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碧巖錄)> 제81칙은 약산유엄선사와 큰 사슴을 화살로 잡는 선문답을 다음과 같이 싣고 있다.
어떤 스님이 약산화상에게 질문했다. “넓게 펼쳐진 초원에 큰 사슴과 많은 사슴들이 무리를 이루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큰 사슴 가운데 큰 사슴을 화살로 쏘아 맞출 수가 있습니까?” 약산화상이 말했다. “이 화살을 잘 봐라!” 그 스님이 벌떡 자빠지며 거꾸러지자, 약산화상이 말했다. “시자야! 이 죽은 놈을 끌어내라!” 그 스님이 곧장 도망치자 약산화상이 말했다. “흙덩어리나 갖고 노는 놈! 이런 바보같은 놈들을 아무리 상대해도 끝장이 없다니까!” 설두화상이 이 이야기를 제시하여 말했다. “세 걸음까지는 살아 있다고 해도 다섯 걸음 가면 반드시 죽을 것이다.”
擧, 僧問藥山, 平田淺草麈鹿成群, 如何射得中. 山云, 看箭. 僧放身便倒. 山云, 侍者拖出這死漢. 僧便走. 山云, 弄泥團漢有什限. (雪竇拈云, 三步雖活五步須死.)
약산화상은 <벽암록> 제41칙에도 등장했다. 본칙 공안의 출처는 분명하지 않은데, 후대의 자료인 <오등회원> 제5권 약산장에 수록하고 있고, <연등회요> 낙19권에도 전하고 있지만 내용에 약간 다른 점이 있다. 석두희천의 선법을 이은 약산유엄(藥山惟嚴, 751~834)은 전기는 <조당집> 제4권, <송고승전> 제17권, <전등록> 제14권 등에 전하고 있는 것처럼, 속성은 한(韓)씨, 강서성 신풍현에서 출생하여 17살에 출가했다. 뒤에 석두희천선사를 친견하고 나눈 선문답을 <조당집>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약산이 앉아있는데, 석두선사가 물었다. “여기서 무엇을 하는가?” 약산이 대답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한가히 앉은 것이구나!” “한가히 앉았다면 하는 것이 됩니다.” “그대는 하지 않는다 하는데, 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가?” “천명의 성인도 알 수 없습니다.” 이에 석두선사가 게송으로 약산을 찬탄하였다. ‘전부터 함께 있었지만, 이름조차 모르는데, 마음대로 서로잡고 그런 행동 짓는다. 예부터 높은 현인도 알지 못했거늘, 경솔한 예사 무리야 어찌 밝힐 수가 있으랴!’
석두선사가 약산의 안목을 인정한 게송이다. 약산은 석두선사의 지시로 마조대사를 참문하여 선문답을 나누고 마조선사가 그대의 스승은 석두선사라고 인정한 사실도 전하고 있는 것처럼, 약산화상은 당대의 명승 석두와 마조가 인정한 인물이다. 특히 상공인 이고(李)가 약산화상을 참문하여 도를 묻는 질문에 약산화상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또 물병을 가리키며 말했다. ‘구름은 하늘에 있고, 물은 병에 있다’는 한마디로 깨닫게 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지극히 당연하고 눈앞의 현실에서 작용하는 진실된 불법을 직접 깨닫도록 제시한 법문이다.
어떤 스님이 약산화상에게 “넓게 펼쳐진 초원에 큰 사슴() 많은 작은 사슴들이 무리를 이루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왕 사슴중의 왕 사슴을 화살로 쏘아 맞출 수가 있습니까?” 라고 질문했다. 똑같은 질문이 <설봉어록(雪峰語錄)> 하권에도 전하고 있는데, 주()는 큰 사슴(大鹿)을 말한다. 많은 사슴 무리들을 이끌고 있는 큰 사슴들 가운데 가장 큰 왕 사슴을 ‘주중주(中)’라고 하며, 모든 사슴의 무리를 이끌고 있는 왕 사슴을 잡는 방법을 약산화상에게 질문하고 있다. 큰 사슴은 꼬리털이 훌륭하여 작은 사슴들이 큰 사슴의 꼬리털을 목표로 하여 따라 다닌다고 하는데, 선문답에서는 주중(主中)의 주(主), 법왕중(法王中)의 법왕(法王)을 비유하여, 만법의 주체이며 우주의 본체를 지칭하고 있다. 만법의 주체를 어떻게 쏘아 맞출 수가 있는가? 즉 자기의 본성을 어떻게 체득해야 하는가를 큰 사슴으로 비유한 질문이다. 원오도 ‘평창’에 이러한 질문을 차사문(借事問) 혹은 판주문(辦主問)이라고 하는데, 이로써 지금 당면한 문제의 핵심을 밝히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질문한 스님은 자신이 큰 사슴중의 왕 사슴이라고 자임하면서 약산화상의 안목을 점검하며 화살을 잡고 법전을 펼친 질문이다. 약산화상도 질문한 스님을 향해 화살을 잡아당긴 상황에서 “이 화살을 잘 봐라!” 라고 큰 소리를 쳤다. 이 스님의 질문한 핵심을 화살로 쏘아 날려버리는 작용으로 일체의 사량분별을 떨쳐버린 날카로운 지혜의 화살인 것이다.
