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이 사밧티의 기원정사에 있을 때의 일이다.
그 무렵 마하카트야나는 바라나 마을의 한 숲에 머물고 있었는데 어느 날 막대기에 물통을 달고 다니는 바라문이 찾아와 이런 것을 물었다.
“세상에는 나라를 다스리는 왕과 왕이 싸웁니다. 높은 지위에 있는 바라문과 바라문도 다툽니다. 재산이 많은 장자거사들도 싸웁니다. 이들은 무슨 까닭으로 싸우는 것입니까?”
“왕과 왕이 싸우고, 장자거사와 장자거사가 싸우는 것은 탐욕에 매이고 집착하기 때문이지요.”
“세상에는 집을 나온 수행자도 있고 신을 섬기는 종교인들도 있습니다. 그들도 싸웁니다. 종교인들이 싸우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수행자와 수행자들이 싸우는 것은 자기 생각(見欲)에 매이고 집착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면 탐욕이나 견욕에 매이거나 집착하지 않는 길은 없습니까?”
“우리의 스승인 여래, 응공, 정변지, 명행족, 선서, 세간해, 무상사, 조어장부, 천인사, 불세존께서는 탐욕과 견욕의 매임에서 벗어난 분이며, 그것에서 벗어나는 길을 가르치는 분이지요.”
마하카트야나의 설명을 들은 바라문은 ‘그분이 지금 어디에 계시냐’고 물었다. 기원정사에 계신다고 하자 그는 그쪽을 향해 예배하고 돌아갔다.
잡아함 20권 546경 《집조관장경(執藻灌杖經)》
이 경에서 물통을 메고 다니는 바라문의 질문 의도는 이런 것이었던 듯하다. 왕이나 장자거부는 권세나 재물에서 남보다 많이 가진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싸운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또 종교인들은 권력이나 재물로부터 떠나 정신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들도 싸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홍사성/불교방송 상무
이에 대한 마하카트야나의 대답은 명쾌하다. 왕이나 장자가 싸우는 것은 가진 것에 만족하지 않고 더 많이 가지려고 하는 데 원인이 있다. 요즘 말로 하면 이해갈등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이에 비해 그런 것을 떠난 수행자나 종교인들이 싸우는 것은 자기 주장이 옳다고 우기는 데 원인이 있다. 요즘 말로 하면 이념갈등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세상이란 예나 지금이나 이해갈등과 이념갈등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이해갈등이 형이하학적 갈등이라면 이념갈등은 형이상학적인 갈등일 것이다. 이러한 갈등이 끊임없이 계속되는 것은 탐욕과 견욕 때문이다.
탐욕의 원인은 ‘나의 것’이라는 아집(我執)에 얽매이는 데 있다. 견욕의 원인은 삿된 소견에 얽매여 비진리를 진리라고 믿는 법집(法執)에서 연유한다. 아집에서도 벗어나야 하지만 법집에서도 벗어나야 다툼이 없는 세상이 열린다. 다툼없는 세상을 위해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아집과 법집을 벗어던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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