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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부처님 당시의 육사외도 [六師外道]

수선님 2018. 11. 4. 11:40
 

부처님 당시의 육사외도 [六師外道]


차례 

1. 육사외도의 탄생배경과 개론

2. 당시의 인과론의 유형

3. 육사외도의 주장들


1. 육사외도의 탄생배경과 개론

부처님께서 탄생하셨던 기원전 5, 6세기의 인도 종교 철학계는 마치 중국의 춘추전국 시대에 버금갈 만큼 다양한 종교와 철학사상이 있었다.그때까지 유일한 종교이며 철학으로써 인도사회를 지배해왔던 전통 브라만교의 권위가 무너지고 새롭고 다양하며 혁신적인 종교와 철학사상이 등장했다.

브라만교는 성전인 베다(Veda)는 하늘(梵天)의 계시에 의해 씌어졌다는 베타 천계주의, 또 신(梵天)과 인간의 중간자 역할을 하는 제사장 계급인 브라만(Brahman)계급이 최고라는 브라만 중심주의, 신에게 제사를 올림으로써 인간의 길흉화복이 좌우된다는 제사만능주의의로  아리안  족들이 원주민들을 지배하며 그 브라흐만 사상으로 인도사회를 지탱해 왔지만 부처님께서 출현하셨던 기원전 5, 6세기에 접어들면 이런 전통들이 무너지고 새로운 정치 사회적 환경과 더불어 새롭고 혁신적인 종교 철학사상들이 등장한다.

이들 신흥 종교사상가들은 대부분 전통적인 브라만교의 권위를 부정하고 새로운 세계관을 가진 자유로운 사상가들이었다. 새로운 철학 사조를 이루었던 이들 사상가의 출신 계급또한 기존의 제사장 계급중심에서 탈피해서 무사계급, 평민, 심지어 노예계급까지 등장해서 자유로운 사상을 펼쳤다,

기존의 브라만교에서는 인간과 세계 만류는 브라만으로부터 나왔다는 전변설(轉變說)을 주장한 반면 이들 혁신 사문들은 우주의 궁극적 실재를 물질적 요소로 파악하고 그러한 요소들이 취합하여 자연과 인간을 비롯한 모든 것이 성립됐다는 적취설(積聚說)을 주창했다. 또 기존의 브라만교가 신과 같은 형이상학적인 문제에 천착한 반면 이들 사문들은 현실생활 속에서 인생의 의의를 찾으려는 형이하학에 더욱 관심을 보였습니다.

이처럼 브라만교의 전통과 권위에 정면으로 맞서서 자유로운 사상으로 오랫동안 인도사회를 지배해 왔던 브라만적 전통이 쇠약해지고 그에 따라서 불교가 인도사회에서 보다 쉽게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사회적, 문화적 토양을 만들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당시의 이런 종교사상가들을 사문(沙門, Sramana)이라고 불렀는데 그 뜻은 '정진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이런 다양한 종교 사상가들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62見이라고 분류되는 사상가들이며 이들을 더 압축해서 육사외도(六師外道)라고 하는 종교가들이다.



2.당시의 인과론의 유형 <불교의 알반 시스템이론 발췌>

자작--외재적이고 불변하는 본질을 신뢰하는 우빠니샤드와 쌍카학파의 인중유과론. 베다의 견해를 불멸론자의 견해로 규정

타작--인간의 의지나 현재의 선택밖에 있는 결정성에 기인. 창조신에 대한 믿음을 고수하는 사람들, 유물론자자, 결정론자들

자작 타작--자이나교입장. 절충적인 혼합을 통해 영혼불멸하는 영혼에 대한 믿음유지하면서 변화와 상대성을 업에 대한 결정론적 견해와 조화시키도록 노력함

비자작 비타작--우연론의 입장  


3. 육사외도의 주장들 

유물론자(타작) 

실재는 무질서하게 자의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엄격한 결정론, 즉 냉혹하고 불가항력적인 물질적 필연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주장.

가장 강한 결정론을 제시한 학파는 사명파임--숙명개념과 업에 대한 유물론적인 관점은 자유의지나 우연의 여지를 허용하지 않음. 무인무연론자. 마음, 영혼을 부정

우파니샤드에서 말하는 아트만(자아, 영혼이라는 인식)은 지수화풍이라는 물질적 구성요소로 이루어진 인간이라는 생명체의 성질인 것이며 신체가 갖는 특징중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함.

인식이라는 것은 아트만은 물질의 결합으로 나타나는 물질의 부수적 현상이고 속성인 것이며 인성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인식은 곧 인성이요 물성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죽음으로써 한 개체 즉 하나의 생명체의 마지막이고 끝이된다. 그렇기 때문에 전생과 내생그리고 윤회등은 공허하고 무의미하나고 봄.