원오는 ‘평창’에 화살로 독자적인 법문을 펼친 마조의 제자 석공선사의 이야기를 인용하고 있다. ‘삼평(三平)이 석공선사를 참문하자 석공선사는 곧장 활을 당기는 시늉을 하면서 “화살을 보라(看箭)” 고 말했다. 삼평은 가슴을 열어 제치며, “이것은 사람을 죽이는 화살입니까? 살리는 화살 입니까?” 라고 말하자, 석공선사는 화살을 세 번 튕겼다. 삼평이 곧장 절을 하니, 석공선사가 말했다. “30년 동안 활 한 개와 두 개의 화살을 가지고 교화했었는데, 오늘에야 비로소 반쪽 성인을 쏠 수 있었다.” 그리고는 곧장 화살을 꺾어 버렸다.’ 원오는 ‘석공선사의 지혜작용이 약산화상과 똑같다. 삼평은 정수리(頂門)에 안목을 갖추고 한 마디 적중시켰는데, 이것은 약산화상이 “화살을 보라!”고 한 말과 같은 것’이라고 해설하고 있다.
약산화상의 화살에 큰 사슴중의 왕 사슴으로 자임한 그 스님은 몸을 뒹굴면서 벌떡 자빠지며 거꾸러졌다. 즉 스스로 약산의 화살에 명중된 큰 사슴중의 왕 사슴이라는 사실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다. 약산이 다름 말로 던지면 또한 그에 적당한 말로서 대꾸하려는 복안의 말도 준비했을 것이 분명하다. 원오도 ‘망상 분별하는 놈’이라고 질타하고 있다. 그래서 약산화상은 “시자야! 이 죽은 놈을 끌어내라!” 고 고함쳤다. 죽은 시체를 빨리 없애 버리라고 하자, 그 스님이 곧장 도망치자 약산화상이 말했다. “흙덩어리나 가지고 노는 멍청한 놈! 이런 바보같은 놈들을 아무리 상대해도 끝이 없다니까!”
설두화상이 이 이야기를 제시하여 말했다. “이 스님은 일어나서 두세 걸음을 걸을 때는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다섯 걸음 걸어가면 죽은 사람이 된다.” 즉 크게 한 번 죽어야 되살아난다는 사중득활(死中得活)이라는 말처럼, 아상 인상과 번뇌 망념을 텅 비우고 불법의 지혜작용을 펼치는 시늉을 하고 있지만, 엉터리 가짜로 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일시적으로는 그럴 듯 해 보이지만 곧장 죽은 인간이 되고 만다고 평한 말이다. 원오도 ‘백보를 도망간다 해도 반드시 목숨을 잃어버릴 것’이라고 착어했다.
설두화상은 다음과 같이 게송으로 읊고 있다. ‘큰 사슴중의 왕 사슴.’ 본칙의 제목으로 주중(主中)의 중(主), 법왕(法王)중의 법왕, 진여 법성, 혹은 본래면목, 법신불을 체득하는 일이 수행의 근본이다. ‘그대는 잘 보라.’ 참선 수행자들은 큰 사슴 중에 왕 사슴인 자신의 본래면목을 잘 보도록 하라. 각자 본인 스스로 보고 깨닫는 방법 밖에 없다. 약산화상이 ‘화살을 보라!’는 법문을 설두는 전체적으로 제시하여 읊고 있다. 약산화상은 화살을 보라고 하며 날카로운 지혜의 ‘화살 하나를 쏘아’ 정확하게 명중시켰다. 그것은 질문한 스님이 본래면목을 깨닫도록 베푼 자비심이었다. ‘세 걸음 도망치게 했네.’ 스스로 큰 사슴중의 왕사슴이라고 생각하고 자빠진 스님도 약산화상이 ‘이 죽은 놈을 끌어내라!’ 고 한 말에 도망쳤다.
이러한 행동은 죽은 가운데 되살아난 사중득활(死中得活)의 지혜작용처럼 보였지만, 겨우 세 걸음 움직이고는 죽어버렸다. ‘다섯 걸음 걸어가서도 살 수 있다면, 떼를 지어 호랑이도 좇을 수 있으리.’ 진실로 안목을 갖춘 스님이라면 약산이 이 죽은 놈을 끌어내라고 말할 때 약산을 역습하는 지혜를 펼쳐야 호랑이와 같은 약산도 좇을 수 있다. ‘정법의 안목은 원래 사냥꾼에게 있었다.’ 약산은 정말 사냥꾼과 같은 노련한 선승이었기 때문에 하나의 화살로 명중시켰다. ‘설두가 큰 소리로 말했다. “화살을 잘 보라!” 고.’ 설두 역시 약산과 같은 경지의 안목으로 천하의 수행자들에게 자기 지혜의 화살을 쏘아 본래면목을 잘 성찰해 깨닫도록 지시하고 있다.
성본스님/동국대 불교문화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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