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화경 불교학당

[스크랩] 법화경 이란 어떤 경전인가

수선님 2018. 8. 19. 12:34

법화경 이란 어떤 경전인가 

                           - 종범 스님 -

 

 

구제, 성취, 해탈, 상생에 대한 가르침

 

『법화경(法華經)』은 대승불교의 가장 중요한 최고의 경전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모든 중생에게는 불성이 있고, 그러므로 누구나 부처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는 불교의 가장 근원적인 가르침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법화경』의 내용은 실제 수행에 적용할 수 있도록 많은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게 제시되어 있습니다.

 

『법화경』은 『화엄경』, 『금강경』과 함께 대승 삼부경(三部經) 중의 하나입니다.

 

『법화경』은 『정법화경(正法華經)』 10권 27품(286),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7권 28품(406), 『첨품묘법연화경』 7권 27품(601)의 삼종 번역본이 있습니다. 이 중에서도 『묘법연화경』이 가장 우수한 번역으로 알려져 제일 많이 봉독되고 있습니다. 『묘법연화경』은 대승불교의 사상을 포괄적으로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절묘한 방편과 비유를 표현하고 있어 문학적인 가치도 높습니다. 그래서 어느 경전보다도 신앙의 경전, 독송의 경전, 찬불(讚佛) 문학의 경전으로 뛰어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도 역시 『묘법연화경』을 이야기하겠습니다.

 

『법화경』은 모두 28품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크게 14품씩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고타마 싯다르타라는 인물이 태어나고 자라는 과정, 집을 떠나 수행에 전념하고,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는 과정을 보여 줍니다. 두 번째는 태어남과 죽음, 가고 옴, 주체와 객체 같은 모든 이원론을 넘어선 진정한 실재, 열반, 법계, 즉 궁극의 차원이 펼쳐집니다. 『법화경』에서 궁극의 차원을 다룬 이유는 모든 이에게 부처와 같은 경지에 오를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법화경』에서는 참으로 오묘한 진리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법화경』의 내용을 간단히 단정해서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이해를 도모하는 차원에서 특징적인 것을 몇 가지 추려 보면,

 

(1) 우주의 절대 평등의 세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2 방편품」에서 ‘십여시(十如是: 如是相, 如是性, 如是體, 如是力, 如是作, 如是因, 如是綠, 如是果, 如是報, 如是本末究竟)’를 통하여 현상의 차별을 초월하는 실상(實相) 평등의 진리를 말씀하고 있으니, 이것을 실상인(實相印)이라 합니다(諸法 實相).

 

(2) 「제16 여래수량품」에서는 ‘부처님의 영원한 생명’의 세계를 선언하고 계십니다. 부처님께서는 ‘많은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석가모니불이 석씨궁에서 출가하여 성불했다고 하지만 내가 참으로 성불한 것은 무량아승지겁(無量兒僧祗劫) 이전이었다’고 진실을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구원실성(久遠實成)이라 합니다. 부처님께서 출가, 성불, 열반하는 모습을 보인 것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 ‘방편’으로 하신 것입니다. 실제로 부처님의 수명은 영원한 것입니다(壽命이 無量阿僧祗劫이라 常住不滅하노라).

 

(3) 부처님은 ‘중생의 아버지요, 세상의 구세주’이심을 선포하십니다. 「제3 비유품」에서는 “나는 많은 성인 중에 가장 높으며 세상의 아버지이다. 모든 중생이 다 나의 아들이다. 이 세상은 다 나의 소유며, 중생은 다 나의 아들이다. 이 세상의 고난은 오직 나 한 사람만이 구제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4) 부처님은 영험과 신통력으로 중생을 구제하십니다. 부처님은 중생구제를 위해서 무한한 몸을 세상에 나타내시니 바로 ‘보살’과 ‘신장’이십니다.

 

보살은 문수(文殊, 지혜) 보현(普賢, 창조) 관음(觀音, 자비) 보살이 중심입니다. 그러나 문수, 보현은 다 자비를 실현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보살은 관음보살이 기본입니다.

 

『법화경』에서는 「제25 보문품」을 통해서 ‘관세음보살의 신통력(神通力)과 위신력(威神力)’을 자세히 말씀하고 있습니다(十方諸國土無刹不現身).

