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 정 도
팔정도 법은 부처님께서 대열반에 들기 바로 직전에 수밧다(Subhadda) 수행자를 위하여 설하신 여래의 최후 설법입니다. 부처님께서 세수 80세 음력 6월15일에 웨살리국 웰루와 마을에서 45번째 안거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석 달 후, 9월15일에 해제를 한 후에는 이곳저곳을 다니시며 인연 있는 대중들에게 법을 설하셨습니다. 그렇게 다니시다가 음력 4월14일에 빠와국(Pava)에 도착하여 금세공사의 아들, 춘다(Cunda)의 망고 숲에 머무셨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춘다가 부처님을 친견하고 예를 올리고 한쪽에 꿇어앉았습니다. 그때 부처님께서 그에게 계합하는 법을 간단하게 설하였습니다. 법문을 들은 춘다가 마음이 환희하고 신심이 더욱 돈독하게 되어 내일(4월15일)아침 부처님과 상가 대중께 공양청을 하였습니다.
아침 해가 뜰 때 부처님과 상가 대중을 초청하여 아주 부드럽고 질 좋은 돼지고기 반찬(Sukaramaddava)을 갖춘 공양을 올렸습니다. 그 음식을 받은 부처님께서 ‘춘다 거사여, 이 돼지고기 요리는 나 여래에게만 올리고 상가 대중에게는 다른 요리를 올리시오.’
그리고 공양이 끝나자 ‘나 여래가 공양하고 남은 것은 아무도 주지 말고 땅을 깊이 파고 묻으시오. 왜냐하면 이 요리는 영양이 너무 많아서 나 여래만이 감당 할 수 있소 만약에 다른 이가 먹으면 모두 병이 날 것이요.’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춘다가 그 요리를 땅에 묻고 돌아왔을 때 부처님께서 여래께 마지막 공양을 올린 공덕이 얼마나 큰지에 대하여 자애로운 마음으로 설하셨습니다. 설법이 끝나자 많은 상가 대중들을 거느리고 쿠시나가라국(Kusinara)을 향하여 길을 떠났습니다. 빠와국(Pava)을 벗어날 때 쯤 부처님의 몸속이 열이 나면서 부글부글 끓다가 나중에는 상상할 수 없는 큰 통증과 함께 피가 섞인 설사가 났습니다.
그때 아난다가 “부처님 지금 법체도 불편하시고, 거룩하신 부처님께서 무슨 연유로 작은 도시 쿠시나가라에서 열반에 드시려고 합니까?”하고 여쭈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아난다여 그런 말 말아라, 쿠시나가라를 작은 도시라고 말하지 말라. 내가 과거 인행 시에 까싸파 부처님 법 마지막시대에 쿠시나가라에 살 때였다. 모옥(뗏집)을 지어서 스님들을 살게 하고 상가에 필요한 공양(음식). 가사 약 등 가지가지를 보시하고 우물을 파고 호수를 만들어서 상가들이 어려움 없이 수행하게 한 공덕으로 다음 생에 사람으로서 천상의 부귀를 누림과 동시에 전쟁 없이 전 세계를 한 나라로 통일한 전륜성왕이 되었는데 그때의 수도가 바로 쿠시나가라였다.”고 말씀하시고 길을 재촉하였습니다.
계속되는 심한 설사로 인하여 평소에 부처님이 가진 큰 코끼리 100억 마리의 힘이 다 빠져버렸습니다. 그리하여 6마일의 거리에 있는 쿠시나가라국을 가는데 25번을 쉬고 쉬어 아침나절에 나선 여행이 쿠시나가라국 교외 사라수 숲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부처님께서 “아난다여 너무나 피로하여 더 이상 걸을 수가 없구나. 좀 쉬어야겠다. 저편 쌍수 사이에다 침상을 놓고 가사를 깔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아난다가 마련해드린 침상에 누워서 많은 고통에 마음챙김(sati)하고 계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이토록 많은 고통을 감수하면서도 굳이 이곳 쿠시나가라를 열반지로 정하시고 여행을 한 것은 세 가지 목적 때문이었습니다.
