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碧巖錄> 제65칙은 어떤 외도가 부처님에게 불법의 진수를 다음과 같이 질문하고 있다.
어떤 외도(外道)가 부처님에게 질문했다. “말로 대답하는 것(有言)도 묻지 않고, 말없이 침묵으로 대답하는 것(無言)도 묻지 않습니다.(말과 침묵을 여읜 경지에서 불법의 진수를 설해 주십시오)” 세존이 말없이 계셨다(良久). 외도는 찬탄하며 말했다. “세존께서 대자대비로 저의 미혹한 구름을 열어 주시고 저를 깨달음을 체득하게 하셨습니다.” 외도가 떠난 뒤에 아난이 부처님에게 여쭈었다. “외도는 무엇을 증득했기에 깨달음을 체득했다고 합니까?” 부처님은 말씀했다. “훌륭한 말은 채찍 그림자만 보아도 달리는 것과 같다.”
擧. 外道問佛, 不問有言, 不問無言. 世尊良久. 外道讚歎云, 世尊大慈大悲, 開我迷雲, 令我得入. 外道去後, 阿難問佛, 外道有何所證, 而言得入. 佛云, 如世良馬見鞭影而行.
이 공안은 <조당집> 제1권 석가모니불전에 최초로 등장한다. <전등록(傳燈錄)> 제27권, 〈심부주(心賦注)> 제1권 등에도 전하고 있는데, <수능엄경> 제4권의 아난과 세존과의 대화를 근거로 한 것이다. 어떤 외도(外道)가 부처님에게 ‘언어로 표현하지 않고, 또한 침묵으로 대답하는 것(無言)을 여읜 경지에서 불법의 진수를 설해 주십시오’라고 질문했다. 외도가 부처님을 찾아와서 불법에 대해 질문한 이야기는 <잡아함경>에 많이 보이는데, 본 공안과 같은 내용의 정확한 근거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외도가 주장하는 공통점은 모두 윤회의 실체인 영혼(아트만:我)의 실재를 주장하고 있는 점이며, 불교는 영혼을 부정하는 무아설(無我說)을 제시해 인도 종교사상사에 한 획을 긋고 있다. 외도는 ‘유언(有言:언어)과 무언(無言:침묵)을 떠나서 불교의 정신을 제시해 보십시오’라고 질문한 것이다. 유언(有言) 무언(無言)은 일체의 언어 문자의 논리적인 방편을 모두 부정한 입장이다. 선(禪)에서 자주 언급하고 있는 ‘사구(四句) 백비(百非)를 떠나서 불법(佛法)의 본질을 제시해 주십시오’라는 질문과 같다. 세존이 언어문자로 대답하면 유언(有言)이 되고 상견(常見)에 떨어지며, 침묵하면 무언(無言)이 되며 편견에 떨어진다고 비난할 것이다. 언어와 침묵 이 두 가지 방편과 이견(二見)을 초월한 경지에서 불법의 진수를 제시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세존은 외도의 질문에 태연하게 말없이 계셨다(良久). <무문관>에 “세존은 앉아있는 그 자세로 앉아 있었다(世尊據座)”고 한다. 즉 본래의 자리에서 본래의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고 있다. 〈벽암록〉에 세존이 “말없이 대답하지 않았다(良久)”고 한 것은 말로서 대답한 것도 아니고, 침묵으로 대답한 것도 아닌 부처본래의 경지를 여여하게 보여주고 있는 모습이다. 즉 유언(有言)에도 무언(無言)에도 떨어지지 않고, 이 두 차별경계를 모두 포용한 불심의 지혜작용을 잠시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良久)이다. 원오는 “앉은 사람, 선사람 모두가 그를 움직일 수 없다”고 착어하고 있는 것처럼, 세존의 양구(良久)는 절대적인 법신의 경지를 단적으로 제시한 모습이기에, 앉은 것을 일으켜 세울 수도 없고, 서있는 것을 자빠지게 할 수 없는 무상(無相)의 형체와 무심의 경지에 순응한 입장이기에 어떻게 할 수가 없다고 평하고 있다.
이렇게 의미가 깊고 엿보기 어려운 세존 양구(良久)의 당처에 외도는 찬탄하며 말했다. “세존께서 대자대비로 저의 미혹한 구름을 열어 주시고 깨달음을 체득하게 하셨습니다.” 즉 유무(有無)의 차별적인 이견(二見:二邊)에 미혹한 무명의 암흑 구름을 제거해 주고 진실의 광명세계를 깨닫게 됐다고 하면서 세존의 대자비한 법문에 감사의 예의를 올리고 있는 것이다.
원오는 “영리한 놈은 한번 튕겨주자 곧바로 깨달음으로 전향한다. 소반 위에 구르는 밝은 구슬”이라고 착어했다. 세존 양구(良久)에 선기가 발동한 외도는 미혹에서 일전(一轉)하여 깨달음을 체득하였으니 진실로 영리한 사람이다. 외도의 깨달음(轉身)은 마치 쟁반위의 하나의 구슬이 구르는 것과 같이 산뜻하고 걸림 없이 무애자재한 것이라고 칭찬하고 있다.
