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 제85칙은 어떤 스님이 동봉화상을 찾아가 다음과 같은 선문답을 나누었다.
어떤 스님이 동봉화상이 살고 있는 암자에 이르러, 동봉화상께 질문했다. “여기서 갑자기 호랑이를 만났을 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동봉화상이 갑자기 호랑이가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내자, 그 스님은 곧장 겁먹은 시늉을 하였다. 동봉화상이 껄껄대며 크게 웃자, 그 스님은“이 도적놈아!” 라고 말했다. 동봉화상은 말했다. “그대는 노승을 어떻게 하겠느냐?” 그 스님은 그만 두었다. 설두화상이 말했다. “옳기는 옳다만, 어리석은 도둑놈처럼, 자신의 귀를 막고 방울을 훔칠 줄만 아는구나!”
擧. 僧到桐峰庵主處便問, 這裏忽逢大蟲時, 又作生. 庵主, 便作虎聲. 僧便作勢. 庵主呵呵大笑. 僧云, 這老賊. 庵主云, 爭奈老僧何. 僧休去. 雪竇云, 是則是兩箇惡賊, 只解掩耳偸鈴.
본칙의 공안은 <전등록> 제12권과 <광등록> 제13권 동봉암주전에 선문답으로 전하고 있다. <전등록>에 그의 전기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하지 않고 있어 잘 알 수가 없다. 원오도 ‘평창’에 ‘백장회해선사의 법을 계승한 임제의 문하에서 대매(大梅), 백운(白雲), 호계(虎溪), 동봉(桐峰) 등의 네 암주가 배출되었다.’라고 한다. 대매(大梅) 백운(白雲)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전등록>에는 임제의현선사의 문하에 동봉(桐峰), 삼양(杉洋), 호계(虎溪), 복분(覆盆)등의 4인의 암주가 배출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동봉화상도 임제의 선법을 잇고 깊은 산중에 은거한 선승이 아닌가 생각된다. 산악형 종교로 형성된 선불교는 모두 산중에서 수행하고 심산유곡에서 유유자적하게 은둔의 수행자로 삶을 살다간 선승의 숫자는 셀 수 없이 많았다. <조당집>에 ‘마조문하의 은둔자는 그 수를 셀 수도 없이 많았다.’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처럼, 이름을 알 수 없는 선승은 무척 많다.
본칙에서도 산중에 은거하는 선지식을 찾아다니며 구법행각하는 어떤 수행자가 어느 날 동봉화상이 살고 있는 암자에 이르러 동봉화상에게 곧장 ‘암주가 홀로 이 산중에 좌선수행하고 있을 때 만약 무서운 호랑이(大蟲)를 만나면 어떻게 처리하겠는가?’ 라고 질문을 던졌다. 이러한 선문답을 선사를 시험하는 험주문(驗主問)이라고 하는데, 질문한 스님이 누군지 알 수 없지만 너무나도 자신만만하고 자신이 일체의 만법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안목을 갖춘 호랑이라고 하면서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암주의 안목을 점검하려고 하고 있다.
<조당집> 제16권에 남전과 귀종이 호랑이(大蟲)를 소재로 선문답을 나누고 있고, <전등록> 제10권에는 앙산이 장사경잠(長沙景岑)의 지혜작용을 마치 호랑이와 같이 용맹스러운 선승이라고 평가하면서 잠대충(岑大蟲)이라는 별명이 붙게 된 것처럼, 호랑이는 정법의 안목을 갖춘 용맹스러운 지혜작용을 자유롭게 펼치는 작가 선지식을 말한다. 원오는 ‘작가가 그림자를 가지고 논다.’라고 착어하고 있다. 이 스님은 안목을 갖춘 호랑이와 같은 작가라고 호언장담하고 있지만, 아직 진짜 호랑이는 본 일도 없는 사람같다고 비꼬고 있다.
