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법요해

[스크랩] 선법요해 73. 천안통으로 시방의 무량 부처님을 보고, 온갖 중생들이 업으로 인해 천국과 지옥에 태어나는 것을 보네.

수선님 2018. 10. 7. 12:23

수행자가 이 천안을 얻고 나면

모든 산과 나무와 철위산(鐵圍山)과 수미산 및 모든 국토가 도무지 막고 가리지 못하니,

 

눈을 장애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능히 시방의 무량 아승기 부처님들과 장엄된 국토를 볼 수 있다.

 

그때 수행자는 일체의 부처님들이 한 부처님이라는 것을 알며,

또한 한 부처님을 일체의 부처님으로 보니, 법성이 파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모습을 보듯이 스스로 자신의 모습에 대해서도 그렇게 보니,

자신의 모습이 청정하기 때문이다. 일체법의 모습도 또한 이와 같다.

 

부처님을 청정하게 보듯이 제자들에 대해서도 그렇게 보니,

두 모습[二相]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방의 한량없는 국토에 있는 중생들이 지옥에 있든 축생이든 아귀이든 인간이든 천상이든

무색자(無色者)를 제외하고는 그들의 나고 죽음과 좋고 나쁨을 모두 다 볼 수 있다.

 

* 무색자란 몸이 없는 무색계의 존재들을 의미한다. 몸이 없으니 당연히 그 몸을 볼 수 없다.

 

또한 시방 6도(道) 중생의 업의 인연과 그 과보를 모두 아니,

 

이 중생은 선한 업의 인연을 지었기 때문에 천상이나 인간 세계에 태어나고,

이 중생은 선하지 못한 업의 인연을 지었기 때문에 3악도(惡道) 가운데 태어남을 아는 것이다.

 

수행자는 천안 가운데서 지혜력(智慧力)을 얻었기 때문에

비록 중생을 보더라도 중생이라는 생각을 내지 않으니,

일체의 법에는 중생의 모습[相]이 없기 때문이다.

 

비록 업과 과보가 서로 이어지는 것을 보더라도

또한 일체법의 무업(無業), 무과보(無果報) 가운데 들어가며,

비록 천안으로 일체의 색을 보더라도 지혜력이 있기 때문에 또한 색상(色相)을 취하지 않으니,

이 색은 모두 다 공하기 때문이다.

 

또한 막혀 있든 막혀 있지 않든, 가깝든 멀든, 위든 아래든, 못 보는 것 없이 다 볼 수 있으니,

수행자는 색계 제천(諸天)의 청정하고 은미한 형상을 볼 수 있으나

저들은 수행자를 보지 못하며, 나아가 대천(大天)에 이르러도 또한 볼 수 없다.

 

이와 같은 갖가지 신통의 뜻은 마하연에서 신통의 뜻을 설하는 가운데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선법요해 <끝>


 

 

 

 

 

선법요해 73. 천안통으로 시방의 무량 부처님을 보고, 온갖 중생들이 업으로 인해 천국과 지옥에 태어나는 것을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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