그러므로 신의 존재도 부인. 실증적인 사상과 관찰가능한 현상만을 믿는 실증주의 철학이며 한편으로는 의식적이고 목적적인 존재인 신을 부정하기에 기계주의 철학이라고 부른다.

결과적으로 윤회(輪廻)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선악(善惡)에 대한 과보(果報)도 없는 것으로 파악했습니다. 그러니 자연히 도덕은 부정되는 것이며. 이 현세의 삶이 최초이자 최후이므로 인간은 그저 즐기고 살아야 한다는 쾌락주의자이자 철저한 유물론자였다. 이러한 철학 사조를 인도철학에서는 순세파(順世派, Carvaka)라고 한다.

우연론자(비자작 비타작)--

무인론자. 단멸론을 포함. 영혼의 존재는 인정하나 유한 것으로 봄. 베다사상의 불멸론에 반해서 실재의 본성에 관한 철저한 단멸론을 취함.



그래서 살생이나 도둑질이나 사음 등의 악행(惡行)을 저질러도 그것이 인간들이 임의로 정의한 개념이기 때문에 실제로 악행(惡行)을 범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반대로 보시와 방생 같은 선행(善行)을 행한다 해도 역시 그것은 인간의 관념이 낳은 것이지 절대적인 선행(善行)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같은 그의 견해는 자연히 업(業)이란 없는 것이며 업(業)에 대한 응보(應報)도 없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불교를 비롯해서 정통적인 종교에서 인정한 업보(業報) 사상을 전면적으로 부정한다. 그렇다면 인간의 길흉화복은 푸라나는 그것이 인과(因果)나 운명에 의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우연에 의해서 좌우된다고 주장했다.

숙명론자: 과거에 행한 업에 의해 기인

 . 숙명론(宿命論)자인 막칼리는 불교에서 말하는 이른바 사명외도(邪命外道)의 개조(開祖)이다. 아지비카(Ajivika)라는 교단의 교조이기도 한 막칼리는 육사외도 가운데 자이나교와 유사한 교설을 펼쳤는데 교세에 있어서도 자이나교의 니간타 나타풋타 다음가는 유력한 종교지도자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의 교설은 후에 자이나교에 흡수 통합되기도 했다. 막칼리는 일체의 구성요소로서 12원소설을 주장하고 있니다.

그 12개의 원소 가운데는 영혼도 포함되는데 인간의 영혼도 하나의 원소로 파악했던 극단적인 유물론자이다. 또 막칼리 고살라는 인간 운명에 대해서 극단적인 결정론을 주장한다.

생사(生死) 윤회(輪廻)하는 것은 불교의 경우에는 모두 인과(因果) 업보(業報)에 의한 것으로 보지만 막칼리 고살라는 아무런 원인도 없고 또 어떤 결과도 초래하지 않는다고 하는 무인(無因) 무연(無緣)론을 펼친다. 인간의 의지작용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이며, 모든 것은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결정론자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행을 통해서 해탈(解脫)한다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본다. 모든 인간은 8백 40만 겁을 윤회하는 동안 고(苦)가 저절로 없어져서 스스로 해탈한다는 주장을 폈다. 이처럼 막칼리는 인간이 자기 운명을 개척한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것으로 파악한다. 그래서 막칼리 고살라는 의지(意志)의 작용을 부정한 최초의 사상가로 손꼽히고 있다.

“나는 또 어느 때 말가리구사리에게 가서 ‘이제 사람들은 코끼리와 말과 수레를 타고 병법을 익히며 내지 갖가지로 생업을 경영하여 다 현재에 과보가 있는 것처럼 이제 이 무리들은 현재에 도를 닦아 현재에 갚음을 얻는가 아닌가.’ 물었습니다. 그는 내게 대답했습니다. ‘대왕이여, 베풀음도 없고 주는 것도 없으며 제사의 법도 없다. 또 선악의 갚음도 없다. 금생도 없고 또 후생도 없다.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으며 하늘도 없고 조화도 없으며 중생도 없다. 세상에는 사문, 바라문의 평등한 행자(行者)도 없고 또한 금세 후세에 자신으로 증명을 짓고 남에게 두루 나타내는 것도 없다. 모든 것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다 이 허망한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회의론자---

산자야는 인식의 객관적인 타당성이란 있을 수 없다는 주장을 편 회의론(懷疑論)자이다. 진리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서술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불가지론(不可知論)의 대표적인 사상가이기도 한다. 그래서 산자야는 인도 철학사 가운데 최초의 회의론자로 불려지고 있다.

그는 사후의 존재나 선악(善惡)의 과보(果報)와 같은 형이상학적인 질문에 대해서는 애매모호한 답변으로 대답을 회피했는데 그의 이런 논법을 '뱀장어처럼 미끄러워 잡기 어려운 논의'라고 불렀다.

