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생각[覺] 부지런히 행하려면
아련야의 법을 따르라.
비구가 이미
아련야의 처소에 머무르게 되었다면
언제나 마땅히 부지런히 힘써서
갖가지 선법들을 내어야 하며
담력이 큰마음으로 나[我]를 없애서
모든 두려움을 없애 버리라.
‘아련야에서 힘써 나아간다’ 함은, 만약 비구가 탐냄을 끊으면 몸과 목숨과 이양을 아끼지 않는 까닭이니, 밤낮 언제나 부지런히 힘써 나아가 마치 머리에 타는 불을 끄듯 하며 몸을 아련야에 의지하고 따른 것이다.
‘생각’이라 함은, 이른바 벗어나려는 생각[出覺], 성내지 않으려는 생각[不瞋覺], 괴롭히지 않으려는 생각[不惱覺] 등의 여러 착한 생각이다.
다음에 부처님께서는 바로 모두 옳게 깨달은 이[正遍知者]로서 중생 중에서 높으신 이며, 부처님의 법은 바로 좋은 말씀임을 생각하여 제자들은 그 바른 행을 따른다.
또, 공(空)을 따르고 형상 없음을 따르고 소원 없음을 따른다.
‘모든 생각’이라 함은 아련야를 따르는 생각을 말한다.
또 네 가지 훌륭한 것을 따르며 여섯 가지 바라밀을 따르는 모든 생각은 바로 아련야를 따르는 생각이다.
또, 부처님께서 욱가(郁伽) 장자에게 집에 있는 이와 집을 떠난 이로써의 보살행을 말씀하신 것과 같다.
“만약 집을 떠난 보살이면 아련야의 법을 받으면서 이와 같이 생각하여야 하느니라. ‘나[我]는 무엇 때문에 아련야 처소에 머무를까? 나는 다만 아련야에 머문다고 하여 이름이 사문이라 하지 못하리라. 아련야 처소에는 중생이 많이 있으나, 악하고 착하지 못한 것이 많으니, 모든 감관을 보호하지 않고 힘써 나아가지 않으며 선법을 닦아 익히지 않는다면 마치 노루ㆍ사슴ㆍ원숭이와 여러 가지 새와 나쁜 도둑이며, 전다라(旃陀羅) 등과 같아서 비구라고는 이름하지 못하리라. 나는 이제 무슨 일 때문에 아련야 처소에 머무르는가? 마땅히 그 일을 이룩하여 마치리라.’
장자여, 어떠한 것이 그 일이냐 하면
첫째 산란하지 않겠다고 생각함이며,
둘째 모든 다라니를 얻음이며,
셋째 인자한 마음을 행함이며,
넷째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행함이며,
다섯째 자재하게 다섯 가지 신통에 머무름이며,
여섯째 여섯 가지 바라밀을 두루 갖춤이며,
일곱째 온갖 지혜의 마음을 버리지 않음이며,
여덟째 방편의 지혜를 닦고 익힘이며,
아홉째 중생을 거두어 줌이며,
열째 중생을 성취시키는 것이니라.
열한째 네 가지 거두어 줌의 법을 버리지 않음이며,
열두째 언제나 여섯 가지 기억[六念]을 생각함이며,
열셋째 많이 듣기 위하여 힘써 나아감이며,
열넷째 바르게 자세히 살펴서 모든 법을 선택함이며,
열다섯째 바르게 해탈하여야 함이며,
열여섯째 얻은 결과를 앎이며,
열일곱째 바른 지위에 머무름이며,
열여덟째 부처님 법을 수호함이며,
열아홉째 업의 과보를 믿는 까닭에 바른 소견이라 함이며,
스무째 온갖 기억과 분별과 생각을 여의는 까닭에 바른 생각이라고 하는 것이니라.
