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碧巖錄)> 제55칙은 도오원지(道吾圓智)화상과 제자 점원(漸源)이 어떤 집을 방문하여 문상하면서 나눈 선문답을 다음과 같이 수록하고 있다.
도오화상이 제자 점원스님과 함께 어느 집에서 조문을 하게 되었다. 점원이 관을 두드리며 말했다. “살았는가? 죽었는가?” 도오화상이 말했다. “살았다고도 말할 수 없고, 죽었다고도 말할 수 없다.” 점원이 말했다. “어째서 말할 수 없습니까?” 도오화상이 말했다. “말할 수 없지, 말할 수 없어.” 절로 돌아오는 길에 점원이 말했다. “화상은 저를 위해서 어서 말하세요. 말하지 않으면 화상을 때리겠습니다.” 도오화상이 말했다. “때릴려면 때려라! 그러나 말할 수 없다.” 점원은 곧장 후려 쳤다. 그 뒤에 도오화상이 입적하자 점원은 석상화상께 가서 이 이야기를 했다. 석상화상은 말했다. “살았다고도 말할 수 없고, 죽었다고도 말할 수 없다.” 점원이 말했다. “어째서 말할 수 없습니까?” 석상화상이 말했다. “말할 수 없지, 말할 수 없어.” 점원은 그 말을 듣고 곧장 깨달았다.
점원은 어느 날 삽을 들고 법당 안에서 동쪽에서 서쪽으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오고가자, 석상화상이 말했다. “무엇하는가?” 점원은 말했다. “스승(先師)의 영골(靈骨)을 찾습니다.” 석상화상이 말했다. “거대하게 밀려오는 파도가 까마득히 하늘까지 넘실거리는데, 무슨 스승의 영골을 찾겠다는 것인가?” 설두가 착어했다. “아이고! 아이고!” 점원이 말했다. “온 힘을 다해서 부딪쳐 봅니다.” 태원의 부상좌가 말했다. “스승의 영골이 아직 남아 있네.”
擧. 道吾, 與漸源, 至一家弔慰. 源, 拍棺云, 生邪死邪. 吾云, 生也不道, 死也不道. 源云, 爲什不道. 吾云, 不道, 不道. 回至中路, 源云, 和尙, 快與某甲道. 若不道, 打和尙去也. 吾云, 打卽任打, 道卽不道. 源, 便打. 後, 道吾遷化. 源, 到石霜, 擧似前話. 霜云, 生也不道, 死也不道. 源云, 爲什不道. 霜云, 不道不道. 源, 於言下有省. 源, 一日將子, 於法堂上, 從東過西, 從西過東. 霜云, 作什. 源云, 覓先師靈骨. 霜云, 洪波造渺, 白浪滔天. 覓什先師靈骨.(雪竇著語云, 蒼天蒼天.) 源云, 正好著力. 太原孚云, 先師靈骨猶在.
이 일단의 선문답은 <조당집> 제6권, <전등록(傳燈錄)> 제15권 점원장에 전하고 있는데, 이야기는 약간 다르다. 도오원지(道吾圓智. 769~835)화상은 약산유엄선사의 법을 이은 제자로서 그의 전기는 <조당집> 제5권, <전등록> 제14권, <송고승전(宋高僧傳)> 제11권 등에 전하고 있다. 점원중흥(漸源仲興)선사에 대한 생몰연대는 알 수 없지만, 도오화상의 법을 이은 선승이다.
어느 날 도오화상은 제자 점원과 함께 신도 집에 조문을 하게 되었다. 점원이 관을 두드리며 도오화상에게 질문했다. “관속의 사람은 살았습니까? 죽었습니까?” 육체적인 현상으로 볼 때 생사가 있고, 관 속의 사람은 죽었다고 할 수 있지만, 선문답의 주제로 하는 법신의 본체상에서 볼 때 생사와 생멸이 없다. 그래서 도오화상은 “살았다고도 말할 수 없고, 죽었다고도 말할 수 없다”고 생사의 차별에 떨어지지 않는 법문을 친절하게 말했다. 점원은 도오화상의 말뜻을 알지 못하고 “어째서 말씀하셔서 가르쳐 주시지 않습니까”라고 다그친다.
도오화상은 역시 “말할 수 없지 말할 수 없어”라고 했다. 법신의 존재 그 자체를 생사와 생멸의 차별심으로 판단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중생이다. 산이 높고 물이 흐르는 제법의 본체를 생사로 판단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도오화상은 말할 수 없다고 한 것이다. 이 문제를 완전히 체득하지 못한 점원은 절로 돌아오는 길에 도오화상에게 말했다. “화상은 저를 위해서 어서 말하세요. 말하지 않으면 화상을 때리겠습니다.” 점원은 생사대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승에게 필사적인 결단으로 가르침을 요구하고 있다. 도오화상은 “때릴려면 그대 마음대로 때려라. 그러나 말할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러자 점원은 도오화상을 곧장 후려 쳤다.
