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불교 Early Buddhism

[스크랩] 부처님의 오도송에 대해-by 선일스님

수선님 2018. 9. 30. 13:08

2010. 03. 10 (Wed.) 목카랑 담마: : 부처님의 오도송에 대해

지난 겨울 내내, 눈 덮힌 풍경을 그저 창너머로만 보아야 했던 히리....  언젠가 처럼 뽀드득~ 소리내며, 눈길 한번 더 걸어 보지 못하나.... 했는데, 간밤에 나의 뜨락에도 하얀 눈이 후덕지게 내렸다.   건강이 좋지 않아 그냥 오랫동안 묵혀 두었던 블로그.... 오늘은 흰눈처럼 흰 스킨으로 치장을 해 놓고, 내친 김에 글을 하나 써 볼까 하고 머뭇거린다.   '뭘 쓸까....?'  그래...., 얼마전에 잠시 생각했던 오도송에 대해서, 내 째끄만 노트북의 좌판 위로 나의 손가락이 두드리는대로 글을 이어 볼까 한다. 나중에 내용을 조금씩 더 더하더라도 말이다.



  교에 입문한 불자들의 경우, 널리 잘 알려진 중국 선사들의 오도송이나 또는 우리나라 큰스님들의 오도송을 어렵지 않게 암송하는 분들을 보게 된다.  예를 들자면, 중국의 혜능스님1이나 신수스님2의 오도송이라든가, 혹은 우리나라 원효스님의 유심‘唯心’3 에 대한 오도송이나, 나옹스님의 무문(無聞)에 대한 오도송4, 그리고 경허스님의 '나고 죽음이 없는 마음(無鼻孔心)' 5에 관한 오도송, 등등을 들 수 있다.  또한 근세의 큰스님 중에는 1981년 조계종 종정이 되셨을 때의 성철 큰스님 께서 하셨던 법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6는 설사 불자가 아니라 해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큰스님들의 스승이셨고, 또 현재 우리 모든 불자들의 스승이신 붓다의 오도송에 대해서 물으면, 걸림없이 응답을 주는 분을 만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사실상, 오도송의 기원을 들자면, 붓다께서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얻으신 후, 제일 먼저 읊으신 노래, 바로 그 노래가 우리 스승의 첫 오도송이다. 원어로 말하면, 깨달음을 노래한 붓다의 첫 '우다아나 (Udaana)' 이다. 그러니 오늘은 느긋하게 앉아서, 먼저 붓다께서 읊으셨던 우다아나의 원문을 싣고, 그 아래 한글음으로 그 음을 옮긴 후, 확대 해석하는 의역이 아닌, 글자 그대로의 뜻을 우리말로 한번 옮겨 보기로 하자.





  붓다(Buddha)의 오도송 [=깨달은 분의 우다나, Udāna]


(Dhp.153)  Anekajāti  saṃsār
aṃ

                   sandhāvissaṃ  anibbisaṃ,
                   gahakārakaṃ  gavesanto

                   dukkhā  jāti  punappunaṃ.


아네까  자띠  상사람
산다
윗삼  아닙비삼,
가하 까라깡  가웨산또
둑카  자띠  뿌납뿌남
.7



여러 생을 윤회하며
찾아 헤매었다,
[‘나’ 라는] 집 짓는 이, 너를 좇아…
고통의 생애
거듭, 거듭이었다.

 


 

 

  (Dhp.154) Gahakāraka  diṭṭho ‘si

                   puna  gehaṃ  na  kāhasi,
                  

                   sabbā  te  phāsukā  bhaggā

                   gahakūṭaṃ  visaṃkhitaṃ,
                  

                   visaṃkhāragataṃ  cittaṃ

taṇhānaṃ  khayam  ajjhagā.

