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장극복

[스크랩] 수능엄경 : 50변마장 - 행음마장 10가지

수선님 2018. 9. 23. 11:13

 

수능엄경 : 50변마장 - 행음마장 10가지

 

 

첫째, 행음의 현상을 보여주다

 

아난아! 저 선남자가 삼마지를 닦아서 상음이 다 없어지면 그 사람은 평상시에 꿈과 생각이 사라지고 깨어있거나 잠자거나 항상 한결같아서 밝고 깨달음이 비고 고요함이 마치 맑게 개인 허공과 같아서 다시는 앞에 나타나는 거칠고 무거운 티끌인 그림자 같은 일들이 없으며 세간의 큰 땅덩어리나 산과 강을 보되 마치 거울에 물건이 비치듯하여 와도 붙을 데가 없고 가도 종적이 없어서 걸림없이 받아들여 비침에 따라서 번뇌의 습기는 분명하게 없어지고 오직 유일한 참된 정기 뿐이다. 나고 없어지는 근원이 이로부터 드러나서 시방의 열 두 가지 중생을 보되 그 종류를 다할 수 있으리니 비록 그들 각각의 생명에 대한 내역까지는 통하지 못하더라도 함께 생겨나는 근본이 마치 아지랑이가 아른거리고 반짝이는 것과 같아서 허무한 감각기관이나 그 대상인 물질의 궁극적인 이치를 깨닫게 될 것이니 이것을 행음의 구역이라고 하나니라.

 

原註= 생각이 없어지고 작용이 나타남을 통틀어 서술한 것이다. 부질없게 움직이는 허망한 습기가 밝은 낮에는 생각이 되고 어두운 밤에는 꿈이 되니 참된 성품을 어지럽혀서 한결같지 못하게 하며 밝은 깨달음을 흔들어서 고요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상음이 모두 없어진 자는 꿈이나 생각이 사라져서 깨어있거나 잠을 자거나 항상 한결같아서 밝은 깨달음이 비어지고 고요해 짐이 마치 맑게 개인 허공과 같나니라. 오음이 앞은 거칠고 뒤는 세밀하므로 생각이 모두 없어지면 거칠고 무거운 그림자 같은 일이 없어지는 것이다. 비록 온갖 형상을 보더라도 생각이 없으므로 마치 거울에 물건이 비치는 것과 같아서 붙는 것도 없고 자취도 없으며 걸림없이 받아들이고 비추는대로 따라주어서 묵은 습기는 분명히 없어져서 유일한 참된 정기 뿐이니 밝음의 지극함이 이러하므로 깊고 그윽한 행음이 여기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작용이 온갖 변화와 나고 죽는 근원이 되는 것이기에 그 모양이 드러나면 열 두 종류의 중생에 대한 근원을 다 보지 못함이 없으리니「각각 생명의 실마리」는 인식 때문이고「함께 생겨나는 근본」은 작용 때문이니 흔들려 움직이고 그윽하고 은은하기 때문에 아지랑이에 비유하였고 잠시 생겼다가 금시 없어지므로「아른거린다」고 하였으며 다시는 거친 그림자가 없기 때문에 「반짝인다」고 하시니 감각기관과 그 대상인 물질의 운행과 그침이 다 여기에서 근본하였으므로 궁극적인 이치라고 하였다.

 

만일 이렇게 아른거리고 반짝이는 원래의 성품이 본래 맑은 데로 들어가서 본래의 습기가 한번 맑아지면 마치 파도가 가라앉아서 맑은 물로 변화되는 것과 같으니 이를 이름하여「행음이 다 없어졌다」고 한다. 이 사람은 중생탁을 초월할 수 있으리니 그 원인을 관찰해보면 깊이 숨어있는 허망한 생각이 그 근본이 되나니라.

 

原註= 행음은 동요하는 습성으로 성품을 이루었기 때문에 「본래의 성품이다 본래의 습기다」라고 말한 것이다. 동요하는 습기를 없앨 수 있으면 원래 맑은 근본으로 돌아가서 변천하여 흘러가는 모양이 없어지기 때문에 파도가 없어져서 맑은 물로 변하는 것과 같다. 나고 없어짐이 그치지 아니하여 업인의 운행이 항상 변천하여 흐름을「중생탁」이라고 하는데 이는 곧 행음의 본체이기 때문에 행음이 다 없어지면 그것을 초월하게 되는 것이다. 행음이 은밀히 옮겨지는 것을 일찍이 깨닫지 못하므로 「깊이 숨어있는 허망한 생각」이라고 한 것이다.

 

 

둘째, 狂解광해를 밝힘

 

첫째, 원만한 근원에는 두 가지 원인이 없다고 생각함

첫째, 총설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올바른 지혜를 증득한 삼마지 가운데 모든 선남자가 옳은 마음이 굳게 엉켜서 열 가지 천마가 틈을 얻을 수 없게 되면 바야흐로 정밀하게 연구해서 생겨나는 종류의 근본을 다 알아내어 그 본래 종류 가운데 생겨나는 근본이 드러나는 것은 저 그윽히 맑고 원만하게 동요하는 근원을 관찰하고 그 원만한 근원 가운데 계산하여 헤아림을 일으키면 그 사람은 두 가지 원인이 없는 논리에 떨어지나니라.

