허공(慈心普遍等虛空)호대: 자비의 마음이 널리 두루두루 해서 허공과 같다.
허공처럼 사랑하는 마음이다. 경전에서는 자자와 비자를 늘 이렇게 나눠놓고 이야기 하는데 구체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
자는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이라면 비는 아버지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다. 그 마음이 허공과 같다.
이어중생불분별(而於衆生不分別)하야 : 중생에게 있어서 분별하지 아니해서
여시청정유어세(如是淸淨遊於世)로다 : 이와 같이 청정하게 큰마음을 가져서 세상을 노닌다.
청정하다는 것은 뛰어나고 훌륭하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훌륭한 자(慈)의 마음도 비(悲)의 마음도 지혜도 또 큰마음도 가져서 세상을 노닌다. 유세는 세상을 유행하는 것인데 바라문교에서는 사기(四期)라고 해서 인생을 네가지 시기로 나누는데 그 마지막 시기가 유행기다. 중생제도를 위해 포교를 하러 다니는 시기다. 유어세라는 것이 그렇게 세상에 돌아다닌다는 뜻이다.
11, 諸佛讚歎
十方衆生悉慰安하며 一切所作皆眞實이라
恒以淨心不異語로 常爲諸佛共加護로다
시방세계 중생을 위안하느라
일체의 짓는 일이 다 진실하고
언제나 깨끗한 마음 다른 말 없어
부처님의 가피를 항상 받나니
*
제불찬탄(諸佛讚歎): 모든 부처님의 찬탄
*
시방중생실위안(十方衆生悉慰安)하며: 시방의 중생을 다 안위시킨다. 위로해서 편안하게 한다.
글로만 봐도 참 좋은 내용이다. 불교의 자비는 이런 것이다. 관세음보살 지장보살의 자비는 시방에 있는 중생을 다 위안시킨다.
일체소작개진실(一切所作皆眞實)이라 : 일체에 짓는 바가 다 진실함이라.
항이정심불이어(恒以淨心不異語)로 : 항상 청정한 마음으로써 다른 말을 하지 않는다.
사실과 다르게 말하지 않고 진실만을 이야기 한다. 청정한 마음으로 본심으로 정직한 마음으로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
내가 세상을 향해서 주장하는 것은 ‘정직하라’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정직해야 한다. 특히 고급 공무원이나 소위 돈 많은 그룹 회장들이나 큰 장사 하는 사람들이 전부 정직해지는 것이 제일 시급한 일이다.
지금 세상은 줄잡아서 50년 전과 비교했을 때 천 배는 더 잘산다.
내가 10대에 해인사 강원에 있을 때는 강원에 방부 들인 100명의 대중스님 중에서 시계를 찬 사람은 서울에서 온 스님 한 사람 뿐이었다.
그 때 태국스님들이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방문을 해서 서경수씨, 이기영씨 이런 이들이 태국 대사와 함께 이들을 대동하고 왔다.
학인들과 대담하는 기회를 가졌는데 태국스님이 서울서 온 학인 스님 시계를 보고는 깜짝 놀라서 “어떻게 스님이 시계를 차느냐?”고 물었다. 그때 우리의 수준이 ‘우리 평생에 저 시계한 번 차볼 수 있을까? 서울에서 온 서울스님이나 시계차지. 지방 스님은 시계 어림도 없다.’ 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웬걸, 얼마 뒤에 어느 스님들이 미국 여행을 갔다가 기념으로 볼펜을 사다주는데 볼펜 마다 시계가 다 달려있었다. 그 볼펜이 천 원 밖에 안하더라는 것이다.
세상이 그렇게 발전해서 지금은 시계가 흔하디 흔하다.
백 보 양보하여 계산을 해도 우리는 50년 전보다 줄잡아 천 배를 더 잘산다.
그런데 세상이 왜 이렇게 어지러운가? 왜 이렇게 범죄가 많은가? 장관을 지낸 사람, 검찰이며 그룹총수 그런 사람들이 왜 감옥으로 끌려들어가는가? 정직하지 않고 부정부패를 저질렀으면서도 일단은 무조건 아니라고 부정하다가 나중에 들통나면 그때사 부패를 시인한다.
정직이 제일 중요한 데도 누구하나 그런 소리를 하는 정치인이 없다. 항상 깨끗한 마음으로써 다른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상위제불공가호(常爲諸佛共加護)로다 : 항상 모든 부처님의 함께 가호하는 보호를 더하는 바로다. 호지를 더한다는 것은 가피한다는 뜻이다. 가호라는 말이나 가피한다는 말이나 여기서 같은 뜻이다.
12, 世界震動
過去所有皆憶念하고 未來一切悉分別하야
十方世界普入中하니 爲度衆生令出離로다
지난 세상 있던 일 다 기억하고
미래세의 온갖 것 모두 분별해
시방의 세계 중에 두루 들어가
중생을 제도하여 해탈케 하네
*
세계진동(世界震動): 세계의 진동
*
과거소유개억념(過去所有皆憶念)하고 : 과거에 있는 바를 다 하나하나 기억하고
미래일체실분별(未來一切悉分別)하야 : 앞으로 올 모든 일들을 다 분별해서
시방세계보입중(十方世界普入中)하니 : 시방세계에 널리 그 가운데 들어간다.