가하 까라까 딧토시
뿌나 게함 나 까하시,

삽바 떼 파수까 박가
가하꾸땀 위상키땀,

위상카라가땀 찟땀
딴하남 카얌 앗자가
.8

 

 

“오, 집짓는 이여,
네 [모든 것이] 보인다.
이제 다시는 집 짓지 못 하리.



네가 사용하는 모든 골재는 부셔졌고,
[지어 논] 집의 상량은 무너져 조각났다.



[나는] 체득 했도다.

‘지음 없는 마음’,

‘욕망들의 [완전한] 소멸’을...!"


 


 




 

  이 글을 쓴지가 어느새 두달 전이었다니...새삼 세월의 흐름이 느껴진다.

 

처음 글을 올릴 때, 시간이 나면 계속 이어서 글을 더 보태겠다 했는데, 생각처럼 그렇게 쉽게 글을 잇지 못하는 사정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래도 혹여 누군가 부처님의 오도송을 소리내어 함께 읊어 보려나 싶어서, 오늘은 이곳에 빠알리어로 된 원어 찬팅(chanting)을 넣어 본다. 손에 잡히는 녹음기에 목소리조차 매끄럽지 않지만 기도하는 마음으로 부처님의 오도송을 담아서 올린다. 다음에 더 조용한 환경이 되고, 또 찬팅하는 사람의 소리도 나아져서(?) 녹음이 더 잘 된다면 다시 바꿀 생각을 하면서..... 우선 아쉬운대로나마 올려 본다.

 

붓다(Buddha)의 오도송:  빠알리 찬팅

 

                

빠알리 찬팅Chanting 및 빠알리 운율 by 선일스님

 



 


히리가 알려 드립니다. 이 글은 제 개인의 이해와 이야기가 담긴 것 이어서, '스크랩이 일부'만 되게 되어 있습니다.


  1. 菩提- 本無樹요 明鏡이 亦非臺라本來 無一物이어니 何處에 惹塵埃깨달음에는 본래 나무가 없고 밝은 거울 또한 대(臺)가 아니다.본래 한 물건도 없거니 어느 곳에서 티끌이 일어나랴. [본문으로]
  2. 身是菩提樹요 心如明鏡臺라, 時時勤拂拭하여 勿使惹塵埃하라. 몸은 깨달음에 나무요. 마음은 밝은 경대와 같다.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티끌이 일어나지 않게하라. [본문으로]
  3. 마음이 생기면 만물의 갖가지 현상이 일어나고, 마음이 멸하면 무덤, 해골물이 둘이 아님을 깨달았구나. [본문으로]
  4. 눈과 귀는 원래 자취가 없거늘,누가 그 가운데서 원만히 깨칠 것인가.텅 비어 형상 없는 곳에서 몸을 굴리면,개 짖음과 나귀 울음이 모두 도(道)를 깨침이네. [본문으로]
  5. 忽聞人語無鼻孔(홀문인어무비공) 頓覺三千是我家(돈각삼천시아가) 六月 巖山下路(유월연암산하로) 野人無事太平歌 (야인무사태평가). 홀연히 콧구멍 없다는 말을 듣고, 비로소 삼천대천세계가 내 집임을 깨달았네. 유월 연암산 아랫길에, 나 일없이 태평가를 부르는 구나. [본문으로]
  6. 원각(圓覺)이 보조(普照)하니 적(寂)과 멸(滅)이 둘이 아니라, 보이는 만물은 관음(觀音)이요 들리는 소리는 묘음(妙音)이라. 보고 듣는 이 밖에 진리가 따로 없으니 시회대중은 알겠는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본문으로]
  7. Trough many of samsara’s birthsI hasten seeking, finding notthe builder of this house:pain is birth again, again. [본문으로]
  8. O builder of this house you’re seen,you shall not build a house again,all your beams have given away,rafters of the ridge decayed,mind to the unconditioned gone,exhaustion of craving has it reached. [본문으로]

출처 : 히리 꾸띠 Kuti
글쓴이 : 히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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