아무튼 이처럼 형이상학적 문제에 대해서 확정적인 지식을 주지 않으므로 그는 불가지론(不可知論)자로 불려진다. 그래서 그는 인도 철학사상 처음으로 형이상학적 문제에 관해 어떤 일정한 판단을 내릴 수 없다는 판단중지(epokhe)의 사상가라고 보고 있다.

이 산자야는 석가모니 부처님과 아주 깊은 관계가 있다. 산자야의 문하에는 두 명의 뛰어난 제자가 있었는데 바로 그 유명한 부처님의 10 대제자 가운데 사리불과 목건련이다. 이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는 250명의 제자들과 함께 부처님께 귀의했다.

산자야는 이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아서 그만 피를 토하며 죽었다한다.  

“또 나는 옛날 어느 때 산야비라리자에게 가서 ‘대덕이여, 사람들은 코끼리, 말, 수레를 타고 병법을 익히며 내지 갖가지로 생업을 경영하여 다 현재에 과보가 있는 것처럼 이제 이 무리들도 현재에 도를 닦아 현재에 갚음을 얻는가’고 물었습니다. 그는 내게 대답했습니다. ‘대왕이여, 현재에 사문의 과보가 있느냐’고 물었으니 이렇게 대답한다. ‘이 일은 이와 같다 이 일은 사실이다. 이 일은 다르다. 이 일은 다르지도 않고 다르지 않지도 않다.’ 대왕이여, 현재에 사문에게 과보가 없느냐. 고 이렇게 묻는다면 여기에 대한 대답은 이와 같다. ‘이 일은 이와 같다. 이 일은 진실이다. 이 일은 다르다. 이 일은 다른 것도 아니요 다르지 않은 것도 아니다’고. 대왕이여, ‘현재에 사문에게는 과보가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는가.’고 이렇게 묻는다면 여기에 대한 대답은 이와 같다. ‘이 일은 이와 같다. 이 일은 진실이다. 이 일은 다르다. 이 일은 다른 것도 아니요 다르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자이나교

자이나교의 교주이다. 자이나교는 당시 불교와 함께 흥성했던 종교이다. 니간타 나타풋타는 깨달음을 얻은 뒤 '위대한 영웅'이라는 뜻의 마하비라(Mahavira)로 불려졌으며 자이나교의 교주로서 자이나교를 크게 발전시켰습니다. 니간타 나타풋타는 산자야의 회의론을 극복하기 위해 상대주의(相對主義)적 인식론(認識論)을 수립하고 여기에 입각해서 이원적(二元的) 우주론을 제시한다 자이나교에서는 영혼(Jiva, 命)은 물질(Pudgala)의 업(業)에 속박되어서 현실과 같은 비참한 상태에 빠졌다고 파악한다. 그러므로 순결한 영혼인 지바를 끈적끈적한 물질로부터 해방시켜야 하는데 그 방법을 고행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자이나교에서는 극심한 고행이 행해졌습니다. 심지어 고행을 하다가 죽게되면 성자로까지 추앙받았다고 한다

이들의 종교생활은 불살생(不殺生), 불도(不盜), 불음(不淫)과 같은 철저한 계율을 지키는 한편 철저한 무소유(無所有)의 삶을 실천했습니다. 그들은 살생을 엄격히 금했기 때문에 농사마저 짓지 않는다. 농사를 짓다보면 작은 곤충들을 죽이기도하기 때문에 이들은 주로 상업에 종사한다. 실제로 이들로 인해서 인도의 상업이 발달했다는 학설도 있다.

유명한 사회학자인 막스 베버는 그렇게 주장했습니다. 이들은 무소유를 철저히 실천하다 보니 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는 알몸으로 고행을 하기도 했는데 이들을 나형외도(裸形外道)라고 불렀습니다. 후대에 와서는 흰옷을 입어도 된다는 백의파가 나타나기도 했다.

아무튼 이 자이나교는 아직까지 인도에 신봉자들이 남아 있을 정도로 불교와 함께 크게 흥성했던 종교다.

“또 나는 옛날 어느 때 니건자에게 가서 ‘대덕이여, 마치 사람들이 코끼리, 말, 수레를 타고 내지 갖가지로 생업을 경영하여 현재에 과보가 있는 것처럼 이제 이 무리들도 현재에 도를 닦아 현재에 갚음을 얻습니까.’고 물었습니다. 그는 재게 대답했습니다. ‘대왕이여, 나는 일체 지(智)와 일체 견(見)을 가진 사람으로 모든 것을 알아 남김이 없다. 혹 다니거나 혹 머물거나 혹 앉거나 혹 눕거나 언제나 깨달아 남김이 없어 지혜는 항상 앞에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출처 : 명상스쿨
글쓴이 : 선 암 ♬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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