첫째는 과거 인행 시에 쿠시나가라에 살면서 훌륭한 공덕 행으로 인하여 전륜성왕의 부귀영화를 누린 일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서 보시 공덕을 많이 쌓게 하고 그 공덕으로 인하여 세세생생에 고귀하고 부귀한 생을 받게 하기 위함입니다.
둘째는 쿠시나가라 시내에 묵고 있는 수밧다라는 수행자를 마지막으로 제도하기 위함입니다.
셋째 목적은 부처님께서 대열반에 드신 후 다비를 했을 때 무수히 많은 사리를 수습하게 되면 서로 많이 가지려고 사람과 사람, 나라와 나라 간에 전쟁이 나서 서로를 죽이게 될 것임을 아시고 쿠시나가라에 머무는 모든 왕들의 스승인 도나 뽕나를 만나서 후사(사리를 고르게 분배하는 일)를 부탁하기 위해서 입니다. 이 세 가지가 그토록 큰 고통을 감수하면서도 빠와국에서 쿠시나가라국까지 여행하신 목적입니다.
이 시간에 수밧다 수행자는 시내에 도착하여 머물고 있었습니다. 그때 주변 사람들이 오늘 마지막 밤(새벽2시- 6시) 마지막시간(새벽 6시)에 거룩한 수행자 고따마(Gautama) 삼마 삼붓다(正等覺者, 바르게 스스로 깨달으신 부처님)께서 대열반에 드신대’하고 웅성대는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때 수밧다가 어릴 적 노스승으로부터 들은 말이 갑자기 떠올랐습니다. 그 순간 삼마 삼붓다 고따마 부처님의 설법을 들으면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의심이 모두 풀릴 것이란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곧 부처님이 계시는 사라수 숲(Sala)으로 달려가서 시자인 아난 존자께 예를 올리고는 청하였습니다.
‘아난 존자님, 옛날 저의 스승의 스승 그 스승의 스승인 노스승께서, 스승이 없이 사성제의 진리를 스스로 깨달은 삼마삼붓다(正等覺者)는 세상에 자주 출현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드물게 출현 한다고 하였습니다. 아난존자님, 제자에게도 마음속에 풀지 못한 의문이 하나 있습니다. 그런데 고따마 부처님께서 제자에게 설법해 주신다면 그 의심이 해결 될 거라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아난존자님! 제자가 고타마 부처님을 친견하도록 허락 해 주십시요.’ 하고 청하자
아난다가 ‘수밧다 수행자여 허락 해 줄 수 없소. 부처님께서는 지금 심한 설사로 인하여 너무나 피로해 계십니다. 부처님을 성가시게 하지 마시오.’ 하고 막았습니다.
수밧다가 두 번 청하고 아난다가 두 번 거절하고 수밧다가 세 번 청하고 아난다가 세 번 거절하였습니다.
아난 존자는 너무나 피로해 계신 부처님을 조금이라도 덜 피로하게 하기 위한 공경심 때문에 거절하였습니다. 그리고 수밧다는 불자가 아니었으므로 부처님을 뵙고 설법을 들어서 의문이 풀리더라도 수행할 사람이 아니라 이런저런 질문으로 부처님을 더욱 피로하게 할 거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수밧다의 마음은 부처님을 친견하고 의문을 여쭤보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청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수많은 고통들을 감수하면서 이 도시에 오신 목적도 또한 수밧다를 제도하기 위한 자비심 때문이었습니다. 그때 부처님께서 두 사람의 세 번 청하고 세 번 거절하는 대화를 들으시고는
“제자 아난다여 수밧다를 막지 말라. 수밧다에게 나 여래를 만나도록 허락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아난다가 ‘수행자 수밧다여 부처님께서 허락하셨오. 부처님을 친견 하시오.’ 라고 하자
수밧다가 너무나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아뢰기를 ‘거룩하고 고귀하신 부처님! 이 세상에 많은 수행자 브라만들이 저들 스스로 모두 법을 다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들의 말과 같이 정말로 모든 법을 다 압니까? 아니면 하나도 모릅니까? 아니면 어떤 법은 알고 어떤 법은 모릅니까? 부처님!...’ 하고 여쭈었습니다.
