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의 글에서, 선종에서 말하는 교외별전이라는 종지에는 지극히 우상타파적인 정신이 깔려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선에서 지적하는 우리의 잘못된 의식은 여러 가지 거론되지만, 우선 꼽을 수 있는 것은 겉모양에 휘둘리는 의식이다. 우리의 감각과 지각을 일으키는 온갖 겉모양을 일컬어 불교 용어로 상(相)이라고 한다. 겉모양이라는 말을 썼다고 해서 꼭 눈에 보이는 것만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소리와 냄새, 맛, 촉감, 개념 등 우리의 감각과 지각 기관에 부딪쳐오는 것을 모두 포함하는 말이다. 우리는 오로지 사물과 현상의 겉모양을 가지고 감각과 지각을 일으키고, 그 감각과 지각의 내용을 가지고 사물과 현상에 대해 판정을 내린다. 하지만 그처럼 겉모양만 가지고는 사물과 현상의 진상을 알 수 없다. 우리의 의식을 옭아매는 겉모양의 족쇄에서 풀려나야만 비로소 사물과 현상의 진상을 볼 수 있다. 금강경에 나오는 다음의 구절은 하도 유명해서 많은 독자들이 한번쯤 들어보았을 터이다. “온갖 겉모양은 모두가 허망하니,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닌 줄 알면 바로 여래를 보리라”(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則見如來). 여기에서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닌 줄 안다’는 것은 모든 겉모양이 그대로 진상의 모양이 아닌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여래를 본다’고 함은 세상의 진상을 본다는 뜻이다. 몇 년 전 부처님오신날에 필자가 어느 불교계 신문에 기고한 글이 생각난다. 거기에서도 금강경에 나오는 한 게송을 인용했었다. “겉모양에서 부처를 찾거나 / 목소리로써 부처를 구한다면 / 이 사람은 삿된 도를 행하는지라 / 끝끝내 여래를 보지 못하리라”(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는 게송이었다. 시각이나 청각 등에 부딪쳐오는 상(相)으로만 부처를 생각하는 것은 사도(邪道) 즉 잘못된 길이라는 뜻이다. 사도라 하면 불도(佛道)가 아니라는 뜻이니, 제 딴에는 불교 신행을 한다고 여겨도 기실은 잘못된 신행이라는 얘기이다. 흔히 쓰는 말로 하자면 이단(異端)이라는 것이다. 부처라는 개념, 부처님오신날이라는 명절 등등 온갖 것이 다 우리에게 고정관념으로 굳건하게 틀어박혀 있다. 그런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아무 의심 없이 휘둘리며 행동하고 사유하는 것을 두고 선에서는 우상숭배로 여긴다. 선을 두고 우상타파적이라 하는 것은, 우리를 속속들이 길들여 끌고 다니는 고정관념들을 철저하게 타파하기 때문이다. 윤원철/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선의 입장에서 보면 온통 우상숭배에 푹 빠져 있는 것이 중생의 문제점이다. 여기에서 우상숭배라 함은 신상(神像), 불상(佛像) 앞에서 절을 하고 기도를 하는 것만 가리키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렇게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신상, 불상 앞에서 절을 하건 기도를 하건 음식을 바치건 간에, 그런 행위 자체는 선에서 별로 문제 삼지 않는다. 그 행위의 바탕에 깔린 의식이 문제이다.
그리고는, 부처를 두고 생일이 언제며 제삿날은 언제인 사람이라는 겉모양으로만 보고는 생일을 축하하느라 난리를 부리는 것은 제대로 된 불자(佛子)가 아니라고 글을 썼다. 부처님오신날을 기념하는 글에서, 부처님오신날을 기념하는 것은 이단의 짓거리라는 엉뚱한 소리를 한 셈이다. 하지만 독자 여러분이 다 이해하듯이 그건 꼭 그런 엉뚱한 소리나 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부처라는 말을 가지고 우리가 떠올리는 겉모양의 이미지와 고정관념에 휘둘리지 말고, 이를테면 진리 그 자체로서의 부처, 여래를 보아야만 부처님오신날을 기념하는 것도 비로소 의미가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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