동봉화상은 스님의 질문을 받고 갑자기 호랑이가 울부짖는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냈다. 즉 동봉화상은 이 산중에는 호랑이가 살고 있는가? 그런 질문은 쓸데없는 소리야. 내가 바로 살아있는 호랑이다 라고 호랑이 고함소리를 흉내낸 것이다. 호랑이가 울부짖는 고함소리를 낸 것은 <전등록> 제9권 백장선사가 황벽에게 호랑이(大蟲)를 보았는가? 라는 질문에 황벽이 곧장, 호랑이가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냈다. 백장은 상당법문에서 대웅산에 한 마리의 호랑이가 있다고 황벽을 인가한 것처럼, 법계로 동봉화상의 조부인 황벽선사가 최초로 주장한 것이다. 이와같은 선문답으로 하나의 형식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동봉화상도 이미 이러한 각본은 알고 있었기에 즉시로 자신의 지혜로 응용한 것이다. 원오는 ‘잘못을 잘못에 나아간다.’라고 착어하고 있는 것처럼, 질문한 스님도 동봉암주도 잘못되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즉 호랑이 고함소리는 냈지만, 질문한 스님을 물어 죽이는 지혜작용이 없는 그릇됨을 가지고 질문한 스님의 태만한 잘못에 나아간 것이라는 의미이다. 원오는 ‘같이 살고 같이 죽는다.’라고 착어한 것처럼, 질문한 스님과 암주가 비슷한 안목에서 나눈 말이라고 야유하며, ‘말을 들으면 반드시 종지를 체득해야지.’라는 석두희천의 <참동계(參同契)> 일절을 인용하여 무슨 일이 있어도 선승의 일문일답에서 본분의 종지를 체득해야 하는데, 동봉암주는 호랑이 질문에 호랑이 소리 흉내만 내고, 질문한 스님에게 본분의 종지인 발톱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동봉암주는 아직 불법의 대의(종지)를 체득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동봉화상의 호랑이 고함 소리에 그 스님은 곧장 겁먹고 두려워하는 시늉을 하였다. 원오는 ‘두 사람 모두 진흙덩어리를 가지고 노는 어린애와 같은 놈’이라고 착어하고 있다. 암주는 스님이 겁먹고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고 껄껄대며 크게 웃었다. 암주의 웃음에 대하여 원오는 ‘웃음 속에 칼이 있다.’라고 착어하고 있는 것처럼, 방심 할 수 없는 선기를 펼쳤다. 스님은 암주가 웃음이 심상치 않은 도적의 선기가 있음을 간파하고 ‘이 도적놈아!’ 라고 말했다. 그러나 스님은 암주의 도적놈 기질을 파악하고도 독설을 퍼붓는 욕만 할 뿐 손도 쓰지 못하고 있을 때 동봉 암주는 멀리 달아나 버렸다. 원오도 ‘졌다’고 착어하고 암주나 스님이 모두 자신의 경지를 내보인 방행(放行)만 하고 거두는 파주(把住)가 없다고 지적했다.
질문한 스님은 호랑이 소문은 들었지만 아직 진짜 호랑이를 본적이 없고, 암주도 호랑이 시늉만 하고 죽이고 살리는 맹수의 지혜작용이 없다. 스님이 이 도둑놈이라고 하자, 동봉화상은 ‘그대는 노승과 같은 도적을 어떻게 하겠느냐?’ 고 냉소로 대꾸하고 있다. 스님은 암주를 도적이라고 욕설을 퍼붓기만 하고 어떻게 할 수 있는 지혜작용이 없어 물러서고 말았다. 원오는 ‘두 사람 모두 안목 없다. 한심하고 한심하다.’라고 착어하며, 암주와 스님 모두 유야무야 용두사미로 끝나고 말았다고 비판했다.
설두화상은 ‘옳기는 옳다만, 나쁜 도적처럼, 단지 자신의 귀를 막고 방울을 훔칠 줄만 아는구나!’ 라고 <여씨춘추(呂氏春秋)> 회남자(淮南子)에 나오는 고사를 인용하여 평했다. 즉 스님과 암주 모두 훌륭한 선승이지만, 나쁜 도적의 악독한 수단으로 호랑이 소리를 흉내내고, 호랑이를 보고 두려워하는 시늉을 하고, 껄껄 호탕하게 웃고, 도둑이라고 욕하기도 하는 등 상대방의 약점만을 공격하는 나쁜 작전을 여러 가지 펼쳤지만, 결국 귀를 막고 방울을 훔치는 어리석은 아류의 선승이다. 방울을 훔치면 소리가 나기 때문에 남이 곧바로 알지만, 자신의 귀만 막고 있으면 자기에게는 들리지 않으면 남도 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안심하고 방울을 훔치는 어리석은 사람에 비유했다. 상대방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독자적인 방편의 지혜가 부족하여 어떻게 할 수도 없고, 작가 선승으로 능력 부족이기 때문에 전혀 힘을 쓰지 못하는 어리석은 선승이라고 지적한 것이다.
설두화상은 다음과 같이 게송으로 읊고 있다. ‘그것(호랑이)를 보고도 잡지 못하면, 천리 밖에 가서 그것(호랑이)를 생각한다.’ 선문답을 하는 그 때에 자기 본분사(호랑이)를 체득하는 찬스를 잡지 못하고 아쉬워하는 암주와 스님의 부족한 경지를 읊고 있다. ‘호랑이의 얼굴진 무늬는 아름다운데, 발톱과 이빨을 갖추지 못했다.’ 암주와 스님은 모두 훌륭한 호랑이지만, 발톱과 이빨을 갖춘 지혜작용이 없었다. ‘그대는 들어보지 못했는가? 대웅산 아래서 홀연히 만나보니, 우렁찬 목소리와 광채가 모두 대지를 진동했던 사실을. 대장부는 보았는가? 호랑이 꼬리를 잡고, 호랑이 수염을 뽑았노라.’ 백장이 황벽을 대웅산의 호랑이라고 평한 선문답의 고사를 인용한 것인데, 이 대화에 대하여 앙산이 백장은 황벽을 칭찬한 것뿐만 아니라, 호랑이를 살려서 활동하게 하였다. 즉 호랑이 머리와 꼬리를 완전히 장악한 것이다. 호랑이의 머리와 꼬리를 완전히 갖추지 못하면 호랑이로서 용맹을 떨진 지혜를 펼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성본스님/동국대 불교문화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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