그 스승들이란, 1. 뿌라나 까싸파(Purana Kassapa) 2. 막칼리 고살라(Makkhali Gosala) 3. 아지따 께사깜발린(Ajita Kesakambalin) 4. 빠꾸다 깟짜야나(Pakudha Kaccayana) 5. 산자야 벨랏띠뿟따(Sanjaya Belattiputta) 6. 니간타 나따뿟따(Nigantha Nataputta)입니다.
위의 여섯 명(육사외도, 六師外道)은 부처님 성불하기 전부터 큰 교단을 이끄는 이름이 널리 알려진 이들입니다. 수밧다도 또한 도와 과를 원하여 일찍부터 이 스승들을 차례로 섬기면서 열심히 수행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도(道, magga)와 과(果, phala)도 성취하지 못하였으므로 부처님께 이와 같이 여쭈었습니다.
그때 부처님께서 “오 수밧다! 수행자 수밧다여! 지금 완전한 열반(般涅槃, parinibbana)에 들 시간이 가까워 오고 있다. 이렇게 중요한 시간에 이런 질문을 나 여래에게 묻지 말라. 수밧다여 다른 종교들에 대해서는 나 여래가 말하고 싶지 않다. 그 대신 네가 도와 과 열반에 이르는 법을 설할 테니 잘 들어라.
수밧다여! 이 세상에는 많은 종교와 가지가지 가르침이 있다. 그 종교에 성인 되는 길 팔정도 법이 있는지 없는지를 봐라. 만약에 팔정도 법이 없으면 그 가르침을 아무리 열심히 실천 수행 하더라도 첫 번째 아리야(성인) 수다원 성인이 나올 수 없다. 두 번째 아리야 사다함 성인, 세 번째 아리야 아나함 성인, 네 번째 아리야 아라한 성인이 절대로 나올 수 없다.
만약에 그 가르침들 속에 팔정도 법이 있다면 그 종교에 귀의하여 피로함을 무릅쓰고 열심히 실천하면 수다원 성인이 나올 수 있다. 그리고 두 번째 성인 사다함. 세 번째 성인 아나함. 네 번째 아라한 성인도 출현 할 수 있다.
수행자 수밧다여! 나 여래의 가르침 속에는 팔정도 법이 있다. 그 팔정도 법이란,
1. 정견 (正見, Samma-ditthi : 바른 견해). 2. 정사유 (正思惟, Samma-sankappa : 바른 생각). 3. 정어 (正語, Samma-vaca - 바른 말). 4. 정업 (正業, Samma-kammanta - 바른 행위). 5. 정명 (正命, Samma-ajiva - 바른 직업, 삶). 6. 정정진 (正精進, Samma-vayama - 올바른 노력, 정진). 7. 정념 (正念, Samma-sati - 바른 마음챙김). 8. 정정 (正定, Samma-samadhi - 바른 집중 : 마음에 동요 없이 대상에 온전하게 집중)
하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법문을 듣고 수밧다가 팔정도 법이 없으면 어떠한 도와 과도 성취 할 수 없음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전에 수행한 스승들의 가르침에 팔정도 수행법이 없었고 몸소 아무리 노력해도 하나의 도와 과도 성취하지 못했으므로 자신이 잘못된 스승을 찾아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수밧다가 부처님의 팔정도 법 설하심을 들으면서 자신의 몸과 마음에 일어나고 사라짐을 팔정도를 갖추어서 관찰하였습니다. 오랜 세월 열심히 수행하였으므로 집중력이 아주 빨리 성숙하여 곧 수행의 장애(탐. 치. 사견)가 모두 사라져서 아라한이 되었습니다.
지금 수행하는 여러분들도 또한 도와 과를 성취하기 위하여 팔정도를 갖추어 수행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팔정도에서 정확하게 아는 것(정견)은 지혜입니다. 수행할 때 지혜가 가장 중요합니다. 몸과 마음에 일어나는 것 사라지는 것을 그때그때 정확하게 알아차리는 지혜가 없으면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법을 성취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아는 지혜(정견)를 가장 먼저 설하셨습니다.
