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 제84칙은 <유마경>의 압권이라고 할 수 있는 불이법문(不二法門)을 제시하고 있다.
유마힐이 문수사리에게 질문했다. “보살이 둘이 아닌 불이법문(不二法門)을 깨닫는 것은 어떤 경지인가?” 문수가 말했다. “내 생각으로는 일체의 법에 관하여 말할 수도 없고, 설할 수도 없고, 제시할 수도 없고, 알게 할 수도 없으며, 일체의 질문과 대답을 여읜 그것이 불이법문을 깨닫는 것입니다.” 이에 문수사리보살이 유마힐 거사에게 물었다. “우리들은 각자의 설명을 마쳤습니다. 거사께서 말씀해 보십시오. 불이법문을 깨닫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설두화상이 말했다. “유마거사가 무슨 말을 했는가!” 설두화상은 다시 말했다. “완전히 파악(勘破)해 버렸다.”
擧. 維摩詰問文殊師利. 何等是菩薩入不二法門. 文殊曰, 如我意者. 於一切法. 無言無說. 無示無識. 離諸問答. 是爲入不二法門. 於是文殊師利 問維摩詰, 我等各自說已, 仁者當說, 何等是菩薩入不二法門. 雪竇云, 維摩道什. 復云, 勘破了也.
본칙의 공안은 <유마경> ‘입불이법문품’에 의거한 것이다. <유마경>에는 어느날 비야리성의 장자인 유마거사가 석존이 설법하는 장소에 얼굴이 보이지 않아, 석존이 “어떻게 된 일인가?” 걱정하면서 물어보니 제자 한 사람이 “유마거사는 병으로 누워있다” 고 말했다. 그래서 석존은 제자 사리불과 여러 제자들에게 “유마거사의 병문안을 하고 오라” 고 지시하였지만 이런 저런 핑계로 모두 병문안 가기를 싫어했다. 마지막으로 문수보살이 세존을 대신하여 병문안 하러 가게 되었는데, 3만 2000의 대중들을 거느리고 유마거사의 병실을 찾아갔다. 유마거사는 그 많은 대중을 자신이 거처하는 방장(方丈)으로 초청하였지만, 장소가 조금도 협소함을 느끼지 않았다고 한다.
원오는 ‘평창’에 유마거사와 여러 보살들과의 대화를 다음과 같이 평하고 있다. “유마힐이 여러 보살들에게 각기 둘이 아닌 불이법문(不二法門)을 말하게 하였다. 그때 32명의 보살이 사물을 둘로 나누어 보는 견해(二見)인 유위(有爲)와 무위(無爲), 진(眞)과 속(俗)의 두 가지 진리(二諦)를 합일시켜 불이법문이라고 대답했다. 마지막에 문수보살은 ‘내 생각으로는 일체의 법에 관하여 말할 수도 없고, 설할 수도 없고, 제시할 수도 없고, 알도록 할 수도 없으며, 일체의 질문과 대답을 여읜 그것이 불이법문을 깨닫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말하자면 32명의 보살은 말로서 말을 버렸다. 그러나 문수보살은 말이 없는 것(無言)으로 말을 버려 일시에 털어버려 아무 것도 필요치 않는 것으로 불이법문을 깨닫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신령한 거북이 진흙땅에 꼬리를 끄는 것과 같이 자취를 쓸어버린다는 것이 그만 또 다른 흔적을 남긴 꼴이다.”
유마거사와 문수보살의 대화로 귀결되는 본칙 공안의 핵심은 불이법문(不二法門)을 체득한 견해와 안목을 점검하는 문답이라고 할 수 있다. 유마거사의 질문에 다른 보살들은 대승불교에서 제시한 불이법문(不二法門)의 의미에 대하여 자신의 견해를 여러 가지 입장에서 제시하고 있는데, 이미 언어 문자로 설명한 것은 불이법문을 대상으로 설정하여 상대적인 입장에서 말한 것이기 때문에 불이의 경지를 체득한 입장이라고 할 수 없다. 이론적으로 불이법문과 반야의 지혜를 체득하는 방법을 아무리 설명해도 언어 문자의 설명은 자취와 흔적이 남는다. 불이법문을 체득하는 것은 선악, 시비, 생사 등의 일체 상대적이고 이원론적인 차별심을 텅 비우는 공(空), 중도(中道)의 실천을 통해서 근원적인 불심의 반야지혜로 일체의 자취나 흔적이 없는 깨달음의 삶을 실행하는 것이다. <육조단경>에서 주장하는 불법의 대의란 반야의 지혜를 체득하는 것이다. 선의 수행은 반야의 지혜로 정법의 안목을 구족하여 지혜로운 삶을 선의 생활로 전개하는 것이며, 선문답은 이러한 사실을 점검하고 확인하는 스승과 제자의 구체적인 대화인 것이다. <신심명>에서는 “지극한 깨달음을 체득하는 일은 조금도 어렵지 않다. 단지 취사선택하고 간택하는 분별심만 없으면 된다(至道無難 唯嫌揀擇)”이라고 설하고 있다.
