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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까르마빠, 나를 생각하세요 4 - 관(위빠사나)을 수행하는 방법들 (끝)

수선님 2017. 12. 17. 12:24

까르마빠, 나를 생각하세요 4 - 관(위빠사나)을 수행하는 방법들

 

 

안정되고 평안한 마음을 가지는 것은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고통의 문제를 겪는 것은 주로 마음 때문입니다. 정진함으로써 장애를 일으키는 번뇌를 떨치고 마음을 평안하게 할 수 있습니다. 명상으로 가능한데, 왜냐하면 명상은 안정된 마음을 주기 때문입니다.


많은 명상법 가운데 지(止, 사마타)와 관(觀, 위빠사나)의 방법이 중심입니다. 지 수련 시 우리는 마음을 안으로 향하게 함으로써 번뇌를 억누르며 마침내는 나타나지 않도록 합니다. 번뇌는 우리로부터 멀어진 것처럼 생각됩니다. 그러나 지 수행만으로 이것들을 없애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근원을 제거하려면 관 수련을 해야 합니다.


관 수련에는 세 단계가 있습니다. 관 수련을 하려는 발심, 수련의 여러 방법들 그리고 후명상입니다. 발심할 때에는 진정한 스승에 의지해야 합니다. 스승에게 진정한 다르마를 배우고 올바른 방법으로 이것을 지녀야 합니다. 세 단계를 제대로 완수하지 못하면 현상을 원인으로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좀더 근본적인 지식을 통한 관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스승은 경전에 나오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우리 마음에 녹여줍니다. 그런 스승에 의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스승의 가르침을 정확하게 이해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스승의 가르침에 의지하는 것만이 아니라 예비수준 및 완성수준의 다르마 가르침을 정확하게 이해하여야 합니다.1) 나아가 우리 마음의 흐름에 정확한 견해를 확립하고 의심을 떨쳐내기 위하여 관 수행을 계속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관의 지혜를 이룰 수 없습니다. 속세의 비불교적인 견해를 따르면 관의 지혜는 이룰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잘못된 견해이기 때문입니다.


경전과 논서를 배우고 사색함으로써 의심을 떨쳐내고 논리를 통해 견해를 확립합니다. 견해에 대해 그리고 견해가 제시하는 마음의 본질에 대해 확신을 가진 다음, 이것을 우리 자신의 마음에 녹입니다. 이럴 때 관을 향한 온전한 발심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옛 라마(스승, 조사, 고승, 스님)들은 먼저 마음의 본질에 관해 숙고하며 수련을 쌓음으로써 마음의 본질이 공성(空性)이라는 정확한 깨달음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이 깨달음을 기반으로 다음단계의 명상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수련의 정도입니다. 그렇지 않고 정견(正見) 없이 수행에 나선다면 마치 가파른 절벽을 손 없이 오르려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마음 흐름에서 깨달음을 이루려는 목표는 달성되기 어려울 것입니다. 정견을 우선 확립한 뒤에 명상을 수련한다면, 가는 길이 마치 하늘로 솟구치는 가루다의 비행처럼 탄탄대로일 것입니다.2) 수행이 잘 되어 깨달음에 이를 것입니다. 그래서 완벽한 정견을 가지고 시작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두 번째는 관을 수행하는 여러 방법 중 어떤 것을 택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세속적 및 비불교적 방법도 있고, 성문승 및 독각승들이 방법도 있으며, 대승 그리고 그 안의 밀교 등의 방법도 있습니다.


비불교적 세속의 관 수련은 거친 단계에서 세련된 단계로 넘어가는 명상을 수행합니다. 예를 들면, 안정된 명상의 첫 단계에 이르게 되면 그 앞 단계인 낮은 차원의 욕망의 세계를 되돌아보고, 그것이 폭력과 증오 등의 결함을 가지는 적절한 명상의 목표가 아니었음을 깨닫습니다.


또한 안정된 명상이라는 첫 번째 단계3) 에는 그런 폭력과 증오가 없음도 깨닫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전 단계의 낮은 차원에서는 높은 단계에는 없는 결함이 있음을 깨달음으로써 안정된 명상의 네 단계를 점차로 밟아 올라가면서 그 앞의 결함들을 극복해 나가 좀더 세련되어지는 것입니다.


이 세속적 방법에 따른 관 수련을 통해 번뇌를 누르고 일시적으로 이것들이 나타나는 것을 막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완벽하게 제거할 수는 없습니다. 때문에 다시 윤회계를 떠돌고 그 이전의 존재상태로 떨어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욕계의 집착과 욕망에서 벗어나고 세속적 관 수행을 계속할 수 있다면, 깊은 지식 세계의 원대하고 멋진 자질들을 성취할 수는 있습니다.