 

(5) 구제의 확답을 주십니다. 부처님의 실지실견(悉知悉見)과 수기(授記)를 통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信仰) 따르면(修行) 다 구제받을 수 있음을 약속해 주십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은 『법화경』의 중요한 내용만을 간략히 소개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법화경』을 통해서 ‘신앙’, ‘수행’, ‘포교’를 더욱 강력히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불교는 구제의 종교이고, 성취의 종교이고, 해탈의 종교이며, 상생(常生)의 종교입니다. 『법화경』에서는 이와 같은 내용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법화경』 「서품 방편품」 강술

 

나는 이렇게 들었습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 영취산에서 많은 제자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제자들은 사방에서, 부처님을 향하여 공양 공경하고 존중 찬탄하였습니다(供養恭敬 尊重讚歎).

 

이때 부처님께서는 모든 보살들을 위해서 대승경을 말씀하셨는데, 이는 보살을 가르치는 진리이며 부처님께서 매우 소중히 간직하는 법이었습니다(敬菩薩法佛所護念).

 

부처님께서 이 경을 다 설하시고 깊은 삼매에 들 때, 하늘에서는 온갖 꽃비를 내리며 대지는 여섯 가지 소리로 진동하였습니다. 이에 제자들은 말할 수 없는 환희와 경찬 속에서 부처님을 우러러보고 있었습니다.

 

이때 부처님께서는 미간 백호상으로부터 광명을 뿜어 동방 세계를 비추시었습니다. 제자들은 광명을 통해서 온갖 다양한 현상들을 아주 분명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佛放一光 我及衆會見此國界 種種殊妙).

 

그런데 제자들은 부처님께서 왜 이러한 광명을 비추시는지 그 까닭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대중을 대표하는 미륵보살이 문수보살에게 물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어떠한 인연으로 지금과 같은 광명을 비추십니까?”

 

이에 문수보살은, “과거 부처님을 미루어볼 때 『법화경』을 설하시기 위하여 이런 방광을 하신다”고 답변했습니다(今見此瑞 與本無異 是故惟忖 今日如來 當說大乘經 名妙法蓮華).

 

이때 부처님께서 삼매로부터 조용히 일어나시어 사리불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래의 지혜와 신통의 능력은 한량이 없어 중생은 알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래는 일찍이 많은 부처님을 친견하고 무량도법을 실천하여 모든 것을 성취했기 때문입니다.”

 

사리불은 부처님께 여래의 비밀한 최상법을 설해 주실 것을 거듭 세 번이나 간청하였습니다. 부처님은 사리불의 간청을 받고 설법하실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이때 부처님 제자 중 5천 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예배하고 물러갔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지금의 대중은, 지엽의 무리는 다 물러가고 오직 순실한 사람만 남았다” 하시고 『법화경』의 설법을 시작하시었습니다.

 

“이 묘법은 오직 부처님만이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여래는 오직 일대사 인연으로 이 세상에 출현했기 때문이다(唯以一大事因緣故로 出現於世). 일대사 인연이란 불지견(佛知見)을 중생에게 열어 주고, 보여 주고, 들게 하고, 깨닫게 하기 위하여(開示悟入) 이 세상에 출현했다(十方佛土中 唯有一乘法 無二亦無三 除佛方便說).” 이상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법화경』 「수기품」 강설

 

『법화경』은 ‘수기경’이라 할 정도로 수기에 대하여 많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법화경』 28품 중 앞의 9품은 『법화경』의 근본적인 뜻을 나타내는 부분이라고 연구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이 9품은 수기의 말씀이 그 주중을 이룹니다.

 

「서품 제1」에서는 일월등명불이 덕장보살에게 수기하고, 「비유품 제3」에는 석가모니불께서 사리불에게 수기하고, 「수기품 제6」에는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마하가섭, 대목건련, 수보리, 마하가전연 등 네 제자에게 수기하고, 「오백 제자 수기품 제8」과, 「수학무학인기품 제9」에서는 부루나와 나후라 등 많은 제자에게 수기합니다.

 

이 밖에도 경의 전체에 걸쳐서 무수한 제자들에게 수기를 합니다. 이렇게 『법화경』에서는 보살, 이승(二乘), 선인, 악인, 여인, 천인을 가리지 않고 수기합니다. 그러므로 법화경을 ‘수기경’이라 할 만할 정도입니다.