스물한째 중생들의 믿고 즐기는 것을 따라 그들에게 법을 말하는 까닭에 바른 말이라 함이며,
스물둘째 모든 업을 없앤 까닭에 일어나는 행위를 바른 행위라 함이며,
스물셋째 번뇌의 기운을 깨뜨린 까닭에 바른 생활이라 함이며,
스물넷째 위없는 도를 얻는 까닭에 바른 노력이라 함이며,
스물다섯째 허망하지 않은 법을 자세히 살피는 까닭에 바른 기억이라 함이며,
스물여섯째 온갖 지혜를 얻는 까닭에 바른 선정이라 함이며,
스물일곱째 공(空)에 두려워하지 않음이며,
스물여덟째 형상 없음에 두려워하지 않음이며,
스물아홉째 소원(所願) 없음에 빠지지 않음이며,
서른째 짐짓 지혜로써 몸을 받는 것이니라.
서른한째 뜻에 의지하고 말에 의지하지 않음이며,
서른둘째 지혜에 의지하고 알음알이에 의지하지 않음이며,
서른셋째 요의경(了義經)에 의지하고 요의경 아닌 데에 의지하지 않음이며,
서른넷째 법에 의지하고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는 것 등이니라.
장자야, 이와 같은 것들을 하면 집을 떠난 보살이며, 비구라 하나니 이익되는 일을 생기게 해야 하느니라.”
아련야의 법을 따른다 함은, 이른바 4선[禪], 네 가지 한량없는 마음[無量心], 천이통(天耳通), 천안통(天眼通), 타심통(他心通), 숙명통(宿命通) 등이다.
‘모든 두려움을 없애 버린다’ 함은 이 사람은 세 가지 인연으로써 두려움을 없앨 수 있나니,
첫째 나와 내 것이 없다는 법의 모양을 보기 때문에 두려움을 없앨 수 있다.
둘째 방편의 힘 때문이며,
셋째 마음의 담력 때문에 두려움을 없앨 수 있다.
나와 내 것이 없음을 본다 함은 초지 중에서 말한 것과 같아서 다섯 가지의 두려움을 없앤다.
방편의 힘이라 함은 이 논 중에서 바른 생각으로 업의 과보를 생각하는 까닭에 방편의 힘이라 하나니, 이런 생각을 해야 한다. ‘여러 큰 나라의 왕은 깊은 궁전에 있고 상병ㆍ마병ㆍ거병ㆍ보병이 모시며 호위하지만 그 업의 인연이 다하면 역시 갖가지의 모든 쇠망함과 괴로운 일을 받으리라. 또 업의 인연을 수호하면 비록 험한 길 가운데를 가고 큰 바닷물 속에 들며 큰 싸움의 진영에 있다 하더라도 역시 편안하고 고요하며 근심이 없으리라. 나의 전생 업의 인연은 마을에 있거나 아련야 처소에 있거나 간에 업의 인연은 반드시 그 과보를 받으리라.’
이렇게 생각한 뒤에 두려움을 없애 버린다.
또, 생각하기를 ‘만약 내가 몸을 수호하기 위하여 도시와 마을에 들어가고 아련야 처소를 버린다면, 보다 훌륭하게 착한 몸의 업과 착한 입의 업과 착한 뜻의 업을 수호할 수 있는 것이 없으리니, 부처님께서 파사닉왕(波斯匿王)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다.
≺만약 사람이 몸의 착한 업을 행하고 입의 착한 업을 행하고 뜻의 착한 업을 행하면 이것을 사람이 스스로가 잘 수호한다고 하며, 이 사람이 만약 나는 스스로가 잘 수호하는 이라고 말한다면 이것은 진실한 말입니다.
대왕이여, 이 사람은 비록 네 가지 병사로 호위함이 없다 하더라도 역시 잘 수호되는 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수호를 안의 수호라 하고 밖의 수호가 아니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나는 몸의 업의 착한 행과 입의 업의 착한 행과 뜻의 업의 착한 행이므로 스스로가 잘 수호한다고 하리라’고 한다.
