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 해설

[스크랩] [碧巖錄] 제64칙 趙州頭戴草鞋 - 조주화상이 짚신을 머리위에 올려놓다

수선님 2018. 9. 9. 13:07

관련 이미지 <벽암록(碧巖錄)> 제64칙은 남전화상이 고양이 살해사건에 대하여 조주선사의 의견을 묻는 선문답을 다음과 같이 싣고 있다.

 

남전화상은 다시 앞에 있었던 사건(고양이 살해사건)을 조주선사에게 이야기 한 뒤에 조주선사에게 묻자, 조주선사는 곧장 짚신을 벗어 머리위에 이고 문 밖으로 나가 버렸다. 남전화상은 말했다. “그대가 그 때 있었더라면 고양이를 살릴 수 있었을 텐데…”

 

擧. 南泉復擧前話 問趙州. 州便脫草鞋 於頭上戴出. 南泉云 子若在 恰救得猫兒.


본칙은 <벽암록> 제63칙의 이야기가 연결된 것으로 사건의 후반 부분이다. 남전화상이 조주선사에게 앞의 이야기를 제시하였다고 한 것은 63칙에 제시한 사건을 말한다. 즉 ‘어느 날 선원의 동당(東堂)과 서당(西堂)의 선승들이 고양이를 가지고 다투고 있는 것을 본 남전화상은 고양이를 잡아들고서 말했다. “불법을 체득한 지혜의 안목으로 생사대사를 해결한 궁극적인 한마디(一句)를 말할 수 있으면 고양이를 죽이지 않겠지만, 말하는 사람이 없으면 이 고양이를 참살하겠다.” 대중들은 말이 없기에 남전화상은 칼로 고양이를 두 동강이로 절단해 버렸다.’ <무문관(無門關)> 제14칙에는 한 칙의 공안으로 수록하고 있다.

 

<불유교경>에 “축생을 기르지 말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선원이나 사찰에서 짐승을 기르는 것은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당대의 선원에서는 곡식을 탕진하는 쥐를 잡기위해 고양이를 길렀다. 선원에서 일대사(一大事), 생사대사(生死大事)를 해결하기 위해 모인 구도자들이 한 마리의 축생인 고양이 경계에 떨어져 생사망념(生死妄念)에 허덕이고 있는 모습을 보고 남전화상은 제자들을 각성시키는 교육을 위해서 부득이 고양이를 죽이고 있다. 즉 남전화상은 동서(東西) 양당(兩堂) 수행자들의 생사망념과 차별심, 분별심을 끊어버리도록 부득이 고양이를 죽이면서까지 행동으로 보여준 절실한 교육이었으며, 생사망념을 끊는 지혜의 살인도(殺人刀)를 휘두른 것이었다. 자기를 죽일 것인가? 살릴 것인가? 이와 똑같은 생사문제를 고양이를 제시하여 수행자들을 각성시키고 있는 것이다. 즉 출가하여 생사대사(生死大事) 일대사(一大事)를 해결하기 위해 신명(身命)을 내 걸고 수행해야하는 수행자들이 자신의 본분사를 망각하고 고양이라는 경계에 끄달려 자신을 망각하는 제자들에게 직접 지혜의 살인도로서 일체 생사망념을 차단하는 행동을 단행한 것이다. 남전이 고양이를 죽인 것은 전도몽상에 허덕이고 생사망념에 떨어진 학인들과 구도자들의 생사망념의 근본을 끊어 버린 행위이다.

 

저녁때 외출했다가 돌아온 제자 조주종심은 스승인 남전화상에게 사찰로 돌아온 인사를 하자 남전화상은 낮에 있었던 고양이 참살사건을 이야기 하였다. 그리고 조주선사에게 “만약 그대가 그 장소에 있었더라면 어떻게 하겠는가?”라고 조주의 의견을 물었다. 그러자 조주선사는 말없이 곧장 짚신을 벗어 머리위에 이고 문 밖으로 나가 버렸다. 조주는 한마디 대꾸도 없이 행동으로 자신의 견해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 공안에 조주를 등장시키고 있는 것은 <전등록> 제8권 남전장이 최초인데, 조주는 남전화상이 고양이를 참살한 일대 사건을 해결하는 구제자의 역할로서 등장하고 있는데, 고양이를 구제하기보다도 남전화상을 구제한 인물이다. 조주선사가 짚신을 머리위에 올려놓은 행동에 대해서 여러 가지 견해를 제시하고 있으나 본말(本末)이 전도된 사실과 그 밖의 여러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짚신은 구도행각을 하는 수행자가 발에 신고 다니는 생활용품이다. 짚신이 발에 있어야 하는 물건인데, 머리위에 놓는 것은 전도된 착각을 나타낸다. 즉 조주선사는 수행자들의 전도몽상(顚倒夢想)과 착각(錯覺)을 비판하면서 초월하도록 행동으로 직접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선원의 동당 서당의 양당(兩堂)에 모인 출가 수행자가 생사대사(生死大事)를 해결하는 올바른 구법의 참선수행을 하지 않고 고양이 한 마리를 가지고 다투고 있는 것은 수행자로서 너무나 전도(顚倒)된 행위이다. 또한 남전화상이 출가인으로서 불살생의 계율을 지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고양이를 칼로 참살하여 살생한 것도 전도된 행위인 것이다.