문수보살은 반야지혜를 상징하는 보살이며, 칠불(七佛)의 스승이고, 시방제불의 어머니(母)라고 주장하고 있다. 문수보살은 반야지혜의 완성으로 부처로서 현성되기 때문에 반야지혜(문수)는 부처를 생산하는 어머니라고 강조하고 있다. <유마경>에서는 문수보살의 안목이 유마힐의 지혜에 미치지 못하는 보살로 등장하고 있다. 문수보살은 최후로 유마거사에게 “우리들 32보살은 불이법문에 대한 각자의 견해를 밝혔는데, 이제는 유마거사 당신이 대답할 차례입니다. 거사의 견해는 어떻습니까?” 라고 질문하자 유마거사는 단지 침묵을 하였다고 한다. <종용록> 제48칙에 “승조의 <조론> 열반무명론에 석가가 성도 후 마갈타국에서 방문을 닫고 침묵하였고, 유마도 비야리성에서 입을 닫고 침묵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불법의 근본(第一義諦) 진실은 언어 문자로 설명할 수도 없고, 마음으로 분별해서 알 수도 없는(言語道斷 心行處滅) 불립문자의 경지임을 침묵으로 표현한 것이다. 침묵은 상대적인 언어 문자로 설명하는 이원적이고 분별적인 차별심을 텅 비운 본래심의 입장이며, 진실과 하나 된 불이법문을 체득한 경지를 그대로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본칙에서는 유마가 침묵으로 대답한 것을 생략하고, 설두가 “유마거사가, 무슨 말을 했는가!” 라고 말했다. 원오는 “유마거사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그를 대신하여 무슨 도리를 설하고 있는가?”라고 착어하고 있다. 설두화상은 또다시 “완전히 파악(勘破)해 버렸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설두화상이 유마가 말하지 않고 침묵한 그의 속셈을 완전히 간파해버렸다는 의미이다. 원오는 “설두 당신만 간파한 것이 아니라, 지금 나도 간파했다”라고 착어하고, ‘평창’에 “그대들은 말해보라 간파한 곳이 어디인가? 이것은 잘잘못에 관계없고, 시비에도 상관하지 않는다. 마치 만길 벼랑위에서 목숨을 버리고 뛰어 넘을 수 있다면 유마거사를 친견하였다고 인정하겠지만, 버리지 못한다면 울타리에 뿔이 걸려 어쩌지 못하는 염소와 같다”라고 말하고 있다. 즉 자신의 존재와 상대적인 경계와 아상과 인상, 일체의 분별심과 번뇌 망념을 텅 비운 무심의 경지가 되지 않으면 유마의 침묵과 설두와 원오가 간파한 경지를 파악할 수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설두화상은 다음과 같이 게송으로 읊고 있다. “야()! 유마노인.” 이 한마디에 어묵(語), 진속(眞俗),유위나 무위 등 일체의 차별을 날려 버린 설두의 견해를 읊었다. “중생을 위한 자비심으로 부질없이 고뇌하네.” <유마경>에 중생이 병들어 있기 때문에 나도 병든 것이라고 말한 유마의 입장. “비야리성에서 병으로 누워. 온 몸이 너무나 깡 말랐다.” 비야리성은 유마거사가 사는 도시이고, 그는 중생들이 병들었기 때문에 자신도 병들어 그 고통으로 온 몸이 너무나 야위고 바짝 말라 버렸다. 중생들을 위한 지극한 자비심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칠불조사(문수보살)가 찾아왔네.”
<방발경(放鉢經)>에 “부처님이 부처가 된 것은 문수의 은혜이며, 문수는 과거의 본사이고, 과거 무량의 제불은 모두 문수의 제자”라고 설한다.
<화엄경>에도 “문수사리는 무량 나유타 제불의 어머니이다”라는 말에 의거하여 <백장어록>에서 문수는 칠불의 스승이라고 주장했다. “일실(一室)의 방을 자주 쓸었네.” 유마는 일체의 차별, 분별심을 텅 비우고, 손님을 맞이하여 문수에게 “불이법문을 청했다.’ ‘곧장 몸을 넘어뜨렸다.” 뛰어난 문수가 유마에게 도리어 불이법문을 질문 것을 읊고 있는데, 그러나 유마는 “몸이 넘어지지 않았다.” 침묵으로 불이법문을 설한 유마의 지혜는 차별경계에 떨어지지 않았다. “황금빛 사자를 찾을 곳이 없네.” 황금빛 사자는 문수보살이 타고 있는 것으로 문수보살을 비유한 것인데, 과연 문수도 유마의 침묵에 찬탄하게 되었다. 지혜의 상징인 문수가 지혜로 질문한 불이법문을 유마는 침묵으로 일체의 자취와 흔적이 없는 불이법문의 경지를 제시한 것이라고 극찬했다.
성본스님/동국대 불교문화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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