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학자들은 선종을 두고 흔히 “우상타파적”(iconoclastic)이라고 말한다. 하기는, 우상타파라고 할 때 생각나는 선의 일화가 있기는 하다. 옛날에 어떤 선사가 수행하다가 너무 추워서 법당의 목불(木佛)을 쪼개서 군불을 땠다는 충격적인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런 일화는 아주 드문 예외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오죽하면 이야기로 남아 전해지겠는가? 만약에 선종 사찰에서 불상을 다 치워버리고 참선만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면 그런 일화는 이야기 거리도 되지 않았을 터이다. 그러면, 학자들이 선종을 두고 우상타파적이라고 하는 것은 무슨 뜻일까? 여기에서 우상이라고 한 것은 신상이나 불상처럼 초월적이거나 위대한 존재의 형상을 빚어놓은 것만을 가리키기보다는, 좀더 근본적인 뜻을 담고 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감각하고 경험하는 것을 가지고 초월적인 것, 초경험적인 것으로 여기고는 숭배하는 태도를 문제 삼는다. 달리 말하자면 상대적인 것을 절대적인 것으로, 세속적인 것을 거룩한 것으로, 세간적인 것을 출세간적인 것으로, 피조물을 조물주로, 종을 주인으로 착각하고 숭배할 때 그 숭배대상이 된 상대적인 것, 세속적인 것, 세간적인 것, 피조물, 종을 편의상 우상이라고 일컬은 것이다. 그리고 우상숭배의 대표적인 예로 쉽게 꼽히는 것이 신상에 대한 숭배이다. 하지만 신상, 불상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고 절하고 기도하는 것은 우상숭배의 작은 예일 뿐이다. 크리스트교에서도 이해가 좀 얕은 이들이나 우상숭배를 그런 뜻으로만 알고 있지, 품위 있는 신학에서는 아주 근본적인 문제를 이야기한다. 예를 들면, 신이 아닌 것을 숭배하는 짓 가운데 가장 심각한 문제는 자기를 자신의 주인으로 여기는 일이라고 한다. 알다시피 크리스트교에서는 나 자신을 포함해서 이 세상 모든 것의 주인이 신이라고 한다. 선 이야기를 하는 자리에서 웬 크리스트교 이야기를 잔뜩 늘어놓는가 할지도 모르겠다. 다 연관이 있다. 특히, 불립문자라는 선의 방침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우상이라는 개념을 그와 같이 넓혀서 보면, 진짜가 아닌 것을 진짜로 착각하고 철석 같이 믿는 것이 다 우상숭배이다. 윤원철/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우상이라 하면 우선 신상(神像)이 떠오르고, 불교에서 그에 해당하는 것으로는 불상(佛像)과 보살상(菩薩像), 그리고 각종 신중상(神衆像)이 있다. 우상타파라고 하면, 그런 것들을 두들겨 부순다는 건가? 누구나 잘 알다시피, 선종이라고 해서 그런 것들을 두들겨 부수지는 않는다.
선종 사찰에도 불보살상, 나한상, 신중상을 다 갖추어놓고 심지어 칠성각, 산신각까지 있다. 탑도 많다. 그 앞에서 절하고 기도한다. 그런데 선종이 우상타파적이라니? 한국에서 크리스트교, 특히 개신교 신자들은 불교를 오히려 우상숭배라고 비판하는 일이 많다. 그리고 한국 불교에서는 선종이 가장 우세한 종단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안다.
그래서 ‘주님’이라는 호칭을 쓴다. 신앙의 핵심은 나 자신이 피조물로서 이를테면 조물주의 종이라는 믿음을 받아들이는데 있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한 개체로 만들어져 존재하다보니 불가피하게 내가 잘났다는 의식이 없을 수 없고 자신을 세상의 중심으로 삼고 살게 된다. 심지어는 자기가 피조물이라는 점조차 잊는다. 조물주와의 관계를 끊는 셈이다. 여기에서 예를 드는 신학사상에서는 그것을 두고 원죄라고 풀이한다.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를 두고 문자 그대로 역사적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대신에, 그런 깊은 뜻을 읽어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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