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칙
방(龐)거사가 송했다.
“세상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제각기 무위(無爲)를 배운다. 이것이 선불장(選佛場)이니, 마음이 공한데서 급제(及第)하고 돌아간다.”
염·송·어
심문분(甚聞賁)이 송했다.
“바람·달·산·개울 모두가 한 집이니
누가 와서 말을 하여 용과 뱀을 가리랴!
이태백이 대궐에 오는 적이 없는데
붓 끝에서 어제 밤꽃이 저절로 솟았네.”
천동각(天童覺)이 상당하여 이 이야기를 듣고 말했다.
“이미 무위였다면 어떻게 배우겠는가? 만일 마음이 공했다면 어떻게 급제하겠는가. 알겠는가? 그렇지 못하다면 천동이 다시 주(分疎)를 내리라. 큰 바다를 마시어 말리고, 수미산을 밀어 쓰러뜨린다. 확연히 크고 신령스럽게 통한 이가 누구인가. 향기롭고 수려한 술은 전단의 가지로다.
으르렁거리면서 굴에서 뛰어나온 사자 새끼여! 삼천세계가 한 번 손가락을 튕길 적에 나타난다. 팔만 문이 열려 두 눈썹을 활용하니, 아 누가 모르는가! 위하는가 위하지않는가. 도가 심방 허공에 가득하니 마음이 억겁을 초월하고, 그림자가 만 가닥 흐름에 비치니 기상이 둘로 갈라지도다.”
감상
이태백이 과거 보러가기 전날 밤 꿈을 꾸니 자기 붓끝에서 꽃이 돋는 것을 본 다음, 과거에 응시하여 장원을 한 것처럼 선불장에서 누가 용과 뱀을 가릴 것인가.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제 각기 도를 닦지만, 참으로 무위를 배우고 마음의 공을 깨달은 자가 누구일까. 물론 천동각의 말처럼 이미 무위라면 더 이상 무위를 배울 필요가 없고, 이미 마음이 공하다면 공에서 급제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마음이 억겁을 초월하여 그림자가 만 가닥 흐름에 비치니 기상이 둘로 갈라지고 용과 뱀이 구별되고 범부와 성인이 구별된다.
방거사의 이 게송은 다음과 같은 유래가 있다. 처음 석두(石頭)에게 가서 묻기를 “만 가지 법과 짝이 되지 않는 이는 누구입니까?” 하니 석두가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 순간 여래선(如來禪)의 도리를 깨치고, 다시 마조(馬祖)에게 가서 이미 깨친 경지로써 묻기를 “만 가지 법과 짝이 되지 않는 이가 누구입니까” 했더니, 마조가 대답하기를 “그대가 서강(西江)의 물을 다 마시고 오면 일러주리라”하자 조사선(祖師禪)의 현묘한 도리를 깨닫고 이 게송을 지어 바치고 마조의 문하에서 2년 동안 공부를 했다고 한다.
최동호/고려대 국문과 교수
출처 : 淨土를 그리며...
글쓴이 : 느린 걸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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