 

그러면 수기는 범어의 ‘비야까라나(Vyakarana)’로서 수기(授記), 수결(授決), 기설(記說) 등의 뜻이 있습니다. 수기는 쉽게 생각해서 예언, 선견, 선결에 해당합니다. 예를 하나 든다면, 부처님께서 마하가섭에게 수기를 주실 적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가섭이 내세에 많은 부처님을 받들어 공양 공경하고 존중 찬탄하여 불법을 선양하다가 최후신에 성불해서 불호는 광명여래(光明如來)요, 나라 이름은 광덕(光德)이요, 세월의 이름은 대장엄(大莊嚴)입니다. 여래의 수명은 12겁이며, 정법은 20겁입니다. 국토는 깨끗하여 더러움이 없고, 그 나라에는 보살과 성문들이 수없이 많으며, 불법을 방해하는 일이 없어서 비록 마군의 무리가 있다 하더라도 다 불법을 옹호하리라.”

 

이렇게 수기를 하는 데는 종교적으로 큰 의미가 있음을 알 수 있으나, 첫째는 제자들에게 ‘확신’을 주는 일입니다. 나도 불법을 믿으면 꼭 해탈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간직하게 하는 것이 수기입니다.

 

둘째로는 ‘희망’을 주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모든 불자들에게 수기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성불할 수 있다는 확실한 희망을 갖게 됩니다.

 

셋째로는 불자의 ‘대화합’을 이루게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대승·소승 불자들에게 다 성불한다고 수기하셨기 때문에 모든 불교의 길은 다 성불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방편임을 믿게 됩니다. 이에 불교도는 목적과 방편의 정신에서 화합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법화경』은 수기경이며, 대승·소승의 교리를 통일하는 중요한 경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법화경』 「법사품」 강술

 

「법사품」에서는 『법화경』의 설법을 듣고 잠깐이라도 기쁜 마음을 일으키는 사람은(一念隨喜者) 내세에 반드시 성불할 수 있음을 선언하시고 나서 네 가지 수행과 열 가지 공양(四種修行 十種供養)을 말씀하십니다.

 

네 가지 수행이란 (1) 『법화경』을 이해하여 항상 마음속에 간직하며(授持), (2) 『법화경』을 늘 읽고 외우며(讀誦) (3) 『법화경』을 다른 사람에게 알기 쉽도록 해설해 주며(解脫) (4) 『법화경』을 옮겨 쓰는 일이다(書寫). 이것이 『법화경』의 네 가지 수행입니다.

 

『법화경』의 전체를 다 이렇게 하면 그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지만 『법화경』 중에서 한 게송 한 구절(一偈一句)만이라도 네 가지 방법으로 수행한다면 지대한 공덕을 이루게 됩니다. 그리고 『법화경』에 공경심과 존중심을 일으켜 공양을 올리되 1. 꽃, 2. 향, 3. 보배, 4. 가루 향, 5. 바르는 향, 6. 사르는 향, 7. 비단 일산, 8. 깃발, 9. 책가위 등을 하며 10. 음악을 연주해 올리며 합장하여 공경하면 큰 원을 성취하게 됩니다(花, 香, 瓔珞,末香, 塗香, 燒香, 繒香, 幢香, 衣服, 伎樂, 乃至 合掌恭敬, 成就大願). 「법사품」에서는 이렇게 네 가지 수행과 열 가지 공양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법화경』은 참으로 오묘하고 광대한 진리를 말씀한 경전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이에게 『법화경』을 여법히 해설해 주는 사람은 여래가 보낸 여래의 일꾼으로서 여래의 일을 대행하는 사람입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후에, 『법화경』을 독송하고 공양하며 다른 이에게 해설해 주는 사람은 늘 여래와 함께 있는 사람이며, 언제나 여래의 보살핌을 받는 사람입니다(是人 與如來共宿 則爲如來 手摩其頭). 왜냐하면 『법화경』은 부처님께서 매우 소중히 여기는 진리이기 때문에 그러하며 『법화경』은 방편문을 통하여 최고의 진실상을 보이는 경전이기 때문에(此經은 開方便門하야 示眞實相이다) 그러합니다.

 

 

『법화경』 「관세음보살 보문품」 강술

 

무진의 보살이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의 옷을 벗고(偏袒右扁) 부처님께 합장하여 말씀을 올리었다.

 

“세존이시여! 관세음보살은 어떤 인연으로 그 이름을 관세음보살이라 합니까?”