 

原註= 꿈이나 생각이 사라져서 자나 깨나 항상 한결같으므로「올바른 지혜를 얻은 삼마지」라 하고 또 「올바른 마음을 굳게 엉기게 한다」고 하였으니 이는 모든 생각이 다 끊어진 현상이다. 밖의 마구니를 모두 마음이 불러들인 까닭으로 인하여 생각이 다 없어지고 밝음이 엉키면 천마가 이르지 못하나니 이로부터 오직 선정만을 닦고 본래의 뜻을 잃으면 거짓 허망하게 이해하고 계산할 것이니 이것이 곧 음마이다.「태어나게 되는 근본」이란 곧 함께 태어나는 근본이다.「생겨나는 종류의 근본 가운데 생겨나는 근원이 드러난다」는 것은 함께 생겨나는 근본에서 자신의 행동에 대한 근원을 깨달은 것이다.「그윽히 맑은 동요의 근원」이란 곧 작용하는 근본이니 이미 보고 나서 드디어 일체의 나고 죽음이 모두 여기에 원만해졌다고 여겨 그 의식의 본말을 더 궁구하지 않고 마침내 두 가지 원인이 없다는 논리를 세울 것이다.

 

둘째, 따로따로 밝힘

첫째, 원래 원인이 없다고 생각함

 

첫째는 이 사람이 본래 원인이 없다고 보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이미 생각하는 기미를 완전하게 깨뜨림을 얻고 안근의 八百 공덕을 의지해서 팔만 겁 안에 있는 중생들의 업보의 흐름이 굽이쳐 돌아 여기서 죽으면 저기에 태어남을 보고 다만 중생이 그곳에서 윤회하는 것만 보이고 팔만 겁 밖은 캄캄하여 볼 수가 없기 때문에 문득 이러한 생각을 하나니 「이러한 새간의 시방 중생이 팔만 겁 밖에는 원인이 없이 저절로 생겼다」고 여긴다. 그렇게 생각하므로 올바르고 두루한 지혜를 잃고 외도에 떨어져서 보리의 성품을 현혹시키나니라.

 

原註= 상음이 이미 깨어지면 감각기관이 중추적 근본 역할에서 벗어나서 눈이 청정해지므로 환하게 볼 수 있나니라.「업보의 흐름이 굽이쳐 돈다」는 것은 업보를 따라 유전하는 것이 마치 물이 굽이쳐 그 곳을 맴도는 것과 같아 스스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행음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선정의 힘이 한계가 있으므로 팔만 겁 밖에 것은 캄캄하여 볼 수가 없으니 보지 못하기 때문에 본래 원인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본래 원인이 허망한 의식에 있음을 알지 못하니 이것을 일러「올바르고 두루한 지혜를 잃었다」고 한다.

 

둘째, 끝도 원인이 없다고 생각함

 

둘째는 이 사람이 끝도 원인도 없다고 보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사람이 생겨남에 대해서 이미 그 근본을 보고서 사람이 사람을 낳고 새가 새를 낳으며 까마귀는 본래부터 검고 따오기는 본래 희며 사람과 하늘이 본래 서서 다니고 축생은 본래 기어다니며 흰 것은 씻어서 희어진 것이 아니요 검은 것은 물들여서 검게 된 것이 아니다. 팔만 겁 동안에 다시 변함이 없음을 알기 때문에 이제 이 형체가 다 없어지더라도 역시 그러하다고 생각하여 내가 본래 보리를 알지 못하였거니 어찌 다시 보리를 이루는 일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오늘날 모든 물질의 형상이 모두 끝도 그 원인이 없음을 알 수 있다고 여긴다.

 

原註=잘못 생겨나는 근본에 집착하여 변화의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서 사람은 끝끝내 사람이 되고 검은 것에 이르기까지 끝끝내 검게 되어서 다시는 변함이 없다고 생각하므로 인하여 나를 예로 들어서 본래 도를 보지 못하였거니 마침내 이룰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것이「끝도 그 원인이 없다」고 생각하는 까닭이다. 근본을 보고 끝을 보는 것은 눈이 과거와 미래를 보는 공덕에 의한 것이다.

 

셋째, 결론

 

이로 말미암아 헤아리므로 올바르게 두루 아는 것을 잃어버리고 외도에 떨어져 보리의 성품을 의혹하리니 이것을 이름하여 제일 외도가 성립한 원인이 없다는 논리이니라.

 

 

 

둘째, 원만하고 항상한 데서 일어난 네 가지 徧常변상이라고 생각함

 

첫째, 총설

 

아난아! 이 삼마지 가운데 모든 선남자가 올바른 마음이 굳게 엉켜서 마구니가 틈을 탈 수 없게 되면 태어남이 있는 무리들의 근본을 궁구하여 저 그윽히 맑고 항상 흔들리는 근원을 관찰하고 원만하고 항상한 가운데 헤아리는 마음을 일으키면 그 사람은 네 가지 두루하고 항상하다는 논리에 빠지나니라.

