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매성취

[스크랩] [선정바라밀] 11. 실제 선정의 성취 - <끝>

수선님 2018. 9. 2. 11:22



구주심 중에서 아홉 번째인 지주심을 성취하였을 때 미세한 혼침과 도거가 완전하게 소멸되고,

노력없이 오랫동안 삼매의 상태에 머물 수 있더라도 이것이 비록 선정과 같은 바탕이기는 하지만

실제의 선정은 아니다.

 

실제의 선정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등지를 다시 닦음으로써 더욱 익숙해져서

몸과 마음이 경안한 상태에서 특별한 희열이 일어나야 한다.

 

경안에는 마음의 경안과 몸의 경안, 이 두가지가 있다.

이 둘 중에서 마음의 경안이 먼저 일어나지만, 희열은 몸의 경안에서 먼저 일어난다.

 

이것은 不善道를 취하는 몸의 나쁜 氣가 사라져서 매우 편안한 상태의 느낌을 받으며,

마치 삭발하지마자 손을 대면 뜨겁게 느껴지는 것과 같고 머리마저도 무겁게 느껴지는 것이다.

 

모든 불선을 취하는 것이 사라졌을 때 마음의 경안이 일어나며,

그럴 때 갑자기 마음의 번뇌를 일으켜  마음대로 선행을 행하면 안된다.

 

이러한 경안이 생김으로 몸의 경안을 이끌어주는 능동적인 氣가 몸에 퍼져서

몸의 불선도를 취하는 나쁜 것들이 떨어지며,

몸이 아무런 걸림 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선행을 할 수 있으므로,

마치 솜처럼가벼운 몸의 경안이 일어난다.

 

이러한 과정에 의지하여 촉(觸)이 매우 편안한 그 자체에서 몸에 경안의 희열이 일어나는 것을 크게 경험한다.

계속해서 삼매의 상태에 들어 있으면서 자신의 몸에 아무런 느낌이 나타나지 않고,

몸도 감수경에 흡수되어서 마음속 경안의 희열이 크게 일어나는 것으로 마음이 기쁨의 바다로 가득 차게 되며,

대상에 머물 수 없는 것과 같은 상태에 이른다.

 

여기서 마음이 경안의 희열로 기쁨의 바다로 가득 찼던 상태가 조금씩 가라앉으면서 기쁨이 줄어드는 것에 의해

마음이 대상에 매우 단단하게 머무는 삼매는 이와 상동(相同)하는 경안의 흔들림 없는 경지인

不動地에 이르는 동시에 선정의 첫 번째로서 초선의 경지인 自由地를 증득하는 선정을 깨닫는 것이다.

 

이는 세간과 세간에서 벗어남의 많은 깨우침을 얻기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되는 道이므로 자유지라고 한다.

 

 

초선에서부터 차례로 여덟가지 선정(색계 4선, 무색계 4선)의 몸을 성취하게되면 선정이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이 크게 필요하지 않은 것은 선정의 몸으로 태어나야 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편 외도들은 비상비비상처천의 선정을 얻는 것을 해탈에 이른 것으로 인정하지만,

그것만으로 윤회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는 삼매에 수년 동안 들어 있으면서도 자신의 떨어진 옷을 쥐가 갉아먹은 것을 나중에 본 후

크게 화를 냄으로써 선정이 사라져서 삼악도에 떨어질 수 있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하여 선정이 잘 닦아지면 벽에 붙은 미세한 먼지의 숫자를 셀 정도로 마음이 밝으며,

밖에 色을 비롯한 五境과 삼독, 남성과 여성에 대한 열가지의 어떤 상징들이 나타나더라도

이들에 대한 허물을 기억하여 좋아하지 않으며, 번뇌가 비록 생기더라도 미약해서 힘이 없다.

 

무엇이든 안주하는 힘이 단단하여 잠조차도 선정의 상태로 바꾸는 등의 이득이 많다.

 

 

요즈음 큰 가르침에 의지하지 않고, 작은 부분에만 의지하여 깨칠 수 있다는 견해를 갖고 있는 이들이 있는데

그러한 방법으로는 이와 같은 공통적인 완벽한 선정을 깨우치기가 힘들다.

 

마하무드라에서 말하기를 마음의 본성을 본다고 하는 것 등은 속제 차원의 마음을 보는 것 뿐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대단한 수행이라고 생각하더라도 이는 놋그릇 덩어리를 황금으로 관상하는 것과 같다.

 

이는 삿된 길로 가는 것 밖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혼침을 쌓는 것을 선정이라고 착각하여 닦는 것은 높은 선정의 세계에 태어나는 원인마저 될 수가 없다.

오히려 그것은 축생으로 태어나는 원인이 된다.

 

그러므로 출리심, 보리심, 올바른 견해, 이 세가지 道 중에서 한 가지에라도 의지하지 않는 것은 메마른 지혜로

마음의 실체가 색깔과 모양이 없다는 것을 글로만 이해해서 과거에 쌓았던 업을 완전히 없애지 못한 채

미래에 일어나는 일들을 조금 알아차리는 정도의 수준으로 수행하는 것과 같은데

이는 인생을 낭비할 뿐 선정의 어떤 경지도 닦는 것이 아니다.

 

보리심, 출리심, 올바른 견해, 삼보에 귀의함 등 차례대로 대승의 길과 해탈의 길,

불교 수행에 입문하는 길 등 올바른 길로 수행해야 한다.

 

이러한 바탕 없이 마음의 실체는 밝고 비어 있으며 집착이 없다는 등을 알아차리는 정도의 깨우침만으로는

아집에 대한 아무런 치료제가 될 수 없으므로 이것은 외도의 견해로 변할 위험이 있다.

 

그러한 수준 낮은 도를 좋게 여기지 말고, 완벽한 도를 살펴서 알아차려야 한다.

 

 

 

 

 

 

[선정바라밀] 11. 실제 선정의 성취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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