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 제83칙은 운문화상이 대중에게 설한 상당법문을 다음과 같이 싣고 있다.
운문화상이 법당에서 대중들에게 설법을 했다. “고불(古佛)과 기둥(露柱)이 사이좋게 교제하는데, 이것은 어떤 단계의 마음작용(機)인가?” 운문화상 스스로 대답했다. “남산에 구름이 일어나니, 북산에 비가 내린다.”
擧. 雲門示衆云, 古佛與露柱相交, 是第幾機. 自代云. 南山起雲. 北山下雨.
본칙 공안은 <운문광록> 중권(中卷)의 수시대어(垂示代語)에 다음과 같이 수록하고 있다.
‘운문화상이 법당에 올라 설법하였다. ‘그대들에게 말하노니, 고불(古佛)과 기둥(露柱)이 사이좋게 교제하는데, 이것은 몇 번째 기틀(機)인가?’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운문화상이 물었다. ‘그대들에게 묻는다. 나는 그대들을 위해서 말한 것이다.’ 어떤 스님이 곧바로 질문했다. 운문화상은 말했다. ‘이 채찍 끈은 삽십전(三十文)이다.’ 앞의 말을 대신하여 말했다. ‘남산에 구름이 일어나니, 북산에 비가 내린다.’ 어떤 스님이 질문했다. ‘어째서 채찍 끈이 삽십전입니까?’ 운문화상은 곧장 내리쳤다.’
설두화상은 이 일단의 대화에서 요약한 것인데, <굉지송고> 제31칙에도 똑같은 공안을 제시하고 있다.
운문문언(864~949)화상은 <벽암록>에 여러 차례 등장하고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전기는 생략한다. 원오는 ‘평창’에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이 공안은 번뜩이는 전광석화와도 같아 참으로 신출귀몰하다고 하겠다. (원오와 동문인) 경(慶) 장주(藏主: 경전을 관리하는 직책)는 이 공안에 대하여, ‘석가모니 부처님이 한 평생 설한 대장경에도 이와 같은 말씀이 있을까요?’라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은 흔히 분별 의식으로 살림살이 하면서 "부처님은 삼계의 도사이고, 사생(四生)의 자비로운 어버이다. 이미 고불(古佛)인데 무엇 때문에 기둥(露柱)과 사이좋게 지내는가’라고 말한다. 이와 같이 이해해서는 운문화상의 말뜻을 결코 파악 할 수가 없다.”
말하자면 ‘대웅전에 모신 불상(古佛)과 대웅전의 기둥이 서로 함께 나란히 마주하며 사이좋게 지내고 있는 것은 어떠한 경지(차원)의 지혜작용인가’라고 대중에게 질문한 것이다. 대웅전의 불상 뿐만 아니라, 석가불이나 아미타불, 삼세의 모든 부처나 역대의 모든 조사가 고불(古佛)이다.
설봉선사가 조주선사의 법문을 듣고 ‘조주 고불(古佛)’이라고 칭찬하는 말이 최초인데, <조주록>에는 다음과 같은 일단도 보인다. ‘어떤 수재가 조주선사를 참문하고 곧장 선사를 칭찬하기를 ‘화상이 바로 고불(古佛)입니다’라고 말했다. 조주선사는 ‘수재가 바로 신 여래(新如來)입니다’라고 말했다.’ 고불(古佛)은 옛 부처라는 말이 아니다. 옛(古) 부처라고 하면 새(新) 여래라는 상대적인 차별심에 떨어진 것이다.
<조당집> 제9권에 ‘고불은 수행과 깨달음을 증득하는 것에 따르지 않는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고불(古佛)은 본래, 원래, 근본적으로 부처라는 사실을 말한 것이다. <전등록> 제24권 법안장에 어떤 스님이 ‘고불이란 어떤 것입니까’라는 질문에 법안선사는 ‘지금 그대의 마음에 일체의 의혹이 없는 것이다’라고 대답하고 있다.
<동산록>에도 ‘그대의 본래 청정한 불심이 곧 고불심(古佛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평상심과 번뇌 망념이 없는 무심을 말하며, <육조단경> 등 선어록에서는 본래 청정한 거울(古鏡)의 작용을 불심에 비유하고 있다. 운문화상은 법당에서 눈앞에 전개되고 불상과 기둥이 나란히 마주하고 있는 현상의 사실을 수행자들에게 제시해 고불과 기둥과 같이 일체 상대적인 차별경계를 초월한 경지를 체득하도록 법문을 한 것이다. 법당의 불상(古佛)과 기둥이 별개인 것으로 본다면 경계에 떨어지고 차별에 떨어진 중생심이 된다. 법당의 불상으로 상징되는 고불은 일체 제불과 모든 조사뿐만 아니라 지금 여기서 법문을 듣고 있는 모든 사람이 구족하고 있는 본래 청정한 불심을 말한다. 법당의 기둥은 현전하는 일체의 모든 사물과 현상 경계를 대변한 말인데, 고불(古佛)과 노주(露柱)는 자각의 주체인 불심과 현상 경계의 모든 사물을 말한다. 말하자면 주체(主)와 객체(客), 인(人)과 법(法), 심(心)과 경(境)이 서로 서로 친히 교섭하며 상즉상입(相卽相入)하여 불이일체(不二一體)가 되어 일체의 차별과 분별심이 초월된 경지를 설법하고 있다.
