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계(菩薩戒)

수보살계법서(受菩薩戒法序) 9 - 보리의 행을 행하라.

수선님 2018. 9. 9. 11:45

수보살계법서(受菩薩戒法序) 9

 

故(고)로 經云(경운)
非少福衆生(비소복중생)으로 而得生彼(이득생피)라하니
何如大小俱運(하여대소구운)하며 權實兼行(권실겸행)하야
廣備資糧(광비자량)하야 萬善熏發(만선훈발)하야
一心決定(일심결정)하야 可趍蓮臺(가추연대)리오


此論受戒而破者(차론수계이파자)는
或有頓持(혹유돈지)하며 或有漸持(혹유점지)하니
若但令一門念佛往生(약단령일문염불왕생)인댄 則九品虗設(즉구품허설)이요
上品大乘(상품대승)은 孤然可棄(고연가기)니
從上諸佛(종상제불)이 不合制戒(불합제계)와 及禪定多聞(급선정다문)이요
但說一門(단설일문)하야 以度群品(이도군품)하니라


그러므로 경전에 말씀하였다.
“복이 없는 중생은 그곳에 태어나지 못한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대승적 수행과 소승적 수행을 함께 운용하며, 방편과 실법을 겸하여 행해서,
양식이 될 온갖 수행을 널리 갖추고 만 가지 선업이 드러나게 하여,
한 마음이 결정되어서 극락세계의 연화대에 옮겨가는 것과 어떻게 같을 수 있겠는가.

이 서문에서 이야기한 보살계를 받고 파계하는 사람은
혹은 한꺼번에 가지는 사람도 있고 혹은 차츰 차츰 가지는 사람도 있으니
만약 다만 한 문으로만 염불해서 왕생하게 한다면 구품이라는 말이 허설이다.
상품대승은 고루하여 버려야할 것이다.
그렇다면 과거의 모든 부처님이 계와 선정과 다문(多聞)을 제정하지 않고
다만 한 가지 문만을 설해서 중생들을 제도했어야 하리라.

 

 

天台教云(천태교운)
以八教網(이팔교망)으로 撈人天魚(노인천어)라하니
有頓有漸(유돈유점)하며 不定秘密(부정비밀)과 藏通別圓(장통별원)으로
如是接機(여시접기)하되 尚不得一(상부득일)이니
且一網孔(차일망공)이 如何張鳥(여하장조)하며
一士夫(일사부)가 如何治國(여하치국)이리요

천태교(天台教)에세 말하기를,
“여덟 가지 가르침의 그물로 사람과 천신의 고기들을 다 건진다.”라고 하였다.
돈교, 점교, 부정교, 비밀교, 장교, 통교, 별교, 원교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중생들을 가르쳐도 오히려 하나도 얻지 못할 수가 있다.
그물 구멍 하나가 어떻게 새를 잡을 수가 있으며
한 사람의 지도자가 어떻게 나라를 다스릴 수 있겠는가.

 

 

諸佛無有定法故(제불무유정법고)로 號阿耨菩提(호아누보리)라
機病不同(기병부동)하고 法藥有異(법약유이)하야
醫不專散(의부전산)이요 天不長晴(천부장청)이라
或有聞法悟者(혹유문법오자)하며 或有坐禪悟者(혹유좌선오자)하며
或有念經得度(혹유념경득도)하며 或有受戒證眞(혹유수계증진)하니
諸佛大意(제불대의)가 以可度爲懷(이가도위회)라
設不可度者(설불가도자)는 說眞實法(설진실법)하야도 亦不得入(역불득입)이요
若可度者(약가도자)는 說虗妄法(설허망법)이라도 亦得超彼(역득초피)니라

모든 부처님들은 고정된 법이 없기 때문에 “최상의 깨달음”이라한다.
사람들의 병이 같지 않고 가르침의 약도 다르다.
의사는 오로지 가루약만 쓰지 않고 하늘은 늘 맑지만은 않다.
혹 어떤 이는 법문을 듣고 깨닫는 사람도 있고,
혹 어떤 이는 좌선을 하여 깨닫는 사람도 있다.
혹 어떤 이는 경전을 읽어서 깨닫는 사람도 있고,
혹 어떤 이는 보살계를 받아서 진리를 증득하는 사람도 있다.

모든 부처님들의 큰 뜻은 중생을 제도하는 것으로써 본의를 삼는다.
만약 제도할 수 없는 사람은 진실한 법을 설해도 또한 불법에 들어가지 못하고
제도할 수 있는 사람은 거짓 법을 설해도 또한 저 언덕에 오를 수 있다.

 

 

故(고)로 佛言(불언)하되
若以虛妄得度者(약이허망득도자)인댄 我亦妄語(아역망어)라하니라
菩薩(보살)이 修六度萬行(수육도만행)이 如乘死屍過海(여승사시과해)하며
亦如囚禁(역여수금)이 廁孔得脫(측공득탈)이라
終不定一法是(종부정일법시)며 定一法非(정일법비)요
乃至斥妄謀眞(내지척망모진)과 捨此取彼(사차취피)가 並是執縛自繩(병시집박자승)이라
疑網所籠(의망소롱)하고 情見不忘(정견불망)하야 致茲大失(치자대실)이라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만약 거짓말로써 제도를 얻을 사람이라면 나도 또한 거짓말을 하리라.”라고 하시니라.
보살이 육도만행을 닦는 것이 마치 시체를 타고 바다를 건너가는 것과 같으며,
또한 감옥에 갇힌 죄수가 변소 속을 지나서 탈출하는 것과 같다.
마침내 어느 일정한 한 가지 법이 옳은 것도 아니고,
일정한 한 가지 법이 그른 것도 아니다.
거짓을 배척하여 진실을 도모하는 것과 이것을 버리고 저것을 취하는 것이
모두가 포승줄을 잡고 스스로를 묶는 것이다.
의혹의 그물에 덮이고 생각으로 헤아리는 소견[情見]이 없지 아니해서
큰 손실을 불러오리라.

