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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까르마빠, 나를 생각하세요 1 - 수식관(數息觀: 호흡을 세면서 하는 명상)

수선님 2017. 12. 17. 12:23

까르마빠, 나를 생각하세요 1 - 수식관(數息觀: 호흡을 세면서 하는 명상)

 

 


부처는 수많은 다양한 사람들에게, 그들 각각의 성격 열망 능력 등을 고려하여 다르마를 가르쳤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르마를 수행하는 데는 수많은 다른 방법이 있는 것이며, 삼승법<성문승(초기불교), 독각승, 보살승(대승불교)/소승, 대승, 금강승(밀교)>을 비롯한 많은 방편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의 뿌리는 진정한 다르마입니다. 모든 방편과 가르침의 핵심은 ‘배움’과 ‘수행’ 또는 ‘경전’과 ‘깨달음’의 두 범주로 요약해 볼 수 있습니다.

경전이란 부처의 모든 가르침을 가리키며 ‘깨달음’은 명상을 통해 안정된 상태를 지칭하는 삼매지와 같은, ‘우리 자신의 깊은 지혜가 발현되어 나타난 것’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불법에 의지하여 해탈을 이루기 위해서는 완전무결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워야 합니다. 또한 가르침을 배우고(聞) 생각하고(思) 명상하는(修) 과정을 잘 따라야 합니다. 이 세 가지가 불법에 입문하는 핵심입니다. 이런 수행을 행함과 아울러 다르마의 방편을 잘 적용하고 궁극적 결과를 성취할 수 있게끔 만드는 훌륭한 자질도 필요합니다.

명상은 우리의 마음을 닦는 영역에 속합니다. 마음을 잘 닦으려면, 비교적 편견이 적고 세속적 즐거움에 휘둘리지 않는 순수한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번뇌와 망상이 생길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명상을 통해 이루려는 품성에 반대되는 것입니다. 이것들을 위한 방편들인 수행의 길을 가는 단계들에 대한 수많은 가르침들을 소승과 대승 그리고 금강승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가르침 중에서 숨쉬기의 들숨과 날숨에 대해 초점을 맞춘 수행법은 망상을 잠재우는 방편으로 초심자들에게 도움이 됩니다. 누구나 숨을 들이쉬고 내쉽니다. 여기에 집중해서 무슨 이득이 있을까요? 우리 마음속의 상은 신체의 미묘한 기맥(氣脈)을 흐르는 풍기(風氣)에 의지하여 일어납니다. 호흡의 균형을 이루게 되면 마음의 상념들이 줄어들게 되며, 마침내는 고요한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숨쉬기 방법으로 명상수련을 하려면, 우선 적당한 자세를 취해야 합니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허리를 쭉 폅니다. 이런 특별한 자세를 취하는 이유는 뭘까요? 마음은 호흡에 의지해 움직이며 호흡은 기맥을 따라 흐릅니다. 좋은 자세를 취하지 않으면 기맥이 굽게 되고, 그 속을 흐르는 풍기가 잘 소통될 수 없습니다. 그러면 마음이 안정된 명상의 상태에 머물 수 없습니다. 따라서 몸을 명상 자세로 유지하고 경락을 바르게 해야 합니다.

바른 자세를 취한 다음에는 숨쉬기에 대한 명상을 시작합니다. 이 명상은 공성(空性)에 대한 명상만큼 근원적이지 않으며, 깨달은 마음에 대한 명상만큼 광대하지도 않습니다. 이 수련에서는 날숨과 들숨을 셉니다. 예를 들자면, 내쉴 때 ‘하나’를 생각하고 들이쉴 때 ‘하나’를 생각합니다. 숨을 쉴 때마다 ‘하나, 둘, 셋’ 세기를 빠뜨리지 않고 계속합니다. 전념해서 세기에 집중함으로써 우리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게 됩니다.

 

왜냐하면 마음의 관심을 잡아놓으면 잡념이 일어나 수행을 방해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숨이 들어오고 나가고 하는 것을 셀 때, 우리 마음속에서 조용히 하면 되는 것이지 크게 소리를 낼 필요는 없습니다.

이 수련을 할 때 조심해야 할 함정이 세 가지 있습니다. ① ‘하나’라고 해야 할 것을 ‘둘’이라고 잘못 셀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날숨을 ‘하나’로 센 다음 들숨을 ‘둘’로 세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날숨과 들숨은 확연히 다른 것이며, 두 가지 다른 측면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혼동을 일으키면 ② 둘 중 하나를 둘로 셈으로써 하나를 더 세거나 혹은 ③ 둘을 하나로 셈으로써 하나를 덜 세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들숨을 날숨으로 보고, 숨쉬기 한 주기의 한 부분을 둘로 세는 것입니다. 혹은 날숨을 들숨으로 보고 한 개를 빠뜨릴 수도 있습니다. 이와 같이 더 많이 혹은 덜 세는 수가 있습니다.

들숨과 날숨에 관해 명상할 때는 평상시대로 숨을 쉬어야지 다르게 변화시켜서는 안 됩니다. 더 빠르게 혹은 느리게 쉬려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숨이 흐르도록 놓아두어야 합니다. 더 빠르게 쉬려고 하면 우리 마음을 흐트러뜨립니다. 숨을 막아 느리게 쉬어도 역시 명상을 방해합니다. 있는 대로 자연스럽게 흐르는 숨을 셉니다.

 

열을 넘겨 세지 않습니다. 너무 큰 숫자까지 세면 혼란스러워질 뿐 아니라 잡념이 생겨 수행의 득을 볼 수 없습니다. 열보다 적은 것도 역시 안 좋습니다. 왜냐하면 숨을 따라 안정된 명상상태에 이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더도 덜도 말고 꼭 열까지만 세어야 합니다.

일상적 수련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처음에는 한 번에 너무 많이 할 필요가 없습니다. 첫날에는 조금 그리고 다음날에는 약간 더, 그래서 열 번씩 열 번까지 늘립니다. 그런 다음 아침에만 하다가 저녁에도 하고, 다음에는 아침 점심 저녁으로 늘립니다. 이런 식으로 점차 늘려가다 보면 망상과 잡념이 줄어듭니다. 수련이 주는 이득이지요.

이 숨쉬기 수련은 어렵거나 난해하지 않습니다. 숨의 흐름에 마음을 맡김으로써 몸에도 도움이 되어 병을 고칠 수도 있습니다. 명상은 ‘익숙해지기’입니다. 매일 수련함으로써 수련이 몸에 익고 친숙해 집니다. 결국 명상의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명상을 하는데 너무 서두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도 한 방법이겠지요. 그러나 전념하여 자연스럽게 고요한 마음을 내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너무 서둘러서 무리해서 명상하는 것보다는 저절로 되는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좋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수련하고 단계적으로 완성시키는 것이 훌륭한 수련방법입니다.

-미쉘마틴 지음, 신기식 옮김, <<까르마빠, 나를 생각하세요>>, 지영사, 2007.

 

 

 

모든이가 바른 선정을 이루기를...

 

출처 : 菩 提 心
글쓴이 : 무인아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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