성문승 전통에서도 관 수행을 하는데, 여기서의 초점은 사성제와 그의 16관점에 있습니다. 부처님은 법륜을 세 번 굴리셨는데, 초전법륜에서는 사성제를 가르쳤습니다.


고통의 진리, 그것의 원인의 진리, 그것을 끝내는 진리, 그리고 끝내는 과정에 관한 진리입니다. 이들은 본질, 기능, 결과의 세 범주를 각각의 네 범주에 적용시켜 나오는 12연기법의 개념으로 설명될 수도 있습니다.4) 또 다른 방법으로는 사성제 각각에 무상, 공성, 무아법 등의 네 측면을 적용하여 16관점으로 설명할 수도 있습니다. 성문승의 관 수행은 16관점, 즉 16가지 마음 다스리는 방법에 관해 명상하는 것입니다. 독각승 전통에서는 무지로부터 시작하는 12연기에 집중합니다.5) 이들은 관 수행 시 이 12측면인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을 명상합니다.


교종 전통에서는 연기법이 중요한 열쇠인데, 다양한 철학체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12연기의 생성 고리에 관해서는 원칙적으로 동일합니다. 예를 들면 중관학파는 모든 현상은 원인과 결과의 상호의존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합니다. 현상은 영속하지 않으며 근원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모든 현상의 본질은 공이며 지적 작용과 무관합니다. 그러나 상대적, 즉 일반적 수준에서 우리가 체험하는 것은 현상이며 여기에 대해 생각합니다. 이들은 원인과 결과가 서로에게 의존하는 관계에서 나타납니다. 불교 가르침에서 의존적 발생은 중요한 것이며, 중관학파에서는 더욱 중요합니다.


여러 가지 관 수행방법 중 가장 중요한 것은 6바라밀에 기초한 중관학파의 것입니다. 이 학파에는 자립논증파라고도 하는 스바탄트리카, 랑통 혹은 아공견파(我空見派)라고도 하는 프라상기카파 또는 귀류논증파, 센똥 또는 타공견파(他空見派)라고 하는 3파가 있습니다. 스바탄트리카파에서는 명상과정을 두 개로 나누어 관을 수행합니다. 명상하는 자와 명상을 하는 대상입니다. 전자는 명상하는 주체인 마음을 가리키며 후자는 명상의 객체인 마음이 명상하는 법성 그 자체를 가리킵니다. 명상은 어떻게 진행됩니까? 명상하는 주체의 의식과 관련해서, 또 명상의 객체인 모든 현상과 관련해서, 존재와 비존재를 구별하는 등 모든 정신적 활동을 그칩니다. 그런 후에 텅 빈 하늘과 같은 그것들을 부정하면서 머뭅니다. 이것이 스바탄트리카파가 제시하는 관의 수행입니다.


프라상기카파는 약간 다른 방법을 씁니다. 법성이 명상의 목표며 주체는 인식하는 마음입니다. 그렇다면 ‘이 둘은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라는 의문이 듭니다. 이 둘은 같은 것도 다른 것도 아님을 알게 됩니다. 이 둘은 실제로는 물에 물을 부은 것처럼 분리될 수 없습니다. 두 잔의 물이 합쳐진다면 어느 것에 어느 것을 부었는지를 구분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이 주체의 의식과 객체인 모든 현상 간에 차이가 없는 상태에 머물고 있는 것입니다. 프라상기카파는 관 수행을 이렇게 봅니다.


센똥파는 ‘근본적 지혜는 주, 객의 이원성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자신의 본질을 자신이 의식하는 것으로 명료한 것입니다. 이 지혜를 달리 말하면 ‘이원성이 없는, 무시이래의 반사적 깨어있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본질적 관점에서는 아무 것도 더하거나 뺄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극복할 번뇌의 장애도 없으며 성취할 부처의 품성도 없는 것입니다. 아무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의 마음의 본질에 머무르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원만명료성에 평안히 머무는 것입니다. 이것이 센똥파가 말하는 관 수행입니다.


대승 전통에 속하는 모든 학파에서는 우리가 왜곡되지 않은 모든 현상의 확장 위에 평안한 명상상태로 머물 것을 권합니다. 이때 우리는 존재와 비존재에 의지한 정신적 구조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수승한 밀교의 관 수행법은 대승의 것과는 약간 다릅니다. 이원성을 극복한 공성이 마음의 본질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공성이라는 것이 단순한 무존재, 공허 혹은 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본질은 공성이지만 이것은 무엇으로도 나타날 수 있는 측면이나 능력을 가진 것으로, 따라서 원만명료성을 띠고 있다고 말합니다. 공성은 원만명료성만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이 명료성의 측면에는 본질적으로 대환희를 포함하기도 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공성 안에, 무한한 축복을 받으며 평안히 머무는 것이 관에 대한 대승의 견해입니다.


