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보리행론 해설 102. 고통으로 가득찬 몸을 자신으로 여기니
44 건드리면 참을 수 없는 종기와 같이
고통으로 가득한 몸을
애착에 눈이 멀어 자신으로 여기니
그 해악을 누구에게 화 낼 것인가?
외부의 모든 고통뿐만 아니라 생. 노. 병. 사의 근원이 되는 몸에 스스로 집착하여,
‘내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고통의 뿌리는 업과 번뇌에 이끌리는 나의 육신을 가짐으로써 생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몸에 해가 생기는 것을 다른 누구에게 화 낼 것인가?
45 어리석은 사람! 고통은 원하지 않으나
고통의 원인에는 탐착하니
자신의 허물로 비롯된 해악이거늘
왜 남을 원망하는가?
나에게 해를 입히는 상대적인 적도 불행을 원치 않고 행복을 원합니다.
그러나 상대의 번뇌인 분노와 또 다른 조건인 ‘나’가 만나, 해치는 행위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타인에게 시킨 것이라고 여기고 화를 내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다고 하신 것입니다.
46 비유하건대 지옥의 사자와
날카로운 칼 숲과 같이
자신의 업으로 고통이 생기나니
어느 누구에게 화를 낼 것인가.
47 내가 지은 업에 의해
나를 해치는 이들이 생겼네.
나를 해친 중생이 지옥으로 간다면
내가 그들을 망친 것이 아닌가!
상대 또한 새로운 업을 지을 수 있습니다.
업과 과보의 미묘한 부분은 오직 부처님만이 아신다고 합니다.
나에게 다가오는 해악이 오로지 나의 행위에 의해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다양한 것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지금 마음공부를 할 때에는 실제적인 원인에 대해서 고려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쨌든 자신의 인욕수행의 방법으로, 인욕수행의 완성(인욕바라밀)을 이루기 위해서, 그로 인해 보리심 수행을 위한 큰 목적이 있기 때문에 실질적이고도 일반적인 부분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여자의 몸을 가지고 있는 어떤 사람이 있다고 칩시다. 어머니 입장에서 보면 딸입니다.
그의 아들 입장에서 보면 어머니가 됩니다. 각각 의지하는 곳에 따라 다양함을 가집니다. 맞는 말입니다.
내 경우에도 한 사람이지만 비구이고 불자이며 티베트인이기도 합니다. 많은 모습을 갖추고 있습니다.
불교 논리학인 인명학의 논서를 보면, 하나의 대상에 대상의 수에 해당하는 만큼의 측면의 수가 있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도 한 사람이면서 비구라는 측면과 티베트인의 측면, 불자의 측면, 노장이라는 측면,
이렇게 다양한 측면과 제가 법을 들은 스승 입장에서 보면 제자라는 측면, 이렇게 다양한 측면이 있습니다.
이렇듯 하나에는 다양한 측면들이 있습니다.
각각의 측면에서, 이러한 비유처럼 적이 나를 해치는 것이 그 사람의 번뇌 때문에 새로운 업을 지은 것일 수도 있지만,
내가 나를 해치는 적을 만난 것은 나의 업으로 인한 것이기도 하기 때문에 적이 나를 해치는 것입니다.
적은 나를 해친 것으로 인해 악업을 지었습니다. 당연히 악도로 떨어질 것입니다.
이 입장에서 보면 적을 악도에 떨어지게 하는 원인은 바로 ‘나’입니다. 내가 한 것처럼 됩니다.
그래서 이런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나를 해친 중생이 지옥으로 간다면 내가 그들을 망친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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