이에 부처님께서 무진의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모든 중생이 고통을 받을 적에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일심으로 부르면(一心稱名) 관세음보살이 그 음성을 듣고 고통을 없애 주고 있습니다. 관세음보살의 명호(名號)를 늘 부르는 사람은 관세음보살의 위신력(威神力)으로 말미암아 7난(七難) 3독(三毒)을 소명하고 2구(二求)를 성취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이와 같은 내용으로 계속하여 설명하고 계십니다. 7난은 외부의 재난으로서 1. 화난(火難), 2. 수난(水難), 3. 풍난(風難), 4. 험난(險難), 5. 귀난(鬼難), 6. 옥난(獄難), 7. 적난(賊難)이며, 3독은 중생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1. 음욕(淫慾), 2. 분노(瞋), 3. 어리석음(愚癡)입니다.

 

이와 같은 외부의 재난과 내부의 업장이 관세음보살의 위신력, 자비력, 신통력으로 말미암아 다 소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구(二求)는 아들을 낳고자 하는 사람이나 딸을 낳고자 하는 사람이 관세음보살님께 예배 공양하면 지혜로운 남자와 단정한 여식을 낳습니다.

관세음보살은 이러한 능력이 있기 때문에 중생이 관세음보살님께 귀의하여 예배 공경하면 무한한 복덕과 이익을 성취함을 부처님께서는 강조하고 계십니다.

 

이때에 무진의 보살은 또 부처님께 질문을 합니다.

“세존이시여! 관세음보살은 이 사바세계에서 어떤 방법으로 중생을 위하여 설법을 하시며, 그 방편의 능력은 어떠하십니까?”

 

이러한 질문을 받으신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선남자여! 관세음보살은 부처님에 의하여 구제될 사람에게는 곧 부처님 몸을 나타내어 설법하며, 벽지불(퇳支佛, 獨覺, 獨聖)에 의하여 구제될 사람에게는 수행자의 몸을 나타내어 설법합니다. 뿐만 아니라 대장군(大將軍)에 의하여 구제될 사람에게는 대장군의 몸을 나타내어 설법하며, 왕(王)에 의하여 구제될 사람에게는 왕의 몸을 나타내어 설법합니다.

 

그리고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에 의하여 구제될 사람에게는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의 몸을 나타내어 설법하며, 거사(居士), 부인(婦人), 동남(童男), 동녀(童女)에 의하여 구제될 사람에게는 거사, 부인, 동남, 동녀의 몸을 나타내어 설법합니다.

 

무진의여! 관세음보살은 이와 같은 공덕을 성취해서 온갖 모습으로 일체 세계에 나타나 중생을 해탈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중생은 응당히 일심으로 관세음보살을 공양하고 공경해야 할 것입니다. 관세음보살은 두렵고 위급한 환란 속에서 안정과 기쁨을 베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관세음보살을 가리켜 ‘기쁨을 베푸는 분(施無畏者)’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관세음보살에 대하여 말씀을 들은 무진의 보살은 부처님께 말씀을 올리기를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 관세음보살님께 공양을 올리겠습니다” 하고 자신의 목에 장식했던 보석 목걸이를 풀어서 관세음보살께 올리었습니다.

 

이에 관세음보살께서는 무진의 보살의 공양을 받아 2분으로 나누어 1분은 석가모니 부처님께 올리고, 1분은 다보여래 부처님께 올리었습니다.

 

관세음보살님께 일심으로 명호를 외우고 예배 공양하며 항상 발원하고 항상 우러러 받드는 것이(一心稱名 禮拜供養 常願常瞻仰) 관음 신앙입니다.

 

 

 

『법화경』의 영험

 

『법화경』은 불가사의한 진리를 말씀하신 경전이기 때문에 이 경전을 봉독하거나 서사하거나 강설하는 사람은 다 불가사의한 공덕을 이루게 됩니다.

 

양산 통도사에는 주옥같이 쓰여진 금자 『법화경』이 열네 책으로 한 질이 되어 모셔져 있습니다. 이 『법화경』은 조선조 고종 15년에 시작하여 17년(1880)에 완성한 것으로 범어사의 정진(正眞) 스님께서 화주가 되고 궁중에서 소요 경비를 많이 부담하여 통도 백련암에 사경 도량을 설치해 백련암 주지이신 오성 우축(五聲右竺) 스님이 도감을 맡으시어 모든 일을 주관하셨으며 조계산 선암사에 계시는 경운 원기(驚雲元寄) 스님께서 신필의 비법으로 일자 일획을 천금같이 쓰신 아주 보기 드문 법보입니다.

