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星半月
인간이 이 땅에 태어나 일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이땅의 다양한 관계속에 놓여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언제나 삶은 무수한 만남을 통하여 다양한 무늬로 직조(織造)되어진다. 따라서 어떤 인간도 그 시대가 가진 고뇌 또는 영광과 관계없이 별개로 존재할 순 없다고 생각한다. 없는 것이다. 어떤 의미로 보면 그 우주적 진리가 보편적 진리로 환원할 때 비로소 그 생명력을 획득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러한 헛된 수식은 때때로 진실을 호도하고 한 인간의 본질을 변형시켜서 생생한 목소리와 모습을 죽여버리는 결과를 가져다 줄뿐 아니라 그 인물을 통하여 얻어낼 수 있는 참다운 교훈마저도 잃어 버리게 되는 수가 있다.
나의 경험에 그 바탕이 있는 것이므로 나의 주관에 비친 스승의 모습일 뿐이다. 따라서 얼마든지 다른 각도에서 조명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이 비천하고 소견없는 글로 인하여 선사(先師)의 참다운 삶의 모습을 오히려 욕되게 하지나 않을까 적이 염려하면서 붓을 적신다.
청청한 대나무숲과 아름드리 소나무들, 고졸(古拙)한 주련글씨며 먼 영축산정을 떠돌던 구름들. 유월이니 후원 뜨락에는 지금쯤 도라지 꽃이 피어나고 돌배가 풋냄새를 풍기고 있으리ㆍㆍㆍ.
만년(晩年) 생활만이 나와의 인연인 셈이다. (仙風道骨)의 풍모하며, 청산유수 같은 말씀, 사람을 꿰뚫어 보시는 혜안(慧眼)과 자비로운 음성, 그리고 그 고졸한 글씨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 주었으며, 특히 근동의 청신녀들에게는 자상한 아버지같은 풍모를 보여주셨기 때문에 언제나 극락암의 문턱은 인파의 물결로 가득했다.
산책을 나서시는 것이었다. 어디라고 정해놓은 곳은 없으셨지만 극락암 주위 암자와 동구밖에 있는 돌탑 그리고 당신 생전에 가장 아꼈던 토굴 아란야였다.
언제나 스님께서는 과일과 떡을 준비하여 산책을 떠나셨다. 송림으로 가득한 극락암의 숲길을 걸으시면서 스님께서는 게송을 읊으시거나 우스개소리를 곧잘 하셨다. 때로는 빈 숲에 서서 메아리가 울릴만큼 웃곤 하였는데 그 때 그 숲을 울리던 말씀과 웃음은 지금 어디쯤 바람이 되어 흘러가고 있는지ㆍㆍ. 물을 끊이기 시작한다. 그 때만 해도 요즘과 같이 차 마시는 풍습이 일반화되기 전이었으므로 스님이야말로 나에게는 차를 가르쳐주신 첫 스승이시다. 물이 끊고 떡이 숯불에 익으면 차를 내고 자연스러운 차모임을 이루었다. 수좌들에게는 이런 자리를 통하여 요긴한 소참법문을 하시거나 한담(閑談)을 나누셨다. 그 이후 여러 차모임에 참석했었지만 그때처럼 향기높은 차모임을 보지 못하였다.
“한생 안 태어난 요량치고 사람노릇 하지 말라”는 말씀이셨다.
그 말씀에 이어 “비극을 하는 배우가 청중을 울리려면 제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먼저 울어야 한다. 어룸하게 나무칼로 목 베려하면 베어지나 목만 아프지. 사바세계를 무대로 삼고 한바탕 연극하듯 한번 멋지게 살아라”는 말씀을 하셨다.
우리 인생이란 제각기 다른 역을 맡든지 연극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그 주어진 역할에 충실한지는 모르지만ㆍㆍㆍ. 그리고 한 생 안난셈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손톱만큼이라도 지식이나 소견이나 자랑꺼리가 있으면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지 못해 얼마나 안달인가? 그리고 누가 알아주지 않을까 얼마나 극성인가?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부터도 그런 좁쌀이 아닌가. 그 해는 스님의 발의(發意)로 몇십년만에 화엄산림법회가 다시 열렸던 해로 기억된다. 스님께서는 첫날 첫 법회를 맡으셨다. 자동차로 큰절을 내려가시는 차 속에서 이런 말씀을 해 주셨다. 법상에 올라가서 한 법당 앉은 보살들 앞에서 설법을 하는데
화엄의 도리는 천하우주 만물에 없는 곳이 없으며,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비로자나의 세계요, 수수산산(水水山山)이 화장세계라고 법문을 하면서 남자의 X에도, 여자의 X에도 화엄의 도리가 있다고 했느니라, 그랬더니 한 법당 앉은 보살들이 질겁을 하고 마구 비난을 하며 법당을 나갔지만 그 해 통도사 탑에서 방광을 놓았으니라.” 40년이 지난 화엄법회를 다시 열게 된 것을 퍽 기쁘게 여기면서 말씀하시던 생각이 난다.
“저 봐라. 저기 서 있는 길가의 석등과 삼성반월교(三星半月橋)는 40년 전에 내가 통도사 주지할 때 만들었지.
바로 마음 심자 아닌가“ 하고 자상하게도 자신의 손바닥에 그려 보여주시기까지 하셨다.
통도사에 역사적 유물을 하나 남기라고 했더니 내말을 쫏아 김치수가 만들었지” 라고 말씀하시고는 한숨을 쉬시면서 “저 다리 만들고 나서 얼마 안 있다가 그 사람도 갔고 돈도 흩어졌지만 봐라 저 다리는 저렇게 서 있지 않으냐.
쓸쓸한 표정이 되어 말씀하시던 그 날의 그 스님도 가셨다. 삼성반월교만 남겨두고. 사실 산속에 있을 때는 산의 크기를 모른다. 산을 떠나 저만큼 물러서서 보아야 산의 크기를 알 수 있듯이. 스님께서 생존해 계실 때에는 스님이 얼마나 큰 산이었는지 나는 청맹가니처럼 알질 못했다. 드디어 스님께서 떠나신 다음 스님의 크심을 알았지만 스님은 거기에 계시질 않는 것이다.
계시는 것이 아닌가. 극락암에 서있는 큰 고목처럼 우람하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온갖 풍상을 다 겪으며 묵묵하게 서 있는 한 그루의 큰 나무. 이제 음력 5월이니 스님의 기일(忌日)이 다가오고 있다. 스님 원력이 보현보살 같았으니까 스님께서는 천상이나 극락에 머물지 않고 이 사바세계에 다시 오셨을 것이다. 또 다시 큰 가지를 드리우고 많은 중생 곁에 큰 그늘을 드리우기 위해서.
- 佛光 -
http://cafe.daum.net/yourhappyhouse/FkcP/1060 에서 모셔 온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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