이공안에서 참구해야 할 문제는 무엇인가. 세존이 양구(良久)해 외도에게 무엇을 보여 주었기에 외도는 곧바로 깨닫게 된 것인가? 또한 외도는 무엇을 깨닫게 된 것이며, 깨달음의 내용은 무엇인가. 외도나 범부나 본래 법성을 구족한 것이며, 유무(有無)의 차별과 이견(二見)을 초월해 법성을 깨닫게 되면 무명(無明)의 실성(實性)이 곧 불성(佛性)인 것이라고 <증도가>에도 읊고 있다. 자신의 발밑을 잘 살펴 자신의 불심을 상실하지 않도록 선기를 전향해 곧바로 깨달음을 체득해야 한다.
외도가 떠난 뒤에 부처님의 십대제자인 아난이 부처님에게 여쭈었다. “외도는 무엇을 증득했기에 깨달음을 체득했다고 합니까?” 아난이 세존에게 ‘그 외도는 어떠한 깨달음을 체득했기에 세존을 찬탄하고 절을 하면서 돌아갔습니까’라고 질문한 것은 외도의 질문에 세존은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을 뿐이며 아무런 설법이나 행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훌륭한 말은 채찍 그림자만 보아도 달리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이 말은 <잡아함경> 제33권에 전하고 있는데, 천태지의의 <마하지관> 제2권(下)에 인용하고, 담연(湛然)이 <지관보행전홍결(止觀輔行傳弘決)> 제2권 5에 ‘네 종류의 말’의 비유로 인용하고 있다. 이 말은 불제자들 가운데 근기를 나누어 비교한 것인데, 지금 세존을 참문한 외도는 최상의 근기로서 세존의 양구(良久)한 모습을 보고 유무의 차별을 초월한 법성의 진실을 깨닫고 있다. 그러한 사실을 세존이 아난에게, 그 외도는 최고 좋은 말과 같은 사람이기 때문에 곧바로 깨닫게 되었다고 비유해 말하고 있다.
설두화상은 다음과 같이 읊고 있다. “선기(機)의 바퀴를 굴리지 않았네.” 기(機)는 불성의 지혜작용으로 무상(無相), 무심(無心)의 지혜로서 세존이 유무를 초월한 양구(良久)의 경지를 읊고 있다. “굴리면 반드시 양쪽으로 달리리라.” 법신본분은 여여(如如) 부동(不動)한 경지이기에 유무의 차별을 초월한 것이다. “밝은 거울이 경대에 걸려 있으니” 세존이 양구(良久)한 당처를 읊은 것으로, 세존의 법신광명의 거울은 시방삼세에 두루하고, 일체 제법을 분명하게 밝힌다. “당장에 예쁘고 추함을 분간하도다.” 무심의 거울로 비추면 예쁘고 추한 모습과 미혹함과 깨달음을 모두 분명하게 밝힌다. “예쁘고 추함을 구분함이라. 미혹의 구름이 열리니.” 세존이 명경을 밝게 비추니 외도는 예쁘고 추한 것을 분명히 파악하게 됐다. “자비의 문 그 어디에 티끌먼지가 일어나랴!” 외도가 깨달음을 체득해 “세존의 대자대비” 운운(云云) 감격한 것을 읊은 말로, 세존의 양구(良久)와 외도가 미혹의 구름을 걷고, 유무의 차별을 초월한 본래 무일물의 경지에서 세존의 거울과 외도의 거울이 서로 비추는 그곳에 번뇌 망념의 티끌이 어디에 있을 수 있겠는가.
“생각해보니 훌륭한 말이 채찍 그림자를 엿보니” 외도가 떠난 뒤에 세존이 아난의 질문에 대답한 말을 읊은 것인데, 다음의 맺는 말(結句)을 환기시키고 있다. ‘천리마인 추풍(追風)은 부르면 곧장 되돌아온다.’ 추풍(追風)은 천리 준마의 대명사로서 진시황이 기른 명마 7두 가운데 가장 뛰어난 말이다. 여기서는 외도의 뛰어난 선기를 추풍과 같은 준마에 비유한 것인데, 만약 차별 경계인 갈림길에 떨어져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지만, 채찍의 그림자만 제시해도 부르면 곧장 말머리를 돌려 되돌아온다고 읊고 있다. 즉 세존의 양구(良久)나 채찍의 그림자라고 하는 말에 집착해 차별견해를 일으키거나 착각하면 각자의 본분을 상실한다고 설두화상이 자비심을 제시하고 있다. “불러서 되돌아 왔다면, 손가락을 세 번 튕긴다.” 유무나 미혹과 깨달음도 상대적인 것, 세존과 외도의 깨달음도 쓸데없는 이야기로다.
성본스님/동국대 불교문화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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