 

조주스님이 신발을 벗어 머리 위에 올려놓은 것은 수행자들의 전도된 행위를 비판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전도몽상과 착각을 벗어나야 한다고 하면서 문 밖으로 나가버리는 조주의 행위는 언전불급(言詮不及)과 전도를 떨쳐 버리도록 하는 직접적인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일체의 전도몽상과 착각을 초월하는 수행자의 정신을 행동으로 보여 주고 있다. 부득이 고양이를 죽인 남전화상의 쓸데없이 지나친 방편수단도 떨쳐버리도록 하고 있다. 또한 조주선사가 짚신을 머리위에 얻고 문 밖으로 나간 행위는 수행자들이 일체의 본분사를 망각하고 전도몽상과 생사심, 단견과 상견, 고정관념, 착각, 사량분별심을 초월한 해탈의 경지(깨달음)에서 자유 자재롭게 살아야 한다고 행동으로 직접 보여 주고 있다. 생사를 초월한 경지에서 자유롭게 살고 있는 모습을 자신의 몸으로 직접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조주가 짚신을 머리위에 얻고 문 밖으로 나가는 것은 남전화상의 수단이 쓸데없이 지나친 살생에 대하여 그것은 짚신을 머리 위에 올리는 것과 같이 쓸데없이 지나친 행위라고 비판하는 것을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남전화상은 조주선사의 이러한 행동을 보고 “그대가 그 때 그 곳에 있었더라면 고양이를 살릴 수 있었을 텐데…”라고 말했다. 남전은 만약 그대가 낮에 고양이를 참살하는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나 역시 그렇게 쓸데없는 행동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살생의 지나친 행동과 후회하는 마음이 뒤섞인 말을 하고 있는 것은 조주가 남전을 구제해 주는 인물임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원오는 “잘못을 가지고 잘못에 나아간다.”라고 착어하고 있는 것처럼, 조주가 짚신을 벗어 머리위에 올리고 문 밖으로 나간 전도된 행동으로 남전과 수행자들의 착각을 구제하여 남전도 살리고 수행자도 살리며, 고양이도 구제하고 있는 것이다.

 

설두화상은 다음과 같이 게송으로 읊고 있다. “공안을 원만하게 하여 조주에게 물었네.” 남전화상이 조주의 견해를 물었고, 조주는 짚신을 머리위에 올려놓고 문 밖으로 나갔다. 여기서 남전화상이 고양이를 참살한 일대사건은 완전히 해결되었고, 이 문제는 비로소 원만하게 된 것이다. 남전이 고양이를 참살한 사건이 조주가 짚신을 머리위에 올려놓은 일로서 공안은 완전하게 일원상이 되었다고 읊은 것이다. “장안성 안에서 마음대로 한가롭게 논다.”장안과 낙양은 중국의 수도이다. 대도(大道)는 장안을 통한다고 한 것처럼, 장안은 번창한 세계의 중심지이다. 남전의 질문에 조주는 무심하게 짚신을 머리위에 올려놓고 가볍게 문밖으로 훌쩍 나갔다. 풍류스럽지 않은 것이 풍류인 것처럼, 장안성 안에서 한가히 노닐고 있는 모습이다.

 

원오는 “이처럼 쾌활하고, 이처럼 자유로울 수 있어야지.”라고 착어한 것처럼, 무애자재한 조주의 심경을 칭찬하고 있다. “짚신을 머리위에 이었으나 아는 사람이 없네.” 이러한 조주의 쾌활 자재한 경지를 파악하는 사람이 없다고 개탄하고 있는데, 원래 사량 분별이 미치지 않는 경지이며, 범정(凡情)과 망념으로 알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원오는 “일개(一個) 성자와 반개(半個) 성자가 있다”라고 착어했는데, 이러한 조주의 경지를 아는 사람은 누굴까? 여기 원오라는 한 사람이 있지 않는가? 라고 자신의 입장을 간접적으로 밝히고 있다. “고향산천에 돌아가면 모두가 쉬게 된다.” 짚신을 머리위에 올려놓은 조주는 어디로 갔을까? 길이 아무리 좋아도 집으로 돌아가는 것만 못하다는 말이 있듯이, 아무리 좋은 경치라도 자기 집에 가서 편히 쉬는 일이 최상이다. 고향은 근원적인 본래심의 경지이다.

 

성본스님/동국대 불교문화대학 교수

출처 : 淨土를 그리며...
글쓴이 : 느린 걸음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