 

 

三乘十二分教(삼승십이분교)는 惟醫我執愚心(유의아집우심)이라
執盡情亡(집진정망)하면 智生道現(지생도현)이니
故(고)로 經云(경운) 眼病見空花(안병견공화)라
除翳不除花(제예불제화)며 妄心執有法(망심집유법)이라 遣執不遣法(견집불견법)이라하니

若悟大道圓通之人(약오대도원통지인)은
尚不見一法是(상불견일법시)니 何有一法非(하유일법비)리오
盡十方世界(진시방세계)에 未有一人成佛(미유일인성불)이며
亦不見一人作衆生(역불견일인작중생)이니
地獄在何方(지옥재하방)이며 天堂居何處(천당거하처)리오
不省愚蒙翳目(불성우몽예목)하야 爭攀空裏之花(쟁반공리지화)하니
豈察妄想疑根(기찰망상의근)이리요
徒怖暗中之鬼(도포암중지귀)하나니 實可怜愍(실가령민)이며
徒自驚嗟(도자경차)로다

삼승십이분교(三乘十二分教)는 오직 아집과 어리석은 마음을 치료하는 것이다.
아집이 다하고 생각으로 헤아리는 것[情]이 없어지면 지혜가 생기고 도가 나타난다.
그러므로 경전에 말씀하시기를 “눈병 때문에 허공에 꽃이 보인다.
눈병을 치료하면 꽃은 제거하지 않아도 되듯이 망령 된 마음으로 집착하니 법이 있다.
그러므로 집착만 버리면 법은 버리지 않아도 된다.”라고 하였다.

만약 큰 도를 깨달아 원만하게 통한 사람은
오히려 한 법도 옳은 것을 보지 않거니 어찌 한 법인들 그른 것이 있겠는가.
온 시방세계에 한 사람도 성불한 이가 있지 않으며,
또한 한 사람도 중생된 사람을 볼 수 없다.
지옥이 어디에 있으며 천당이 어디에 있겠는가.
어리석은 사람은 눈병 난 것을 살피지 못하고 허공 속에 있는 꽃만 부여잡으려 한다.
어찌 망상과 의혹의 근본을 살필 수 있겠는가.
한갓 어두운데서 잘못 본 귀신을 두려워하니 실로 가련하고 불쌍하도다.
나 스스로 놀라고 탄식할 뿐이로다.

 

 

吾今依佛語故(오금의불어고)며 遵至教故(준지교고)로
曲順機宜(곡순기의)하야 隨緣舒卷(수연서권)하야
有求大道者(유구대도자)면 說一乘之妙旨(설일승지묘지)하고
來求小行者(내구소행자)면 布六行之權門(포육행지권문)하야 大小兼弘(대소겸홍)하며
禪律俱運(선률구운)하노니 云云自彼(운운자피)라
於我奚爲(어아해위)리요 何得專愚(하득전우)하야
生於妄見(생어망견)하야 執權謗實(집권방실)하며
毀大怖空(훼대포공)가 螢燄(형염)이 何齊日馭之光(하제일어지광)이며
蚊嘴(문취)가 豈盡滄溟之底(기진창명지저)리요

逆風執炬(역풍집거)에 自取焚燒(자취분소)하며
漏管窺天(누관규천)에 徒抱慙耻(도포참치)니라
今遵佛旨(금준불지)하야 古聖圓文(고성원문)을 纂集施行(찬집시행)하야
度有緣者(도유연자)하노니
溥願法界含識(부원법계함식)이 凡有見聞(범유견문)하니는
受菩薩戒而行菩薩心(수보살계이행보살심)하며
發菩提願而圓菩提果耳(발보리원이원보리과이)니라 (終)


나는 지금 부처님의 말씀을 의지하는 까닭에,
그리고 지극한 가르침을 따르는 까닭에
근기와 수준의 정도에 순응하여 인연을 따라 펴기도 하고 거두기도 한다.
큰 도를 구하는 사람이 있으면 일승의 묘지(妙旨)를 설하고,
작은 수행을 구하면 육바라밀의 방편문을 펼쳐서 크고 작은 것을 겸하여 넓히고,
선정과 계율을 함께 운용하여 지금까지 논해 온대로
이러이러하게 자신의 뜻과 다른 이의 생각을 함께하였다.
어떻게 나에게만 맞게 할 수 있겠는가.
어찌 오로지 어리석은 이는 망령된 소견을 내어 방편을 집착하여 실법을 비방하며
대승을 훼방하고 공의 이치를 두려워하는가.
반딧불 빛이 어찌 태양빛과 같을 수 있으며
모기의 부리가 어찌 바닷물을 다 마실 수 있으리오.

역풍을 향해 횃불을 들면 스스로를 불에 태우게 되고,
좁은 대쪽 구멍으로 하늘을 보면 한갓 부끄러울 뿐이다.
지금 부처님의 뜻을 따라 옛 성인들의 훌륭한 가르침을 모으고 베풀어서
인연이 있는 사람들을 제도하려한다.
법계의 모든 중생으로서 무릇 보고 듣는 이들은
보살계를 받아서 보살의 마음을 실천하고
보리의 원을 발해서 보리의 성과(聖果)를 원만히 하기를 널리 바랄 뿐이다.
(끝)

 


 

 

 

 

 

 

 

 

 

 

 

 

무인아제님의 블로그 http://blog.daum.net/moonceo/2041 에서 복사한 글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