 

이 『법화경』을 서사하여 모시게 된 인연과 영험은 다음과 같습니다. 범어사의 정진 스님은 울산 손유상 씨의 자제였습니다. 어린 나이에 부친을 여의고 입산하여 불제자가 된 지 10여 년이 지난 서기 1878년 5월 28일이었습니다.

 

저녁에 홀연히 꿈을 꾸니 한 노스님이 부르면서 어디로 함께 가자는 것이었습니다. 따라가서 어느 곳에 이르렀는데 잠깐 사이에 노스님은 보이지 않고 자신이 서 있는 곳은 금방 바다의 섬으로 변했고 끝없이 펼쳐진 파도의 물결은 무척 거칠었습니다.

 

그때 문득 한 사람이 앞에 서더니 정진 스님께 고향과 성명을 물었습니다. 그래서 사실대로 대답하니 그 사람이 길게 한숨을 쉬면서 말하기를 “너는 바로 내 아들이다. 너와 이별한 지가 여러 해가 되었지만 이승과 저승의 길이 달라 만날 수가 없었으나 오늘 이렇게 만나고 보니 기쁜 마음 그지없다” 하면서 말을 마치고는 통곡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정진 스님의 슬픔은 한이 없었으나 그 음성과 용모가 생시와 다름이 없어서 다시 여러 사연을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평생의 했던 일과 작고한 날짜 등을 환히 알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정진 스님은 감정을 누를 길이 없어 그저 소리내어 울기만 하였습니다.

 

그때에 아버지는 오히려 위로하기를 “선악의 과보는 스스로 지어서 스스로 받는 것이니 운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이곳은 염부제 동쪽에 있는 요사지옥이다. 나는 여기서 한없는 고통을 받고 있으니 어찌 말로써 다할 수 있으랴. 너의 종숙과 같은 마을의 박문택이란 사람도 이곳에 있다. 내가 처음 여기에 왔을 때 한 사람이 극락에 간 예가 있는데 중국 소주자사로 있던 정수익이란 사람이다. 그는 그의 아들 태을이란 사람이 『법화경』을 천 번 읽은 공덕으로 극락에 갔다. 그러니 너도 나를 위해서 『법화경』을 한 부 쓰고 만 번만 읽으면 내가 이곳을 떠나 극락세계에 갈 수 있으니 너는 부디 노력해 주기 바란다.”

 

이렇게 말하고는 보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정진 스님이 놀라 깨고 보니 너무나 생생한 꿈이라 그 말씀 말씀이 귀에 쟁쟁 울리는 것이었습니다. 정진 스님은 속가의 어머니께 이 말씀을 드렸습니다. 어머니도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저승에 계신 분의 부탁을 꼭 들어주려 하나 단 집안 살림이 넉넉지 못하여 단독으로 할 수 없었습니다.

 

이에 부처님의 뜻도 여럿이 함께 제도를 받는 데 있으므로 불자들에게 동참을 권유하여 이 불사를 경영하게 되었습니다. 3년이 지난 가을에 비로소 『법화경』을 서사하려고 할 무렵 산에서 족제비 한 마리가 방에 들어왔는데 순하기가 가축과 같았습니다. 그래서 털을 취하여 붓을 맸습니다. 그런데 이 붓 한 자루로 『법화경』 한 부를 다 써도 붓이 닳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보기 드문 기특한 일입니다. 이것이 어찌 『법화경』의 위신력으로 된 일이 아니겠습니까(『법화삼부경』, 서울 사자암 刊).

 

이 이야기는 통도사 금자 『법화경』을 이룩하게 된 내력을 기록한 전문을 번역한 것입니다. 여기서 보신 바와 같이 선악의 인과는 분명하고 『법화경』의 위신력은 신비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다른 많은 대승 경전들처럼 『법화경』도 다른 사람의 고통을 제거하고 기쁨을 가져다주는 보살행의 실천 속에서 자신의 깨달음을 구합니다.

 

우리 불자들은 이러한 『법화경』을 통해서 많은 업장을 소멸하고 큰 뜻을 성취하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출처 : 불 교 학 당
글쓴이 : 無盡 (정현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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