 

原註= 앞에서는 원만하게 요동하는 근원을 말하고 여기서는 항상 요동하는 근원을 말한 것은 나고 죽는 근원이 다 여기에서 원만하게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여 마침내 항상한 것으로 집착해서 두루 항상하다는 논리를 일으키나니 두루하다는 것은 곧 원만하다는 것과 같으므로 여기에서는「두루 항상하다」고 표시하고 다음에서는 원만하고 항상하다고 말하였다.

 

둘째, 따로따로 밝힘

첫째, 마음과 그 대상에 의지하여 항상하다고 생각함

 

첫째는 이 사람이 마음과 그 대상의 성품이 두 곳에 원인이 없음을 궁구해서 이를 닦고 익혀서 이만겁 동안에 시방 중생들의 나고 죽음이 있는 것은 모두 순환하는 것이어서 일찍이 흩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항상한 것이라고 여기나니라.

 

原註=행음을 허망하게 생각하여 나고 죽는 원만한 근원이라 여김으로 말미암아 마침내 마음과 그 대상과 사대[地 ․ 水 ․ 火 ․ 風]와 팔식 등에 대해서 모두 허망한 생각을 일으켜 혹은 나고 죽는 것이 아니라 항상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혹은 나고 죽음을 인정하면서도 항상하다고 생각하며 혹은 식신을 인식하여 항상하다고 생각하며 혹은 사특한 소견을 일으켜 항상하다고 생각하니 지금 여기서는 마음과 그 대상과 성품이 본래 저절로 근원이 없어서 나고 죽음이 없다고 여기는데 이는 나고 죽음을 버리고 항상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상음이 다 없어진 자는 마음과 그 대상인 두 진리에 의지해서 觀관을 닦으므로 그 공부의 힘이 능히 이만 겁의 일을 안다는 것이다. 아래의 사만이나 팔만도 이와 같다.

 

둘째, 사대에 의지하여 항상하다고 생각함

 

둘째는 그 사람이 사대의 근원을 궁구하여 네 가지 성품이 항상 머문다고 여겨서 이를 닦아 익혀 능히 사만겁 가운데 시방 중생들의 나고 죽는 것이 모두 그 본체는 항상한 것으로서 일찍이 흩어져 잃어버림이 없는 것이라하여 항상한 것이라고 생각하나니라.

 

原註=중생이 흙 ․ 물 ․ 바람 ․ 불에 의해서 나고 죽더라도 네 가지 성품의 근원은 항상 머물러 있는 것인즉 모든 죽는 이치가 그 실체는 모두 항상하다고 여기나니 이는 나고 죽는 것을 가지고 항상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셋째, 팔식에 의지하여 항상하다고 생각함

 

셋째는 그 사람이 여섯 가지 감각기관과 말나식과 집수식과 심의식 가운데 근원이 말미암은 곳을 궁구하여 그 성품이 항상하다고 여기므로 이를 닦아 익혀서 능히 팔만 겁 가운데 일체 중생이 순환하므로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며 본래 항상 머무는 줄로 알아서 잃어버리지 않는 성품을 궁구하여 항상하다고 생각하나니라.

 

原註=「생각의 근원」이란 상음이고「나는 이치」란 행음이다. 부질없이 흘러 변하여 나고 죽고 하는 것이 다 생각하는 마음에 속한 것인데 지금 이미 다 없어졌으니 나고 죽지 않는 이치가 자연 행음에 속한다고 여기고 행음이 곧 나고 죽는 근원임을 알지 못하니 이는 사특한 소견을 일으켜서 부질없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셋째, 결론

 

이로 말미암아 항상하다고 생각하여 올바르고 두루한 지혜를 잃어버리고 외도에 떨어져서 보리의 성품을 미혹하게 하리니 이는 그 이름이 제二 외도가 주장하는 원만하고 항상한 논리라고 하나니라.

 

셋째, 자타의 대립에서 일어나는 것을 네 가지 뒤바뀜이라고 생각함

첫째, 총설

 

또 삼마지 가운데 모든 선남자가 바른 마음을 굳게 엉기게 하여 마구니가 틈을 얻을 수 없게 되면 생겨나는 종류의 근본을 궁구하여 저 그윽히 맑고 항상 요동하는 근원을 관찰하고 자가나 남 가운데 계산하여 헤아림을 일으키면 그 사람은 네 가지 뒤바뀐 소견으로 떨어져 들어가되 한 부분은 항상함이 없는 것이고 한 부분은 항상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原註= 자기와 남의 경계에 허망하게 뒤바뀐 소견을 일으키는 그 종류가 네 가지이니 한 부분의 항상함이 없는 것과 한 부분 항상함이 있음을 계량하여 헤아리는 것이다.

 

둘째, 따로따로 밝힘

첫째, 자타를 중심으로 분별심을 일으킴

 

첫째는 이 사람이 오묘하고 밝은 마음이 시방 세계에 두루함을 보고 맑고 고요한 것을 가지고 마지막 경지의 신비한 자기라고 생각하여 그로부터 헤아리기를 내가 시방에 두루하여 밝음이 엉겨서 흔들리지 않거든 일체 중생이 나의 마음 속에서 저절로 나고 죽고 하나니 곧 내 心性심성은 항상한 것이요 저 나고 죽는 성품은 항상함이 없는 성품이라고 하나니라.

