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碧巖錄)> 제57칙은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다’는 말을 주제로 다음과 같은 선문답을 전하고 있다.
어떤 스님이 조주화상에게 질문했다. “‘지극한 도는 어려움이 없다. 오직 간택하지 않으면 된다’라고 했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간택하지 않는 것입니까?” 조주화상이 말했다.“천상에나 천하에 오직 내가 홀로 존귀한 존재이다.” 스님이 말했다. “이 말 역시 간택입니다.” 조주화상이 말했다. “이 멍청한 놈아! 어느 곳이 간택이란 말이냐!” 그 스님은 말을 하지 못했다.
擧. 僧問趙州, 至道無難, 唯嫌揀擇, 如何是不揀擇. 州云, 天上天下唯我獨尊. 僧云, 此猶是揀擇. 州云, 田庫奴, 什處是揀擇. 僧, 無語.
본칙의 선문답은 <신심명(信心銘)의 첫 구절을 인용하여 선문답의 주제로 삼고 조주화상에게 질문한 것이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벽암록> 제2칙에도 <신심명>의 ‘지도무난(至道無難)’을 화제로 선문답을 한 공안을 제시하였고, 또한 58칙, 59칙에도 똑같이 <신심명>의 ‘지도무난(至道無難)’을 주제로 한 선문답을 <조주록>에서 인용하여 제시하고 있다.
본칙에도 어떤 스님이 조주화상에게 “‘지극한 도는 어려울 것이 전혀 없다. 오직 취사선택하고 간택하는 분별심이 없으면 지도의 경지’라고 했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취사선택하고 간택하지 않는 것입니까?”라고 질문하고 있다.
<신심명>에서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다’고 주장할 수 있게 된 것은 지도의 경지를 체득하기까지 많은 불법공부와 수행으로 어려운 문제들을 모두 극복한 차원에서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불법의 대의와 어려운 과제(難題)를 완전히 체득했기 때문에 지도의 원리를 통달하고 보니 지도의 경지가 지극히 간단명료하고 쉽다는 사실을 파악했기 때문에 그렇게 설할 수가 있는 것이다. 중국의 고전과 선어록에 ‘도는 가까이 있다.’ ‘눈에 부딪치는 것이 모두 도’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도, 도를 찾아서 여기 저기 멀리 헤매며 많은 구도의 노력과 고통과 시간을 극복한 사람이 도를 체득한 뒤에 도는 가까이 있는데 멀리서 찾아 헤맨 사실을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원오는 ‘수시’에 백운수단(1025~1072)의 법문을 인용하여 “지극한 대도인 만법의 진실을 체득하기 전에는 만물과 매사가 의문 덩어리로 뭉쳐서 어디를 가나 은산(銀山)처럼 접근하기 어렵고, 철벽(鐵壁)처럼 오르기 힘들어 전후좌우로 나를 가로막고 있어 뚫고 나가기 어렵다. 그러나 깨닫고 보면 자기 자신이 원래 견고한 절대의 존재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은산철벽(銀山鐵壁)은 은과 철은 견고하여 뚫기 어렵고, 산과 벽은 험준하여 접근하기 어려운 것을 말한다. 즉 범정(凡情)과 중생의 분별심으로는 도달하기 어려운 것을 비유한 표현인데, 불가사의한 불심의 경지를 사량분별하는 중생심으로는 파악할 수 없다. <신심명>에서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다.
다만 사량분별하고 취사선택하는 간택이 없다면 지도의 경지’라는 말은 마조가 “도는 수행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번뇌 망념에 오염되지 않도록 하라”는 설법에 의거한 것이다. 사량분별하는 차별심과 취사선택하는 중생심에 오염되지 않은 마음을 마조는 평상심이라고 하고, “평상심이 도”라고 주장하고 있다. 조주화상도 처음 남전화상을 참문하고 “무엇이 도입니까?”라고 질문하자, 남전이 마조의 법문을 체득하여 “평상심이 도”라고 대답하고 있다.
평상심은 번뇌 망념이 없는 무심(無心)이기에 “무심이 도”라고 한결같이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지극한 도는 평상심으로 일상생활하는 그 가운데 무심의 경지에서 실현되는 것이지 신비한 존재가 아니다. 구체적으로는 지금 여기서 자기 자신이 평상심으로 지혜로운 삶을 살고 있는 매사가 깨달음의 생활로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질문한 스님은 “지도의 경지를 체득하려면 오직 간택하는 중생심이 없어야 한다”고 했는데, 지도의 경지를 체득하기 위해 취사선택하고 분별하지 않도록 하는 ‘불간택(不揀擇)’의 구체적인 수행방법을 질문하고 있다. 생사와 열반을 간택하고, 번뇌와 보리를 간택하고 시비득실을 간택하며 애증호오(愛憎好惡)를 간택하며 사는 중생으로 이러한 간택을 초월하는 방법을 묻고 있는 것이다. 원오도 “쇠가시는 많은 사람들이 삼키지 못한다”라고 착어하고 있는 것처럼, 쉬운 질문이 아니다. 지혜의 안목없이 함부로 이 질문을 쉽게 받아들이면 가시가 목에 걸리게 된다.