선에서는 주관과 객관이 일체가 된 깨달음의 세계를 하얀 은 쟁반에 흰 눈을 담아 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쟁반과 눈은 둘이지만 흰색으로 일체가 된 경지를 말한다. <반야심경>에서 설한 것처럼, 법당의 기둥을 비롯해 일체의 사물과 차별 경계에 대한 분별 의식이 없이 무심한 경지가 색즉시공(色卽是空)이고, 일체의 분별 의식이 없는 무심의 마음으로 일체의 모든 경계나 사물, 도구를 걸림없이 마음대로 생활에 사용하는 것이 공즉시색(空卽是色)이다. 자각의 주체와 인식의 대상인 사물이 무심의 경지에서 자신의 지혜로운 생활이 되도록 하는 법문이다.
그런데 운문화상이 ‘고불(古佛)도 무심 기둥(露柱)도 무심의 경지에서 서로 서로 하나 된 경지의 작용을 전개하고 있는데 이것은 어떤 단계의 마음작용(機)인가?’ 기(機)는 기관(機關)이나 기용(機用), 기근(機根), 기략(機略), 기륜(機輪)이라고 하는 말처럼,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되는데, 선에서는 마음의 지혜작용을 말한다. 마음의 지혜작용은 여러 가지가 있다. 불심으로 사물의 본체를 곧장 파악하는 직관이나, 사물을 관찰해 인식하는 작용, 문제를 깊이 사유하고 고찰하는 사색 등이 있는데, 지금 고불과 기둥이 서로 사이좋게 교제하는 마음의 작용은 어떤 단계의 지혜작용인가라고 묻고 있다. 대답하는 사람이 없자 운문화상 스스로 ‘남산에 구름이 일어나니, 북산에 비가 온다’라고 대중을 대신해 말했다. 고불과 기둥, 남산과 북산, 구름과 비가 서로 대립적인 것이 아니다. 남산과 북산은 본래 하나의 산이며, 일체의 모든 만물은 서로 상의 상관관계 속에서 서로 서로 무심의 경지에서 존재하고 있다. 구름도 무심, 비도 무심, 구름이 일어나고 비가 오는 모습이 그대로 무심의 경지에서 법체(法體)가 현성(現成)된 사실을 말하고 있다. 고불과 기둥, 구름과 비가 무심하게 주객일체(主客一體), 심경일여(心境一如)가 된 경지를 말했다.
설두화상은 다음과 같이 게송으로 읊었다. ‘남산의 구름, 북산의 비.’ 설두는 본 공안의 주안(主眼)인 운문화상의 말을 그대로 인용해 찬탄하고 있다. ‘서천의 28대, 동토의 6대 조사가 눈앞에서 본다.’ 인도에서 부처님의 혜명을 계승한 서천 28대 역대조사와, 달마대사 이후 육조혜능에 이르는 중국의 6대 조사 모두가 남산에 구름이 일고, 북산에 비가 내리는 것을 본다. 역대의 모든 조사는 정법의 안목을 갖춘 선지식이기 때문에 운문이 말한 ‘남산의 구름과 북산의 비’를 눈앞에서 직접 보고 있다. 삼세(三世)에 상주(常住)하고 법계(法界)에 두루하는 구름이며 비이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진실 법계를 법신의 지혜로 친히 본다고 읊었다.
‘신라국에서 일찍이 상당설법 하였는데, 대당국에서는 아직 북도 치지 않았다.’ 선원에서 주지가 법당에서 상당 설법하기 전에 먼저 북을 치는 의식이 있다. 신라에서 상당 설법을 했는데, 당나라에서는 북도 치지 않았다는 말은 시간의 순서가 맞지 않는 것이고, 신라와 당나라는 거리도 멀리 떨어져 있다. 말하자면 남산에 구름이 일어나고 북산의 비가 오는 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경지에서 전개된 진실법계의 실상인 것이다. 상식적인 시간과 공간개념으로 상대적인 분별의식으로 운문의 말을 이해하면 안 된다.
‘괴로움 가운데 즐거움, 즐거움 가운데 괴로움’ 남산과 북산, 고불과 기둥, 고(苦)와 락(樂)도 하나의 경지이다. ‘그 누가 황금을 똥 같다고 말하리요.’ <전한서(前漢書)> 열전에 장이(張耳)와 진여(陳餘)는 양나라 사람으로 황금을 똥으로 볼 정도로 친한 친구였다. 그러나 뒤에 사이가 나빠져 권력 다툼으로 똥보다도 더 더러운 사이가 됐다. 고불과 기둥은 서로 무심의 경지에서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황금을 똥과 같이 생각할 필요도 없고, 또 똥보다도 더 더러운 것이라고 의식할 필요도 없다. 황금은 황금 그대로, 똥은 똥 그대로, 무심한 그 가운데 일체 괴로움과 즐거움(苦樂)의 차별도 없는 것이다.
성본스님/동국대 불교문화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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