 

原註=오묘하고 밝고 원만히 맑은 것은 나와 나의 처소를 벗어난 것이거늘 외도가 여기에서 허망하게 신비한 나를 내세워서 그로부터 나는 두루 엉겨 요동하지 않는데 모든 중생이 그 속에서 나고 죽는다고 생각하여 마침내 자신은 항상하고 남은 항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둘째, 마음 밖의 세계를 관찰하여 분별심을 일으킴

 

둘째는 이 사람이 그 마음을 살피지 못하고 시방 세계에 항하사 같이 많은 국토를 두루 살펴보아서 오랜 세월 동안에 무너지는 곳을 보고는 궁극적으로 항상함이 없는 성품이라 하고 오랜 세월 동안에 무너지지 않는 곳을 보고는 궁극적으로는 항상하다고 하나니라.

 

原註= 앞에선 마음에 의하여 관찰하고 여기서는 흙에 의해 관찰해서 두루두루 갖가지 생각을 하니 하나의 진리가 만약 사특해질 것 같으면 온갖 법이 모두 뒤바뀌게 된다.

 

셋째, 마음과 정기를 따로 관찰하고 분별심을 일으킴

 

셋째는 이 사람이 각별히 관찰하되 나의 마음이 정미롭고 세밀하기가 마치 작은 먼지 같아서 시방에 유전해도 성품은 변함이 없어 이 몸으로 하여금 나고 죽게 한다고 생각하나니 저 무너지지 않는 성품은 나의 항상한 성품이요 나로부터 흘러나온 나고 죽는 모든 것은 항상함이 없는 성품이라고 하나니라.

 

原註= 몸에 나아가 곧 마음이 되게 할 수 없으므로 각별히 관찰하게 되는 것이다.「작은 먼지」란 정밀하고 미세함을 비유한 것이다. 마음의 정기가 비밀히 작용하므로 말미암아 몸으로 하여금 나고 죽게 하지만 마음은 없어지지 아니하니 앞에서는 한 법에서 두 가지 생각을 하고 여기서는 한 가지 성품에서 두 가지 생각을 하나니라.

 

넷째, 사음[色 ․ 受 ․ 想 ․ 行陰]에서 분별심을 일으킴

 

넷째는 이 사람이 상음이 다 없어진 것을 알고나서 행음이 유전함을 보고는 행음이 항상 유전하는 것을 항상한 성품이라고 생각하고 색음과 수음과 상음 등이 지금 다 없어진 것을 항상함이 없는 것이라고 이름하나니라.

 

原註=환상 같은 음이 한 몸이며 변하여 흐름이 한 모양이어늘 옳은 것을 가지고 그른데에 미혹하여 지금을 보고 지난 것을 잊으므로 유전하는 것을 항상하다고 여기고 변천하는 것을 없어진다고 한다.

 

셋째, 결론

 

이로 말미암아 헤아려서 일부분은 항상함이 없고 일부분은 항상하다고 여기므로 외도에 떨어져서 보리의 성품을 현혹하리니 이것이 제三 외도가 성립한 한 부분이 항상하다는 논리이니라.

 

原註= 요즈음 사람은 성품을 참된 것이라 생각하고 현상을 현상이라고 하나니 이치는 통하나 일에는 막히므로 이 네 가지 분리하여 헤아림에 떨어지는 것을 면하지 못하니라.

 

 

 

 

넷째, 분단된 위치에서 네 가지 有邊유변론을 생각함

첫째, 총설

 

또 삼마지 가운데 모든 선남자들이 바른 마음을 굳게 응집시켜 마구니가 틈을 탈 수 없게 되면 생겨나는 종류의 근본을 궁구하여 그윽히 맑고 항상 요동하는 근원을 관찰하고 나누어진 위치 속에서 헤아리는 마음을 일으키면 그 사람은 네 가지 유변론에 빠지니라.

 

原註= 나누어진 위치가 네 가지가 있으니 三際分位삼제분위 ․ 見聞分位견문분위 ․ 彼我分位피아분위 ․ 生滅分位생멸분위이다.

 

둘째, 따로따로 밝힘

첫째, 三際삼제의 한계에 대한 억측

 

첫째는 이 사람이 마음으로 생겨나는 근원의 흐르는 작용이 쉬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과거와 미래를 헤아려서 한계가 있다고 이름하고 서로 계속하는 마음을 헤아려서 한계가 없다고 하리라.

 

原註=「태어나는 근원의 흐르는 작용」이란 행음이다. 변천하여 흐름으로 인하여 三際삼제를 헤아리되 이미 지나간 것은 이미 없어졌고 올 것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한계가 있다」고 하고 현재는 서로 이어지기 때문에 「한계가 없다」고 하니 眞際진제는 본래 한계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한계가 없는 것도 아님을 알지 못해서 그러는 것이다.

 

둘째, 보고 들음의 한계에 대한 억측

 

둘째는 이 사람이 팔만 겁까지는 관찰할 수 있으므로 중생을 보고 팔만 겁 이전은 고요하여 듣고 볼 수가 없으므로 듣고 볼 수가 없는 곳은「한계가 없다고」하고 중생이 있는 곳은「한계가 있다고」하나니라.

 

原註=앞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을「한계가 있다」고 하고 여기서는 들리지 않는 것을 「한계가 없다」고 하니 이는 돌이켜서 거꾸로 헤아린 때문이다.