또, 생각하기를 ‘이 여러 날짐승과 길짐승이며 기어 다니는 벌레 따위는 아련야에 있으면서도 몸으로 착함을 행하지 않고 입으로 착함을 행하지 않으나, 마을을 멀리하여 사는 까닭에 두려워함이 없다. 나의 마음과 지혜는 어찌 이 날짐승 길짐승보다 못하단 말이냐’ 하고, 이렇게 생각하며 여러 두려움을 없앤다.
또, 부처님을 생각함으로써 아련야에 있으면서 온갖 두려운 일들을 깨뜨릴 수 있나니, 경전에서의 말씀과 같다.
“너희 비구들아, 아련야 처소에서 나무 아래 있거나 빈집에 있거나 간에 혹시 두려움이 생겨서 마음이 내려앉고 털이 곤두선다면, 너희들은 나의 이 여래ㆍ응공ㆍ정변지ㆍ명행족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조어장부ㆍ천인사ㆍ불세존을 생각하여야 한다. 이와 같이 생각할 때에 두려움은 곧 없어지리라.”
‘담력이 크다’ 함은 마음에 겁이 많지 않으며, 결정코 도를 구하는 것이다.
다음의 말과 같다.
비구는 비고 한가한 데 머물러서
마음에 겁이 없는 용감한 힘으로써
모든 두려움을 없애야 하리니
부처님을 생각하면 두려운 것이 없다.
어떤 사람이 스스로 업을 일으키면
두려움에서도 벗어나지 못하고
두렵지 않은 것도 벗어나지 못하나니
두려움은 곧 바른 이익을 잃는다.
이와 같이 면하지 못하는 줄 알면서
그 밖의 이익을 깨뜨린다면
곧 소인(小人)으로서의 일을 행함이니
비구로서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만약 두려울 것 있어야 한다면
나고 죽음을 두려워할지니
온갖 두려움이란
나고 죽음에서 다 원인이 된다.
그러므로 도를 행하는 이로서
나고 죽음을 벗어나려고 하거나
또한 다른 사람을 구하려 하면
두려움을 내지 않아야 한다.
불리포외경(佛離怖畏經)』중에서 두려워함의 법을 말씀하신 것과 같다.
“어떤 사문과 바라문이라도 아련야 처소에 머무르면 이러한 생각을 하여야 하느니라. ‘몸의 업이 깨끗하지 못하고 입의 업이 깨끗하지 못하고 뜻의 업이 깨끗하지 못하고 생각이 깨끗하지 못하고, 자신은 높이고 남을 낮추며, 마음이 게으르고 기억을 잊으며, 마음이 안정하지 못하고 어리석은 까닭에 두려워지며, 이와 어긋나게 몸의 업이 깨끗하다든가 하는 따위이면 곧 두려움이 없다.’”
또 부처님이 욱가 장자를 위하여 말씀하셨다.
“집을 떠난 보살이 아련야 처소에 있게 되면 이런 생각을 해야 한다.
나[我]는 무엇 때문에 여기에 있을까?
즉시 스스로가 알겠구나.
두려움을 여의려고 여기에 와 이르렀도다.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여러 가지 시끄러움을 두려워하고, 여러 가지 말들을 두려워하고, 탐냄ㆍ성냄ㆍ어리석음을 두려워하고, 교만과 원망과 질투와 다른 이양을 두려워하고, 빛깔ㆍ소리ㆍ냄새ㆍ맛ㆍ닿음을 두려워하고, 다섯 가지 쌓임의 악마를 두려워하고, 여러 어리석고 장애되는 곳을 두려워하고, 때 아닐 적의 말을 두려워하고, 보지 않았으면서 보았다고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듣지 않았으면서 들었다고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깨닫지 못했으면서 깨달았다고 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모르면서 안다고 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모든 사문의 때[垢]를 두려워하고, 서로가 함께 미워하고 싫어함을 두려워하고, 욕심세계ㆍ형상세계ㆍ무형세계의 온갖 나는 곳을 두려워하고, 지옥ㆍ축생ㆍ아귀와 여러 어려운 곳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간략히 말하면 온갖 나쁘고 착하지 못한 법을 두려워하는 까닭에 여기에 와서 머물러 있다.
