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월 스님의 가르침
‘세상이 허무하고 인생이 무상하다’는 얘기를 자주 듣습니다.
나도 젊어서부터 세상이 무상하고 허망하다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느끼지는 못했어요. 이제 속세에서의 인연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니 인생의 허망함과 무상함이 새삼 피부로 느껴집니다.
‘만유의 현상계는 다 허망한 것이니 만약 삼라만상이 실상이 아니라고 한다면 가고 옴이 없는 여래의 참모습을 보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삼라만상을 실상이 아닌 환한 공상으로 보면 집착심이 생기지 않고, 집착심이 없으면 욕심이 생기지 않고, 욕심이 없으면 죄악이 생기지 않아 육근이 청정하게 됩니다.
육근이 청정하면 저절로 육신이 밝아져서 거래와 생멸이 없는 여래의 경지를 보게 될 것입니다.
‘주인의 꿈을 객이 해몽하고, 객의 꿈을 주인이 풀이하지만 지금 꿈을 얘기하는 두 사람도 역시 꿈속의 사람’이라는 도인의 말과 같이 세상은 허망한 것입니다.
좋고, 궂은 일만사가 현재라는 시점에서 0.1초만 지나도 꿈이 되는 것입니다. 과거란, 지나간 꿈이요, 현재란, 흘러가는 꿈이요, 미래란, 다가오는 꿈입니다. 그러고 보면 인생이란, 한방울의 물거품과 같이 허망한 것입니다.
우주에는 수많은 태양과 별이 있고, 지구는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우주를 설명할 때 33천과 삼천대천세계로 설명합니다.
삼천대천세계는 초속 100㎞로 달릴 수 있는 로케트가 지구로부터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켄타우로스자리의 ‘프록시마’라는 별까지 가는데 1만5000만년이나 걸리는 광대무변한 우주 전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유마경>에 삼천대천세계 아래로 42억 항하사 세계를 지나 내려가면 인간이 살고 있는 오탁악세 곧 지구가 있다고 했습니다. 지구는 수천억개의 별중에 잠깐 쉬어가는 작은 별입니다.
180억년 우주의 기원중 지구는 45억세가 된다고 하니 이 무한한 시간속에 인생 70세는 ‘찰나’의 시간일 뿐입니다.
‘만국의 도성은 개미집과 같고, 천자의 호걸은 하루살이와 같다’고 한 서산대사의 말과 같이 인생이란, 공상에서 내려다보면 다락논 한떼기에 좁쌀 한통 심어놓고 대지가 타는날 동전 한푼에 습기로 목을 축이려다 황토밭에 고꾸라지는 꿈속의 꼭두각시와 같고, 한 마리의 토룡입니다.
<원각경>에 ‘일체중생은 음욕으로 생겨서 애욕으로 유전한다’고 했으나 무슨 일로 와서 부유같은 인생을 살다가 무슨 까닭으로 영원한 죽음 속으로 사라져야 하는지 알수 없습니다. 생각할수록 허망하기 그지없는 인생입니다.
목적없이 와서 지각없이 살다가 거처없이 사라지는 허망한 인생입니다.
‘얼마나 살기위해 낮밤을 헛보내고 허송세월 하는가’라는 원효대사의 말씀이 귓전을 후려칩니다.
인생이란, 이렇게 허무한 것이기에 사람은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사람답다는 것은 참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불자는 모두 참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참사람이 되려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확신하고 믿으면 완전하고 고통없는 경지, 곧 성불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인과를 믿어야 합니다.
마음을 뺏겨 무리에 휩쓸리고 인과를 지으면 아무리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어보았자 헛 일입니다. 설사 백천겁을 지날지라도 지은 죄업은 없어지지 않고 언제든지 과보를 어김없이 받게되는 이치를 알아야 합니다.
인과를 믿는 일은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지는 일입니다. 인과를 믿으면 겸허한 생활인의 자세를 견지할 수 있습니다.
참사람은 또 도의 이치를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100년을 살면서 도를 알지 못하는 것보다 하루를 살더라도 도를 아는 것이 더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땅으로 인해 넘어졌다가 땅을 짚고 일어납니다. 땅이 사람보고 넘어지라고 해서 넘어진 것이 아니고, 일어서라고 해서 일어선 것이 아닙니다. 넘어지고 일어난 것은 사람이 한 일이지, 땅과 관련되지 않았다 이 말입니다. 우리가 도를 배우는 것도 똑같습니다.
우리가 도로 인해 깨닫는 것입니다. 위하는 것도 도요, 깨닫는 것도 도입니다. 도가 사람에게 깨달으라고 해서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 깨달을 것입니까? 금생에 자기의 본성을 깨닫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우주의 대도와 진리가 다 마음에 있습니다. 열심히 마음공부 해야 합니다.
가만히 한번 생각해 보십시요. 자기의 본성을 스스로 등져버리고 누구를 위해 전전하며 종노릇하고 있는 가를 철저하게 느껴보십시오.
우리는 도 속에 살면서도 도를 모릅니다. 우리가 눈으로 눈썹을 보지 못하는 것과 같이 너무 도 속에 살아서, 가까워서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거수 일투족 하는 것이 전부다 도입니다. 이런 모든 것이 전부 도의 작용입니다.
상(相)에만 집착하고 진리를 모르면 얼굴을 마주 대해도 천리같이 막히고, 마음을 비우고 도를 알면 천지가 한 집처럼 훤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과 글에 의지해서 마음과 힘을 허비하지만 깨닫고자 하는 주체적인 노력이 없으면 무용지물입니다. 마음밖의 마음을 전하는 깨달음의 비결은 자기의 마음으로 스스로 닦는 것밖에는 별 도리가 없다는 얘기입니다.
뭐든지 뒤로 미뤄서는 수행을 못합니다. 젊었다고 생사를 장담 못하고, 건강하다고 생사를 보장하지 못합니다. 젊어서 건강할 때 부지런히 정진하시기 바랍니다.
수보리님의 블로그 http://blog.daum.net/haha723/14000430 에서 복사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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