 

셋째, 나와 남의 한계에 대한 억측

 

셋째는 이 사람이 나는 두루 앎으로 한계가 없는 성품을 얻었다고 생각하고 다른 모든 사람은 내가 아는 가운데 나타나되 나는 그가 아는 성품을 알 수 없으므로 그는 한계가 없는 마음을 얻지 못하고 다만 한계가 있는 성품만 지녔다고 여기나니라.

 

原註=내가 상대방의 성품을 알아야 같은 몸이 되는 것이거늘 지금은 알 수가 없으니 이는 상대와 내가 다른 것이니 나는 한계가 없음을 얻고 상대는 다만 한계가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넷째, 생멸의 한계에 대한 억측

 

넷째는 그 사람이 행음은 빈 것이라는 것을 궁구하여 그가 보는 마음으로 헤아려 생각하기를 모든 중생의 몸 가운데 모두 다 반은 나는 것이고 반은 죽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그 세계의 모든 것들도 반은 한계가 있는 것이고 반은 한계가 없는 것이라고 여기나니라.

 

原註=행음이 빈 것임을 궁구함으로 인하여 옛날엔 있다가 지금은 없으므로 드디어 하나의 가림(陰)으로써 반은 나는 것이고 반은 없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안의 감각기관과 밖의 기계들도 모두 다 그렇다고 여겨서 나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고 죽는 것으로는 한계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셋째, 결론

 

이렇게 한계가 있는 것과 한계가 없는 것을 헤아려 생각함으로 인하여 외도에 떨어져서 보리의 성품을 현혹하리니 이것은 제四 외도가 세운 한계가 있다는 논리라 하나니라.

 

原註= 모두 다 도를 궁구하면서도 본 뜻을 잃어서 엉뚱하게 허망한 생각을 하니 이는 선나를 잘못 안 것이니 혼미하여 잘못됨이 이 지경에 이른 것이다.

 

 

다섯째, 지견에서 일어나는 네 가지 교란에 대한 억측

첫째, 총설

 

또 삼마지 가운데 모든 선남자들이 바른 마음을 굳게 응집시켜 마구니가 틈을 얻을 수 없게 되거든 생겨나는 종류의 근본을 궁구하여 저 그윽히 맑고 항상 요동하는 근원을 관찰하고 느끼고 보는 가운데 헤아리는 마음을 일으키면 그 사람은 네 가지 뒤바뀐 생각으로 죽지 않는다고 하여 혼란을 일으키는 허황된 논리에 빠지나니라.

 

原註= 사특하게 뒤바뀌었기 때문에 알고 보는 것 가운데 잘못 이해하여 결단하지 못하고 마침내 그 말을 혼라한게 한다. 『바사론』에 이르기를「외도들은 하늘이 항상 머문다고 생각하여 죽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교란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해야 그 하늘에 날 수 있다고 여기므로 묻는 자가 있으면 감히 사실대로 대답하지 못하는데 이는 교란이 생길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부처님게서는 그것이 진정 교란시키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둘째, 따로따로 밝힘

첫째, 변화를 관찰하여 참된 이치를 모르는 교란

 

첫째는 이 사람이 변화하는 근원을 관찰하고서 변천하여 흐르는 곳을 보고는 변한다하고 서로 연속되는 곳을 보고는 항상하다 하며 보이는 곳을 보고는 나는 것이라 하고 보아야 할 곳이 보이지 않으면 없는 것이라 하며, 서로 연속되는 원인의 성품이 끊기지 않는 곳을 늘어나는 것이라 하고 올바르게 서로 연속하는 가운데 중간이 떨어진 곳을 줄어드는 것이라 하며, 각각 생기는 곳을 있는 것이라 하고 서로서로 없어지는 곳을 없는 것이라고 하여 이치로는 한꺼번에 보면서도 마음으로는 따로 보아서 법을 구하는 사람이 와서 그 이치를 물으면 대답하기를「내가 지금 나기도 하고 죽기도 하며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며 늘어나기도 하고 덜어지기도 한다」고 하면서 언제나 그 말을 어지럽게 해서 저 앞 사람으로 하여금 글귀를 잃어버리게 하나니라.

 

原註= 이것은 온갖 변화를 관찰하여 같지 않음을 보고 마침내 다른 견해를 낸 것이니「마음으로는 따로 보는 것」이 곧 다른 견해이다. 그래서 능히 해결하여 가려내지 못하고서 그 말을 어지럽게 하는 것이다.

 

둘째, 마음을 관찰하여 없다는데 집착하는 교란

 

둘째 이 사람은 그 마음이 서로서로 없는 곳을 자세히 관찰하고서 없는 것으로 인하여 증득하였다고 생각하여 어떤 사람이 와서 물으면 오직 한 글자면 대답하되 다만「無」라고만 말하고「무」밖에 다른 것은 말할 것이 없다고 하나니라.

 

原註=이것은 허망한 마음을 관찰하므로 나고 죽음을 본 것이다.「서로 없다」는 것은 곧 생각마다 없어지는 현상이다. 「증득했다」는 것은 모든 법이 다 없는 것임을 깨달은 것이다.