위도중생령출리(爲度衆生令出離)로다 : 왜 그렇게 하느냐? 과거소유를 다 기억하고 미래 일체를 다 분별하고, 시방세계 그 속에 낱낱이 다 들어간다.
중생을 제도해서 생사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함이다.
그것이 보살의 중생을 향한 원력이다.
진정한 불교의 화두는 중생이고 부처님의 화두는 중생이고 보살의 화두도 중생이다.
어떻게 하더라도 중생이다.
그런데 중생을 위한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불교와는 맞지 않는 비유이기는 하지만, 불보살이 중생을 위한 마음은 고기 한 마리를 던져 주는 것이 아니라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과 같다. 세상의 이치와 인생의 이치를 알게 하는 것이다.
인생과 세상의 이치를 제대로 알게 하면 그다음은 자기가 다 알아서 하니까 이치를 제대로 가르쳐 주는 일에 노력을 하는 것이다.
부처님은 누구에게 밥 한그릇 준 적이 없다. 그저 세상의 이치를 깨우쳐 주는 것, 진리를 깨우쳐 주는 것이 그 분의 일이었다. 모든 불보살들이 다 그렇고 관세음보살도 지장보살도 누구에게 밥한그릇 줬다는 소리가 없다. 그저 세상의 이치를 깨우쳐 주는 것이다.
인생의 이치 깨우쳐 주는 것이 부처님과 보살의 할 일이었다. 그 다음은 중생이 다 알아서 하는 것이다.
중생을 제도해서 출리하게 하기 위함이다.
오늘 공부 여기까지 하겠다.
(박수소리)
하강례
수행자 도반
*
봄햇빛이 따뜻해서 햇빛을 쏘이고 있다고 하면서, 부엌에서 차를 끓이던 봉사자 보살님들이 카메라를 향해서 웃었다. 법회 때마다 부엌에서 만나는 아름다운 얼굴들이다.
*
지난 여름에 동화사에서 한 번 봤던 도현이는 혜일성 보살님의 손자인데, 화엄법회 때마다 씨디와 책자들을 스님들께 챙겨드리는 자원봉사를 하시는 할머니를 따라서 오늘 처음 화엄법회에 왔다.
얼굴을 보자마자 성큼성큼 다가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앙증맞고 보드라운 손을 꼭 잡자 저절로 함박 웃음이 지어졌다. 당연하다는 듯 도현이 얼굴에도 천진한 웃음이 하나 가득이다. 스님들께는 유연하게 허리를 접어서 머리가 땅에 닿을 정도로 인사를 했다. 목탁도 잘치고 합장도 잘하는 도현이는 뛰어다니기도 잘하고 힘도 쎄서 보살님은 “법회 때 뛰어다니면 어쩌지?” 하고 걱정하셨는데, 법회가 시작되자마자 그만 쌔근쌔근 잠이 들었다. 법회가 끝나자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요러니 안 귀여할 수 없는 할머니의 보물’이다.
*
법회 전에 여래성 보살님은 1층 법공양실에서 가져왔다며 <마더데레사의 아름다운 선물> 이라고 하는 샘터사에서 나온 책을 보여주셨다. 보살님이 이해인수녀님을 엄청 좋아하신다는데 책 속에는 예쁜 그림이 담긴 사인도 있고, 엽서도 있고, 연락처가 적힌 메모도 있다.
“읽고나서 갖다드려야 하겠지예?” 보살님이 벌써 아쉬운 듯 말씀하시길래 “전에 큰스님께서 거기 있는 책도 다 가져가도 된다고 하셨는데요? 보살님이 가지세요.” 하였다.
큰스님께 여쭤보니 아니나 다를까 “그래? 얼른 챙겨라.” 하셨다. 그 안에 엽서도 연락처도 있었다고 말씀드리니 “이해인 수녀님이 섭섭해 하겠는데?” 하면서 웃으셨다.
*
1층 법공양실에는 큰스님이 법공양하시는 사경집말고도 낱권의 책들이 있다. 사보신 책이나 선물받은 책 할 것 없이 화엄전에서 다 읽으신 책들을 모두 내려 보내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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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수녀님이 엽서는 “Dear 무비스님”이라고 밝게 시작하고 “저는 수행정진에 부족감을 많이 느끼지만 그래도 늘 평정심을 찾는 노력으로 행복합니다.”라고 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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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큰스님께서 48차 염화실지를 보고 “선재의 계단이 가파르다” 하셨었다. 이날 경전속에서 선재동자가 만나는 열다섯번째 선지식인 명지거사는 ‘뜻대로 복덕을 내는 광해탈문’을 일러주시기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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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법회의 따스함이 다음 법회 날까지 내내 지속될 줄 알았는데, 다시 평정심이 흔들리고, 너무 가팔라서 눈 앞의 계단을 보면서도 한 층을 오르지 못할 것 같은 날을 맞을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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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고반락이다... 이런 사실을 설명한다고 먹혀 들겠는가? 묵묵히 우리는 그냥 실수할 때 하고 또 잘할 때 잘 하고 그냥 그렇게 나아가는 길 밖에 없는 것이다.’
밑줄 그은 법문 모두가 수행자 도반이 보내주신 봄엽서다.
화엄의 바람
수행자의 햇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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