만약에 호흡을 관찰하면, 일어남이 진행될 때 그것을 세밀하게 알아야 하고, 사라짐이 진행될 때 그것을 세밀하게 알아야합니다. 일어남 사라짐이 고를 때는 고른 것. 강할 때는 강함. 거칠 때는 거침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경행 할 때 듦 - 나감 - 놓음도 또한 들 때 가벼우면 가벼움. 무거울 때 무거움. 나갈 때 점점 중지에 의해서 나감, 밀듯이 저절로 나감 등. 놓을 때 무거움. 부드러움. 푹신함. 차가움 등을 일어나는 대로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하므로 그것을 정견이라 합니다.
두 번째 정사유는 수행할 때 마음이 집중할 대상을 벗어나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면 바로 집중할 대상에 보내는 것입니다. 이것도 아주 중요합니다. 정견, 정사유는 계정혜(三學)중에서 혜학에 해당합니다.
세 번째는 정어 입니다. 수행할 때 바른 말은 아주 중요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던지 수행을 지도 스승께 보고할 때던지 사실 그대로 바르게 말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솔직 분명하게 말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정확하게 지도 받을 수가 없고 그리되면 도와 과를 성취하기 어렵습니다.
네 번째 정업은 바른 행위인데 불살생. 불투도, 불사음을 잘 지키는 것을 말합니다. 수행 할 때 모기. 파리... 등의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면 선한 이가 될 수 없습니다.
다섯 번째 정명은 청정하게 목숨을 유지하는 것으로 자신이 살기 위하여 살생, 도둑질, 사음을 하는 등의 신업(身業), 입으로 하는 구업(口業) 4가지, 그리고 남의 재물을 불법적으로 차지하기 위해서 계획 조직하는 것, 남이 불행하게 되기를 바라거나 잘못된 가르침을 믿는 등의 의업(意業)을 멀리하는 것입니다. 또한 출가자의 경우, 자신의 수행이 깊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수행이 깊다고 말하거나, 법을 성취하지 못하였음에도 법을 성취했다고 말하여 보시를 하도록 하는 행위 등으로부터 멀리하고 조용하고 청정하게 사는 것을 정명이라고 합니다.
팔정도 중에서 정어. 정업. 정명 이 세 가지는 아침마다 여러분들에게 주는 계에 포함됩니다. 따라서 수행자들이 완전하게 계를 지키면 팔정도의 계학 세 가지가 저절로 완전하게 지켜지는 것입니다. 선한이가 되려는 사람은 몸과 입으로 지키는 품행이 좋아야 하므로 부처님께서 가장 먼저 신업과 구업을 청정하게 하는 덕목을 실천하게 하셨습니다.
여섯 번째는 정정진입니다. 정정진도 또한 아주 중요합니다. 수행할 때 안 되면 될 때까지 하리라, 호흡 관찰시 일어남 사라짐이 잘되지 않으면 잘 관찰될 때까지 하겠다는 마음으로 노력하고 듦. 나감. 놓음도 집중이 되지 않으면 잘 될 때까지 하겠다는 마음으로 노력 분투하고 정진하는 것이 요구되므로 부처님께서 도를 성취하는 여덟 가지 조건에 정정진(正精進)을 넣으셨습니다. 노력(viriya)이라고 부르는 정진을 어떤 이들은 수행할 때 일어남. 사라짐하고 마음속으로 명칭만 부르고 정작 집중하는 마음은 여기저기 돌아다닙니다. 수행은 마음속으로 명칭을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일어날 때, 사라질 때 어떻게 일어나고 사라지는 가를 정확하게 관찰하되 끊어지지 않는 마음챙김을 정정진이라고 합니다.
일곱 번째 길은 정념(마음챙김, sati)입니다. 정념은 대상과 그것을 아는 마음이 정확하게 만나는 것을 말합니다. 수행할 때 마음챙김이 없이, 대상을 알아차림 하다가 말다가, 마음이 여기저기 돌아 다녀도 마음이 대상을 벗어나는 줄 알지 못하고 마음챙김 없이 지낸다면 아무리 열심히 노력하더라도 집중력이 일어나기 어려우므로 법을 성취 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수행에서 마음챙김은 너무나 중요하다고 설하셨습니다.