 

셋째, 마음을 관찰하여 있다는데 집착하는 교란

 

셋째는 이 사람이 그 마음의 각각 있는 곳을 자세히 관찰하고서 있는 것으로 인하여 증득하였다고 생각하여 어떤 사람이 와서 물으면 오직 한 글자로만 대답하되 다만 「是」라고만 말하고 「시」밖에 다른 것은 말할 것이 없다고 하나니라.

 

原註=「각각 있다」는 것은 곧 생각마다 생겨나는 현상이다. 「無」라고 하거나 「是」라고 말한 것은 모두가 분명하게 대답하지 못한 것이다.

 

넷째, 대상을 관찰하여 마음을 혼란하게 하는 교란

 

넷째는 이 사람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을 한꺼번에 보고서 그 대상이 두 갈래이기 때문에 그 마음이 어지러워져서 어떤 사람이 와서 물으면 대답하기를「있는 것이 곧 없는 것이지만 또한 없는 가운데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여 모두가 혼란해져서 끝까지 따질 수 없게 하나니라.

 

原註=「갈래[枝]」란 나무 가지이니 서로 갈라져서 한결같지 아니함이다.

 

셋째, 결론

 

이렇게 교란을 헤아려서 허무해져서 외도에 떨어져 보리의 성품을 미혹하리니 이것을 제五외도가 이룩한 네 가지 뒤바뀐 성품이 죽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어지럽히는 두루 헤아리는 허황된 논리이니라.

 

原註= 요즈음 간사한 사람이 거짓으로 도를 증득했다고 하면서도 마음 속에 올바른 주장이 없어서 남에게 혼란을 당한 것이 대부분 이 네 가지와 같다.

 

 

 

여섯째, 행음의 상속으로 죽은 뒤에 현상이 있다는 생각

첫째, 총설

 

또 삼마지 가운데 모든 선남자들이 바른 마음을 굳게 응집하여 마구니가 틈을 얻지 못하거든 생겨나는 종류의 근본을 궁구하여 저 그윽히 맑고 항상 요동하는 근원을 관찰하고 끝이 없는 흐름에 헤아리는 마음을 일으키면 그 사람은 죽은 뒤에 현상이 있다는 뒤바뀐 마음에 떨어질 것이다.

 

原註=「끝없는 흐름」이란 곧 작용이 서로 연속되는 현상이다. 났다가 없어지고 없어졌다가 다시 나는 것이 서로 연속되어 끊기지 않으므로 죽은 뒤에 현상이 있음을 아나니라.

 

둘째, 따로따로 밝힘

첫째, 正計정계

 

혹 스스로 색신을 고집하여 색신이 곧 나라고 하며 혹은 내가 원만해서 국토를 두루 함유하고 있다고 생각하여 내가 색을 지녔다고 하며 혹은 저 앞에서 일어나는 인연들이 나를 따라 회복하기 때문에 색신이 내게 속하였다고 하며 혹은 내가 행동하는 것에 의지하여 서로 연속되므로 내가 색신에 있다고 하여 모두 헤아리는 생각에 따라 말하되 죽은 뒤에 현상이 있다고 생각하여 그렇게 돌고 돌아서 열 여섯 가지 현상이 있나니라.

 

原註= 마음이 뒤바뀐 때문에 색신을 고집하여 색신을 나라고 하며 또 내 몸이 원만하고 두루 퍼진다고 여겨서 색이 나의 소유라고 하는 것이다. 앞에 일어나는 인연이란 곧 「눈앞의 색신을 말한다.」작용이 서로 이어지는 현상은 곧 색이다. 색에 대해 이러한 네 가지 생각을 해서 느낌 ․ 생각 ․ 작용에 있어서도 그러하므로 열여섯가지 현상을 이루나니 모두 죽은 뒤에도 다시 있다고 생각한다. 식음을 생각하지 않는 것은 깊고 비밀해서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旁計방계

 

이로부터 혹 생각하기를 궁극적인 번뇌와 보리가 두 성품이 함께 달려가서 각각 서로 접촉하지 않는다고 여기나니라.

 

原註= 작용이 있고 없고 모든 법을 널리 헤아려 생각하는 것이다.「궁극적으로 함께 달린다」는 것은 번뇌와 보리가 서로 능멸하지 않고 모두다 뒤가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셋째, 결론

 

이로 말미암아 죽은 뒤에도 있다고 생각하므로 외도에 떨어져서 보리의 성품을 미혹하리니 이것은 제六 외도가 성립한 오음 가운데 죽은 뒤에 실상이 있다고 하는 마음이 뒤바뀐 논리이니라.

 

 

 

일곱째, 모든 음이 없어지고 나면 뒤에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함

첫째, 총설

 

또 삼마지 가운데 모든 선남자들이 바른 마음을 굳게 응집시켜 마구니가 틈을 얻지 못하거든 생겨나는 종류의 근본을 궁구하여 저 그윽히 맑고 항상 요동하는 근원을 관찰하여 먼저 제거해 없앤 색음과 수음과 상음 가운데 헤아리는 마음을 일으키면 그 사람은 죽은 뒤에 실상이 없다고 하는 뒤바뀐 마음에 떨어질 것이다.

