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 되새기기

[스크랩] 좋은 친구 나쁜 친구

수선님 2018. 9. 30. 12:50

how to teach a kid to read


부처님이 나라 마을 호의암라 동산에 계실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이 마을에서 장사를 하는 외도 한 사람이 찾아왔다. 그는 나이가 120세나 되는 노인으로 오랫동안 장사를 하다 보니 친구와의 우정과 배신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여러 사람을 찾아가 좋은 친구와 나쁜 친구를 가리는 방법을 물어보았으나 시원한 대답을 듣지 못하던 터였다.


“한 가지 여쭈어 볼 일이 있습니다. 어떤 친구가 착한 척 겉모습만 꾸미는 나쁜 친구입니까? 또 어떤 친구가 두 몸을 한몸처럼 생각하는 좋은 친구입니까?”


부처님은 그에게 이렇게 일러주었다.


“마음으로는 진실로 싫어하면서 입으로는 좋다고 말하는 사람, 입으로는 은혜롭고 부드러운 말을 하면서 마음으로는 그렇지 않은 사람, 일을 같이하면서도 하는 일마다 속으로는 어긋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착한 척 겉모양만 꾸미는 사람이니 그는 좋은 친구가 아니다.


그러나 두 몸을 한몸같이 생각하는 좋은 친구는 어떤 일을 할 때 방해하거나 의심을 품지 않으며 허물이나 꼬투리를 잡으려 하지 않는다. 착한 친구를 의지하는 편안함은 자식이 아비의 품에 안긴 듯하여 아무도 그 사이를 뗄 수 없나니 이런 친구가 좋은 친구다.”


잡아함 35권 978경 《상주경(商主經)》

   

사람이 살아가는 데 친구처럼 소중한 존재도 없다. ‘친구따라 강남 간다’는 말은 친구가 우리 인생에서 얼마나 소중한 동반자인지를 말해 준다. 강남에 가면 좋은 것이 있는지 나쁜 것이 있는지 모른다. 그래도 친구가 가자니까 같이 가는 것이다. 이 얼마나 보기 좋고 믿음직한 일인가. 부처님 말씀대로 좋은 친구는 ‘아버지의 품’처럼 편안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누구나 좋은 친구 사귀기를 원한다.


하지만 정말로 좋은 친구를 사귄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바이지만 평소에는 아주 사이좋은 관계였다가도 이해가 얽히면 돌아서기 쉬운 것이 친구관계다. 어려운 일이 생길 때 친구를 믿어 주고 도와주려는 사람을 보기가 여간 어렵다. 두 몸을 한몸같이 생각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 때문에 배신감이나 섭섭함을 토로하는 사람도 많다.


우정에 대해 말할 때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 나는 언제나 상대에게 잘 해주었는데, 친구가 나를 믿어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개의 착각은 여기서 비롯된다.


예를 들어 보자. 만약 내가 어떤 친구에게 돈을 빌려 주었다. 그런데 그 친구가 그것을 변제할 능력이 없어 나를 피해 다닌다. 친구 때문에 낭패를 당하는 사람들의 전형적인 사례다. 이때 사람들은 서로 야속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일이 이 지경에 이르러 두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무리 상대를 원망해도 해결의 방법이 나오지 않는다. 이때 사람들은 친구를 버린다. 결국 친구보다는 돈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비극이긴 하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우리는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내가 지금까지 친구에게 참으로 ‘몸은 둘이지만 하나처럼 생각해 왔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더 이상 친구와의 우정이나 배신에 대해 논하지 않는 것이 좋다. 두 몸을 한몸처럼 생각했다면 서로에게 손해날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좋은 친구를 얻고자 하면 내가 먼저 좋은 친구가 되어 주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몸은 둘이면서 하나처럼 생각하는 친구’를 가지려면 우선 나부터 그렇게 해야 한다. 이해관계에 따라 우정과 배신이 엇갈려서는 좋은 친구를 얻을 수 없다. 좋은 친구를 얻지 못하는 것은 내가 먼저 좋은 친구가 돼 주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부처님은 지금 좋은 친구와 나쁜 친구의 조건을 제시하면서 너는 어디에 속하는지를 묻고 있다. 이제 우리가 이에 대한 대답을 할 차례다.

 

홍사성/불교방송 상무



출처 : 淨土를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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