관 수행의 이런 방법들인 성문, 독각, 스바탄트리카, 프라상기카, 센똥 그리고 밀교를 통해 우리는 번뇌의 뿌리를 끊을 수 있습니다. 세속적 관 수행법에 의해서도 높은 명상의 경지에 오를 수 있고, 관을 개발할 수 있지만 번뇌를 억누르는 정도이지 뿌리를 잘라내는 것은 아닙니다. 불교의 관 수행을 통해서만 윤회의 뿌리를 잘라내고 진정한 해탈에 이를 수 있습니다.


마지막 관 수행의 단계는, 명상의 단계에 이른 후에 어떻게 더 마음을 닦느냐에 관한 후명상입니다. 우리 눈에 우선 띄는 것이 우리의 몸입니다. 무지한 우리는 이것들이 실재한다고 생각하지만, 명상을 통해 본다면 이것은 본질적 존재가 아니며, 존재하지 않으면서도 그렇게 보이는 환상과 같은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보는 것은 마술사가 만들어낸 것 같은 허구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몸은 환상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육체적 존재 이외에도 고통에서 행복감에 이르는 다양한 범위의 감각을 체험합니다. 이것들 역시 우리가 체험하지만 실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들은 꿈속의 감각과 비슷합니다. 꿈속에서 팔을 자르면 깨어 있을 때와 같은 아픔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나 팔을 자른 것은 꿈속에서만 있었던 일입니다. 깨고 나면 팔에는 아무 일도 없었음을 알게 됩니다. 보통 때의 우리 감각도 이와 같습니다. 실재하지 않으면서도 진짜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마음의 본질은 허공과 같습니다. 비록 우리가 논리, 경전, 체험을 통해 마음이 본질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더라도 마음은 실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은 공입니다. 사물이 실재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의 마음은 속은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 본질은 공성이지만 무는 아니며, 단순한 부정의 결과물도 아닙니다. 공성은 윤회와 열반 모두가 나타나는 기반인 원만명료성이기도 합니다.

 마음은 공간과 같으며, ‘이것은 허공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며, 명료하고 인식하는 기능도 있습니다. 우리는 ‘공하고 맑음’이 본성인 마음에 머물 때 자연스럽고 편하게 수행의 길을 닦을 수 있습니다. 몸, 감각, 마음 등 모든 현상들은 하늘의 구름과 같은 존재입니다. 구름은 어디서 옵니까? 이들은 어디로 사라집니까? 알 수 없습니다. 몸, 말, 마음과 같이 다른 현상들 역시 생겨남과 없어짐, 오고 감이 없는 것입니다. 이들의 본질은 공성입니다.


모든 중생들은 정신적 행복을 원하며 고통을 피하려 합니다만 원하는 것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될 수도 있습니다. 번뇌는 윤회의 원인이며 모든 정신적 불만족과 고통의 원인입니다. 치료제는 명상입니다. 모든 수행법 중에서도 관이 최고입니다. 수행하지 않고 해탈하려는 소망이나 기원은 헛일입니다. 해탈을 이루기 위해서는 치료법을 써서 번뇌와 뿌리를 제거함으로써 가능한 것인데 이 근원적 해독제가 관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길게 설명을 드렸습니다. 여러분의 수행에 도움이 되었기를 바라며, 어서 빨리 마음을 다스리고 성불하기를 바랍니다.



1)잠정의미란 제자가 좀더 심원한 설명을 이해하지 못할 때 주어지는 설명이다. 본 의미란 직접적 설명이며 궁극을 설명한다.

2)이 새는 나자마자 날 수 있다 하며 본원적 지혜의 상징이다.

3)고요한 명상에는 4단계가 잇다. 색계의 4구분과 상응한다. 각각은 세 단계씩으로 되어 있으며, 여기에 5정토의 색계 경지를 더하면 17경지가 된다. 색계는 윤회계의 세 가지 세계 중 하나이며, 세 가지 세계란 색계, 욕계, 무색계를 말한다.

4)예를 들자면, 두 번째 범주인 기능을 4성제의 각각에 적용할 수 있다. 제1성제와 관련지으면 기능은 고통을 완화시키는 것이며, 두 번째에서는 고통의 근원을 없애는 것이며, 세 번째에서는 고통의 나타남을 제거하는 것이며, 네 번째는 진리에 의지하는 것이다.

5)12연기는 무명-행-식-명색-육처-촉-수-애-취-유-생-노사


-미쉘 마틴 지음, 신기식 옮김, <<까르마빠, 나를 생각하세요>>, 지영사, 2007.

 

 

 

모든 이가 고통에서 벗어나 해탈하기를...

 


출처 : 菩 提 心
글쓴이 : 무인아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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