여덟 번째는 정정(正定)입니다. 정정이란 수행 시 알아차림 하는 대상에 마음이 온전하게 집중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마음이 오직 대상에만 강하게 밀착되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마음이 대상에만 오롯이 밀착 되어야만 위빠싸나 지혜(정견)가 일어 날 수 있습니다.
정정진. 정념. 정정 세 가지를 정(집중력)이라고 부처님께서 설하셨습니다. 안되면 될 때까지 한다는 정진이 힘이 생기면 마음챙김이 좋아지고 마음챙김이 좋아지면 집중력이 생깁니다.
집중력이 강화되면 그 사람은 위빠싸나 지혜가 한 단계 한 단계 발전하여 머지않아 마지막 단계인 도(道, magga)와 과(果, phala)에 이르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수밧다 수행자여 나 여래의 법에는 팔정도의 법이 있다, 이 팔정도를 갖추어서 사띠빠타나 위빠싸나를 열심히 실천 수행하면 반드시 아리야 성인(ariya-puggala)이 될 수 있다. 이들이 한사람이 한사람에게 서로 서로 이 법(팔정도)을 설 해 줄 것 같으면 이 세상에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 성인이 영원히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씀 하시고는 곧 출가 제자들을 불러놓고 마지막 가르침 유언을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제자들이여 이 세상에 생겨난 것은 모두 사라진다, 마음챙김(sati)을 절대로 잊지 말라”라고 말씀하시고는 부처님께서 성취한 선정에 차례로 초선정(색계3천)에 들었다가 다시 나와서 2선정(색계 3천)에 들고 다시 나와서 3선정(색계3천)에 들고 다시 나와서 4선정(색계7천)에 들고 다시 나와서 5선정(무색계1선천 - 2선천 - 3선천 - 4선천)에 들고 다시 나와서 멸진정에 들었다가
다시 나와서 반대로 5선정(4선천 - 3선천 - 2선천 - 1선천)에 들고 다시 나와서 4선정에 들고 다시 나와서 3선정에 들고 다시 나와서 2선정에 들고 다시 나와서 1선정에 들고 다시 나와서 위로 2선정에 들고 다시 나와서 3선정에 들고 다시 나와서 4선정에 들어서는 물질과 정신을 다 놓아 버린 완전한 열반(般涅槃, parinibbana)에 드셨습니다.
이 팔정도의 가르침을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의 세 가지는 계학(戒學, Sila)이라 부릅니다.
그리고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의 세 가지는 정학(定學, Samadhi)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이렇게 집중력이 일어난 수행자는 혜학(慧學, Panna)인 정견(正見)과 정사유(正思惟)가 저절로 일어나서 마지막엔 도(道, magga)와 과(果, phala)의 축복에 이르게 됩니다.
도와 과를 원해서 노력하는 수행자 여러분들 팔정도를 완전하게 갖춘 사띠빠타나(Satipatthana, 念處) 수행으로 모두 자신이 원하고 동경하는 거룩하고 성스러운 담마 도와 과 열반에 이 생에 도착하기를 기원하면서 오늘 법문을 마치겠습니다.
스승님께서 해주신 축원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싸두! 싸두! 싸두!
지금 이 법문을 들은 공덕, 수행한 공덕을 우리들의 부모님. 스승님. 가족들 법계 일체 유정들에게 회향합니다. 싸두! 싸두! 싸두! |
'초기 불교 Early Buddhism'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3. 붓다의 가르침은 아직 유효한가 (0) | 2018.10.07 |
---|---|
[스크랩] 2. 붓다는 무엇을 가르쳤나 (0) | 2018.10.07 |
[스크랩] 자비경 (慈悲經, Metta Sutta) (0) | 2018.09.30 |
[스크랩] 위빠사나 16단계는 다음과 같다 (0) | 2018.09.30 |
[스크랩] 부처님의 탄생게 (빠알리 탄생게) by 선일스님 (0) | 2018.09.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