만약 사람이 집에 있으면서 뭇 시끄러움에 있기를 좋아하면 도를 닦고 익히지 못하며 삿된 생각에 머물러 있게 되므로 이와 같은 두려운 곳을 여읠 수가 없다.
과거에 있었던 여러 보살들은 모두가 아련야 처소에 있으면서 모든 두려움을 여의고 두려움이 없는 곳을 얻었으며 온갖 지혜를 얻었다.
장차 오는 세상에 있을 보살들 역시 아련야 처소에 있으면서 모든 두려움을 여의고 온갖 지혜를 얻을 것이며, 지금 현재의 보살들도 아련야 처소에 머무르면서 모든 두려움을 여의고 두려움 없는 곳을 얻으며 온갖 지혜를 이룩하리라.
그러므로 나는 온갖 나쁨을 두려워하며 모든 두려움을 건너려는 까닭에 아련야 처소에 머물러야 한다.
다음에 또,
온갖 두려움은 모두가 나[我]를 집착함에서부터 생기나니,
나를 탐내며 집착하는 까닭이며,
나를 사랑하고 받드는 까닭이며,
나라는 생각을 내는 까닭이며,
나라고 보는 까닭이며,
나를 귀하게 여기는 까닭이며,
나를 분별하는 까닭이며,
나를 수호하는 까닭이다.
만약 내가 아련야 처소에 머무르면서 나를 탐내며 집착하는 것을 버리지 못한다면,
헛되이 아련야 처소에 있는 것이 되리라.’
또, 장자야,
얻을 것이 있으리라고 보는 이는 곧 아련야 처소에 머무름이 아니며,
나와 내 것이라는 마음에 머무르는 이는 곧 아련야 처소에 머무름이 아니며,
뒤바뀜에 머무르는 이는 곧 아련야 처소에 머무름이 아니니라.
장자야,
열반의 생각을 내는 이도 오히려 아련야 처소에 머무름이 아니거든 하물며 번뇌의 생각을 일으키는 이이겠느냐.
장자야,
마치 풀과 나무가 아련야 처소에 있으면서도 놀라거나 두려워함이 없는 것처럼,
보살도 그와 같아서 아련야 처소에 있으면 풀과 나무라는 생각, 돌과 기와라는 생각을 내며,
물 가운데 그림자라는 생각, 거울 가운데 영상이라는 생각을 내며,
말에는 메아리라는 생각을 내며, 마음에는 허깨비라는 생각을 내어야 하나니,
이 가운데서 누가 놀라며 누가 두려워하겠느냐.
보살은 그때에 곧 바르게 몸을 살피면 나가 없고 내 것이 없으며 중생이 없고 수명이 없으며,
기르는 이가 없고 남자도 없고 여자도 없으며, 아는 이와 보는 이도 없으리니,
두려움이라 함은 허망하게 분별하는 것이므로 나는 허망하게 분별함을 따르지 않아야겠다고 하며,
보살은 이와 같이 풀과 나무처럼 아련야 처소에 머물러야 하느니라.
또 온갖 법을 알되 모두를 또한 이와 같이 할지니라.
다툼을 끊으면 아련야 처소라 하며,
나가 없고 내 것이 없으며 매이는 바가 없으면 아련야 처소라고 하나니,
집에 있거나 집을 떠나거나 간에 여러 시끄러운 곳에서 살기를 좋아하지 않아야 한다.
모든 부처님도 아련야 처소의 비구에게
집에 있는 이와 집을 떠난 이와 함께 뒤섞여 있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느니라.”
★ 불도(佛道)를 행하는 자는 두려움을 내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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