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생각하기를 ‘이 여러 날짐승과 길짐승이며 기어 다니는 벌레 따위는 아련야에 있으면서도 몸으로 착함을 행하지 않고 입으로 착함을 행하지 않으나, 마을을 멀리하여 사는 까닭에 두려워함이 없다. 나의 마음과 지혜는 어찌 이 날짐승 길짐승보다 못하단 말이냐’ 하고, 이렇게 생각하며 여러 두려움을 없앤다.
또, 부처님을 생각함으로써 아련야에 있으면서 온갖 두려운 일들을 깨뜨릴 수 있나니, 경전에서의 말씀과 같다.
“너희 비구들아, 아련야 처소에서 나무 아래 있거나 빈집에 있거나 간에 혹시 두려움이 생겨서 마음이 내려앉고 털이 곤두선다면, 너희들은 나의 이 여래ㆍ응공ㆍ정변지ㆍ명행족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조어장부ㆍ천인사ㆍ불세존을 생각하여야 한다. 이와 같이 생각할 때에 두려움은 곧 없어지리라.”
‘담력이 크다’ 함은 마음에 겁이 많지 않으며, 결정코 도를 구하는 것이다. 다음의 말과 같다.
비구는 비고 한가한 데 머물러서
마음에 겁이 없는 용감한 힘으로써
모든 두려움을 없애야 하리니
부처님을 생각하면 두려운 것이 없다.
어떤 사람이 스스로 업을 일으키면
두려움에서도 벗어나지 못하고
두렵지 않은 것도 벗어나지 못하나니
두려움은 곧 바른 이익을 잃는다.
이와 같이 면하지 못하는 줄 알면서
그 밖의 이익을 깨뜨린다면
곧 소인(小人)으로서의 일을 행함이니
비구로서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만약 두려울 것 있어야 한다면
나고 죽음을 두려워할지니
온갖 두려움이란
나고 죽음에서 다 원인이 된다.
그러므로 도를 행하는 이로서
나고 죽음을 벗어나려고 하거나
또한 다른 사람을 구하려 하면
두려움을 내지 않아야 한다.
『불리포외경(佛離怖畏經)』중에서 두려워함의 법을 말씀하신 것과 같다.
“어떤 사문과 바라문이라도 아련야 처소에 머무르면 이러한 생각을 하여야 하느니라.
‘몸의 업이 깨끗하지 못하고 입의 업이 깨끗하지 못하고 뜻의 업이 깨끗하지 못하고 생각이 깨끗하지 못하고, 자신은 높이고 남을 낮추며, 마음이 게으르고 기억을 잊으며, 마음이 안정하지 못하고 어리석은 까닭에 두려워지며, 이와 어긋나게 몸의 업이 깨끗하다든가 하는 따위이면 곧 두려움이 없다.’”
또 부처님이 욱가 장자를 위하여 말씀하셨다.
“집을 떠난 보살이 아련야 처소에 있게 되면 이런 생각을 해야 한다.
나[我]는 무엇 때문에 여기에 있을까?
즉시 스스로가 알겠구나. 두려움을 여의려고 여기에 와 이르렀도다.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여러 가지 시끄러움을 두려워하고, 여러 가지 말들을 두려워하고, 탐냄ㆍ성냄ㆍ어리석음을 두려워하고, 교만과 원망과 질투와 다른 이양을 두려워하고, 빛깔ㆍ소리ㆍ냄새ㆍ맛ㆍ닿음을 두려워하고, 다섯 가지 쌓임의 악마를 두려워하고, 여러 어리석고 장애되는 곳을 두려워하고, 때 아닐 적의 말을 두려워하고, 보지 않았으면서 보았다고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듣지 않았으면서 들었다고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깨닫지 못했으면서 깨달았다고 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모르면서 안다고 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모든 사문의 때[垢]를 두려워하고, 서로가 함께 미워하고 싫어함을 두려워하고, 욕심세계ㆍ형상세계ㆍ무형세계의 온갖 나는 곳을 두려워하고, 지옥ㆍ축생ㆍ아귀와 여러 어려운 곳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간략히 말하면 온갖 나쁘고 착하지 못한 법을 두려워하는 까닭에 여기에 와서 머물러 있다.
만약 사람이 집에 있으면서 뭇 시끄러움에 있기를 좋아하면 도를 닦고 익히지 못하며
삿된 생각에 머물러 있게 되므로 이와 같은 두려운 곳을 여읠 수가 없다.
과거에 있었던 여러 보살들은 모두가 아련야 처소에 있으면서
모든 두려움을 여의고 두려움이 없는 곳을 얻었으며 온갖 지혜를 얻었다.
장차 오는 세상에 있을 보살들 역시 아련야 처소에 있으면서 모든 두려움을 여의고 온갖 지혜를 얻을 것이며, 지금 현재의 보살들도 아련야 처소에 머무르면서 모든 두려움을 여의고 두려움 없는 곳을 얻으며 온갖 지혜를 이룩하리라.
그러므로 나는 온갖 나쁨을 두려워하며 모든 두려움을 건너려는 까닭에 아련야 처소에 머물러야 한다.
다음에 또,
온갖 두려움은 모두가 나[我]를 집착함에서부터 생기나니,
나를 탐내며 집착하는 까닭이며,
나를 사랑하고 받드는 까닭이며,
나라는 생각을 내는 까닭이며,
나라고 보는 까닭이며,
나를 귀하게 여기는 까닭이며,
나를 분별하는 까닭이며,
나를 수호하는 까닭이다.
만약 내가 아련야 처소에 머무르면서 나를 탐내며 집착하는 것을 버리지 못한다면,
헛되이 아련야 처소에 있는 것이 되리라.’
또, 장자야, 얻을 것이 있으리라고 보는 이는 곧 아련야 처소에 머무름이 아니며, 나와 내 것이라는 마음에 머무르는 이는 곧 아련야 처소에 머무름이 아니며, 뒤바뀜에 머무르는 이는 곧 아련야 처소에 머무름이 아니니라.
장자야, 열반의 생각을 내는 이도 오히려 아련야 처소에 머무름이 아니거든 하물며 번뇌의 생각을 일으키는 이이겠느냐.
장자야,
마치 풀과 나무가 아련야 처소에 있으면서도 놀라거나 두려워함이 없는 것처럼,
보살도 그와 같아서 아련야 처소에 있으면
풀과 나무라는 생각,
돌과 기와라는 생각을 내며,
물 가운데 그림자라는 생각,
거울 가운데 영상이라는 생각을 내며,
말에는 메아리라는 생각을 내며,
마음에는 허깨비라는 생각을 내어야 하나니,
이 가운데서 누가 놀라며 누가 두려워하겠느냐.
보살은 그때에 곧 바르게 몸을 살피면 나가 없고 내 것이 없으며 중생이 없고 수명이 없으며, 기르는 이가 없고 남자도 없고 여자도 없으며, 아는 이와 보는 이도 없으리니,
두려움이라 함은 허망하게 분별하는 것이므로 나는 허망하게 분별함을 따르지 않아야겠다고 하며,
보살은 이와 같이 풀과 나무처럼 아련야 처소에 머물러야 하느니라.
★ 홀로 아련야에서 수행할 때 두려움이 발생시 극복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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