 

둘째, 따로따로 밝힘

첫째, 正計정계

 

저 색음이 없어진 것을 보고 형체는 본래 원인이 없는 것이라 하고 상음이 없어진 것을 보고 마음은 본래 얽매인 데가 없다고 하며 수음이 없어진 것을 알고 나서 다시 몸과 마음은 서로 관련될 수 없다고 하며 수음이 없어진 것을 알고 나서 다시 몸과 마음은 서로 관련될 수 없다고 해서 음의 성품이 사라졌으므로 비록 다시 태어나는 이치가 있다고 하더라도 수음과 상음이 없는 것이 마치 풀이나 나무와 같아서 그 형질이 앞에 나타나도 오히려 얻을 수가 없는데 죽은 뒤에 어떻게 다시 실상이 있겠느냐고 하면서 그로 인하여 헤아려 생각하기를 죽은 뒤에는 실상이 없어서 그렇게 돌고돌아 여덟 가지 실상이 없는 것이 생겨나나니라.

 

原註=「음의 성품이 없어졌다」는 것은 색음과 수음과 상음이 없어진 것을 말하는 것이다.「태어나는 이치」란 곧 행음이니 수음과 상음이 없어지면 행음도 없어질 것이니 네 가지 음이 현존하는 원인이 없어지고 미래의 과보가 소멸하므로 원인과 결과를 합하여 논하면 여덟 가지 실상이 되나니라.

 

둘째, 방계

 

이를 좇아 혹 생각하기를 열반의 인과가 모두 다 비어져서 부질없는 이름만 있는 것이지 마침내는 끊어져 없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나니라.

 

原註= 앞에서는 모든 법이 죽은 뒤에도 실상은 있다고 생각하였고 여기서는 모든 법이 죽은 뒤에는 실상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셋째, 결론

 

이로 말미암아 죽은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므로 외도에 떨어져서 보리의 성품을 미혹하리니 이를 제七 외도가 성립한 오음 가운데 죽은 뒤에는 실상이 없다고 하는 마음이 뒤바뀐 논리이니라.

 

 

 

 

여덟째, 있다 없다 하는 가운데 여덟 가지가 모두 아니라는 생각

첫째, 총설

 

또 삼마지 가운데 모든 선남자들이 바른 마음을 굳게 응집시켜 마구니가 틈을 얻지 못하게 되거든 생겨나는 종류의 근본을 궁구하여 저 그윽히 맑고 항상 요동하는 근원을 관찰하고 행음이 있는 가운데 겸하여 수음과 상음이 없어졌으므로 있고 없는 것을 번갈아 생각하여 자체를 서로 무너뜨린다고 하리니 이 사람은 죽은 뒤에는 모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뒤바뀐 논리에 떨어지나니라.

 

原註= 행음이 있으면 실상이 있는 것이고 수음과 상음이 없어지면 곧 실상이 없는 것이니 앞뒤의 실상을 예로 들면 있는 것은 마침내 없어지므로 비록 있으나 있는 것이 아니며 없어진 것은 일찍이 있었던 것이므로 비록 없으나 없는 것이 아니니 네 가지 음에 대해 두 가지로 생각하므로 여덟 가지 아니라는 것이 성립된다.

 

둘째, 따로따로 밝힘

첫째, 정계

 

색음과 수음과 상음 가운데 있는 것을 보더라도 있는 것이 아니며 행음이 변천하여 흐르는 속에 없는 것을 보더라도 없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그렇게 돌고 돌아 음계의 여덟 가지가 모두 아니라는 현상을 궁구하여 한 가지 인연을 얻음에 따라 모두 죽은 뒤에도 실상이 있는 것이며 실상이 없는 것이라고 말하나니라.

 

原註= 세 가지 음은 실상을 멸하였으므로 있는 것을 보더라도 있는 것이 아니라 하며 변천하여 흐르는 것은 실상이 존재하므로 없는 것을 보더라도 없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한 가지 인연을 얻음에 따라」라는 것은 네 가지 음에서 일을 따라 모두 집착을 억측하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둘째, 방계

 

또 생각하기를 모든 작용은 성품이 변천하는 것이기 때문에 마음 속에 통하여 깨달았다는 생각을 일으켜서 있고 없는 것이 모두 아니라고 생각하여 허허와 실실을 분간하지 못하나니라.

 

原註=「모든 작용」이란 모두가 변천하여 흐르는 법이다. 행음이 변천해서 일정치 못함을 봄으로 인하여 드디어 사특한 깨달음이 생겨나서 모든 법이 있건 없건 그 모두가 아나라고 하나니라.

 

셋째, 결론

 

이로 말미암아 죽은 뒤에는 모두가 아니라고 생각하여 뒷 세상이 어둡고 아득해서 말할 수가 없으므로 외도에 떨어져서 보리의 성품을 미혹하게 하리니 이는 제八 외도가 성립한 오음 가운데 죽은 뒤에는 모두가 아니라고 하는 마음의 뒤바뀐 논리이니라.

 

原註=「어둡고 아득해서 말할 수 없다」는 것은 죽은 뒤의 일을 분명하게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요즈음 사람은 속된 논리에 현혹되어서 죽은 뒤 있다느니 없다느니 하면서 의심하는 자가 많은데 모두가 다 아니라고 하는 부류에 들어간다.