조주화상은 “천상에나 천하에 오직 내가 홀로 존귀한 존재(天上天下唯我獨尊)”라고 대답했다. 이 말은 세존이 출생하여 한 말로 세존이 홀로 유일하게 위대하고 귀중한 존재라는 독선적인 말이 아니라,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일체의 모든 사물 하나하나가 각기 모두 절대적인 가치를 가진 유일하고 위대한 존재라는 의미이다. 개는 개로서, 고양이는 고양이로서 절대 유일한 존재이다. 조금도 어렵지 않은 지도의 절대적인 모습이 아닌 것은 하나도 없다. 천상천하 시방법계에 충만하여 다른 어떤 무엇과 대비할 것도 없이 간택이 끊어지고 일체를 초월한 절대존재의 입장을 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조주는 이 한마디로 일체의 사량분별과 간택을 차단하고 범성(凡聖) 증애(憎愛)와 비시득실의 분별심을 초월한 불간택의 경지를 제시하고 있다.
원오는 조주의 대답에 대하여 “금강으로 주조한 철권(鐵券)”이라고 착어했다. 이 말은 불조(佛祖)도 열 수 없는 한 장의 철권으로 가장 견고한 금강으로 주조한 것이다. 즉 금강과 같이 견고한 틀은 사람 모두가 지니고 있는 것인데, 사람들이 그러한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지도(至道)의 보물을 지금 조주화상이 다시 끄집어내 주었다고 평하고 있다.
질문한 스님은 조주화상에게 인사를 하고 물러갔다면 좋았을 텐데, 지혜의 안목이 없었기 때문에 “화상의 말씀도 역시 간택인 것”이라고 반문했다. 원오는 “과연 예상했던대로 조주의 말에 놀아나고 있다.”라고 착어하고 있는 것처럼, 스님은 ‘아(我)’라는 말이 타(他)와 상대적인 입장이기 때문에 간택이라고 하고, ‘홀로(獨)’는 대중(衆)과, ‘존귀(尊)’함이 천박(卑)함과 간택한 말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아니면 지도의 경지나 절대의 경지를 언어로 표현하면 모든 것이 간택에 떨어진 것이 아닌가? 라는 입장에서 반문한 것이라고 할 수있다.
조주화상은 “이 멍청한 촌놈아! 어디에 간택이 있다는 말이냐!”라고 나무랐다. 조주화상은 불법의 지혜와 안목도 없는 이 스님을 심하게 욕하며 꾸짖는 한마디인 것이다. 질문한 스님은 한마디 대꾸도 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제법 뛰는 토끼처럼 날카롭게 질문하였지만, 안목없는 졸승이고 보니 결국 기가 죽어서 무슨 말을 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설두화상은 다음과 같이 게송으로 읊고 있다. “바다처럼 깊고, 산과 같이 견고하네.” 이 말은 조주화상이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과 ‘이 촌놈’이라는 조주화상의 대답은 지혜가 바다처럼 깊고 확고부동한 모습이 산과 같이 동요됨이 없이 팔풍(八風)이 불어와도 움직임이 없이 당당한 모습을 칭찬한 게송이다. “모기와 등에(파리)가 허공의 사나운 바람을 희롱하네.” 이 말은 <장자(莊子)>의 우화에 의거하여 조주화상에게 과감하고 무모하게 질문한 스님에 대하여 읊은 게송이다. 즉 모기나 파리와 같은 벌레는 바람이 없을 때는 여기 저기 잘 날아 다니지만 허공에 태풍이 불면 어디로 날려갔는데 알 수가 없는 존재인데, 질문한 스님은 태풍과 같은 조주를 만난 모기와 파리와 같은 존재가 되었다.
“땅강아지와 개미가 무쇠기둥을 흔드네.” 이 말도 <회남자(淮南子)>의 고사에 의거하여 질문한 스님을 비판한 말인데, 땅강아지와 개미같이 미약한 지혜(스님)로 조주와 같은 부동의 쇠기둥을 움직이려고 하는 무모한 짓을 한 것이다. “분간하고 선택한다는 것. 난간에 매단 헝겊북 이로다.” 조주는 간택도 없는 지도의 세계에서 헝겊북을 아무리 쳐도 한결같이 반응없는 것처럼, 무심의 경지에서 살고 있다고 읊고 있다.
성본스님/동국대 불교문화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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