‘평창’에는 이 사건의 전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도오화상은 이처럼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도록 그를 지도했으나 점원은 깨닫지 못했다. 도오화상은 맞은 뒤에 점원에게 말했다. ‘그대는 이곳을 떠나도록 하라! 절의 책임자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그대에게 화가 미칠까 걱정스럽다’ 남모르게 점원이 절을 떠나도록 했다. 점원은 그 뒤 작은 절에서 행자가 외우는 <관음경(觀音經)>의 ‘비구의 몸으로 제도를 받을 자에겐 비구의 몸을 나타내어 설한다’는 구절을 듣고 곧장 크게 깨치고, ‘내가 당시 스승의 말씀을 잘 모르고 나쁜 짓을 했구나. 생사의 일이 언구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몰랐구나!’라고 말했다. 점원이 불법의 대의를 깨닫고 생사문제를 해결한 뒤에 스승에게 자신의 견해를 말하려고 했지만 스승이 입적한 뒤였다.”
점원은 사형인 석상경제(石霜慶諸. 807~888)선사를 찾아가서 이 이야기를 제시하며 점검해 줄 것을 청했다. 석상선사 역시 도오화상의 법을 이은 선승으로, 그의 전기는 <조당집> 제6권, <전등록(傳燈錄)> 제15권 등에 전하고 있는 것처럼, 담주 석상산에서 교화를 펼쳤다. 석상선사도 “살았다고도 말할 수 없고, 죽었다고도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점원은 “어째서 말할 수 없습니까?”라고 다그쳤다. 석상선사 역시 도오화상의 말과 똑같이 “말할 수 없지, 말할 수 없어”라고 했다. 점원은 그 말을 듣고 곧장 깨달았다. 많은 세월 불법의 대의를 체득하여 생사대사의 일대사를 해결한 것이다. 이 공안은 여기서 한 단락을 맺는다.
점원은 어느 날 삽을 들고 법당 안에서 무엇을 찾고 있는 시늉을 하면서 동쪽에서 서족으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왔다갔다하자 석상선사가 “자네는 도대체 무엇하고 있는가?”라고 점원의 심중을 떠보려고 물었다. 점원은 “스승(先師)의 영골(靈骨. 법신)을 찾습니다”라고 말했다. 법당에서 입적하신 도오화상의 영골을 찾아 마치 삽으로 파내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자 석상화상은 “뭐야! 여기는 거대하게 파도가 몰아치는 큰 바다 한 가운데야! 무슨 스승의 영골을 찾겠다는 것인가?”라고 말했다.
즉 온 대지가 마치 하나의 파도와 같이 물거품속인에 선사의 영골을 어디서 찾으려 하는가? 선사의 영골이라면 언제 어디라도 눈에 가득 귀에 가득 함께하고 있는데, 굳이 삽을 들고 찾으려고 할 필요가 있는가? 석상은 점원이 깨달음의 경지에 안주하고 있는 것을 타파하려고 한 말이다. 설두화상은 이 공안을 제시하면서 “아아! 아아! 통탄할 일이야!”라고 착어하고 있다. 설두는 왜 하늘을 쳐다보며 탄식하는가. 온 천지 가득찬 영골을 찾는 점원에 대한 탄식인가. 아니면 석상의 친절한 가르침에 대한 것인가. 원오는 “너무 늦었다”라고 착어하고 있다.
점원이 천화한 도오화상의 영골을 찾는 일이 너무 늦은 일이라고 한 것인가. 점원은 석상의 말에 대하여 “찾을 수 없는 영골을 찾기 위해서 온 힘을 다해 애쓰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뒤에 설봉의존의 제자인 태원(太原)의 부상좌(孚上座)가 이 선문답에 대하여 “도오화상의 영골이 아직 남아 있네”라고 평했다. 본원 자성의 법신사리는 천지와 우주에 하나 가득 충만해 목전에 분명히 현전하고 있다는 말이다.
설두는 다음과 같이 게송으로 읊고 있다. “토끼와 말은 뿔이 있고, 소와 염소는 뿔이 없다” 도오화상이 ‘말 할 수 없다’는 말을 읊은 것으로, 관 속에는 사인(死人)인데, 살았다고도 죽었다고도 말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미세하게 가는 터럭도 끊었네.” 아주 미세한 터럭도 끊었다고 하는 것은 먼지 하나 없는 본래 무일물의 경지로서 생사망념의 차별심을 초월한 입장이다. 구름 한점도 없는 창공, 절대의 경지는 생사망념을 초월한 본체의 입장이기에 비교할 것도 없는 것이다.
일체를 초월한 절대 평등의 경지에 ‘산은 높이 솟아 있다’ 미세한 터럭도 끊어진 절대 평등의 세계가 그대로 산이 높이 솟아 있는 차별세계가 엄연하게 존재하고 있음을 읊고 있다. 생사의 본체인 법신은 없다고 하면 형상도 아무 것도 없는 것이지만, 있다고 하면 분명하고 역역하게 전부 들어나고 있다. 태원 부상좌가 “황금빛 영골이 지금도 남아 있다”고 말하고, 석상은 “바닷물이 파도가 하늘까지 넘실거린다”고 한 것처럼, “찾을 곳이 없다.” “신발 한 짝을 가지고 서천으로 돌아가다 잃어버렸네.” 달마가 웅이산에서 장례 치른 뒤에, 관을 열어보니 유해도 없고, 인도로 돌아갔다지만, 그의 행방도 알 수 없다는 고사로 게송을 읊고 있다.
성본스님/동국대 불교문화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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