 

 

 

 

열째, 다음 다음 세상에도 있다는 데에 대하여 다섯 가지 열반을 생각함

첫째, 총설

 

또 삼마지 가운데 선남자들이 바른 마음을 굳게 응집하여 마구니가 틈을 얻지 못하게 되거든 태어나는 종류의 근본을 궁구하여 저 그윽히 맑고 항상 요동하는 근원을 관찰하고 죽은 뒤 뒷 세상에 대해 있다고 생각하면 그 사람은 다섯 가지 열반 논리에 빠지나니라.

 

原註= 행음이 없어졌다가 다시 생겨남을 보고 죽은 뒤 뒷 세상에 대해 있다고 생각하여 허망하게 다섯 가지 열반을 생각하나니라.

 

둘째, 정계

 

혹은 욕계천으로서 죽고 난 뒤에 의지할 곳이라고 생각하니 이는 원만하게 밝음을 보고 애모하기 때문이며, 혹은 초선이라고 하니 이는 성품에 근심이 없기 때문이며, 혹은 이선천이라고 하니 이는 마음에 괴로움이 없기 때문이며, 혹은 삼선천이라고 하니 이는 지나친 기쁨이 따르기 때문이며, 혹은 사선천이라고 하니 이는 괴로움과 즐거움이 다 없어져서 나고 죽음에 윤회하는 성품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정기가 몸 밖으로 새어나가는 것이 있는 하늘임을 모르고 작용이 없는 경지라는 생각을 내어 다섯 곳을 최상의 경지라고 하나니라.

 

原註=「죽고 난 뒤 의지처」라는 것은 나고 죽음을 변화시켜서 열반에 의지하는 것이다. 혹은 욕계에 원만하게 밝은 이치를 깨달아 마침내 욕계천으로써 죽고 난 후 의지할 곳이라고 하며 혹은 초선천의 근심을 여읜 것과 이선천의 괴로움에서 벗어남과 삼선천의 지나친 기쁨과 사선천의 모두 다 버리는 것으로써 죽고 난 뒤 의지할 곳이라고 생각하니 이를「다섯 가지 열반」이라고 하나니라.「정기가 몸 밖으로 새어나가는 것이 있는 하늘을 몰랐다」는 것은 두 하늘이 다 정기가 몸 밖으로 새어나가는 하늘에 속하여 작용이 없는 果도 아니며 최상의 경지도 아님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셋째, 결론

 

이로 말미암아 다섯 곳이 현재의 열반이라고 생각해서 외도에 떨어져 보리의 성품을 미혹하리니 이를 제十 외도가 성립한 오음 가운데 다섯 곳이 현재의 열반이라고 하는 마음이 뒤바뀐 논리이니라.

 

 

 

셋째, 결론지어 철저히 막을 것을 권유함

 

아난아! 이와 같이 열 가지 선나에 대해 잘못 이해하는 것은 모두가 행음에서 작용하는 마음이 서로 어울리기 때문에 이러한 깨달음이 나타나는 것이거늘 중생들이 미련하고 혼미해서 스스로 헤아려 알지 못하고 이렇게 앞에 나타난 현상을 만날 적에 혼미한 것을 잘못 이해해서 스스로 성인의 경지에 올랐다고 생각하여 큰 거짓말을 하게 되면 무간지옥에 떨어지리니

 

原註= 앞에서 말한 선나에서 나타나는 경지는 곧 천마가 그 틈을 얻은 것이고 여기서 말한 선나에서 잘못 이해한 것은 곧 마음의 마구니가 스스로 깊은 재앙을 일으킨 것이니 무릇 도를 깨달은 것이 진실하지 못하여 여러 갈래로 허망하게 생각하는 것이 곧 잘못 이해한 것이다. 그것을「마음의 마구니」라고 하니 가장 철저히 막아야 할 것이다.

 

넷째, 경계하여 널리 선포하기를 권유함

 

너희들은 반드시 여래의 말을 가지고 내가 열반에 든 뒤에 말법 세상에 전해 보여서 널리 중생들로 하여금 이 이치를 깨닫도록 하고 마음의 마구니로 하여금 스스로 깊은 재앙을 일으킴이 없도록 하여 보호해 지켜서 사특한 소견을 소멸시키고 그 몸과 마음으로 하여금 참다운 이치를 깨달아서 위 없는 도에 대해 갈림길로 나아가지 않게 하며 마음이 바라는 것으로 하여금 적게 얻은 것을 만족하게 여기지 말게 하여 大覺王대각왕의 청정한 지표가 되게 하라.

 

原註= 널리 선포할 사람으로 하여금 여래의 말씀을 가지고 두루 중생들을 위하여 보호하고 지켜서 마구니가 침범하지 못하게 하며 재앙이 일어나지 못하게 해서 사특한 갈림길에 빠지지 말며 조그마한 증득을 취하지 말아서 참되게 覺位각위의 果과에 오르게 함이 곧 대각왕의 지표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능엄경』에서의 가르침은 중생들을 대함이 매우 두터우며 참다운 수행을 바라는 것이 가볍지 아니하니 우리들은 마땅히 힘써야 한다.

 

출처 : 출리심 보리심 공
글쓴이 : - 해탈 -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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